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巫堂, 巫黨)]
무녀(巫女), 무격(巫覡), 박수(博士), 단골<당골>, 심방, 사무(師巫),
천군(天君), 천관(天官), 신인(神人), 국사(國師), 대사(大師),
법사(法師), 도사(導師), 기자(祈子,祈者) 등을 통틀어 이르며,
본래적 의미에서 점술가나 역술가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천군(天君), 천관(天官)의 명칭에 대해서 부연하면 천군은 단군(檀君)과
같은 뜻으로 점차 왕(王)의 형태로 세속권력화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단군의 역할을 대신하는 천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천관역시 국사, 대사, 왕사, 천문관 등으로 분화되어 같다.
특이점은 단골(단골네)이라는 호칭인데 지금도 일반에서
단골손님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반대로 소비자가 특정 업소를 단골로 정하고 다니는 경우에도
사용되고 있는바 여기서 단골이란 쌍방향적, 동시다차원적인 매우
의미있는 명칭(개념)이다.
단골이란 본래가 하늘(하느님)을 뜻하는 의미였으며 그것을 표기한
글자가 단군이다.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들은 지금도 하늘(하느님)을 < 단굴레 , 당구레, 탕구레 >
등으로 발음하고 있다.
단골에 대해 좀더 부연하면 요즘시대의 서비스업종 캐치프레이즈 중
가장 유명한 헤드카피에 < 고객을 왕으로... >라는 내용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고객을 하늘(하느님)<단골>로 모셨으며 고객 역시
무당 또는 업소주인에 대해 단골로 호칭한바 세계인들이 이러한 의미를
안다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의 서비스정신으로,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신뢰가 신적 차원에서 이루어 지고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무당의 명칭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불리워지고
사용되어져 왔다.
환인, 환웅, 왕검 삼성(三聖)의 역사를 시원으로 하는 천신강림의
단군(천군)명호로 부터 신라 초 정황을 다룬 삼국유사의
“차차웅이나 자윤이라 함은 무당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무당을 통하여 귀와 신을 헤아리고 제사를 올린다
(次次雄 或云慈充 金大門云 方言謂也 世人以巫事鬼神尙祭祀)”라는 기록,
김유신의 전생, 신명과의 일화 등 수많은 역사서나 설화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무당이다.
여기서 신라의 화랑, 선화 그리고 국선등이 나라가 선출한 무당의 호칭이었으며,
김유신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천관녀 역시 천관(단군)에서 분리된
국무당의 호칭인바 단군이나 샤먼<師巫의 발음표기(=師祭,司祭)> 등으로
호칭하던 북방계로 부터 지금의 남쪽 끝 제주도 <심방>에 이르기까지,
무당은 우리 역사 면면에 뿌리내려져 왔음과 아울러 다양한 호칭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덧붙여 무당의 표기에 있어서 巫堂이라는 <집 堂>을 쓰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오랜 공동체를 꽃피워 온 천지인 삼극적 세계관에 의한
천지합일의 심령적<神物> 구조물으로서의 의미와 모든 단골들의 하나됨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소산이었는바, 지금은 그 본래의 뜻이
일부 왜곡되어진 관념으로 호칭되고 있기도 하다.
무리 黨의 표기도 오랜 문헌에 등장하고 있는바 오히려 현대적 의미가
있고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는 바가 있다.
어느 당(巫堂, 巫黨)자를 쓰더라도 본질의 변화는 없는 고로 사용자의
신념에 따르면 된다.
무당의 역할은 귀(鬼)와 신(神)에 두루 통하여(通神通靈) 다룰 수 있는
영적 능력으로, 인간계과 신계의 매개자 역할을 맡는다.
인간의 모든 운명과 화복(禍福)은 신의 작용에 따라 영향받게 되므로,
재화를 방지하고 복을 빌기 위해 신과 접촉하는 일을 주관한다.
무당은 수많은 생의 축적된 영적 개화과정을 통하여 신과 소통하는
신인적 존재로, 옛부터 질병이나 우환이 나면 무당에 의뢰해
굿이나 여타의 조치들을 취해왔다.
무당의 직능은 사제(師祭,司祭), 약사(藥師), 영사(靈寫)를 기본으로 한다.
사제란 공물(供物)과 기도로써 신의 뜻을 합의하는 제의(祭儀) 주재의
사명이며, 약사는 약사신령의 발현으로 병을 고치는 의사라는 뜻으로,
질병, 흉사 등의 근원이 되는 부정과 악신을 구축하여 단골들의 육체적 정신적 회복과 조상신명의 좌정을 수행한다.
