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르디올라는 위대한 감독이다. 지금껏 많은 팀들을 무너뜨리며 스페인과 독일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의 다음 행선지는 잉글랜드, 맨체스터시티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보낸 첫 시즌, 과르디올라는 생각보다 많고 험난한 고비를 겪었다. 그의 커리어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16강 무대에서 탈락했으며, 60% 이하의 승률을 기록했다. (현재 55.3%) 그리고 한 팀(첼시)을 상대로 리그에서 홈과 원정 경기 모두 패배했다. 상대적으로 과르디올라 커리어의 침체기가 됐던 한 시즌이라 할 수 있다.
-백4의 맨시티, 그리고 모제스 부상 첼시
맨시티와 첼시의 이번 경기 선발 라인업
이번 경기에서는 양 팀 모두가 흥미로운 선발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우선 맨시티의 경우 백4를 들고 나왔다. 그간 첼시를 상대한 대부분의 팀들은 백3 맞불작전을 놓았는데, 지난 1차전에서의 맨시티도 그중 한 팀이었다. 지난 아스날전에서 백4의 윙백으로 처음 기용한 나바스를 이번 경기에서서도 선발로 꺼내들었으며, 지금껏 FA컵,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만 선발로 썼던 파비안 델프를 이번 리그 경기에서 첫 스타팅 라인업에 올렸다.
첼시는 모제스의 A매치 기간 부상으로 조우마를 센터백으로, 아스필리쿠에타를 오른쪽 윙백에 배치했다. 아스필리쿠에타의 윙백 배치는 성공적이었지만 조우마의 선발은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콩테는 선수를 교체하기 나섰다. 조우마를 빼고 마티치를 교체 투입시켰으며 (전술적인 이유도 컸다. 그 이유는 글의 뒷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아스필리쿠에타를 센터백으로 내렸다.
-첼시의 허름한 중원을 공략한 과르디올라
첼시 3-4-3 포메이션의 구조를 볼 때 약점이 될만한 곳을 손꼽으라면 당연 중원이 되겠다. 중앙 미드필더가 2명밖에 없고, 윗선의 아자르, 코스타, 페드로가 중원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빌드업 상황에서는 아자르, 코스타가 밑선에 많은 참여를 한다. 하지만 수비시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첼시를 상대할 과르디올라는 수비시 수적으로 불리한 그들의 중원을 공략하기로 했다.
맨시티의 좁은 2선 배치와 첼시 중원 공략
지난 아스날전 후반전에 나타난 맨시티의 문제점은 양 윙백의 오버래핑이 적극적이지 못한 동시에 중앙 미드필더들이 창의적인 공격적 공헌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공격 진영의 선수들이 맘대로 간격을 좁힐 수 없었고, 중앙에서는 밀도가 떨어져 효율적인 공격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http://blog.naver.com/toru_100/220975271366 참고)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달랐다. 과르디올라는 '캉테-파브레가스'로 이뤄져있는 첼시의 중원을 공략하기 위해 공격 진영의 선수들에게 간격을 좁힐 것을 요구했고, 그와 동시에 윙백들의 오버래핑도 지난 아스날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질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는 다소 공격적이지 않은 '델프-페르난지뉴'라인으로 구성하되, 양 윙백의 높은 오버래핑을 커버해주거나 상대 공격 라인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겼다.
맨시티의 양 윙백, 나바스/클리시의 아스날전과 첼시전 히트맵 비교 (c)squawka.com
맨시티는 공격시 전방의 선수 간격을 좁힘으로써 첼시 중원에서의 수적 우위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비시 영향력이 매우 미비한 아자르쪽, 즉 첼시의 왼쪽 진영도 효과적으로 노렸다. 과르디올라는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 방법으로 첼시를 공략했다.
첫째는 공격시 중앙 방향으로 볼을 소유할 때다. 델프, 페르난지뉴, 실바, 데 브루잉 등이 밑선에서 볼을 소유할때, 상대 중앙 미드필더들이 압박을 위해 앞선으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때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상대의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공간을 노리는 것이 첫번째 방법이었다.
둘째는 왼쪽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것이다. 맨시티가 데 브루잉보다 비교적 측면 지향적인 사네를 통한 왼쪽 공격을 전개한다면, 첼시 선수들은 그쪽으로 몰림과 동시에 반대쪽에 큰 공간을 노출하게 되었다. (단순히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의 개념에 따른 것이 아니다. 맨시티 공격 방향의 반대쪽, 즉 첼시의 왼쪽 진영에는 아자르가 수비 가담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자르 때문이다. 맨시티는 첼시 중앙 미드필더와 앞선으로 전진한 아자르 사이의 공간을 노리도록 최대한 시도하였으며, 아구에로가 공격 플레이게 크게 가담하지 않은 채 그 공간으로 자주 빠지기도 하였다.
맨시티가 노린 아자르와 중앙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
마지막 셋째는 유기적인 측면 플레이를 통해 첼시 중앙 미드필더를 사이드로 끌어오는 것이다. 윙백 나바스와 클리시의 활발한 오버래핑. 윙어 데 브루잉과 사네의 유기적인 측면/중앙 가담. 그리고 실바의 드넓은 활동량과 아구에로의 측면 이동까지. 이번 경기 맨시티의 라인업은 측면과 중앙 모두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들이 측면에 많은 수를 두고 공격을 전개할시 첼시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하나를 사이드로 끌어오는 것도 가능했다. 이럴 경우 상대 중원에는 한 명의 선수만이 남았다. (페드로나 아자르는 중원으로 좁힐 때 수비적으로 큰 힘을 내지 못한다.)
