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일시: 2024년 11월 30일 (토)
o 날씨: 맑음
o 경로: 공영주차장 - 월현천 - 탑바위 - 불양암 - 호미산성 - 당산나무 - 호미교 - 공설운동장 - 부자광장 - 이병철 생가 - 원점회귀
o 거리: 9.1km
o 소요시간: 2시간 10분
o 걷기정보/여행포인트: 역사문화부잣길, 이병철 생가. 탑바위
o 지역: 경남 의령군 정곡면
o 일행: 나홀로
o 트랙:
o 코스지도
역사와 문화가 있는 부잣길은 A코스와 B코스로 나뉜다. A코스는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월현천 낚시터와 탑바위, 불양암, 호미산성, 호미마을을 거쳐 월현천 남쪽 둑길을 따라 출발지인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으로 돌아오는 6.3km의 길이다. B코스는 역시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월현천 남쪽 둑길을 따라 예동마을과 무곡마을을 거쳐 산을 넘어서 성황리소나무와 성황마을을 지나서 다시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으로 돌아오는 12.8km의 길이다. A코스와 B코스를 동시에 걷고 싶다면 A코스를 걷다가 호미마을 앞 호미교에서 오른쪽으로 난 둑길을 따라 B코스로 걸어가면 된다. 거리는 17.4km이다.
부잣길은 청정의 하천과 여유로운 남강변과 풍요로운 들판, 그리고 편안함을 주는 숲길을 따라 부자의 기운과 더불어 여유를 누리며 걷는 녹색길이다. 부잣길의 시작은 월척기원길을 따라 걷는다. 월척기원길 옆으로 난 월현천의 경치를 보며 월척기원과 함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할 수 있는 길이다.
월척기원길을 벗어나 탑바위길에 이르면 오늘날 삼성기업을 이룬 호암 이병철 선생님이 이곳 탑바위를 보며 자신의 꿈을 품었다는 의령 구경 중 제6경인 탑바위를 볼 수 있다. 탑바위에서 중요한 소원 하나를 빌면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이 탑바위를 뒤로 하고 절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호미산성 주위를 걷는 호국의병의길에 이르면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천강홍의장군으로 잘 알려진 곽재우 장군과 휘하 17장령이 의병의 첫 승전지인 기강전투와 왜구에 맞서 싸워 큰 승리를 이끌어낸 전적지인 정암진 전투를 생각할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 곳을 지나면 그 공기가 상쾌한 들판과 산길을 경험할 수 있는 남가람길, 가야역사길, 마실길, 산너머길로 이어진다. 그러다 긴 시간 걸어온 보상으로 성황리 소나무를 만난다. 이 성황리소나무는 성황리를 지키며 8.15 광복을 예언하는 전설을 가진 300년 이상 된 천연기념물(제359호)로 소중한 생명의 정기를 느끼게 해 준다. 성황리소나무를 뒤로 하여 산들산들 걸을 수 있는 산들사잇길을 지나면 저 유명한 호암 생가와 연결된 부자소망길을 만나게 되어 한번 쯤 삼성가와 같은 훌륭한 가문을 이루고자 하는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길이다. 부잣길에서 부자가 되는 꿈을 품는 기회를 도전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의령군 호페이지)
[의령 죽전리 고분군]은 해발 약 80~100m의 산줄기를 따라 수백여 기의 옛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죽전리 고분군의 동쪽에는 호미산성이 자리잡고 있고, 남쪽에는 남강이 흐르고 있다. 209년과 2010년에 각각 서쪽 산줄기에 대한 부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6세기에 만들어진 앞트기식돌방무덤 3기와 구덩식돌덧널무덤 등 8기가 확인되었다. 무덤 안에서는 대가야계 토기와 아라가야계 토기, 소가아계 토기, 신라 후기 양식 토기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무덤에서 다양한 지역의 토기가 함께 별견되는 것은 의령지역 가야유적의 특징이며, 죽전리 고분군은 가야무덤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삼국시대 당시 의령지역의 사회상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판)
[불양암과 탑바위] 의령군이 지정한 '의령9경'중 제6경이다. 남강을 끼고 있는 호미산의 수직절벽 위에 얹혀있는 바위로, 얇고 편평한 돌판이 층층이 쌓여있는 듯한 형상이어서 탑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탑바위에서 내려다보는 남강과 넓은 들녘의 풍경 또한 일품이다. 육중한 기암절벽 위에 올라앉은 탑바위의 높이는 약 8m로, 탑바위가 얹힌 절벽 아래의 좁은 터에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도량인 볼양암이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는데 불양암과 탑바위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다. 탑바위 아래 남강변은 임진왜란때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왜병을 격퇴시켰던 장소중 하나이다. (안내판)
