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 작가들 |
한때 장미 외 1편
박윤근
한번 장미향에 길든 이는
이미 장미의 족속
푸근 장미 잎의 두건을 두르고
씨를 뿌리고 다닌다지
1킬로그램의 오일을 얻기 위해
4500킬로그램의 신선한 꽃잎을 얻으러 다닌다지
나도 한때는 장미의 향수를 지녔던 자,
신에게 닿을 장미의 연기를 피우며
휘발성 꽃향기를 믿었던 자
몸 층층 차올랐던 장미의 소문
장미의 입술
그때 나를 움직였던 절반은
장미의 연금술
그 향기로 가장 식물다운 꽃의 영생을 얻고자 했지만
향수는 절대 장미가 나무에 핀 꽃과 같은 향기를
뿌리는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 신의 땅에 잘못 발을 디딘 듯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넝쿨처럼 번진
꽃의 무리를 보고 말았다
거리로 이미 장미의 족속들이
마치 씨를 뿌린 듯 리본을 단 듯
어린아이의 치마에서 생생히 번지고 있던
장미의 붉은빛을
줄, 줄이
말아지나 봐 휘어지나 봐
접어야 세워지나 봐
바람이 줄을 긋고 있어
나무를 흔들고 있어 줄, 줄이
그들은 언제부터 휘었을까
휘어 다시 휘는 바람처럼
휘다 보면 꼬이는 걸까
맥없이 말린 잎처럼
술에 꼬인 속처럼
혹시 바람의 바코드를 찍은 거니
어디까지 말린 거니
빙하기
그곳은 바람이 바람을 세운다지
얼음벽이 흔하다지
얼음벽은 꼬인 줄도 모른다지
투명을 외친다지
詩作노트
입을 닫고 있는 침묵이 긍정인지 부정인 알아보기 위해 침묵의 아가리를 벌리고 억지로 말을 시키면 그 진위는 더 혼란에 빠진다. 그럴 때는 그냥 침묵의 표정을 읽는 것이 좋다. 침묵은 이미 언어를 떠난 표정이기 때문이다.
박윤근 | 2015년 『문예바다』 신인상 시 당선. 시집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수상. 아시아투데이 호남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