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세 감독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1970년대 말, 산업화 시대의 대한민국이 가졌던 내부적 아픔을 우화적 방식으로 그려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하 ‘난장이’)은 아직까지도 스테디셀러로 꾸준하게 팔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난장이 가족이 겪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산업화 시대 하층 계급 사람들이 대면할 수밖에 없었던 차별과 고통, 그리고 고향에서의 축출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난장이’는 거대한 사회체계와 시대적 흐름에 저항할 수 없었던 보통의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을지 모른다.
1981년 이 작품은 이원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2019년 비디오 자료를 통해서 본 <난장이>는 시대적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에 대한 몰이해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가가 말하려던 70대의 민중의 아픔과는 초점이 맞지 않았다. 난장이 가족의 고통을 시대적 변화의 과정 속에서 파악하려고 시도하지만, 아픔의 실체와의 만남을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화에 희생된 가족들이 오히려 물질적 가치에 매몰된 추악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있다.
난장이 가족은 아버지의 은퇴로 더욱 큰 어려움을 겪는다. 자식들도 변변치 못한 직업으로 집안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70년대 보통의 민중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거주하던 염전 지역도 결국 재개발이 되면서 그들은 입주권을 헐값에 팔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입주권을 좀 더 비싼 가격으로 팔려고 하는 어머니와 첫째 아들, 결코 떠날 수 없다고 저항하는 둘째 아들, 우연히 만난 거래업자와의 관계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막내 딸 등의 모습이 대립적으로 묘사되면서 재개발 속에서 붕괴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결국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자살로 파국은 극에 달하고 거래업자의 호의에 의해 입주할 아파트를 계약하고 돌아오는 막내딸의 귀환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마지막 막내 딸이 큰 오빠에게 어렸을 적부터 반복했던 “아버지를 난장이로 부르는 사람은 모두 죽여 버려”라는 대사는 그들의 고통과 비극을 지극히 개인적, 가족적 불행으로 치환시키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고통에서의 탈출을 속물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 또한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무기력한 민중의 대응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영화적 서술은 조세희 작가의 원래 의도와는 명백하게 배치되는 것이었다.
영화는 소설의 에피소드를 영화 곳곳에 표현하고 배치하고 있지만 구성의 방식과 의도에 대한 왜곡은 영화를 전혀 다른 관점의 영화로 만들고 있다. 소설 속, 난장이 가족은 분명 비극적인 환경 속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결국 수동적이거나 비겁한 방식으로 우회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문제는 그들이 일하고 있는 공장에서의 차별과 강제이며, 계급적 관계에 의한 억압이기 때문이다. 난장이 가족들은 그러한 고통에 회피하지 않고 저항을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반면 영화 속 난장이 가족들은 고통에 대한 저항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함으로써 결국 시대의 패배자임을 자임하는 모습으로 끝이 나고 있다. 1981년, 어두운 시대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시도함으로써 발생한 커다란 왜곡이었다.
첫댓글 난장이로 나타나는 우리들의 과거 모습이 역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