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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13 ~ 16장 - 해석(解釋)
<해서는 안진경 다보탑비, 초서는 손과정 서보의 서풍으로 썼다. 字의 크기는 약 1.8Cm이고 7호(毫) 겸호면상필(兼毫面相筆)을 사용했다.>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필사(筆寫) / 해석(解釋)
論語集註大全
논어집주대전
論語 : |
공자(孔子)가 제자들이나 당시 사람들과 논란(論難: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논하는 것) 하고 힐문(詰問: 잘못된 것을 따져 물음) 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
集註 : |
주자(朱子)가 서술한 주(註)를 명칭하는 것으로 송유십일가(宋儒十一家)의 주석(註釋)에서 좋은 점을 초출(抄出) 하고 논어 주소본(註疏本)에서 주(註)를 모아 자신의 학설을 덧붙여서 집주(集註)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
大全 : |
명(明) 나라 성조(成祖)가 영락 년(永樂年) 중에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근간(根幹)으로 하여 국가에서 발간을 한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이다. 이 영락대전본은 명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로 채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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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學而篇(학이편) 13 ~ 16章
[十三章]
有子曰 信 近於義면 言 可復也요 恭 近於禮면 遠恥辱也요 因 不失其親이면 亦 可宗也라。
유자왈 신 근어의면 언 가복야요 공 근어예면 원치욕야요 인 불실기친이면 역 가종야라。
유자가 말하길 약조한 말(信)이 의(사물의 마땅한 이치)에 가까우면(합당하면) 그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손함이 예(節問 : 등급에 맞게 조절하는 법도)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고, 의지하는 사람(因)이 자신(其)이 가까이하던 사람을 잃지 않게 한다면 높여서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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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 約信而 合其宜면 則言 必 可踐矣요 致恭而 中其節이면 則能 遠 恥辱矣요 所依者不失其 可親之人이면 則亦 可以宗而主之矣라. 此는 言 人之言行交際를 皆 當 謹之於始하여 而慮其所終이니 不然則 因仍苟且之間에 將 有 不勝其自失之悔者矣니라.
말을 약조하였는데 그것(일)이 사리에 맞으면(합당하면) 말은 반드시 실천할 수 있고, 공경을 드러냈는데 그(예의 절문)에 맞으면(中) 치욕을 멀리할 수 있고, 의지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까이할만한 사람을 잃지 않게 한다면 또한 <그를> 높여서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장(章)은 사람이 언행과 교제를 마땅히 시작하는 곳(信近於義, 恭近於禮, 因不失其親)에서 신중하게 지키고, 끝나는 곳(言可復也, 遠恥辱也, 亦可宗也)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되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못을 인습(因習) 하고 목전의 안일만을 추구하는 사이에 스스로 잘못되는 후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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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四章]
子曰 君子 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 愼於言이요 就 有道而正焉이면
자왈 군자 식무구포하며 거무구안하며 민어사이 신어언이요 취 유도이정언이면
可謂好學也已라。
가위호학야이라。
공자가 말씀하시길 군자의 도를 행하고자 한다면 먹을 때에는 배부른 것을 추구하지 않으며, 거처할 때에는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은 힘써 실천하면서 말은 신중하게 하고, 도(道)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시비(是非:옳음과 그름)를 바로잡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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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 猶 不敢自是하고 而必就有道之人하야 以 正其是非면 則可謂好學矣라 凡言 道者는 皆 謂 事物 當然之理니 人之所 共由者也라.
그런데도 오히려 감히 스스로를 옳게 여기지 않고 반드시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다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道)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함께 경유하는(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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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氏曰 君子之學 能 是 四者면 可謂 篤志力行者矣라 然 不取正於有道면 未免有差니 如 楊墨 學 仁義而差者也라 其流至於無父無君하니 謂之好學 可乎아.
윤 씨(尹焞)가 말하길 군자가 학문을 하는데 이 네 가지를 잘할 수 있다면 <不求安飽의>뜻이 확고하고 <敏事愼言의> 실천을 힘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도가 있는 사람에게 바로잡는 것을 취하지 않으면 어긋남(잘못)이 있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인의(仁義)를 배웠으나 잘못이 있는 것과 같다. 그 말류의 <폐단이> 무모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데에 이를 것이니 그들을 일러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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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五章]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라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자공왈 빈이무첨하며 부이무교 하여하나잇고 자왈 가야라 미약빈이락하며 부이호예자야니라。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되 아첨하는 것이 없고, 부유하되 교만하는 것이 없어 면 어떻습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괜찮기는 하지만 가난하면서 도를 즐기며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如琢如磨라하니 其 斯之謂與인저。
자공왈 시운 여절여차여탁여마라하니 기 사지위여인저。
자공이 말하기를 시경에 이르길 “자르고 나서 갈아내며 쪼고 나서 갈아낸다(광을낸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을 말한듯합니다.
