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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稚岳山(성남-행구동코스)
- 위 치 :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소초면, 판부면, 신림면, 횡성군 강림면
- 높 이 : 치악산 1,282m, 남대봉 1,181m
1. 일 시 : 2013. 2. 21. 07:30 ~
2. 장 소 : 남대봉 (성남탐방지원센터 - 남대봉, 행구동탐방지원센터-향로봉코스)
3. 참석인원 : 명
4. 등산코스 : 성남공원지킴터 - 상원사 - 남대봉 - 향로봉 - 보문사 - 국형사 - 국형사
주차장
5. 다녀온길 : 중앙고속도로 신림 IC 진출 - 신림황둔로 주천방면 - 상원사로 성남리 -
성남탐방지원센터
6. 오늘활동 상황
○ 07:30 --- KBS앞 출발(치악휴게소 경유)
○ 10:00 ---
○ 10:10 ---
○ 10:35 ---
○ 10:36 ---
○ 10:40 ---
○ 10:48 ---
○ 11:20 ---
○ 11:33 ---
○ 12:19 ---
○ 13:04 ---
○ 13:37 ---
○ 13:52 ---
○ 13:58 ---
○ 14:41 ---
○ 15:38 ---
○ 15:50 ---
○ 16:00 ---
○ 16:40 ---
○ 18:30 ---
○ 18:50 ---
7. 치악산 살펴보기
□ 개관
- 1984. 12. 31국립공원 지정
-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
- 힌국의 산하 선정 인기명산 100 중 17위
- 치악산은 동악명산, 적악산으로 불렸으나, 상원사의 꿩(또는 까치)의 보은전설에 연유하여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치악산은 단일 산봉이 아니고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장장 14㎞나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치악산맥으로 불리기도 한다.주요 봉우리는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매화산(1,085) 등이다."치악산에 왔다 치를 떨고 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치악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다.주봉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 남북 14km에 걸쳐 주능선 양쪽으로는 깊은 계곡들이 부채살처럼 퍼져 있다. 주봉인 비로봉은 치악산의 최고봉으로 이곳 정상에서는 원주, 횡성, 영월지방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를 중심으로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매화산(1,085)등의 고봉들이 솟구쳐 있고 4계절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여 많은 산악인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치악산 곳곳에는 산성과 수많은 사찰 사적지들이 있다. 남대봉을 중심으로 꿩의 보은지라는 상원사를 비롯해서 서쪽으로 세존대, 만경대, 문바위, 아들바위 등 유래깃든 경관이 있다. 그외 영원산성, 해미산성, 금두산성, 천연동굴과 북원적 양길이 궁예를 맞아들여 병마를 정돈했다는 성남사가 또한 이곳에 있다. 치악산은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우뚝우뚝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림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치악산 단풍 빛은 신비하리만치 오묘하다. 구룡사 입구의 우거진 단풍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상시킨다.하얀 폭포 물줄기와 어우러진 울긋불긋한 단풍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치악산은 가을단풍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본래 적악산이란 이름으로 불려왔다.10월 중순께 단풍이 절정을 이루면 치악산은 또다른 운치를 자랑한다. 특히 구룡사 계곡은 설악산, 오대산 못지 않게 단풍이 곱게 물드는 곳. 폭포와 바위가 멋진 조화를 이뤄 쾌적한 단풍을 즐길 수 있다.겨울의 치악산 정상 일대는 온통 만발한 설화와 상고대가 또한 장관이다. 가지에 눈 내린 것이 두툼하게 감싸인 것이 눈꽃, 눈가루와 서리가 내려 녹다가 다시 얼어서 투명하게 된 것이 상고대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 중에서 특히 눈꽃과 상고대로 이름난 산은 소백산, 덕유산, 치악산 이다. 구룡사에서 출발하는 코스 중 사다리 병창 코스와 쥐너미 코스, 배너미 코스로 해서 비로봉에 이르는 등산로가 눈에 쌓이면 나뭇가지에 쌓이고 얼어붙은 눈은 "환상의 세계"이다. 치악산 주 능선의 허리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고둔치고개는 가족산행이 가능하다. 늦가을이면 넓은 억새 풀밭이 펼쳐지는 고둔치는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풀이 수만 자루의 촛불을 연상케 한다. 고둔치코스는 원주시 행구동을 기점으로 고개를 넘어 향로봉과 남대봉을 오른 뒤 상원사로 내려온다.
인기명산 100 중 17위
- 산세가 험하지만 수려한 치악산은 가을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단풍이 절정인 10월에 많이 찾지만 구룡사 주변의 울창한 숲과 구룡사에서 세렴폭포에 이르는 계곡 나들이 산행으로 봄과 여름에도 인기가 있다.