[의령 호미산성]은 호미산의 정상을 따라 쌓은 둘레 약 438m의 테뫼식 산성이다. 성은 해발 약 80~100m에 걸쳐서 쌓았으며, 성벽의 위쪽으로 폭 5~8m의 순찰 길을 만들었다. 2009년 이루어진 조사 결과 , 호미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성을 수리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호미산성은 돌로 쌓은 상벽 뒤에 흙벽을 다시 쌓은 토석혼축산성이다. 특히 흙벽에서는 벽을 단단하게 다져 쌓기 위해 나무 기둥을 세운 흔적도 발견되었다. 성벽은 죽전리 고분의 조성방법과 비슷한데, 돌로 쌓은 벽은 큰 돌을 다듬은 후 중간 중간 작은 돌을 끼워놓아 수평을 맞추었다. 호미산은 산의 모양이 호랑이 꼬리처럼 생겼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망우당 곽재우가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의병을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내판)
[의령 9경] 제1경 충의사, 제2경 자굴산, 제3경 봉황대(일봉사), 제4경 벽계관광지, 제5경 정암루(솔바위), 제6경 탑바위, 제7경 수도사, 제8경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제9경 호암 이병철 생가 (안내판)
[당산나무와 할배돌 할매돌] 호미마을은 고개 잿길이 길다해서 붙여진 진등재(진등고개) 바로 아래 위치하는데, 마을까지 길게 뻗어 내린 산줄기를 호두산으로 부르고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 호미마을이라고 한다. 호미마을에서는 영험하다고 알려진 당산나무와 할배돌, 할매돌이 있다. 마을의 길흉이 있을때 당산나무 아래에서 잔치를 열고,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할배돌에 돼지머리 윗뼈를 묻고, 턱뼈는 마을내에 위치한 할매돌 아래에 묻어 마을의 번창을 기원했다. (안내판)
[3대 재벌 이야기] 예로부터 부자 마을이 많고 인심까지 넉넉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소문난 의령, 의령에 알부자가 많은 이유를 남강 솥바위, 즉 정암(鼎巖)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이 지방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보물처럼 여긴다. 솥은 예로부터 곡식, 즉 재물을 뜻하고 솥바위 아래 세개의 큰 기둥은 삼정승을 뜻하여 사방 20리 안쪽에 정승에 버금가는 세명의 큰 부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전설이 지방에 전해져 왔다. 솥바위에서 8km 정도 떨어진 정곡면 중교리에서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태어나 성장했고,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회장은 7km 떨어진 진양군, 효성그룹을 창업한 조홍제 회장은 5km 정도 떨어진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닜다. (안내판)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이 태어난 집이다. 1851년 호암의 조부가 대지 면적 1,907㎡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 선생이 유년 시절부터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생가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동안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로는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고, 주변 산의 기가 산 끝자락인 생가의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있어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를 이루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 호암 이병철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10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래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을 일으켜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1961년에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를 발의하고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다. 1965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풍족하게 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고, 1980년대에는 특유의 통찰력과 선견지명으로 반도체산업에 진출하여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발전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호암 선생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불모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 경제 발전을 선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