子曰 賜也 始 可與 言 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자왈 사야 시 가여 언 시이의로다 고제왕이지래자온여。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賜 : 자공의 이름)는 비로소 함께 시(詩)를 논할만하다. 지나간 것을 말해 주었는데 올 것을 아는구나. (「貧而樂道 富而好禮」를 이야기해주니「切磋琢磨」를 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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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人은 溺於貧富之中하면 而不知所以自守라 故 必有二者之病이라 無諂無驕면 則知 自守矣나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라 凡曰可者는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라 樂則 心廣體胖하여 而忘 其貧이요 好體則 安 處善 樂 循理하여 亦 不 自知其富矣라 子貢 貨殖하니 蓋 先貧後富나 而嘗 用力於自守者라 故 以此爲問에 而夫子答之如此하시니 蓋 許其所已能하고 而勉 其所未至也라.
보통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부유한 데에 빠지게(中) 되면 자신의 몸을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 가지(阿諂과 驕慢)의 병통(病痛)이 있게 된다.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다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아는 것이지만 빈부의 밖으로 초월(超越) 하지는 못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可: 괜찮다)라고 말한 것은 그런대로(겨우) 괜찮기는 하나 아직 지극(至極) 하지 못한 바가 있다는 말이다. <가난하면서 도를> 즐긴다면 마음이 너그럽고 몸이 펴지게 되어서 자신의 가난을 잊게 되고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게 되면 선(善)에 처한 것(있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이치를 따르는 것을 즐겁게 여겨서 또한 자연히 <자신이> 부유한 줄도 알지 못하게 된다. 자공은 재물을 불렸으니 아마도 먼저(어렸을 때에)는 가난하였고, 뒤(장성하여서)에는 부유하였으나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에 힘을 쓴 사람인듯하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질문을 하였는데 부자(선생님)께서 대답을 이와 같이 하였으니 이것은 자공이 이미 잘하는 것은 허여(許與: 허락함) 하고 자공이 아직 이르지 못한 것(樂道好禮)을 면려(勉勵: 노력하도록 만듦)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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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 治 骨角者는 旣 切之而 復磋之하고 治 玉石者는 旣 琢之而 復磨之하니 治之已精而益求其精也라 子貢 自以無諂無驕 爲至矣러니 聞 夫子之言하고 又 知 義理之無窮하여 雖 有得焉이나 而未 加遽自足야라 故 引 是詩以明之라.
뼈와 뿔을 다루는 사람은 자르고 난 뒤에 다시 갈아내고 옥과 돌을 다루는 사람은 쪼고 나서 다시 갈아내는(광을 내는) 것이니 다룬 것이 이미 정미한데도 더욱 그 정미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공은 스스로 무첨(無諂: 아첨하지 않음)과 무교(無驕: 교만하지 않음)를 지극하다 여겼는데 선생님(공자)의 말씀을 듣고 의리(義理)가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비록 그 말(貧而樂道 富而好禮)에서 터득한 것이 있었으나 서둘러 스스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시(詩)를 인용하여서 <공자의 말씀을> 발명한 것이다.
愚는 按 此章問答은 其 淺深高下 固 不待辭說而明矣라 然 不切則 磋無所施요 不琢則 磨無所措라 故 學者 雖 不可安於小成하여 而不求造道之極致요 亦 不可 騖於虛遠하여 而不察切己之實病也니라.
나는(朱子) 살펴 보건대 이장의 문답은 그 깊이와 높이가 진실로 변설(辨說)을 필요로(待) 하지 않아도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자르지 않으면 가는 것을 베풀 곳이 없고, 쪼지 않으면 광을 내는 것을 베풀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비록 소성(아주 조금 이룸)에 안주하여 도의 지극한 경지에 나아가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 허황(虛荒) 되고 고원(高遠) 한 곳으로 달려가서 자신의 실제 병통(病痛)을 간절하게 살피지 않아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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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六章
子曰 不患 人之不己知요 患 不知人也니라。
자왈 불환 인지불기지요 환 부지인야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다.
尹氏曰 君子는 求 在我者라 故 不患 人之不己知요 不知人이면 則是非 邪正을 或 不能辨이라 故 以爲患也니라.
윤 씨(尹焞)가 말하길 군자는 자신에게 있는 것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게 되면 일의 옳음과 그름을 사람의 그릇됨과 올바름을 혹여 변별(辨別)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을 근심으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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