산림청 선정 100 명산 선정사유
-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대봉 (1,181m)과 매화산(1,085m) 등 1천여 미터의 고봉들이 연이어 있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곳곳에 산성과 사찰, 사적지들이 널리 산재해 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8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 구룡계곡, 부곡계곡, 금대계곡 등과 신선대, 구룡소, 세렴폭포, 상원사 등이 있음. 사계절별로 봄 진달래와 철쭉, 여름 구룡사의 울창한 숲과 깨끗한 물, 가을의 단풍, 겨울 설경이 유명
8. 등산기행
□ 산행안내 준비
<치악산국립공원안내도>
- 치악산국립공원에서는 오는 3월부터 5, 15까지 5개구간 / 24,1km를 제외한 8개구간 / 29,9km코스가 2013년도 봄철 산불조심기간동안 출입 통제되는 점을 감안하여 입산이 자유로운 시기인 2월 중 정기산행일정에 반영하여 안내준비를 하였다.
- 오늘로서 치악산국립공원 내 지정탐방로 8개 코스는 최근 몇 년 동안 사실상 모두 섭렵한 셈이다. 오늘 코스를 선정할 당시만하더라도 고심이 참 많았었다.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성남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23.8 km 종주코스 중 남대봉에서 향로봉구간 3,9km 한 토막이 사실상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구간을 그냥 간과하기에는 모두산악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쩨쩨하게 그걸 남겨? 아니지! 찝찝한 건 털고 가야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기왕에 마음먹은 것 짚고 넘어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우수를 지나면서 마지막 심설산행 코스로 선정하여 치악산 지정탐방로에 대한 마침표를 찍고자 하였다. 그렇다고 치악산 정기산행에 영영 이별을 고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정기산행일정을 잡는데 있어 선순위 보다는 후순위로 넘긴다는 개념으로 이해를 구해마지 않는다. 또한, 오늘 코스에 부담을 갖으시는 분들을 위해 당일 참석하신 분들의 성향을 봐가면서 국형사에서 보문사를 경유하여 향로봉방향 역주행 병행운영도 염두에 두었다.
- 치악산은 우리나라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서남향으로 분기되어 매화산(1,084m), 천지봉(1,086.5m)이 위치하며, 연접한 비로봉(1,288m)은 치악산국립공원의 최고봉으로 향로봉(1,042.9m)과 남대봉(1,181.5m)까지 해발 1,000m이상의 준봉들로 연결되는 대표적인 경관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수려한 경관을 보유한 치악산국립공원은 강원권의 교통요지인 원주시에 인접해 있을 뿐 만 아니라 수도권으로부터 근거리에 위치하여 1일 탐방이 가능해 탐방활동이 연중 이루어지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치악산의 경관자원으로는 구룡계곡, 부곡계곡, 금대계곡 등 아름다운 계곡과 구룡소, 세렴폭포 등의 명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사계절에 따라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철에는 구룡사의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물이 볼만하고,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은 특히 장관이다. 생물자원으로는 포유류 26종, 조류 98종, 곤충류 1,298종, 양서파충류 약 15종 야생식물 738종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치악산 곳곳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인 보광루를 보유한 구룡사와 꿩의 보은설화를 간직한 상원사, 전쟁유적지인 영원산성과 벌목금지의 상징인 황장금표 및 우리나라의 대표적 온대림으로 보존되고 있는 천연기념물 93호인 성남리 성황림 등의 문화자원이 있다. 아름다운 금대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원사를 포함 보문사, 국형사, 관음사 등이 수려한 치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 원주의설화 ♣
