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의 나의 삶
인천대건고등학교 2학년 문학예술반
김명보
20년 후에도 나는 싸울 것이다.
피곤하겠지. 그래도 그만큼 가치 있으니까, 난 행복하다.
카페에서 저자를 기다리는 일은 그다지 따분한 일은 아니다. 특히 기다리는 장소가 해외라면, 더할 나위 없다. 보통 유럽을 많이 다니다보니 주변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지루하지도, 불편하지도 않게 카페 안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하고 있다. 홀로 앉아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적었다. 아마, 내일 도착할 한국의 풍경과 정반대다.
“봉주흐. 엉셩떼.”
고개를 들어보니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내가 기다렸던 사람, 정신과 의사다.
“책 번역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질문하고픈 게 있었는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이번에 제 책을 담당한 새로운 번역가를 만나보고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호수처럼 깊은 눈망울이 나를 쳐다본다. 순간 나는 병원의 환자가 된 착각이 들었다. 그의 신간을 먼저 읽어보았기에, 하고픈 말은 많았다.
“이번 책은 신기한 것이 정말 많았어요. 이제 책을 쓰신지 어언 25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책의 테마는 정말 신선했던 것 같아요. 아, 당신의 지난 책이 별로였단 건 아니에요.”
그는 짧게 웃음을 지었다. 한 명의 독자로서 나를 대해주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좋았다.
“이번 책의 구상을 끝냈을 때는 주인공 꾸뻬 씨의 나이 또한 많이 지나간 상태였어요. 물론 여행을 다닐 땐 나이를 따지지 않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죠. 그래서 이번엔 지난날의 여행을 뒤돌아보는 여행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우정, 죽음, 사랑 등 여러 여행을 다녔기에 다시 한 번 지난날을 뒤돌아보는 시간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뒤돌아보는 시간. 나는 그 말이 계속 맘에 걸렸다. 나이가 들면서 후회는 점점 깊어진다고 하지만 그의 미소를 볼 때 후회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맞다. 책 속 꾸뻬 씨 또한 나중에는 자신이 떠나왔던 여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다 보니 책을 다 읽고 나서 궁금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정말로 이번 시리즈를 끝으로 꾸뻬 씨의 여행은 끝나는 건가요?”
그는 조금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려주기 어려운가, 싶었지만 그는 의외로 입을 열었다.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 같네요.”
그의 확신에 찬 대답에 나는 희망을 얻었다. 나 역시 그의 열렬한 독자로서 그를, 꾸뻬 씨를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카페를 나와 헤어졌다. 짧은 만남 뒤에는 아련한 아쉬움이 남는다. 행복 여행을 시작으로 여행을 다녔던 그의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니, 꾸뻬 씨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얻은 희망을, 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맘에 서둘러 공항으로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창밖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몇 번 와봤지만 프랑스가 한눈에 보인 적은 없었다. 동네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로 나를 맞이했고, 나는 그런 프랑스의 삶을 즐겼다. 나와 같이 여행을 떠났던 친구의 말을 빌려 표현해보겠다.
“프랑스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 같아. 문화가 가득한 파리!”
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제 전화라는 투정과 함께 친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 야, 역시 가길 잘했다. 어때, 작가는 만나봤어?”
“응. 완전 꾸뻬 씨야.”
친구는 귀가 아플 만큼 크게 웃었다. 공항이라고 하자 짐짓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내일 도착하면 연락해.”
친구와의 연락으로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사실 지금은 출판사가 국외 책의 번역을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다. 정부의 국내 문화와 예술을 살리겠다는 취지 덕분에 국내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 출간 열풍이 불었다. 물론 우리나라 문학계에는 순풍이었지만 너도나도 출판사가 국내 문학 작가를 발굴하려는 바람에 국외 도서 시장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프랑수아 를로르의 신간을 반겼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게 출판사의 입장이었다. 프랑스로 가기 전, 편집장이 내게 말했다.
