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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장 1-9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함
1절.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when they had traveled through Amphipolis and Apollonia, they came to Thessalonica, where there was a synagogue of the Jews.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Διοδεύσαντες δὲ τὴν Ἀμφίπολιν καὶ τὴν Ἀπολλωνίαν, ἦλθον εἰς Θεσσαλονίκην,
Having passed through then the Amphipolis and the Apollonia, they came to Thessalonica,
‘다녀가’(Διοδε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assed through) 과거에 통과해서 지나간 사실을 말합니다.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ὅπου ἦν συναγωγὴ τῶν Ἰουδαίων.
where was synagogue of the Jews
‘있는지라’(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과거부터 계속 있어온 것을 가리킵니다.
2절.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ccording to Paul's custom, he went to them, and for three Sabbaths reasoned with them from the Scriptures,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κατὰ δὲ τὸ εἰωθὸς τῷ Παύλῳ, εἰσῆλθεν πρὸς αὐτοὺς,
according to now the custom of the Paul, he went in to them,
‘들어가서’(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went in) 과거에 들어간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καὶ ἐπὶ σάββατα τρία, διελέξατο αὐτοῖς ἀπὸ τῶν γραφῶν,
and for Sabbaths three, he reasoned with them from the Scriptures,
‘강론하며’(διελέξατο)는 부정과거로서(he reasoned) 과거에 강혼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3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explaining and giving evidence that the Christ had to suffer and rise again from the dead, and saying, "This Jesus whom I am proclaiming to you is the Christ.“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διανοίγων καὶ παρατιθέμενος ὅτι τὸν Χριστὸν ἔδει παθεῖν καὶ ἀναστῆναι ἐκ νεκρῶν,
opening and setting forth that the Christ it behooved to have suffered and to have risen out of dead
직역하면 ‘그리스도가 마땅히 고난을 당하고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열어서 제시하니’란 뜻입니다.
‘마땅히 –할 것을’(ἔδει)은 미완료과거로서(it behooved) 역사적으로 계속 마땅한 일이었음을 가리킵니다.
‘고난을 당하고’(παθ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suffered)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고난 당하신 사실을 가리키고, ‘다시 살아날 것을’(ἀναστῆναι)도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 to have risen)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부활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열어서’(διανοίγων)는 현재분사로서(opening) 성경을 해설해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제시하니’(παρατιθέμενος)도 현재분사로서(setting forth) 계속 성경 구절을 제시하여 입증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to present evidence by bringing forth the proof passages of scripture). L. Key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καὶ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Χριστός, ὁ Ἰησοῦς,
and that this is the Christ, the Jesus
여기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ὃν ἐγὼ καταγγέλλω ὑμῖν.
whom I I each to you
‘전하는’(καταγγέλλω)은 현재형으로서(preach) ‘지금 전하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4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some of them were persuaded and joined Paul and Silas, along with a large number of the God-fearing Greeks and a number of the leading women.
그 중의 어떤 사람—-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καί τινες ἐξ αὐτῶν ἐπείσθησαν καὶ προσεκληρώθησαν τῷ Παύλῳ καὶ τῷ Σιλᾷ,
And some of them were persuaded and joined themselves to the Paul and to the Silas,
‘권함을 받고’(ἐπείσ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persuaded) 권함을 받고 확실하게 설득당한 것을 가리킵니다.
‘따르나’(προσεκληρώθησαν)도 부정과거로서(joined themselves) 확실하게 따르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προσκληρόω)은 ‘함께 몫을 나누다, 동료가 되다, 제자로서 따르다’( assign by lot, allot, associate with, follow as a discipl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τῶν τε σεβομένων Ἑλλήνων πλῆθος πολὺ,
along with worshiping Greeks multitude great
‘경건한’(σεβομένων)은 현재분사로서(worshiping)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적지 않은 귀부인도
γυναικῶν τε τῶν πρώτων οὐκ ὀλίγαι.
women then of the first not a few
5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e Jews, becoming jealous and taking along some wicked men from the market place, formed a mob and set the city in an uproar; and attacking the house of Jason, they were seeking to bring them out to the people.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Ζηλώσαντες δὲ οἱ Ἰουδαῖοι,
Having become jealous but the Jews,
‘시기하여’(Ζηλώ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come jealous) 시기가 가득찬 모습을 가리킵니다.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καὶ προσλαβόμενοι τῶν ἀγοραίων ἄνδρας τινὰς πονηροὺς,
and having taken to [them] of the market-loungers men certain wicked,
직역하면 ‘저자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란 뜻입니다.
