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잎이 지킨 약속 >
< 여러 종류의 바이롤렛 >
작년 오월 경에 바이올렛 두 종류를 집사람이 성당 교우에게 얻어 왔다. 이름처럼 화려한 보라색 꽃이 오히려 그 모양은 소박하고 수수하여 관심을 두고 키우다가 번식에 대한 욕심이 나서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배운 대로 엽삽(葉揷 - 잎꽂이)을 하고 두 주 정도 지나니 뿌리가 났다. 뿌리가 나고 한 참 후 콩알만 한 덩이뿌리가 생기더니 거기서 새싹이 나고 드디어 새로운 개체로 독립되었다. 이리저리 꽃 좋아하는 이웃과 제자들과 주변 선생님들께도 나누어 드렸다. 서울 사는 제자에게 소개를 했더니 애는 꽃시장에게 종류별로 아예 한 상자를 사서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위에 바이올렛 한두 포기 없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래도 식물을 죽이는 사람은 꼭 있는 법이어서 우리 집에 오면 부러워는 하되 가져가기는 꺼리는 이웃도 생겼다. 꽃하고는 팔자가 안 맞다나?
그러다가 품종이 다른 바이올렛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건 흰 바탕에 보라색 꽃이 훨씬 크고 화려하였다. 그래서 또 이리저리 카톡으로 자랑질을 시작했는데 보는 이 마다 모두 예쁘다고 탐을 내었다. 탐내는 이를 그냥 두고 못 보는 성질이라 잎을 날카로운 칼로 잘라 물에 넣거나, 흙에 꽂아두는 등의 방식으로 번식을 시켰다. 물에 넣어 두면 뿌리가 나는 것과 덩이뿌리가 생기는 것 등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화분에 옮겨 심어 적응하기까지 좀 문제가 있는 듯했다. 흙에 바로 심은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제 화분에 정식을 할 때 문제가 없었다.
조금 지나 다시 새로운 종류의 바이올렛을 하나 더 아는 이로부터 얻었다. 그건 흰 바탕에 붉은 색으로 흰 바탕에 보라색이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왕족과 같은 엄숙한 느낌이라면 이건 시골에 사는 처녀인데 오히려 도회지 처녀를 능가하는, 화려하면서도 살짝 눈을 흘키며 배시시 돌아 앉아 남자 애를 태우는 듯한 매력이 있는 꽃이었다. 이 두 꽃은 바탕이 모두 흰색이어서 그래도 뭔가 소박한 심성을 지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서울 사는 제자도 꽃시장에 가서 이 품종을 한 상자를 사왔는데 거기서 중요한 정보를 얻었으니 그건 이것이 바이올렛의 변종이 아니라 “글록시니아”란 별개의 꽃이라는 사실이었다. 바이올렛과 번식 방법이나 잎 등이 닮아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글록시니아”가 “바이올렛”보다 번식은 쉬운 편이었다. 서울 사는 제자에게 어떤 품종을 샀는지 사진을 보내 보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사진을 보내 왔다.
나에게는 사진의 위쪽 좌측 흰 바탕에 분홍색과 우측의 흰 바탕에 보라밖에 없어 잎꽂이를 하여 뿌리가 나면 택배로 몇 개를 보내라고 부탁을 했다. 우체국 택배는 아침 오전 10시경에 부치면 다음날 점심 때 쯤 도착하니 생존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우체국 택배를 믿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특히나 짙은 보라색만으로 치장을 한 글록시니아의 사진을 보았을 때 너무 화려하고 멋져 보여 이 품종은 꼭 가지고 싶었다. 아래 사진을 보라! 너무 멋지지 않은가! 여왕의 자태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에 나는 홀딱 빠지고 말았다. 이 보라색 글록시니아가 나타남으로서 위의 두 글록시니아는 마치 나이 어린 왕자나 공주 정도로 조금은 미숙한 느낌의 꽃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 보랏빛 글록시니아의 품위있는 자태 >
거의 두 달이 지난 후에 택배가 왔고 거의 20장 정도의 잎들이 들어 있어 심을 화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몇 장은 나누고 화분에 심을 수 있을 만큼 심었다. 그런데 잎이 너무 커서 그런지 자꾸 시들시들하게 되더니 말라 죽는 녀석도 생기고 뿌연 곰팡이 같은 게 생기는 녀석, 뿌리가 물러지는 녀석 등등 많은 녀석이 죽었다. 결국엔 넓은 화분에 말라죽은 잎만 초라하게 비틀어진 모습으로 남게 되어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아쉬워 그 잎을 그대로 한달 정도 두었다가 모진 마음을 먹고 버리려 당기니 구근이 딸려 나오지 않는가? 아, 어느 새 잎들은 끝까지 제 할 일을 하였구나.
