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동묘 명〔萬東廟銘〕
황제께서 신경에 올라 帝奠神京
만방을 굽어보니 臨于萬方
나래 편 듯 웅장한 명당이/ 翼翼明堂
우뚝하고 찬란하구나 有巍有煌
누구를 제사하는가 誰其祀之
해동을 도와준 분이로다 裨海之東
참람하지도 않고 번독하지도 않으니 不僭不瀆
도리어 그 높인 것이 아닌가 不抑其崇
아 황은이여 於戱皇恩
실로 부모와 같아 實維父母
하늘처럼 그지없으니 維天無極
우리가 어찌 감히 저버리랴 我其敢負
옛날 임진년에 昔在壬辰
섬오랑캐 창궐하여 島夷猖獗
생령을 어육으로 만드니 生靈血肉
종묘사직 전복될 위험에 처하였네 廟社顚臲
임금과 신하 형세가 궁해져 君臣勢窮
눈물 뿌리며 압록강에 임하여 雪涕臨江
우리가 내부하겠다고 我其內附
대국에 호소하였네 控于大邦
천자 말씀하기를, 아 天子曰咨
너희는 쓸데없이 근심하지 말라 毋煩爾憂
나에게 금과 비단 있고 予有金帛
나에게 창과 방패 있도다 予有戈矛
천자의 군대 동으로 나오니 六師東出
우레 같고 번개 같구나 如霆如雷
우르릉 쿵쾅 천지를 진동하니 砰𥔀震疊
산이 무너지듯 뿔이 꺾이듯 하누나 如崩如摧
이에 잔악한 오랑캐를 초토화하고 廼勦兇殘
이에 국토를 안정시키니 廼靖土宇
덕분에 살아남은 백성들 民廼有遺
보듬어주고 길러주셨네 廼抱廼乳
우리 왕이 이르기를, 갱생시켜준 은혜 王曰再造
만세토록 잊지 못하리로다 萬世弗忘
어이 보답할까 何以報之
맹세코 존망을 함께하리로다 矢共存亡
하늘이 황국을 돌보지 않으시어 不弔皇家
갑신년 춘삼월에 甲申春季
도성을 지키지 못하니 都城失守
귀신이 사특한 기운 부렸도다 鬼屭神奰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져 地拆天崩
망극한 사태가 벌어졌으니 事有罔極
예로부터 국운이 다하면 自昔運訖
사에 지붕을 덮는 법이라네 靡社不屋
오직 황제의 의열만이 維帝義烈
하늘에서 해와 별처럼 빛나건만 日星在天
누가 거리낌 없이 孰是弗忌
국권을 빼앗아 간단 말인가 以我鼎遷
높디높은 황극을 峩峩皇極
오랑캐가 차지하니 犬戎之坐
혁혁한 관과 의상이 奕奕冠裳
좌임으로 바뀌었구나 伊袵之左
굳세고 굳센 선문이여 桓桓宣文
궁궐에서 창을 베고 잠들며 枕戈于宮
피눈물이 《인경》을 적시니 血漬麟經
거기에 뜻을 같이한 신하 있도다 厥有臣同
우리가 닦고 우리가 물리쳐 我修我攘
우리 의리의 깃발 드날리리라 揚我義旌
비린내 나는 오랑캐 쓸어버리고 廓其腥穢
천자의 도읍 회복하리라 以復周京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有不効死
실로 우리 황상을 저버리는 것이라네 實背我皇
선문께서 뜻을 품은 채 승하하자 宣文齎志
신하는 이에 초야에 은둔하였네 臣廼遯荒
도도히 흐르는 강한이여 滔滔江漢
동으로 흐르도다/ 亦朝于東
밤낮으로 흘러가듯 逝以日夜
우리 추모하는 마음 끝이 없도다 我思靡窮
우뚝한 신궁이여 有兀新宮
부디 우리를 보우하소서 庶右我侑
황제시여 우리를 돌아보고 帝其顧予
누추하다 하지 마소서 罔謂是陋
이에 황제의 예전 도읍 바라보니 粤瞻帝居
구묘가 폐허가 되었구나 九廟旣墟
망망한 우 임금 발자취여 芒芒禹跡
하나같이 오랑캐 땅이 되었구나 壹以淪胥
어느 나라인들 우리나라가 孰如吾邦
뭇별이 북극성을 향하듯 하리오 于極維星
산은 우뚝이 높고 維山巖巖
물은 맑게 흐르네 維澗淸泠