‘데리고’(προσλαβό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to) 위협적으로 데리고 온 것을 가리킵니다.
떼를 지어
καὶ ὀχλοποιήσαντες,
and having collected a crowd
직역하면 ‘무리를 모아서’란 뜻입니다.
여기 동사(ὀχλοποιή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llected a crowd) 위협적으로 무리지어 몰려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성을 소동하게 하여
ἐθορύβουν τὴν πόλιν,
they set in uproar the city
‘소동하게 하여’(ἐθορύβου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set in uproar) 계속 소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καὶ ἐπιστάντες τῇ οἰκίᾳ Ἰάσονος,
and having assailed the house of Jason,
‘침입하여’(ἐπιστά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 having assailed) 폭력적으로 침입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ἐζήτουν αὐτοὺς προαγαγεῖν εἰς τὸν δῆμον·
they were seeking them to bring out to the people
‘끌어내려고’(προαγαγ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ring out) 폭력적으로 거칠게 끌어내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찾았으나’(ἐζήτου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seeking) 계속 찾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6절.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y did not find them, they began dragging Jason and some brethren before the city authorities, shouting, "These men who have upset the world have come here also;
발견하지 못하매
μὴ εὑρόντες δὲ αὐτοὺς,
not having found but them,
직역하면 ‘그러나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매’란 뜻입니다.
‘발견하지’(εὑρ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found) 전혀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ἔσυρον Ἰάσονα καί τινας ἀδελφοὺς ἐπὶ τοὺς πολιτάρχας,
they were dragging Jason and certain brothers before the city authorities
직역하면 ‘야손과 몇 형제들을 읍장들 앞에 그들이 끌고 갔다’는 뜻입니다.
‘끌고 가서’(ἔσυρο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dragging) 계속 끌고 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소리 질러 이르되
βοῶντες ὅτι
crying out that
‘소리 질러’(βοῶ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crying out) 계속 소리 지라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Οἱ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ἀναστατώσαντες, οὗτοι καὶ ἐνθάδε πάρεισιν,
those the world having upset, these also here are come
‘어지럽게 하던’(ἀναστατώσαντες)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upset) 완전히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르매’(πάρεισιν)는 현재형입니다(are come).
7절.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Jason has welcomed them, and they all act contrary to the decrees of Caesar, saying that there is another king, Jesus."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οὓς ὑποδέδεκται Ἰάσων·
whom has received Jason
‘맞아들였도다’(ὑποδέδεκται)는 완료형으로서(has received) 이미 맞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καὶ οὗτοι πάντες, ἀπέναντι τῶν δογμάτων Καίσαρος πράσσουσιν,
and these all, contrary to the decrees of Caesar do
직역하면 ‘이 사람들은 다 가이사의 명령들을 거역하여 행한다’는 뜻입니다.
‘행한다’(πράσσουσιν)는 현재형입니다(do).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βασιλέα ἕτερον λέγοντες εἶναι Ἰησοῦν.
king another saying to be Jesus
직역하면 ‘다른 임금 예수가 있다고 말하면서’라는 뜻입니다.
‘말하면서’(λέγοντες)는 현재 분사입니다(saying).
8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y stirred up the crowd and the city authorities who heard these things.
ἐτάραξαν δὲ τὸν ὄχλον, καὶ τοὺς πολιτάρχας, ἀκούοντας ταῦτα,
They stirred up then the crowd, and the city authorities, hearing these
‘듣고’(ἀκούοντας)는 현재분사로서(hearing) 계속 듣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소동하여’(ἐτάραξ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tirred up) 흥분해서 막 소동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9절.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they had received a pledge from Jason and the others, they released them.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καὶ λαβόντες τὸ ἱκανὸν παρὰ τοῦ Ἰάσονος καὶ τῶν λοιπῶν,
and having taken the security from the Jasion and the rest,
‘받고’(λαβ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확실히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놓아 주니라
ἀπέλυσαν αὐτούς.
they let go them
직역하면 ‘그들을 석방시켰다’는 뜻입니다.
