주 2회 망원동 어르신 급식 봉사
무료급식소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
6월 2일 망원동의 한 주택가 골목 주변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봄볕을 쬐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무료급식소 하심정에서 막 식사를 마치고 나온 어르신들. 3백 여명의 어르신들이 매주 화, 목요일 이틀 하심정에서 무료 급식을 한다. 그리고 하심정 뒤에는 수행과 봉사를 생활화 하는 김원수 바른법연구원 원장(69)이 있었다.
김 원장는 2004년 자신의 3층 짜리 주택을 개조해 무료 급식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대문을 헐고 정원을 개조해 대나무를 지붕 삼아 임시 급식소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1, 2층을 개조해 어엿한 식당 하나가 됐다. 이름은 하심정(下心亭). 〈초발심자경문〉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만든 이 명칭은 마음을 닦는데 하심(下心)이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처음 시작은 식사를 못하는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주는 거였어요. 당시는 현직에서 근무할 때라 한달 월급을 내어 운영하고자 마음을 먹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봉사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또 여기저기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더 많은 어르신들이 좀더 편하게 급식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했죠”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화·목요일 무료급식이 진행되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심정은 한식 뷔페집으로 운영된다. 김 원장은 3년 전 홍익대 재료공학부 교수직을 퇴직하면서부터 조미료를 넣지 않은 깔끔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겸해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기업 하심정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사실 복지 식당을 지속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보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어 다시 사회로 환원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두가 함께 벌어서 우리 힘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하심정을 확대 운영하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하심정의 시작은 그의 수행처인 바른법연구소가 위치한 고양시 원당동이었다. 처음 이곳에서 도반들과 무료급식을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았다. 김 원장은 “왜 안 올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곳은 도시 개발로 돈을 번 노인들이 많아 급식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살 형편이 됐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근 무주택자들의 비닐하우스촌에 반찬배달을 하는 거였어요. 그걸 시작으로 오늘의 하심정이 있게 된 거죠”라고 당시를 얘기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김 원장은 자신이 살고 있던 망원동 주택에서 급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반발이 거셌다. 시의원이라도 나가려고 하냐, 왜 이 동네에서 이런 걸 하냐는 등 뜻하지 않은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저 부처님 법에 따라 모든 것을 회향한다는 마음을 갖고 꿋꿋하게 뜻을 펼쳐 나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인근 시장 상인들도 팔다 남은 물건을 놓고 가고 단골 떡집에서도 3번 중 1번은 무료 서비스를 해준다. 또 급식을 먹고간 노인들이 요구르트를 놓고 가기도 한다. 심지어는 지나가던 기독교인 천주교인들도 마음을 움직여 봉사를 하러 올 정도라고. 이웃 모두가 하심정의 후원자가 된 것이다.
김 원장은 “30년 이 동네에 살았는데 사람들 반대가 그렇게 거셀 줄 몰랐죠. 하지만 모든 게 제 마음 먹기에 달렸기에 꿋꿋하게 밀고 나갔죠.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와 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조계종에서 국수를 제공해 주고 있고 마포구청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쌀도 제공해 주고 있으니 많은 이들이 함께 자비나눔을 하고 있습니다”라며 미소를 짓는다.
그는 이기심을 버리고 남에게 베풀고자 하면 인정도 생긴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사람들이 요즘 세상이 각박하다고 말하잖아요. 하지만 각박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지 세상이 아니더라구요. 내가 마음을 열고 베풀면 상대도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세상이라는 것을 무료급식소를 하면서 체험했죠”라며 나눔의 기쁨을 얘기한다.
이런 그의 보살행 뒤에는 여지없이 수행이 바탕이 되고 있었다. 젊은 시절 동국대 前총장이었던 백성욱 박사를 만나 불교에 입문한 김 교수. 그는 4년간 스승의 법당에서 수행을 하며 공부를 했고 출가를 결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꼭 출가를 하지 않아도 마음을 닦을 수 있다는 스승의 말에 대학원에 진학해 강단에 서게 된 것이다. 이후 88년부터 고양시 원당동에 금강경 독송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수행정진해 오고 있다.
〈금강경〉 공부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일단 금강경 구절을 믿어야겠죠. 물론 의심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강경 말씀을 직접 현실에 적용해 보면서 행하면 법이 주는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금강경 3분의 ‘아계영입무여열반(我皆令入無餘涅槃) 이멸도지(而滅度之)’ 라는 구절을 제일 좋아한다. 김 원장은 “금강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탐진치를 부처님 마음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죠. 올라오는 화도 마음의 어리석음도 헛된 욕심도 부처님 마음으로 돌이키면 모두가 좋은 일이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금강경을 통해 마음 공부를 해온 그는 수행 예찬론자다. 그래서 그는 모든 불자들이 수행을 통해 행복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대부분의 불자들은 불교 수행에는 관심이 없어요. 저도 한 때는 관심이 있는 몇몇만 하는 게 수행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오랜 세월 공부를 할수록 부처님 가르침(금강경)은 모든 재앙에서 벗어나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 이 생명과 같은 가르침을 모든 불자들이 또 국민들이 배우고 실천해 행복을 얻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한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행복을 세상에 회향하는 그에게도 꿈이 있다. 현재 고양시에 운영중인 노인요양시설을 확대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지금 바른법연구원과 함께 운영중인 양노시설에는 5명의 노인이 금강경 공부를 하며 여생을 살고 계세요.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은 어르신들이 불교를 공부하며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하지만 이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건물 증축을 할 수가 없게 됐어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건물을 증축해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부처님 법을 공부하며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여생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라며 의지를 다졌다.
정혜숙 기자
김 원 수 원장은
김원수 원장은 1943년 7월 경기 연천 출생으로 서울대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화학과 석박사과정(물리화학전공)을 수료했고 홍익공업전문대학 금속과 교수, 홍익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前동국대 총장 백성욱박사 문중에서 출가해 수행 4년을 거쳤고, 한국교수불자연합회 초대사무총장을 지냈다. 불교신행단체 바른법연구원 설립 법당 건립(1988)했으며 현재 사회복지법인 바른법연구원 복지재단 이사장과 무료급식소 하심정을 운영하고 이다. 저서로는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김영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