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천한 사람이 성취하기 쉽다!
그 당시 장가대사章嘉大師께서 저에게 일러주시길, 「불법은 형식을 중요시 않고 실질을 중요시합니다(佛法重實質不重形式)」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식은 계단수계戒壇受戒로 이것은 형식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해내는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저에게 일러주시길, “비유컨대 불상생不殺生, 이 계를 진실로 해내고, 한평생 지킬 수 있다면 이 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계단(계를 받기 위한 장소)은 있을 필요가 없고 당신이 진실로 계를 해낸다면 불보살님께서 아시고 불보살님께서 찬탄하십니다. 계단 안에서 받은 그 계를 문제 삼지 마십시오. 인간은 승인해도 불보살님과 귀신은 모두 승인하지 않습니다. 형식을 중요시 말고 실질을 중요시 하십시오.
근본계根本戒는 여러분 모두 알고 있듯이, 근본계는 바로 오계(五戒)입니다. 무슨 계본(戒本)이든 막론하고 펼쳐보면 앞부분에는 바로 불살생不殺生·불투도不偷盜·불사음不淫欲·불망어不妄語·불음주不飲酒가 나오는데, 이것을 근본계라 합니다. 우리들은 이 계를 해내고 있습니까?
불살생(不殺生 ; 살생하지 말라)은 쉬워 보이는 것 같지만, 실제는 쉽지 않습니다. 중생이 나로 인해 번뇌를 일으킨다면 이 계를 깨뜨린 것입니다. 계는 이 정도로 미세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중생의 생각(念頭)을 해쳐서도 안 되고 중생의 행위를 해쳐서도 안 됩니다. 이것이 불살생계의 정신입니다.
불투도(不偷盜 ; 도둑질 하지 말라) 계의 정신은 결정코 다른 사람의 털끝만한 이익(便宜)도 차지하겠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점의 이익을 차지하겠다는 생각,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도둑놈 심보입니다. 당신에게 비록 이러한 행위가 없는 것 같아도 여전히 이런 생각이 있다면 이 생각이 바로 청정하지 못함(不淸淨)입니다.
대승과 소승의 계를 비교해보면, 소승은 사실을 논하지, 마음을 논하지 않습니다. 계를 잘 지녀서, 내가 이 사람을 원망해도 내가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를 죽이지 않으면 계를 범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반해 대승은 마음을 논하고 사실을 논하지 않습니다. 죽이고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당신과 상관없고, 당신의 생각이 계를 깨뜨리면 당신은 계를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승의 계는 너무나 지니기 어렵습니다. 그것의 결죄(結罪 ; 죄에 얽힘)는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에 있으므로 진실로 쉽지가 않습니다! 당신에게 악한 생각이 하나라도 있어도 허락되지 않고 일체중생을 해치려는 털끝만한 생각이 있어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가대사께서 저에게 가르치시길, “한 가지를 배우고 한 가지를 해내면, 계 하나를 이루니라(學一條做一條,就得一條戒).”라고 하셨습니다. 생각생각마다 자기 자신은 없고, 생각생각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자신을 버리십시오. 경전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누구를 위해 배우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배우는 것입니다. 내가 분명히 이해하고, 내가 이해한 것을 매우 분명히, 매우 명백히 강설하며,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게 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신심을 내고 왕생을 발원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목적이 이것에 있지, 나를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중생을 돕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내가 없다(無我)고 느낄 정도로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해지면 보리도菩提道에서 나쁜 길을 걷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이 사회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나쁜 길이 너무나 많고 너무나 엄중하여 정법正法을 거의 보지 못합니다. 처음 배우는 학생들은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훌륭하여 진실하고 올바른 여래의 제자로 존경할만한 하고 찬탄할만한 하지만, 몇 년을 배우고 난 후에는 바깥 항아리가 더러워지고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아 타락해서 그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잘못된 방향으로 걷고, 나쁜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이 정도正道라고 여깁니다. 어째서 정도라고 여깁니까? 경전의 가르침에 대해, 자신의 정법인식正法認識은 본질을 파악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는데, 자신이 해내었다, 자신이 바로 표본이라고 말하고, 자기가 잘못인줄 알면서 어떤 잘못과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지 못합니다. 외부의 유혹은 다름이 아니라 명리名利와 재색財色으로 모두 이것에 현혹당합니다. 명리가 커질수록 자신에게 적일뿐입니다. 그것에 완전히 빠져든 후에는 여전히 법을 펴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여겨, 자기 자신의 길이 이미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수많은 중생을 구제 하는 것은 누구의 일입니까? 번뇌가 진실로 끊어진 사람의 일입니다. 가장 낮은, 가장 낮은 정도인 수다환과(須陀洹果)을 말합니다. (그는) 가장 낮은 신견(身見)이 끊어졌습니다. 다시는 일체중생과 대립하지 않아서 바로 변견邊見이 끊어졌습니다. (그에게는) 견취견(見取見)과 계취견(戒取見), 고정관념(成見)과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독선,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주관관념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경우 진실로 (주관관념이) 없는 것이 맞습니까?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관관념이 너무나 강합니다.
그래서 먹물 든 사람(지식인)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하층 노동자 출신의 사람, 인생에서 숱한 고난을 거친 사람이 성취하기 쉽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에게는 잘난 체 하는 아만심이 없습니다. 그는 인류 가운데 가장 낮은 천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에 대해 오직 순종과 받듦만 있을 뿐이고, 감히 잘난 체 하지 않아서 성공하기 쉽습니다. 그는 누구에 대해서든 공경하고, 그는 누구든지 모두 자기 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누구와 비교해도 그는 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지극정성으로 공경하는 마음(至誠恭敬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 또 반박하려고 하며, 잘못이 있어도 승인하지 않고, 그에게 맞서고 있음을 표시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르지 못한 사상·행위이고, 삿된 지식이요 삿된 견해이며, 제멋대로 날뛰는 것이라 말합니다. 감화(현혹)시키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감화시키는 것이 바로 현재우리들의 재난입니다. 재난은 바로 이렇게 옵니다.
정토대경과주淨土大經科註 (제61집) 201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