‘놓아주니라’(ἀπέλυ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let go) 확 놓아서 석방시킨 것을 가리킵니다.
- 설 교 -
1절.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 그들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를 빼고,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빌립보를 떠나서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1절에서 <우리가>라고 한 것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빌립보 전도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빌립보 전도할 때는 빌립보에 함께 있었는데(16:16), 빌립보를 떠나서 데살로니가에 전도하러 갈 때는 함께 가지 않고, 빌립보에 머물렀습니다.
원래 누가는 고향이 빌립보이기 때문에, 빌립보에 남아서 자기 형제인 디도를 전도하고, 빌립보 교회를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에 갔다가 다시 3차 전도 여행을 마치면서 빌립보에 왔을 때 다시 바울과 합류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장 6절에 다시 <우리가>라고 했습니다.
2.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빌립보에서 남쪽으로 60킬로 떨어진 곳에 암비볼리가 있고, 암비볼리에서 다시 서쪽으로 48킬로 떨어진 곳에 아볼로니아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두 곳을 그냥 지나서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곳은 빌립보 교회에서 전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냥 지나치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은 아무 곳이나 다 선교한 것이 아니고, 전략적으로 선교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선교를 할 때, 핵심적인 도시를 전도해야 하고, 또 그 도성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바로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선교 정책입니다.
3.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아볼로니아에서 남서쪽으로 57킬로 내려가면 데살로니가가 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는 헬라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성이었습니다.
지금도 인구가 100만 명이나 됩니다.
이 데살로니가란 이름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동생인 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붙인 도시명입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는 선교 전략적으로 큰 도성이고, 또 그곳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으므로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에 머물러 전도했습니다.
2절.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1. 바울은 선교 전략을 스스로 정할 때, 어느 도성에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으면,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고 그 후에 이방인에게 전도한다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의 기회를 유대인에게 먼저 주셨기 때문이고, 또한 유대인은 바울의 육신적인 동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미 구약성경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구약의 하나님과 성경 약속을 말하면서 예수님을 전도하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방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려면, 기본적인 성경 지식이 없기 때문에 전도의 접촉점을 찾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마다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도했고 그 다음에 이방인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복음 전도를 거절하면,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구원 받기에 합당치 않는 자로 여기므로 우리가 이제는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고 했습니다( 행 13:46).
2.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유대인의 회당 예배는 우리 신약시대 교회 예배와 비슷해서 신앙고백도 하고, 찬송도 하고, 헌금도 하고, 성경 본문을 낭독하고, 설교도 하고 축도로 마쳤습니다.
그런데 설교는 성직을 맡은 사람만이 아니라, 나그네일지라도 설교할 만한 성경적 실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설교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회당에서 설교하셨고, 바울도 회당에 가서 설교하고 전도했습니다.
누가복음 4:16-17.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앗수르와 바벨론 지역의 포로들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섯 가정만 모여 살아도 회당을 짓고 예배하면서 성경을 읽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하고 포로 생활을 하면서 메시아가 오셔서 이방인들을 물리치고, 유대인 중심의 메시아 왕국을 이루어주실 것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3주 동안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예수님이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전도했습니다.
3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1. 뜻을 풀어
성경은 굉장히 함축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해석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대도 2천 년 전 일이고, 장소도 우리나라가 아니고, 풍습도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설명을 자세히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란 체험이 다르기 때문에 신앙이 어린 사람들에게 납득이 갈 수 있도록 경험적으로 풀어서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영적인 진리를 인간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 말씀 전하는 것은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사기 위하여 재산을 다 처분해서 밭을 산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는 누룩이 밀가루 반죽에 퍼지는 것과 같은 파급효과가 있다고도 설명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 이사야 같은 성경은 예수님께 대한 직접적인 예언이라도 풀어서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스 내시는 사도행전 8장 31절에서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래서 빌립 집사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 53장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도록 전도하고 세례까지 주었습니다.