- 원주 치악산에 한 절이 있어 하루는 불존(佛尊) 수좌(首座)가 법당(法堂) 뒤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꿩을 감싸고 있었고, 구렁이와 꿩이 서로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아, 이렇듯 서로 물고 버티며 놓지 않는 다툼이 있었는데, 둘이 서로 싸움하는 사이에 어부지리(漁父之利)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불존 수좌가 지팡이로 구렁이를 풀어 꿩을 구하니, 이날 이경(二更 밤10시경)에 하얀 형상을 한 노인이 와서 전등(剪燈)의 왼쪽에 앉아 쇠붙이가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말하기를, "나는 이내 이 절의 종을 주조하는 화주승(化主僧)이다. 사방에서시주를 모아 자선(慈善)을 베풀고자 이 큰 종을 주조하였으나 종소리가 맑지 못하여 도리어 죄업(罪業)에 대한 응보(應報)를 받았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구렁이의 뜻이었고, 지금에는 재앙과 액운이 헤아릴 수 없다. 오늘 다행히 꿩 한 마리를 얻어 점심으로 먹으 려 하였다. 그대의 자비로 이와 같이 한번 굶주렸으니 반드시 그대를 대신으로 먹어야겠다.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를 위해 종을 쳐서 소리를 내면 이러한 추한 응보를 면할 것이니, 이것 또한 자비이다." 하고 말이 끝나자 홀연히 떠나갔다. 의심스러워 괴상하게 여기는 사이에 앞에 있는 울리지 않던 종이 천천히 하늘 밖으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두운 속에서 한 쌍의 꿩을 보니 부리를 사용하여 종을 울렸다. 한 번은 소리가 크고 한 번은 소리가 작아 큰 소리와 작은 소리가 마디가 있었고 한 번은 암컷의 소리였고 한 번은 수컷의 소리여서 암컷과 수컷의 차례가 있었다. 일종(一宗)이 죽고 일종(一宗)이 살았으니 죽고 사는 것에는 표지(標識)가 있으며 이것이 불문(佛門)에서 예악(禮樂)을 짓는 법이다. 동틀 무렵에 노인이 다시 와서 말하기를, "나는 종이 울리는 힘을 입어 얽어맸던 몸에서 벗어나 승천한다."고 하였다. 해가 솟아 밝아올 무렵에 가서 보니 금구렁이 한 마리가 남쪽 처마 아래에 죽어 있으므로 승(僧)이 죽었을 때의 예와 같이 장사지냈다. 꿩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목숨을 구해준 승(僧)의 은혜를 보답했고 승(僧)은 꿩의 목숨을 구해 준 것 으로 인하여 목숨을 구하는 보답을 받았다. 구렁이는 승(僧)으로 인하여 생명을 아껴 꿩을 살려 주었고, 꿩으로 인하여 쌓였던 억겁(億劫)의 고통을 벗었으니 이것이 일거삼득(一擧三得)이다. 사물은 비록 같지 않았으니 세상에서 뛰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치악(雉樂)으로써 그 산의 이름으로 하고 종을 쳤던 소리로써 온 나라의 사찰에 퍼졌다고 한다. (자료출처 : 원주문화원)
<치악산등산지도>
- 치악산국립공원 내에는 아래와 같이 8개의 지정탐방로가 있다. 이중 성남탐방지원센터-남대봉코스,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성남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종주코스 중 향로봉-남대봉구간, 행구동탐방지원센터-향로봉코스를 연계하여 준비하였다. 치악산 지정탐방로 중 유일하게 남은 구간인 남대봉에서 향로봉구간 3,9km는 성남탐방지원센터나 행구동탐방지원센터 나들목 중 어느 곳이든 엇비슷하기 때문에 성남탐방지원센터를 들머리로 잡아 안내준비를 마쳤다. 오늘 사용한 등산지도는 치악산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탐방코스를 서로 연계하여 진행방향만 표기하는 선에서 편집을 마무리하여 그대로 사용하였다.
- 치악산국립공원 내 지정탐방로는 행구동탐방지원센터-향로봉: 2.8 km /1시간30분, 성남탐방지원센터-남대봉 : 5.9 km / 2시간30분, 부곡탐방지원센터-비로봉 : 8.9 km / 3시간, 구룡탐방지원센터.-세렴폭포 : 3 km / 1시간45분, 구룡탐방지원센터-비로봉 : 5.7 km / 3 시간30분, 구룡탐방지원센터-성남탐방지원센터 : 23.8 km / 10시간, 금대분소-남대봉 : 5.2 km / 2시간40 분, 황골탐방지원센터-비로봉 : 4.1 km / 2시간30 분 코스가 있다.
