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콰이어 숲과 하늘공원, 문화비축기지가 길 위에 있었다
1. 일자: 2019. 1. 26 (토)
2. 산: 서울둘레길 가양역~구파발역, 봉산(209m), 매봉/앵봉산(230m)
3. 행로와 시간
[가양역(07:46) ~
난지나들목(08:17) ~ (노을공원/하늘공원
밑) ~ 세콰이어숲08:35) ~ 하늘공원(08:55~09:10) ~ 문화비축기지(09:22) ~ (불광천) ~ 증산동/해담는다리(09:57)
~ 봉산입구/스탬프 포스트(10:09) ~ 전망대(10:40) ~ 봉수대(11:16) ~ 서오릉고개(11:40) ~ 앵봉산/전망대(12:18)
~ 스탬프 포스트(12:43) ~ 구파발역(12:52)
/ 17.13km]
주중 부산
상갓집에 다녀오는 등 나름 바쁜 주중을 보내고 토요일 아침을 맞는다. 날이 추워졌다. 지난 밤 축구는 우리의 민낯과 실력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언짢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어, 여차하면 산행을 포기할까 했는데 아침이 되자 눈이 뜨인다. 동이 틀 무렵 가양대교를 넘는다. 광진교의 멋짐을 경험한지라 잔뜩
기대하고 다리 위에 섰건만, 평범한 한강다리였다. 키 큰
나무 뒤로 해가 떠오른다. 다리 위를 질주하는 차들 사이로 여의도 빌딩 숲이 보이고 그 뒤로 커다란
태양이 이글거리며 떠오르고 있다. 추위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충분히 멋진 풍경이었다.
위험스레 신호를 건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변으로 내려선다. 구리 30km,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길게 나 있다. 생태습지원을 지나 난지나들목을 통해 노을공원 밑에 도착한다. 공원으로
향하는 긴 계단 위로 잠시 오른다. 둘레길은 강과 공원 정상 사이 허리 길로 이어진다. 강 건너 지나온 가양대교와 그 뒤 아파트 숲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요히 서 있다. 해 지는 저녁 녘에 오면 노을이 그만일 것 같다. 그날을 기대해본다.
노을공원 밑 널찍한 흙 길을 걷는다. 길 위에 홀로 선다. 흙의 감촉이 참 좋다. 텅 빈 공간, 길게 이어지는 고요한 길, 혼자 보고 걷기 아까운 풍경이다. 멀리까지 이어지는 길 위로 내 그림자가 카메라에 잡힌다. 지나는
런닝 맨은 무심하다. 캠핑장을 바라보며 걷다 난지스튜디어를 옆을 지난다. 곧이어 메타세콰이어 숲이 나타난다. 같은 모습을 한 키 큰 나무들의
고공 질주가 멋지다. 혼자 걷기 아까운 명품 숲이 1km 가량
이어진다. 위로 하늘공원이 숲과 함께 한다. 서울에 이리
멋지고 낭만적인 길이 있음에 놀라고 감사한다. 지나는 가족에게 사진을 청한다. 내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긴다. 2021년 개통 예정이라는
월드컵 대교 앞에서 좌틀하여 하늘공원에 들어선다. 마라톤 동호회 사람들이 모여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이
여럿 목격된다. 이곳은 그들에게 최적의 트레이닝 코스라 여겨진다.
약 5km를 걸었나 보다.
하늘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에 선다. 둘레길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망설이다 위로 향한다. 계단을 오르며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에 또
감동한다. 너른 강, 강 건너 건물들, 길을 잇는 다리, 오를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월드컵경기장 그리고
황금빛 물결로 주변을 압도하는 공원의 관목 숲…. 아침 햇살에 받아 만물이 생동한다. 그 위에 나도 서 있다. 공원 위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풍경도 압권이다. 큰 산과 큰 강을 품은 서울이란 도시, 참 매력적이다.
왔던 길을 내려선다. 잠시 주홍 표지기를 놓쳤다. 문화비축기지 위에 선다. 예전 석유를 비축하던 곳이 멋지고 특이한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매봉산으로 가려다 문화기지 안을 천천히 둘러 본다. 이 흉측한 곳을 이토록 특색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새롭고도 값진 경험이었다.
상암사거리 부근에서 갈 곳 몰라 헤매다 불광천으로 내려선다. 20여분
천변을 걷는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걷는 이들이 많다. 작은
개천에는 왜가리와 오리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평온한 휴일 아침이다. 해담는다리 앞에서 도로 위로 올라선다. 어지러운 주택가 골목을 걸어
봉산 입구에 도착한다. 오늘 몫 길의 반쯤 온 것 같다. 둘레길
스탬프 포스트가 반갑다.
이정표는 가양역~구파발역
16.6km를 봉산 앵봉산 구간으로 명명한다. 봉산은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붙여진 209m 높이의 산이다. 아차산 봉수대를 거쳐 온 봉화는 이곳을 거쳐
남산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 같이 평온한 날은 봉화의 불은 하나만 피워졌을 게다.
봉수대 가는 길은 꽤 멀고 지겨웠다. 중간 중간 북한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전망대들이 있어 위안이 되었다.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 뒤로 삼각산의 정수리가
존재를 드러낸다. 늠름, 의존하고 당당함 그 자체다.
11:16, 정자와 너른 공터가 있는 봉수대에 도착했다. 사방이 확 트여 눈이 시원하다. 북한산의 정상부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서편으로는 일산과 김포의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한참을 서성이다
길을 내려선다. 서오릉고개까지는 먼지 풀풀나는 긴 내리막, 쉼
없이 홀로 걷는 길에 지쳐간다. 이제 4km가 채 남지 않았다.
산을 내려왔으니 이젠 편해지겠지 하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고개를
넘었으니 또 다른 산이 있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매봉이라고도 불리는 앵봉산으로 향하는 30분은 멀고 힘겨웠다. 정상 전망에서 바라보는 서울 서북쪽의 풍경은
왠지 을씨년스럽다. 서오릉과 골프장 윗길을 크게 돌아든다. 군
참호가 여럿 보이고 우측으로는 원효능선을 지나 염초봉으로 향하는 북한산 능선이 거대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좀처럼 등로는 편해지지 않는다. 왜 이곳의 난이도를 중급으로
정했는지를 알 것 같다. 어쩌면 서울둘레길 중 유일하게 두 개의 산을 넘는 가장 난이도 높은 코스가
아닌지 한다. 탑골생태공원을 지나 다시 스팸프 포스트 앞에 선다. 도로가
나타나고 머지 않다 구파발역이 보인다. 고단한 날개를 접어야겠다.
< 에필로그 >
걸음을 멈추자
허기가 몰려든다. 허겁지겁 굶주린 배를 채운다. 해 뜰 무렵
가양대교를 건너 한강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 월드컵경기장, 문화비축기지, 불광천, 봉산 그리고 앵봉산을 넘어 은평뉴타운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 끝이 났다. 기대만큼
좋은 경험을 했다. 평소 가고팠던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길을 걸었고, 일과도
연관된 문화기지를 둘러 보았고, 봉산과 앵봉산 산길을 걸으며 북한산 풍경을 원 없이 봤다. 산꾼에게 이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으랴.
지난 밤 축구 보느라 부족한 잠을 전철에서 보충했다. 평소답지
않게 쏟아지는 잠에 내리는 역을 놓칠뻔했지만 잠시나마 피로가 풀린다. 집에 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몸이 한결 개운하다. 노곤한 피로감과 함께 남은 휴일에 대한 기대함이
솟는다. 삶이란 생각하기 그리고 내 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