시내에는 물풀이 있고 澗亦有毛
산에는 계수나무 있도다 山亦有桂
잔 올리고 제수 올리니 觴之豆之
황제께서 흠향하리로다 可以饗帝
황제께서 강림하시니 帝陟降止
용의 어가 양양하구나 龍駕洋洋
좌우에 계신 조손께서 右祖左孫
위엄 있게 의상을 드리우네 儼其垂裳
거룩하신 선후여 虔虔先后
뜰에 임하시도다 亦來于庭
보좌에 기대어 계시니 依其黼座
탄성이 개연하구나 愾其嘆聲
운대가 곁에 있고 雲臺在傍
궁암이 앞에 있네 弓巖在前
잊지도 말고 변하지도 말지어다 勿忘勿替
신명께서 환히 강림하시나니 有臨赫然
[주1] 만동묘(萬東廟) : 1717년(숙종43)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 신종(神宗)을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전에 민정중(閔鼎重)이 북경(北京)에 사신으로 갔다가 의종(毅宗)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 4자를 얻어 가지고 와서 송시열(宋時烈)에게 주니, 송시열은 충청북도 청주(淸州)의 화양동(華陽洞)의 절벽에 이것을 새겨놓고 암자를 지었는데, 김수항(金壽恒)이 장편(長篇)을 지어서 그 일을 기록하였다. 송시열이 죽을 때 권상하(權尙夏)에게 묘를 세워 의종과 신종을 제사 지내도록 하니, 권상하는 부근의 유생(儒生)들과 함께 화양동에 만동묘를 짓고 제사 지냈다.
[주2] 황제(皇帝) : 명나라 신종(神宗)을 가리킨다.
[주3] 신경(神京) : 일반적으로 제왕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신종이 이미 승하했기 때문에 천상(天上)의 선도(仙都)를 의미한다.
[주4] 눈물 …… 호소하였네 : 내부(內附)는 중국에 들어가 의탁하는 것을 말한다. 의주(義州)까지 파천(播遷)한 선조(宣祖)는 압록강을 건너 요동(遼東)으로 들어가려 하여 중국의 의사를 타진하고, 대신들과도 여러 차례 이 일을 의논하였다.
[주5] 갑신년 …… 벌어졌으니 : 1644년(인조22) 이자성(李自成)에 의해 북경이 함락됨과 동시에 의종(毅宗)은 자살하고 명나라가 멸망한 것을 가리킨다.
[주6] 사(社)에 …… 법이라네 :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사(社)는 토지신을 제사하는 것이어서 음기(陰氣)를 주관하는 것이다.……천자의 대사(大社)에 반드시 서리ㆍ이슬ㆍ바람ㆍ비를 직접 맞게 하여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게 한다. 따라서 망국(亡國)의 사에는 지붕을 만들어 하늘의 양기(陽氣)를 받지 않게 한다.〔社 祭土而主陰氣也……天子大社 必受霜露風雨 以達天地之氣也 是故喪國之社屋之 不受天陽也〕”라고 하였다
[주7] 황극(皇極)을 …… 바뀌었구나 : 만주족인 청나라가 한족인 명나라를 멸망시켜 오랑캐 문화가 득세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황극’은 표준이 되는 천자를 가리키며, 좌임(左袵)이란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의 풍속을 의미한다.
[주8] 선문(宣文) : 시호가 선문장무 신성현인(宣文章武神聖顯仁)인 효종(孝宗)을 가리킨다.