□ 산행안내
<단체기념사진>
참석상황
- 당일 신림면 일원 주간날씨는 눈 온 후 개이고, 기온은 -8 ~ 3℃분포를 보일 것으로 예보하였다. 이정도의 날씨라면 산행하기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 1월 말부터 내내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는데 우수를 지나면서도 큰 변화 없이 맑고 포근한 날씨로 이어지는 바람에 오늘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춥지 않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눈 소식에 신경이 곤두섰다. 아무리 산행 상품이 좋다고 하더라도 눈이나 비가 온다고 하면 고객의 발길이 뚝 멈췄던 경험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 빠른 길 찾기 정보에 의하면 KBS춘천방송총국에서 신림면 성남리 까지 104,9km / 1시간30분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 길은 버스 내비게이션 목적지 검색정보도 동일할 것으로 보고 10:00경 목적지에 도착하여 일상을 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었는데 예상한 시간대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 오늘 날머리가 소재한 신림면은 원주의 남동쪽에 있고 차령산맥인 치악산과 백운산의 중간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봉양읍, 동쪽으로 영월군 주천면, 서쪽으로 귀래면, 북쪽으로 판부면과 경계하고 있다. 치악산과 백운산 사이에 있어 남대봉, 감악봉, 석기암, 구학산 등의 높고 험한 산들이 면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금창리에서 발원한 용암천과 신림리에 이르러 성남리에서 발원한 주포천이 합류하여 신림면의 서부를 남류하며, 유역의 신림, 용암리 일대에 좁은 충적평야를 발달시켰다. 동쪽에는 주천강 지류인 서만이강 유역인 황둔, 송계리에도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 신림면의 유래는 성남리에 있는 성황림을 신(神)적인 수림이라고 생각해서 신림(神林)이라 하였고 이것이 확대되어 마을 이름으로, 면 이름으로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지역특성은 석자재가 풍부하여 석회생산 및 석재원료 관련기업이 많으며, 치악산 국립공원 지역에 속해 산수가 수려하다. 천연기념물 제93호인 성남2리 성황림을 비롯하여 상원사와 용소막성당이 신림의 명소이다.
- 또한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 제1가나안 농군하교(1962년 김용기 장로 설립)에 이어 용암3리에 제2가나안 농군학교가 1973년 3월13일 설립되어 전국의 사회지도자 및 농촌지도자, 공직자, 기업체 임직원, 학생 등을 교육시켜 신앙심 고취와 민족정신, 경제 자립정신을 일깨우는 교육의 산실이 되고 있다. 면적은 원주시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다. 면적의 77.7% 이상이 산악지대인 산간 분지형 이며 산지의 6할 이상이 고랭지채소 재배지 이다. 경지면적은 극히 적고, 고지대인 지형적 특색으로 산나물 및 이를 이용한 자연식품, 약초재배로 농가소득원이 되고 있다.
- 성남리는 신림면사무소에서 3㎞ 떨어진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매화산 줄기를 경계로 하여 황둔리와 서쪽으로는 금창리, 남쪽으로는 신림리, 북쪽으로는 남대봉을 경계로 하여 횡성군 강림면과 접하고 있다. 지명유래는 성남리 북쪽에 있는 치악산에 금두산성이 위치하고 있어, 성(城)의 남쪽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성남리로 불리어지고 있다, 또 백제시대 궁예가 성남리 서북쪽 절골에 절일 짓고 한동안 머물었다고 기록에 전하는데, 이때의 절 이름이 석남사(石南寺)였다, 석남사의 명칭이 변화를 하여 성남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성남리 지역특성은 치악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산수가 수려하며 상원사, 성황림, 등 유적과 전설을 많이 간직한 곳이다. 상원사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인데 이 절은 오늘날까지도 치악산이란 산명이 있게 한 유서 깊은 사찰로 은혜에 보답한 꿩과 뱀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성황림은 고산식물에서부터 야산식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초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하고 있다. 근간에는 많은 초식물이 점차 멸종되어 가고 있어 1990년 8월에 보호철망을 설치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신림면 성남리 성황림을 소개한다. 이곳 성황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황림(城隍林)으로, 숲 안에 성황당이 있다. 이 숲은 개암나무, 옻나무, 두릅나무, 신갈나무 등으로 조성된 낙엽활엽수림이다. 성황림은 마을사람들이 ‘숲이 마을을 보호해 준다’고 믿는 숲이다. 성남리 성황림은 치악산에 터를 잡은 화전민이 농사를 시작하면서 치악산의 성황신을 마을을 보호하는 서낭신으로 모신 곳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신림(神林)이다. ‘신림’이란 이름 그대로 신이 사는 숲으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대동여지도>에도 신림이라는 이름이 나올 만큼 신림은 오래된 숲이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외지에 나간 마을사람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이 성황림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해마다 4월 8일과 9월 9일에 치악산 성황신에게 제를 지낸다. 숲에는 당집과 암수 두 그루의 당산목이 있다. 이 숲은 우리 조상들의 종교관을 말해주는 중요한 민속자료이기도 하다.
