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寺刹巡遊吟(사찰순유음)
충지는 1272년(壬申) 정혜사로 부임, 12년을 지낸다. 47세에서 59세까지 승려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에 정진하면서 찾아오는 지인들과 수창한다. 또한 전국의 다른 사찰을 찾아가 당시 유명한 선승(禪僧)들과 동안거(冬安居)와 하안거(夏安居)를 하는 등 구도에 정진한다. 유고의 기록으로는 그가 찾아간 사찰은 10여 곳이 넘는다.
그 중에서도 광주 서석산(瑞石山) 규봉암(圭峯庵)을 아주 좋아한듯하다. 지눌(知訥)․혜심(慧諶)․몽여(夢呂) 등 유명한 승려들도 방문한 바 있다. 특히 규봉사의 주지 인선백(印禪伯)과는 여러 편의 한시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아 마음이 통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청주의 華井寺․元興寺․玉岩寺․眞覺寺․萬淵社․開泰寺․楞伽山의 蘇來寺 등을 순유했다. 그러나 여러 번 金剛山을 가보려고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쉬워하기도 했다.
① 夏日懷圭峯印禪伯 (하일회규봉인선백, p.13)
一臥圭峯上 한번 규봉사에 머물렀다가
于今歲月移 어느 사이 많은 세월 흘렀네
片雲隨步武 조각구름은 걸음걸음 따라 흐르고
孤鶴伴棲遲 외로운 학은 은거생활을 짝하네
鐵脊久彌硬 쇠로 된 등줄기인 듯 오랠 수 록 꼿꼿하고
氷姿老不衰 얼음 같은 자세 늙어도 쇠하지 않네
秋凉何日至 서늘한 가을 언제 오려나
吾欲往從之 나 인선백 따르고 싶어라
※여기서 규봉(圭峯)은 현재 광주 무등산 동북쪽에 있는 규봉암(圭峯庵)을 일컫는다. 규봉암은 무등산에서도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여기에 인(印)씨 성을 가진 선사가 주석했는데 국사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② 華井寺 夏安居 (화정사 하안거, p.31)
拂衣高步謝塵區 옷자락 떨치고 당당히 티끌세상 인연 끊고
膠膝雲山二十秋 구름과 산과 짝한 지 벌써 20년
下詔急徵今始覺 조서를 급히 내려 부르신 뜻이 이제 깨닫고 보니
蓋天移我著淸州 개천(임금)이 나를 옮겨 청주에 안착하게 했네
③ 遊元興寺林亭 (유원흥사림정, p.32)
滿山松柏鬱蒼蒼 온 산이 송백으로 울울창창한데
中有高禪水石莊 그 가운데 높은 선객의 수석장이 있구나
一杖來遊良有意 막대 짚고 와서 노는 것 진실로 뜻이 있나니
小亭閑味要同當 조그마한 정자 한가로운 맛을 같이 하려네
④ 抵宿玉岩 (저숙옥암, p.32)
避喧求靜至玉巖 시끄러움 피해 고요함 찾아 옥암사에 이르니
滿眠幽奇未易談 눈에 가득, 그윽 기이한 경치 말로 표현키 어려워
石上松孤類巢許 돌 위의 외로운 소나무 소허(高士)를 닮았고
門前杉老似彭刖 문 앞의 버드나무 늙어 팽월과 같구나
千里岳色深還淺 천리산악 빛깔 깊고도 얕은데
一派泉流冷且甘 한 줄기 흘러내리는 샘물 차고도 맛있네
二八應眞曾駐錫 16나한(羅漢)이 일찍이 머물던 곳
暫來聊喜得同龕 잠시 와서 같이 머무는 것 애오라지 기뻐라
⑤ 遊眞覺寺 (유진각사, p.37)
西原牧伯與書記 서원의 목백과 서기는
賢相敵兮心不二 어진 것이 서로 맞으니 마음이 둘이 아니네
仁風三載邑居寧 어진 바람 3년에 고을이 살기 편하고
竟日官閒無一事 해가 다하도록 관청이 한가해 아무 일 없구나
時方淸明最佳節 때는 바야흐로 가장 아름다운 청명인데
百紫千紅爭嫵媚 온갖 가지 자주 빛 붉은빛 아름다움 다투누나
試携儒釋同道人 유교와 불교의 동도인을 이끌고
遊到麒麟峯下寺 기린봉 아래 진각사에 이르러 노니네
甎爐石銚自提挈 벽돌과 화로와 돌솥을 끌고
側足行行上層翠 발꿈치 들고 푸른 산꼭대기 올랐지
烹蔬煮茗有餘歡 나물 삶고 차 끓이니 즐거움이 많아
眺水看山無限思 산수 즐기며 끝없는 생각
由來四事固難幷 사사(의식주 및 의약)를 갖추기는 정말로 어렵나니
似此一歡那易致 이처럼 한 가지 즐거움이라도 어찌 쉽게 이뤄지랴
淸吟雅笑但自適 맑은 노래 청아한 웃음으로 자적할 뿐
不覺西峯紅日墜 서쪽 봉우리에 해가 지는 줄도 몰라라