[주9] 창을 베고 잠들며 : 기필코 적을 섬멸하려는 굳은 의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동진(東晉)의 유곤(劉琨)이 친구인 조적(祖逖)과 함께 북벌(北伐)을 하여 중원을 회복할 뜻을 지니고 있었는데, 조적이 먼저 기용되었다는 말을 듣자 “내가 창을 머리에 베고 아침을 기다리면서 항상 오랑캐 섬멸할 날만을 기다려 왔는데, 늘 마음에 걸린 것은 나의 벗 조적이 나보다 먼저 채찍을 잡고 중원으로 치달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吾枕戈待旦 志梟逆虜 常恐祖生先吾箸鞭耳〕”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賞譽》
[주10] 피눈물이 인경을 적시니 : 《인경(麟經)》은 《춘추(春秋)》의 이칭(異稱)이다. 곧 이적(夷狄)을 물리쳐 복수설치하는 춘추대의를 실행할 것을 다짐한다는 말이다.
[주11] 뜻을 같이한 신하 : 효종의 북벌대의를 적극 지지한 송시열(宋時烈)을 가리킨다.
[주12] 신하는 …… 은둔하였네 : 효종이 승하하자 송시열이 회덕(懷德)으로 돌아간 것을 가리킨다.
[주13] 도도히 …… 없도다 : 중국의 하수가 모두 동쪽을 향하면서〔萬折必東〕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朝宗于海〕에서 연유한 것으로, 중국을 사모하며 받드는 조선의 뜻을 말한다. 《荀子 宥坐》 《書經 禹貢》 《詩經 小雅 沔水》
[주14] 신궁(新宮) : 사당의 별칭으로, 곧 만동묘, 더 나아가 만동묘에 모신 신종을 가리킨다.
[주15] 이에 …… 되었구나 : 구묘(九廟)는 천자의 종묘이다. 곧 중국 땅을 바라보니 명나라가 멸망하여 폐허가 되었다는 말이다.
[주16] 망망한 …… 되었구나 : ‘우(禹) 임금의 발자취’란 우 임금이 중국의 고산(高山)과 대천(大川)의 한계를 따라 중국 국토를 9주(州)로 나눈 데서 온 말로, 곧 우 임금이 누볐던 중국땅이 청나라 차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주17] 어느 …… 하리오 : 뭇별은 제후국을, 북극성은 천자 나라인 중국을 가리킨다. 곧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해 돌듯 명나라에게 향모하는 마음을 지니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나라만한 나라가 어디에 또 있느냐는 말이다.
[주18] 시내에는 물풀이 있고 : 진귀하지는 않아도 정성껏 올리는 예물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3년 조에, “실로 마음이 광명하고 신의가 있다면 산골 도랑이나 못가에 난 물풀……모두 귀신에게 제물로 바칠 수 있고 왕공에게 올릴 수 있다.〔苟有明信 澗谿沼沚之毛…… 可薦於鬼神 可羞於王公〕”라는 대목이 실려 있다.
[주19] 산에는 계수나무 있도다 : 계수나무를 이용해 술을 담궈 제주(祭酒)로 쓴다는 의미인 듯하다.
[주20] 용의 어가〔龍駕〕 : 황제가 타는 수레이다.
[주21] 좌우에 계신 조손 : 신종과 의종이 조손간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22] 선후(先后) : 효종을 가리킨다.
[주23] 보좌(黼座) : 보불(黼黻) 무늬가 새겨진 옥좌(玉座)를 가리킨다.
[주24] 운대(雲臺) : 능운대(凌雲臺)로 화양계곡 제6곡에 있다.
[주25] 궁암(弓巖) : 읍궁암(泣弓巖)으로, 화양계곡 제3곡에 있다. 우암이 매년 5월 4일인 효종의 휘신(諱辰)에 반드시 이 바위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곡을 하였기 때문에 ‘읍궁(泣弓)’이라 이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