- 성황림(城隍林)은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숲으로, 신림면 성남리의 성황림은 마을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다. 성황림을 구성하는 있는 식물들로는 각시괴불나무, 음나무, 졸참나무, 층층나무, 피나무, 가래나무, 쪽동백나무, 들메나무, 박쥐나무, 산초, 보리수, 광대싸리, 복분자딸기, 찔레, 노박덩굴, 으름덩굴 등으로 중부 온대 지역을 대표하는 숲을 이루고 있다. 성남리 주민들은 치악산의 성황신을 마을 수호신으로 믿어 지난 100여 년 동안 매년 4월 8일과 9월 9일에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 왔다고 하나 현재는 과학의 발달로 이러한 행사를 점차 하지 않게 되었다. 신림면 성남리의 성황림은 온대 지방을 대표할 만한 활엽수림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고, 우리 조상들의 과거 종교관을 알 수 있는 민속자료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으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상원사>
- 상원사는 치악산 남쪽 남대봉 중턱의 해발 1,100m의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스님이 지었다는 설이 있다. 고려 말 나옹스님에 의해 새롭게 지어졌으나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1968년 다시 지어진 후, 198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심우당, 심검당, 범종각, 산신각 등이 있다. 높은 곳에 조성된 사찰답게 자연 지형에 맞게 배치되었다. 원주8경 중 제3경이디도 하다.
- 대웅전은 정면 3칸(8.4m)・측면 2칸(5.3m)의 겉처마 팔작지붕에 다포집이다. 법당의 불상은 새로 봉안한 것이고, 석가래와 기둥 등은 모두 정연하며 두공부에 용두(龍頭)조각을 배치하여 주목을 끈다. 근년의 건축물로는 드물게 보이는 질서 있는 건축물이다. 안쪽에는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및 후불탱화, 지장탱화, 신중탱화를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쌍탑이 있는데, 이러한 쌍탑이 등장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삼국통일 이후로서 왕성한 국력에 의하여 전국도처에 유행하게 되었다. 이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정형을 따른 2중기단 위에 3층옥개를 형성하였으며, 상부 상륜부는 둥글게 연꽃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 은혜 값은 꿩 설화 ♣
- 상원사에는 은혜 갚은 꿩의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에 한 젊은이가 무과시험을 보려고 집을 떠나 며칠을 걸어서 치악산 고갯길을 넘게 되었는데 깊은 산골짜기서 꿩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길 옆 바위 밑에서 큰 구렁이가 무지갯빛이 나는 장끼 꿩 한 마리를 칭칭 감고 입을 딱 벌려 잡아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젊은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메고 가던 활을 벗어 쏘았다. ‘팽!’ 하고 화살이 구렁이 몸에 박히자 꿩을 스르르 풀고 큰 구렁이는 죽어갔다. 풀려난 꿩은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공중으로 날아가고 옆에서 애걸하던 암꿩도 고맙다는 듯 ‘꿔겅 꿩’ 울면서 같이 날아갔다. 젊은이는 꺼림직한 맘으로 치악산 고갯길을 서둘러 걸었지만 해가지고 어두워 더 갈수가 없었다. 저만큼 불빛이 반짝거려서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하룻밤 자고 갑시다.” 소복차림의 젊은 여인이 파란등불을 들고 나왔다. “손님사정은 딱하지만 오늘 제 남편이 갑자기 죽어서 곤란합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자고 가게만 허락해 주십시오.” 마지못해 허락 하는 듯 해도, 여인의 눈에는 파란 독기가 서려있었다. 밥까지 얻어먹은 젊은이는 피곤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몸이 선득선득, 가슴이 답답해서 눈을 번쩍 떴다. 큰 구렁이가 온몸을 칭칭 감고 두 가닥의 혀를 날름대며 “당신은 내 남편을 활로 쏘아 죽였소 .나는 원수를 갚기 위해 당신을 유인했소” 여인의 말소리였다. “나도 살생을 원하지 않았지만, 꿩이 하도 가여워 순간 활을 쏘았지요. 그러나 큰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니 제발 살려주시오” “나와 남편도 전생에는 사람이었는데 탐욕이 많은 죄로 구렁이로 변하여 치악산 속에서 살았소. 저 위에 빈 절 있는데 종각에는 소리 안 나는 종이 하나 있소. 그 종소리 세 번만 내면 모든 죄가 사해진답니다. 오늘 밤 안으로 그 종소리만 내준다면 당신을 살려주겠소.” 젊은이는 종소리 내기를 포기하고 죽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바로 그 때, “뗑” 하고 종소리가 들려왔다. “뗑” 두 번째 종소리가 분명했다. “뗑” 좀 약하게 들려왔다. 젊은이 몸을 감았던 구렁이는 종소리가 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벽도 환히 밝았다. 젊은이는 너무 이상해서 빈 절의 종각을 찾아보았다. 꿩 세 마리가 머리가 깨진 채 죽어 있었다. 젊은이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아무리 날짐승이지만 살려 준 은혜를 죽음으로 되갚는 보은 (報恩) 정신과, 원수 사이를 풀고, 서로 살려주는, 해원.상생 (解寃.相生)의 정신을 본 받아야 하겠다, 고 과거시험도 포기하고 죽은 꿩들을 묻어주고 빈 절을 고쳐 거기서 살았다. 그 절터가 지금의 상원사요. 적악산이라 부르던 산 이름도 꿩치(雉)자를 넣어 치악산으로 부르게 됐다, 고 전해지고 있다.