“이번에 출판된다는 보장은 없어. 특히 넌 프리랜서라서 우리가 널 챙겨줄 마땅한 이유도 없고. 몇 년 뒤에 출판할 거, 일부러 번역을 미리 앞당길 건 없잖아?”
프리랜서의 입지가 작아서 슬프지는 않았다. 문학이 시대를 봐가면서 출판되지는 않잖아요, 라며 따박따박 따졌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구박이었다.
“야, 이제 너도 계약해야지. 좋은 점수 얻고 싶으면 우리 책을 불어로 번역해라. 이번에 인기 얻고 있는 작가 한 명이 있는데…….”
난 전화를 끊어버렸고 파리행 티켓을 예약했다. 프리랜서라서 할 수 있는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하며 저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편집부에서도 어떻게 잘 상황이 정리된 건지 나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아마 내가 없어도 크게 상관없겠지, 하는 씁쓸함은 이번에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간 파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여행을 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단지 나의 번역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나의 나라에게 필요한 것은 인기가 아니라 인정(人情)임을, 문학계가 알아줬음 하는 바람이었다. 작가도 아닌 번역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크게 없지만 나의 소망은 바뀌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할 권리가 있기에 하루 빨리 사람들에게 신간을 소개하는 것, 이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처럼 행복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저절로 떠안겨주는 책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번역가가 짊어져야 할 의무라 믿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출판사를 들렀다. 가족들 얼굴이 보고 싶었지만 급한 건 책 번역 건이었다. 어쩐 일인지 출판사는 의외로 조용했다. 조심히 문을 열자 편집장이 나를 맞이했다.
“어, 왔어?”
그러고는 나를 얼른 회의실로 데려갔다. 어수선한 그의 태도가 왠지 불안했다. 짧게 파리에서의 일을 물어보고는 편집장은 말했다.
“미안하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번 건은 미뤄야 할 것 같다. 회사 사정 상 국내 도서 번역이 돈줄이라는 게 대표의 입장이야. 너도 알지? 요즘 출판사가 하도 많아서 먼저 책을 계약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리고 또…….”
나는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뒤에서 나에게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예의 없는 녀석, 하는 편집장의 소리에 사무국 사람들이 힐끔 나를 쳐다봤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다. 뒤에서 편집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가기만 해봐. 넌 계약이고 뭐고 없어!”
서러웠다. 상업을 쫓는 문학의 처지라는 친구의 말이 순간 떠올랐다. 내가 다닐 때랑 지금이랑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불어를 즐기며 번역을 시도했던 지난날의 내가 생각났다. 난 번역을 왜 하는가? 에 질문을 던지라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기어이 생각을 비집고 들어왔다. 재밌으니까요, 라는 대답이 진정한 답이라고, 답이 있을 수 있냐는 물음에 나가라고 일관하던 교수님의 목소리는 내 손에 힘을 주었다.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낙담한 편집장의 얼굴이 슬쩍 보였다. 내일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나는 달렸다.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프랑수아 를로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전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엔 이렇게 말해줘요. 충고도 아니고 명령도 아니에요. 단지 당신이 그러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당신만의 행복의 룰을 발견해보세요.”
다시 말을 이었다.
“행복할 거에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기분은 우중충했다. 열정만으론 되는 것이 없다던 아내의 충고가 나를 더 풀이 죽게 만들었다. 아내는 회사에 가고 없어서, 집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지지는 않았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전화 메시지가 울렸다.
“힘들었지? 국 끓여놨으니까 밥 먹어.”
단 두 마디가 왜인지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다.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거실로 가 짐을 내려놨다. 커튼을 치니 화창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새하얀 하늘이 보였다. 순간 나는 옛날처럼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대학 시절, 한 번도 안 해본 번역을 해보겠다고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낼 때처럼, 나의 열정을 하나하나 글자 위에 새겼다.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행복의 룰이다.
고독한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