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꺼내다
감사와 진심을 표현하면 얻을 수 있는 것
사람에게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고는 밖으로 꺼내지 않는 생각이나 관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혼자서 숨기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과분한 은혜를 입거나 감사했던 순간들이 참 많다. 살아오면서 좋은 분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학교를 다니며 선생님을 통해 나와 내 또래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양식이 될 교훈이나 의미 있는 삶의 가치 등을 얻기도 했으며,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해 온 음악을 마침내 나의 목표와 진로로 택한 과정에 많은 도움과 영향을 주신 분도 계신다. 이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늘 갖고 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자주 하면서 정작 진심어린 감사를 전한 적은 드물었음을 깨달았다.
무엇이 감사한지, 이로 인해 내가 어떤 영향을 받고 성장하고 있는지, 존경하는 마음이나 나의 비전, 또는 미래의 계획 등을 전달해야 함에도 이야기를 통해 표현하기는커녕 편지 한 장 쓰는 것도 망설였다. 내 마음속에 담긴 생각을 바깥으로 꺼내는 일을 매우 힘들어하고, 쑥스러워 늘 회피했던 것이다. 핑계를 대보자면 내성적인 성격 탓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문득 내 자신을 되돌아보니 고작 쑥스럽다고 마음을 전하는 쉽고 간단한 일도 못 한다면 참으로 배은망덕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스승의 날을 맞아 가장 존경하고 감사하는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 분은 바로 내가 6살 때부터 지금까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의 원장 선생님이신데, 처음 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음악 인생에 매우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시다. 내가 진로에 있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많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에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셨다.
잠시 과거를 회상해 보자면 나는 좋아하는 것도 많고 잘하는 것도 다양한데 구체적인 꿈이 없는 아이였다. 피아노를 가장 오래 배워왔으니 음악가가 될 마음을 먹었다가, 또 그림 그리는 게 즐거워서 미술 쪽으로 가려고 했다가. 이렇게 갈팡질팡하며 별다른 목표 의식 없이 피아노 학원에 계속 다니고 하고 싶은 일도 이것저것 하며 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새 고등학교에 진학할 시기가 다가왔고, 점점 불안에 휩싸이며 몹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생각 끝에 피아노 쪽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음악 '취미'가 아닌 음악 '전공'에 대한 현실적인 요인과 상황들을 고려해 판단해 보니 상당히 막막한 길이라 느껴졌다. 오래도록 겉으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장래에 대한 고민과 막연함, 부담감에 시름을 앓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해 4월의 어느 날, 학원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피아노 전공을 시작하자는 제안을 해 오셨다. 너를 도저히 이대로 그냥 둘 수 없고, 음악 전공자로 키워 보고 싶다면서 말이다. 이후 그렇게 피아노를 전공하게 된다는 부담감과 설렘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를 믿고 많은 혜택과 도움을 주셨고 덕분에 음악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인의 방향으로 목표를 세우고 달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은혜를 입은 인생 최고의 스승님께 고3이 되도록 감사를 전하는 편지 한 장 드린 적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후회스럽고 죄송한 마음에 정성을 들이고 또 들여 장문의 편지를 써서 드렸더니 받아보시고는 매우 기뻐하셨다. 그 후 선생님은 편지를 읽고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는 말과 함께, 내가 선생님께 편지로 마음을 전달하고자 해 준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하셨다. 내가 되려 감사를 전해 받은 것이다! 또한 내 존경과 감사로 힘이 나고 행복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그동안 진지하게 내 생각과 감사를 표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그럼에도 내 평소 성격을 잘 아시는 선생님께서 네가 원래 속마음을 잘 표현하는 성격도 아니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전달해 주어 정말 고맙고 기쁘다고 해 주셔서 뿌듯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선생님께 조금의 보답이라도 드린 것 같아 다행이었다. 비록 큰일은 하지 못해도, 사소한 편지 한 장만으로도 이렇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으며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편지라는 수단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정말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해도,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당사자는 결코 알 수 없다.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이라 할 만한 일은 그저 내 본분에 맞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더 나아가 고마운 분들께 내가 가진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만 하더라도 그분들은 뿌듯함과 보람,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나도 얻는 것이 많고, 되려 감사와 존중을 받기도 하며 인간관계도 한층 더 발전하고 돈독해진다. 그런데 이토록 쉬운 일을 어렵게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내 자신에게 후회가 밀려들었고,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감사와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과분한 은혜를 입었으니 힘을 얻고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목표를 이루고 그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해드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