<상원사 석탑 및 광배>
- 대웅전 앞의 두 탑은 모두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을 쌓은 것이다. 1971년 12월 16일에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석탑으로 해발 1,100m 이상의 높은 高地에 사찰이 경영된 것과 이러한 높은 곳에 쌍탑이 있는 것은 특이한 것이다. 쌍탑은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1964년에 거의 완전할 정도로 보수하여 보존되어 있다. 석탑 옆에 불상 뒤를 장식하던 광배와 불상을 받치던 대좌가 남아 있다. 광배에는 부처님의 머리와 몸에서 나오는 빛을 둥근 선으로 새기고, 그 밖으로 불꽃 무늬를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그 안에는 연꽃과 당초무늬를 새겨 놓았다. 1964년에 우측 석탑을 보수할 때에 탑신에서 관음보살좌상・인왕상・아미타불립상・석가여래입상의 금동불 4구가 발견되었는데, 제작수법이 매우 우수하고 신라 때에 유행하던 수법과 같은 형식을 엿볼 수 있으며, 이 광배도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대봉>
-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남대봉(1,182m)은 치악산국립공원의 남쪽에 솟아있는 봉우리. 치악산의 여러코스 중 남대봉 코스는 조용하면서도 등로에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겨울에 찾으면 제격이다. 치악산은 단일산봉이 아니고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장장 14 ㎞나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치악산맥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요 봉우리는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매화산(1,085) 등이다.치악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다.주봉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 남북 14km에 걸쳐 주능선 양쪽으로는 깊은 계곡들이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
- 치악산 남대봉(1,187m)은 영서지역 산군 한눈에 드는 조망대이다. 치악산은 중앙고속도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명산 가운데 하나다. 이 가운데 국립공원 남쪽 끝에 솟은 남대봉(1,187m, 국립지리원 지형도상 시명봉)과 망경봉(1,181m, 국립지리원 지형도상 남대봉) 일대의 코스는 신림 나들목을 이용할 경우 접근 거리를 상당히 단축할 수 있어 앞으로 주목 되는 곳. 특히 중앙고속도로가 완공되며 새로 개설된 신림 나들목과 성남리 기점으로 진입하는 88번 지방도 상의 갈림길과는 불과 1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더욱 찾기 쉬워졌다. 성남 기점 코스는 치악산의 여러 코스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코스로 흔히 상원사 코스라고 부른다. 망경봉 남동쪽사면에서 발원하는 상원사골은 특이한 비경지대가 산재한 계곡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윽한 자연미가 일품인 곳이다.
<향로봉>
-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과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경계를 이루는 치악산 향로봉(1.042.9m)은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1,288m)에서 남쪽 5.9km, 상원사가 있는 망경봉(1,182m)에서 북쪽으로 4.5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향로봉은 치악산의 허리에 해당되는 고둔치와 치악평전(일명 금두고원) 사이에 솟아 있다. 치악산을 찾는 이들의 대부분은 구룡사를 기점으로 사다리병창 코스로 비로봉을 오르는 코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 치악산의 꽃인 비로봉이 사계절 인기가 있는 이유는 오를 때 힘들기는 해도 이곳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치악산맥의 허리 부분에 해당되는 향로봉에 오르면 북으로 보이는 비로봉과 남으로 망경봉과 남대봉 등을 조망하는 풍광이 비로봉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향로봉은 원주역에서 시내버스 편으로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위치인 행구동이 산행기점이어서 더 편리하다.
