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베드로후서 3장 8-13절
왜 아직 주님이 재림하지 않았습니까?
지난시간
8-9절에서 본대로
회개하고 돌아올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찾으시기 까지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와야 할 자들 중에
저와 여러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해서
이미 돌아온 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전서4: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교회로 모인 성도가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을 받을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기준은
복음을 순종치 아니한 것입니다.
교회란
복음을 순종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산다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교회라고 말하는 곳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추구하고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까?
과연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제시하는 복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세상의 영광과
세상의 권세가 주어진다고
오늘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외치고 있고
그것을 좋아하면서
따라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마귀가 준다고 하는
내용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세상에서
고난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4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성도들을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듯이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불 시험이란 고난입니다.
그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즉 재림하실 때에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이며,
영광의 영이 함께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함께 하는 자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을 보면
예수 믿으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서
무언가 잘 못믿어서
저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난을 받은 것은
잘 못 믿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
얼마나 복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지가 증거 되는 현장이
성도가 고난 받는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먼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이 세상의 심판이야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주님이 언제 오시는 것입니까?
10절보세요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은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42-44절에도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도둑처럼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됩니까?
10절입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하늘이
종이축이 말리듯이 사라지고
그 안의 물질이란
우주의 재료들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것들이
다 드러날 뿐 아니라
불에 살라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12-17절에도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어린 양의 진노가
이렇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믿으십니까?
주님의 은혜가 임한 자는
비록 이 땅에 발 딛고 살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의 롯처럼
그런 자신의 모습과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 상합니까?
세상의 것이 없어서 마음이 상합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종말과 심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그런 희망과 가능성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전에 잠깐 방송에서
어떤 설교를 전반에만 들었는데
존경받은 성경의 인물이라고 하면서
요셉과 다윗을 이야기 하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고나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고,
다윗은 왕이 되고나서
꽉 찬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짓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준비 하였기에
다윗 사후에
이스라엘의 황금기가 왔고
요셉은 아무른 것도 하지 않아서
애굽의 노예로 전락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하면서
성도 여러분도 지금 준비하여
미래의 주인공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세상에 희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왜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해골을 애굽에서 매어내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묻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멸망할 애굽에서
무엇을 준비하여야 잘 한 것입니까?
야곱도 요셉도
자기들을 약속의 땅에
묻어달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애굽이라면
이곳에서 남겨둘 것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 안에 들어간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다 얻는 것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성전준비를 한 것도
건물 성전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참된 성전이며
사람의 손으로 세우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됨을
이야기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빈틈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성에도
심판이 지체하지 않고 이루어진 것처럼
이 마지막 심판도
지체하지 않고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약속을 믿는 성도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11-12절보세요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어떤 것입니까?
거룩하지 못한 것과
경건하지 못한 것이란
결국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이
다 세상으로 좇아온 것입니다.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에
이것이 거룩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에 것을 찾는 것이
거룩한 행실이며 경건함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주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주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
세상의 썩어질 것
불타 없어질 것을 구하기 위하여
애쓰기보다
오히려 각양 좋은 은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그것을 사모해야 될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들은
다 선하고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처음 지어진 세상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범죄 한 세상이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다 불로 태워버리시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의가 충만한 곳입니다.
의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인간을 향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자신의 노력이나
자신의 경건이나 거룩으로는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누가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17절보시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요한계시록 21:1-4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데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흐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카페 게시글
베드로후서
새 하늘과 새 땅 베드로후서 3장 8-13절
햇살
추천 0
조회 46
23.12.10 12:56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