첼시의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을 측면으로 끌어올때 생기는 이점
-과르디올라의 전술에 대응한 콩테
과르디올라의 위와 같은 전술에 맞춰 첼시가 취한 대응 형태는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전반전에 일어난 선수들의 즉석적 대응이었고, 둘째는 후반전에 일어난 콩테의 선수 교체 대응이었다.
첼시가 전반전에 취한 선수들의 즉석적 대응
전반전에는 첼시의 수비 라인 선수들이 맨시티 공격시 적극적으로 라인을 끌어올려 중앙 미드필더와의 간격을 좁혔다. 수비수들이 중앙 미드필더와의 간격을 좁힌다는 것은 곧 맨시티가 건 중원 싸움(공격수들의 간격을 좁혀 첼시 중원의 수적 불리를 공략하는 것)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즉, 첼시가 수비시 라인을 올림으로써 맨시티의 공격 의도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라인을 올렸기에 넓은 뒷공간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매우 좁은 첼시의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에서 이뤄진 맨시티의 환상적인 다이렉트 패스 플레이는 곧바로 공격수와 골키퍼의 1대 1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콩테는 후반전을 맞이하자마자 선수 교체를 통해 맨시티의 전술에 대응했다.
첼시의 후반전 수비 진영
콩테는 전반전 내내 불안했던 조우마를 빼고 미드필더 마티치를 교체 투입시켰다. 그리고 아스필리쿠에타를 센터백으로 옮기고, 페드로를 윙백으로 내렸다. 교체 투입된 마티치는 왼쪽 미드필더 자리에 섰다. 중원에 마티치, 캉테, 파브레가스 3명의 미드필더가 구성되면서 첼시는 자연스레 수비시 5-3-2 포메이션을 형성하게 됐다.
수비시 중원에 3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한다는 것. 이는 당연하게도 전술했던 과르디올라의 중원 공간 전략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수비 포메이션이 5-4-1에서 5-3-2로 전환됐기 때문에 양 윙백들은 조금 더 넓은 수비 공간을 커버해야 했다. 그리고 공격시에는 파브레가스를 오른쪽 윙어로 올린 3-4-3 포메이션을 형성했다.
첼시는 후반전 마티치의 교체 투입과 함께 밑선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줬다. 맨시티는 그런 그들을 끊임없이 흔들었지만 결국 득점에 성공하지 못했다. 쿠르트와와 첼시 수비 라인의 활약이 매우 빛났다. 우리는 첼시가 그간 리그 경기에서 보여준 평균 점유율이 53%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번 경기의 홈팀 점유율이 43%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델프와 페르난지뉴가 막아낸 첼시의 공격 라인
과르디올라의 이번 경기 깜짝 기용은 당연 중원의 파비안 델프였다. 전술했듯 그는 이번 경기가 16-17시즌 프리미어리그 첫 선발이었다. 맨시티의 벤치에는 뛰어난 활약을 펼쳐주고 있는 야야 투레와 중앙 미드필더로도 출전한 경험이 있는 파블로 사발레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델프-페르난지뉴 중원 라인의 효과
델프가 선발 출전한 이유는 페르난지뉴와 함께 첼시의 공격 라인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터셉트에 강점을 갖고 있고 투레보다 빠른 미드필더다. 때문에 그와 페르난지뉴는 첼시의 좁은 공격 라인 선수들을 통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맨시티는 전술한 좁은 공격 형태를 바탕으로 볼을 탈취당할 시 곧바로 전방 압박을 빠르게 나섰다. 이들은 첼시의 볼을 최대한 측면으로 보내려 했다. 그리고 맨시티의 강한 전방 압박 속에 첼시가 앞선 좁은 공격 라인에게 불안정한 볼을 배급한다면, 그 즉시 델프와 페르난지뉴는 이들을 통제하러 나섰다.
이들은 이번 경기에서 8번의 인터셉트, 4번의 파울, 2번의 블록과 14번의 태클을 시도했다.
(영상 참조 : http://tv.naver.com/v/1575746 - 첼시의 선제골 장면)
특히나 첼시의 선제골 장면을 본다면 델프와 페르난지뉴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비진에서 흘러나온 볼을 잡은 코스타를 델프와 페르난지뉴의 훌륭한 협동 수비로 끊어냈고, 그 끊어낸 볼을 잡은 아자르에게 곧바로 다시 붙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아자르의 공격까지 끊어내지 못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긴 했지만, 델프와 페르난지뉴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첼시의 공격 라인을 통제했다.
경기가 끝난 후, 과르디올라는 패배했지만 내용 자체는 지난 아스날전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사실이다. 과르디올라가 정말 많은 준비를 한 것도 사실이고, 선수들도 이를 그라운드 위에서 잘 따라줬다. 하지만 첼시는 역시 첼시였다. 날카로운 공격으로 2골을 성공시킨 콩테는 냉정하게, 철저히 수비적으로 나오면서 맨시티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결국 승점 3점을 따내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첼시는 우승 8부 능선을 넘었고 맨시티는 맨유, 아스날과의 챔피언스리그 진출 싸움에 또다시 불이 붙게 되었다. 끝까지 알 수 없다. 과연 리그가 끝나는 5월 말쯤이면, 이들은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까? 어느덧 정규 리그 종료까지 한 달반만을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