<보문사 대웅전>
- 보문사(普門寺)는 국형사(國亨寺)에서 동북쪽으로 약 2㎞ 위 향로봉의 서쪽 골짜기인 보문골에 있는 절이다. 전하는 말에는 신라 경순왕(敬順王) 때 무착대사(無着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대웅전과 요사는 근래에 중건하였으나 당시 희귀한 청석탑부재(靑石塔部材)가 출토되어 오래된 절터임이 확인되었다. 절 안에는 예부터 전해오던 보문암(普門庵) 창기(創記)가 있었다고 하는데, 보문사를 옛날에는 보문연사(普門蓮社)라 했고, 또 보문사를 건립하기 위하여 원주지역 주변 사찰인 국형사・구룡사・신륵사・상왕사(霜旺寺) 등에서 시주한 금액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보문사는‘웃고문절’이라고 하고 국형사를 ‘아랫고문절’이라 한다. 현재의 건물로는 대웅전・산신각・범종각・용왕각・요사 등이 있으며, 대웅전 앞 뜰에 청석탑이 복원되었다. 이 청석탑은 보문사지로 전해오던 사지 위에 1970년경 현재의 절을 신축하던 중 땅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한 것으로 높이 1.2m 정도의 화강암 기단을 쌓고 그 위에 탑을 복원하였다. 이 청석탑(靑石塔)은 보문사지(普門寺址)로 전해오던 사지(寺址) 위에 1970년경 현재의 절을 신축하던 중 땅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한 것으로 높이 1.2m 정도의 화강암 기단을 쌓고 그 위에 탑을 복원하였다.
<청석탑>
- 강원도 1985. 9. 13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된 청석탑은 점판암(粘板岩)으로 건조(建造)된 것으로 신라말기(新羅末期)에 비롯되어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이르러 유행한바, 현재 해인사(海印寺)·금산사(金山寺) 등 몇 곳에만 있는 희귀한 탑이다. 이 탑은 두개의 기단(基壇)에 연화문(蓮華紋)을 조각(彫刻)하였고, 탑신석(塔身石)에 범자(梵字)가 새겨진 것이 특이하다. 두개의 기단과 다섯 개의 옥개석(屋蓋石) 그리고 2,3,4층의 탑신만 원형대로 남아 있을 뿐 전체의 탑재(塔材)가 원형은 아니다. 건립 년대(建立年代)는 고려시대(高麗時代) 전기(前期)로 추정된다.
- 청석탑은 신라 말부터 나타나는 밀첨탑으로, 해인사・금산사・법주사 등의 옛 사찰에만 전해온다. 이 탑은 신라 경순왕 때 지었다고 전해지는 보문사의 절터에서 1970년에 발견․복원해 놓은 것으로 점판암으로 된 것 이외에는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이 탑은 1~5층의 옥개석과 2~4층의 옥신석, 상대갑석・하대갑석은 본래의 부재이나 나머지는 최근에 새로이 만들어 복원한 것이다. 1~5층의 옥개석과 상대・하대갑석의 두께는 8㎝ 정도이며, 1층 옥개석의 너비는 47㎝이고, 5층 옥개석은 29㎝로서 1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면서 알맞게 줄어들도록 하였다. 상대갑석과 하대갑석의 윗면에는 4면 모두 복연(伏蓮)이 조각되었고, 그 중심에는 옥신받침이 있어 탑신부를 받고 있다. 옥개석은 평박(平薄)하고 추녀 밑은 반전되었으며 받침수는 각층 3段씩이다. 2~4층의 옥신은 두께가 6㎝ 정도로 4면에 범어(梵語)가 2자씩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나머지 옥신에도 범어가 새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석탑은 마모가 심하여 파손된 부분도 많고, 상대갑석은 두 조각으로 깨어져 있으나 고려시대의 청석탑 양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탑이다. 이와 같은 청석탑으로는 해인사 원당암(願堂庵) 다층석탑(多層石塔)과 금산사(金山寺) 6각(六角) 다층석탑(多層石塔)이 있다.
<국형사 대웅전>
강원 원주시 행구동 99번지 신라 경순왕 대에 무착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고문암(古文庵)이라 하였고 무착대사는 이곳을 호법대도량으로 하여 불도에 정지하였다고 한다. 창건연대가 신라시대라고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당시의 유물, 유적은 현재 남아있지 않는 형편이다. 조선조 태조(太祖)가 이 절에 동악단(東岳壇)을 쌓아 동악신을 봉인하고, 원주와 횡성, 영원, 평창, 정선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한편 조선 정조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을 얻자,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정종(政宗)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1907년 벽하(壁河)와 응송(應松)이 중창하였으며 1945년 자항(慈航)이 1974년에는 김용호가 각각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무애당, 관음전, 요사 등이 있으며, 진암당대선 사영주탑과 그 옆에는 망실된 부도 1기가 있다. 그리고 봄과 가을 에 호국대제를 봉행하는 동악단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관음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8작집이다. 이 건물의 대부분은 보영(普英) 주지 스님이 최근에 중창한 것이다.