그리고는 가을로 접어들어 아무 것도 없는 화분에 다른 것을 심으려는 아내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구근은 살아 있을 것이라 믿고 물을 조심조심 주어 흙이 마르지 않도록 하려는 나의 외로운 그리움은 가끔씩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긴 흙만 있는 빈 화분에 물을 지성으로 주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란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이러한 물주기는 겨울을 거치고 봄을 맞아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었을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아무 소식이 없어 도대체 구근이 살아 있기나 한지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물론 구근이 있는 곳을 살살 파보면 되겠지만 이제 어디에 심었는지 그 위치조차 모르고 다만 네 개의 잎을 심었으니 한 녀석 정도는 살아 있겠지 하는 정도의 막연한 기대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거짓말처럼 푸르고 작은, 털이 조금 보숭보숭한 잎이 보이지 않는가. 거의 1㎜ 크기의 잎 두 장이 앉은뱅이처럼 흙에 딱 들러붙어 겨우 보일 지경이었지만 분명 글록시니아였다. 그리고 사나흘 후 다시 나의 겨우내 믿음과 노고에 답 하듯 또 하나의 글록시니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걸 본 순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순간에 “이제 다 이루었도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온 이 두 개선장군 같은 글록시니아를 아침저녁으로 보살피며 사랑하던 중 보름이나 지나서 다시 저기 아래에 한 개체가 “여기 나도 준비하고 있었구려!”라고 하듯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그래 너로구나. 너도 거기서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었구나. 그리고는 내가 네 개의 잎을 심었음을 상기하고 아마 위에 하나 더 생길지 모르겠다는, 막연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살피던 중, 오늘 아침 다시 늦둥이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냄을 발견하고 “이제야 정말 다 이루었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긴 기다림이었고 그 기다림에 대한 보답의 순간이었다. 여기 무슨 다른 사족 같은 말을 덧붙이랴. 다만 이 글록시니아들이 꽃을 피울 가을까지 화려한 꽃 색이 무얼지 궁금해 하는 일이 다시 또 남았다. 피같이 붉은 진홍과 엄숙한 보라의 꽃이 나타나길 빌어 본다. (2014. 06. 02 완.)
< 네 포기의 글록시니아가 나의 노고에 보답하듯 차례로 싹을 내밀었다 >
Tip] 요런 분홍색도 있다. 이건 아마 청도의 모 음식점 앞에 햇볕에 잎이 탈색이 되어 있음을 가볍게 여겨 잎을 채집해 키운 것으로 기억한다. 바이올렛이나 글록시니아를 기를 때 주의할 점은 잎에 물을 주지 말고 화분에 흘려주어야 한다는 것과 물이 묻은 상태에서 강한 햇볕을 쪼이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누렇게 탈색이 되니 강한 햇볕은 피하라는 것이다.
< 연분홍 글록시니아 >
< 어렵게 구한 진홍 글록시니아 >
첫댓글 바이올렛,글록시니아를 알게 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ㅎㅎ저는 키우기 아주 쉽고 꽃이 큰 글록시니아가 좋아요.
좀 있으면 장마가 올텐데 작년 장마 때 처럼
하얀 곰팡이로 글록시니아를 죽이는 일은 없을거예요.
'글록시니아' 하면 괜히 수다가 길어집니다~~ㅋㅋㅋ
작년 겨울 잎 두 세개 달고 거실 구석에서 햇볕도 잘 못보고 살아 남은
세 포기 글록시니아가 잎도 무성하고
한포기는 보라색 꽃으로 쓰러질 정도로 많은 꽃송이 달고
열심히 꽃 피우고 있는데
나머지 두 포기는 어떤 색깔의 꽃을 피울지 무지 궁금해요.
" 아주 빨간색 피워 주면 안될까?"
매일 아침 주문을 걸고 있습니다~~~ㅎㅎ
나도 완전 보라와 아주 빨간 색 꽃을 기다리고 있다
healing입니더
쌤~저하나만 주세용♥
깊이 15센티에 폭이 25센티 정도의 넓은 화분을 준비하고 기다리렴. 그런데 넌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