또한 무당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통신통령하여
감응하는 예언자로서 인간과 사회와 역사의 올바른 진로를 열고
천지합일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무당의 역할이 개인의 길흉화복에 국한되는 것으로 제약되어지는 듯한
요즘의 세태는 하늘을 독점코저 하는 어리석음이 극에 달하였던
지배계급들의 끊임없는 음모와 탄압에서 비롯된 것인바,
세태가 어찌되었든 무당의 본래적 역할은 아무리 참혹한 사회나
시대상황에서도 결코 사라질 수도, 눌려 질 수도 없게 되어있다.
만인에게 하늘의 마음과 기운을 통하게 하는 천명의 수행자가 무당이기 때문이다.
[ 師巫 柳 煥 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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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시조(始祖)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단군성조로부터, 지리산(智異山)의 성모천왕(聖母天王)이라는 성모설,
고대의 제녀(帝女)나 왕녀였다는 왕녀설,
어느 귀족의 여성이라는 귀녀설,
무녀가 왕명을 받들어 무사(巫事)를 시작했다는 왕무설 등이다.
단순히 무당이라 하면 여무(女巫),
특히 가무(歌舞)로써 강신(降神)하는 무녀를 뜻하나,
일반적으로 남무 ·여무 구별없이 쓴다.
한국에서 무당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김대문(金大門)은
차차웅이나 자충이라 함은 우리말로 무당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무당을 통하여 귀와 신을 헤아리고 제사를 올린다
(次次雄 或云慈充 金大門云 方言謂也 世人以巫事鬼神尙祭祀)”라는
대목으로 보아 신라 초기에 이미 무당의 활동이 나타남을
사적으로도 알 수 있다.
BC 1년(유리왕 19)에는 왕의 질병에,
고구려의 차대왕(次大王) ·산상왕(山上王) 때에는 점복적인 예언에
각각 무당이 관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때도 의자왕이 무당을 불러 점을 친 기록이 남아 있으며,
고려에서는 기우제, 사은제(謝恩祭), 서낭제 및
질병구제에 무당이 참가하였다.
조선에서도 궁중에서 별기은(別祈恩)이라 하여
국내 명산에 무녀를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고,
관에서는 표면상으로는 무속을 금지하면서도 기우제,
기양제(祈禳祭)를 주제케 하였으며,
현대의 보건소 역할인 활인청에 소속되어
질병 예방과 치료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리하여 무당의 역할은 전통신앙의 사제로서 깊이 뿌리내렸는데,
오늘날도 조상해원, 안택, 대감놀이 등의 굿,
최후적 질병퇴치, 제액기도 등 재난을 쫓는 치성과 영적치유의 역할,
그리고 개인적 또는 사회역사적 의미의 역할에 이르기 까지
오랜 우리 역사와 함께 하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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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무]
한국의 중부, 북부 지방에 존재하며, 신들린무당, 내린무당이라고도 한다.
강신무는 대개 특별한 이유없이 병이 들어 고통을 겪고
환청이나 환영을 듣고 보는 신병을 앓는데,
내림굿을 통하여 무당이 되면 병은 낫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사제자가 된다.
강신무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신을 받으면 무당이 될 수 있다.
선굿의 경우 대부분 여자가 많고, 남자 강신무는 특별히 박수무당외에
법사, 도사로 분류되는 역할을 많이 지향하는 편이다.
강신무가 제일 먼저 얻는 기능은 예언인데, 이를 말문연다고 한다.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굿이라는 강신의례를 체득해야 한다.
춤, 악기, 제물차리는 법, 무가, 그 외의 절차들을 배워
숙련무가 되려면 보통 수년 이상이 걸린다.
강신무는 내림굿을 해준 무당과 신어머니, 신딸, 또는
사제간의 전통으로 신의 문을 열고 여러 형태의 굿을 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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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당]
고려시대에는 무풍(巫風)이 자유로워 질병이 나면
민간뿐만 아니라 왕실에 까지 무당의 역할이 이루어 졌다.
기우제 ·기설제(祈雪祭) ·기청제(祈晴祭)도 무당이 사제가 되었으며,
원(元)나라의 요청에 의해 무녀 사무들이 초청되어 가기도 하였다.
국무당은 고려 명종(明宗) 때 별례기은도감(別例祈恩都監)의
설치와 더불어 시작되었는데, 그 후 폐단이 많다 하여 끊임없이
존폐 문제가 논의되었으나 조선시대까지 존속되었다.
무당말살작업은 고려 말 이후 사대부세력의
집권 이데올로기 확립차원에서부터 본격화 되었으며,
천인신분으로 규정하고 사대문 밖으로 추방하는 등
대대로 여러가지 강압조치들을 취해 왔으나 오히려
사대부집안의 자제들에게서 강신제자들이 끊이질 않고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