- 국형사 동악제단은 현재 원주시 행주동 국형사 (98번지) 근처에 자리해 있다. 동악단에는 조성 정종 때 공주의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려 동악산 신령의 가호 에 의해 완치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건물은 근년에 신축한 것으로 토단만이 남아있어 동악단을 지었지만 2001년 7월 뇌전으로 불에 탄 이후 10월부터 복원작업에 들어갔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맛배집으로 좌우에는 방풍판이 있고, 주변을 돌담으로 에워싸서 신단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 국형사 잔암사부는 국형사 경내에 자리해 있다. 국형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부도로써, 석종형으로 전체 높이 1.74m의 중형부도이다. 탑신 표면에는 '진암당대선사영주탑' (晋庵堂大禪師靈珠塔)이라는 글자가 왼쪽에는 '승정삼기미사월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부도가 진암당대사의 묘탑이며 조선 정조 23년(1799)에 건립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산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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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날머리가 소재한 행구동은 원주시청에서 동쪽으로 2.7㎞ 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치악산 줄기의 서쪽 경사면에 자리하여 있다. 동쪽으로는 치악산을 경계로 하여 횡성군 안흥면, 서쪽으로는 봉산동, 남쪽으로는 반곡동, 북쪽으로는 소초면에 접해 있다. 동의 유래는 원래 원주군 부흥사면(富興寺面)의 지역으로 살구나무가 많으므로 살구둑, 또는 해구라 하였다. 행구동은 국립공원 치악산을 등지고 앉아 광활한 원주벌을 내려다보고 있다. 예로부터 순수한 농촌 지역이었으며 고려 말의 충신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 선생의 혼이 숨 쉬는 곳이다. 관내에는 치악산의 송림 속에 자리한 국형사(國亨寺)와 관음사(觀音寺) 연암사(燕岩寺) 보문사(普門寺)등 고찰이 많으며 골짜기마다 비경을 자랑하는 관광자원이 때 묻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어 시민의 피서지 및 휴식처로 사랑받는 지역이다. 또한 지역의 기능인력 육성의 요람인 원주 공고가 위치하고 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 및 기타 기반시설들이 확충되어 있다. 특히 치악산 자락을 중심으로 하여 숙박업과 향토음식점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 산행을 마치고
- 오늘 치악산국립공원을 다녀옴으로서 최근 몇 년 동안 지정탐방로 8곳 모두를 섭렵하는 개가를 올렸다. 앓던 이가 빠진 듯, 몇 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린 듯 한 홀가분함을 맛보았다. 오늘 코스 중 남대봉에서 향로봉 구간 4,6km는 단일 탐방로 나들목에서 연계하기가 좀처럼 쉽지 아니한 구간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움을 감수하고 강행하였다.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성남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23.8 km / 10시간 종주코스는 그동안 2회에 걸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이제 남음이 있다면 치악산 종주코스를 하루일정으로 소화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우리 모두산악회 단체산행으로 운영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움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에 개별산행을 염두에 두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던 코스 중 하나이다. 이 코스는 몇 년 전 본인 단독 심설산행 등반일정으로 성남탐방지원센터에서 입산을 시도했다가 기상특보(대설주의보)가 발효되는 바람에 당일 현장에서 입산통제 되는 쓰라림을 맛본 후 지금까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차일피일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앞으로 일조시간이 긴 봄이나 가을산행으로 일정을 잡아 재도전해 볼 것을 염두에 두었다. 치악산 종주등반에 뜻을 함께하실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주저하지 마시고 방화벽 없이 활짝 열린 저의 방을 노크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 모두님들께서는 지금까지의 정기산행일정 체험을 통하여 쌓은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치악산은 본인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원주에서 청년시절을 보낼 당시 매주 주말이면 환경정화운동일환으로 치악산계곡을 누볐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등산복장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채 운동화 한 켤레에 목숨 걸고 사다리병창을 오르내리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그 당시는 산을 즐기기보다는 산림 내 취사행위 단속이란 공적의무수행을 위한 제한된 활동이었고, 지금은 산악회 산행안내도우미란 자연인 신분으로 산과 더불어 자연을 벗 삼아 노후를 즐기는 자유 활동인 점이 그 당시와 너무나도 비교되기에 치악산 정기산행에 즈음하여 지난날들을 회상해 보았다. 그 당시 체험한 몇 몇 사안들은 40여년이 훌쩍 지난 오늘에 와서도 잊히지 않고 엊그제 일상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생생한 그 사안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독자가 계시다면 그 부분은 개별상담으로 돌리고 중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