歸來閉閣想前遊 돌아와 절문 닫고 앞서 놀던 생각하니
怳然一枕邯鄲睡 홀연히 베갯 가의 부질없는 꿈 이런가
他年勝事恐堙沒 다음 해 이 즐거움 잊을까 싶어서
故作此詩聊自識 억지로 이 시를 지어 애오라지 스스로 기념하네
⑥ 遊楞伽山 (유방가산, p.97)
(時欲移棲楞伽故云 : 때때로 능가산으로 옮겨 살고자 해서 읊음)
舊聞海上有名山 예부터 해상에 명산이 있다는 소식 들었는데
幸得遊尋斷宿攀 다행히 찾아 놀면서 지난날의 소망 이루었네
萬壑煙嵐行坐裡 일만 골짜기 연기와 노을은 좌선 속에 있고
千重島嶼願瞻間 천겹의 섬돌 한 눈에 들어오네
義湘庵峻天連棟 의상암은 드높아 기둥이 하늘에 접해 있고
慈氏堂深石作關 자씨당은 깊숙해 돌로 문을 만들었지
避世高棲無此地 세상 피해 높이 살 곳 이만한 곳 없나니
堪誇倦鳥解知還 고달픈 새가 돌아올 줄 아는 것 자랑스럽네
四面山屛海簇 사면에 산 병풍이요 바다는 족자인데
誰將水墨來施 누가 수묵을 가져와 이 그림을 그렸는가?
轉眄淸人肌骨 돌아보면 사람의 기골을 맑게 하나니
飛昇何待別時 승천하기에 어찌 특별한 때를 기다리리
⑦ 多寶寺吟 (다보사음, p.190)
地幽衰草尙蒙茸 궁벽한 땅 쇠잔한 풀 아직도 더부룩한데
松檜童童碧玉幢 소나무 전나무가 무성해 푸른 옥 깃발이네
一楊姻霞留勝迹 한 자리 고은 노을은 훌륭한 자취를 남겼나니
百年香火福吾邦 백년의 향불은 내 나라를 복되게 하네
空庭得月鋪晴雪 빈 뜨락에 달빛은 깨끗한 눈으로 포장한 듯 하고
遠壑來風吼夜江 먼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밤 강에 울부짖네
衲帔蒙頭寒不寐 누더기 옷으로 머리 덮고도 추워 잠 못 이루는데
壁間蘭焰吐殘缸 벽 사이 난초는 찌그러진 화분에서 반짝이네
⑧ 黑龍寺吟 (흑룡사음, p.190)
城郭摧頹草木深 무너진 성곽에 초목은 우거졌는데
當年淸蹕駐江潯 그 당시 맑은 행차 강가에 머물렀네
北山霜樹欹畢蓋 북쪽 산 서리 맞은 나무에 화개를 의지하고
南岸烟篁聳羽林 남쪽 언덕 연기 낀 대숲엔 우림이 솟았네
輦路螢飛封蘚暈 행차 길에 나르는 반딧불 이끼에 붙어있고
彤闈禽噪銷松陰 궁전에 지저기는 새는 소나무 그늘을 에워쌓네
秋風破院蟬聲晩 가을바람 허물어진 절에 저녁 매미소리
獨倚欄于感古今 홀로 난간에 의지해 어제와 오늘의 생각에 젖네
(0008일차 연재에서 계속)
《원감국사의 한시에 등장하는 무등산 규봉암의 모습》
첫댓글 7일차에서는 원감국사의 '寺刹巡遊吟(사찰순유음)' 여덟편이 게재됩니다.
※ 주) 원감국사는 1272년 정혜사로 부임한 이후 12년간 수도생활에 정진하고, 또한 찾아오는 지인들과 수창(시를 가장먼저 지어 읊음)하면서, 진각사등 10여곳의 사찰을 찾아다니는 등으로 활발하게 구도에도 매진함
-무곡
좀전 게재된 시중 '세번째 유원흥사림정' 의 제목같이
망중한에 원흥사 숲속 정자에서 노닌다는 선인 원감국사 충지의
모습이 그림으로 연상되듯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무곡
상기의 글이 쓰여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750여년전인 고려원종때이지만, 혈족이 작가로 나오는 것을 보니 어제의 일같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혈족의 힘인가 봅니다/ 무곡
2017년 11월 19일에 무등산 규봉암에 갔었습니다...
1250년경의 주지 명단이 있는지 있다면 '인선백'(수선사 7세 국사 자정국사로 추정)의 기록 여부등을 조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찾아 뵌 규봉암의 주지스님은 그런 자료가 없고 있던 그전의 자료도 625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고 하셔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기억이 있습니다...https://wi3000.tistory.com/m/1428/ 재치
무등산 중에서도 규봉암은 경치가 참으로 좋다고 정평이 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