2.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로마 군대를 다 물리치고, 유대나라를 다윗 왕국처럼 회복시켜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은 메시아를 이방적군을 다 무찌르고 이 땅에 메시아 왕국을 이루어 주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하는 메시아는 사람들에게 해를 받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이 땅이 아닌 천국에 메시아 왕국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 경에 예언한 대로 귀신을 쫓아내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신 메시야시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떻게 활동하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과 구약 성경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과연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특히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도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기 전에는 불신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믿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무지막지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고 나서는 180도 변해서 바울 자신이 친히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3.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의 설교의 결론은 바울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전도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즉 종교 문제의 해답도 바로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사회 문제, 범죄 문제의 해답도 바로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청소년 문제, 가정 문제의 해답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다툼의 문제의 해답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길 때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경제적인 문제의 해답도 예수님 믿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되는 것입니다.
공무원들이나 직장인들의 원만한 직장 분위기 문제의 해답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서로 사랑하고 섬길 때 해결이 될 것입니다.
군인들이 예수님 믿고 국민을 위하고 가족을 사랑해서 목숨 바쳐 국방의 의무를 해갈 때, 국방의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도 가장이 예수님 믿고 가족들을 잘 보살피고 가족들을 위해서 신실하게 봉사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4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1. 바울이 3주 동안 구약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서 예수님이 구약 성경에서 오시리라고 약속하신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자, 바울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건한 헬라인>이란 원래는 헬라인이었지만, 유대교로 전향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0장 2절의 고넬료도 <경건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그가 원래는 로마인이었지만, 가이사랴에 와서 장교 생활을 하는 동안 유대교를 믿어서 <경건한 고넬료>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 13장 43절에서도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7장 17절에서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혈통적으로 원래부터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 했고, ‘경건한 사람들’이란 원래 혈통적으로는 이방인이었지만 유대교를 믿고 개종한 사람을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3주 동안 설교하고 전도하자, 원래 헬라인이었다가 유대교를 믿었던 <경건한 헬라인들> 다수가 바울의 말을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적지 않은 귀부인>이란 경건한 헬라인들의 부인으로서 사회적으로 귀족의 위치에 있던 부인들을 가리킵니다.
즉 남편이 바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자, 그중에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예수님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바울의 전도를 듣고 유대교 회당의 중요 인물들이 예수님을 믿자 원래 유대교인들이 화가 나서 바울의 전도를 방해한 것입니다.
3. 이처럼 바울이 성경을 잘 풀어서 설명해주고, 구약에서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전도할 때,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은 성령님이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성령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셨던 것과 같습니다.
이전에 아시아에서는 성령님께서 전도를 못하게 막으셨는데,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빌립보에 교회를 세웠고, 또 데살로니가에도 전도의 열매가 맺혀서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목회를 하는 것도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하루도 못 견디고 파탄이 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목회 하면서 늘 체험하는 일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님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도 성령님이 보호해주셔야 절대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4. 그리고 특이한 것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 믿은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새신자들이 바울의 전도를 듣고 예수님을 믿고, 이제는 바울을 추종하는 교인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신자들은 더 이상 유대교 회당의 신자들이 아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더 이상 유대교 회당에 나가지 않고, 5절에 나온 야손의 집에서 주일마다 바울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중요한 유대교인들을 회당에서 빼가니까, 유대교인들은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래서 유대인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5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1. 유대인들이 시기했다는 것은 바울의 기독교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유대교인들이 시기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교인들이 오랫동안 그리스도를 기다려 왔기 때문에, 유대교인들이 먼저 예수님을 믿었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건한 헬라인들이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로마서 11장 11절에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예수 믿는 것을 보고, 유대교인들이 무척 시기하지만, 이 시기가 극에 달하면 차라리 유대교인들도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라는 섭리입니다.
2.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유대교인들의 회당 교인들은 줄어들고, 야손의 집에 모이는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유대교인들이 시기 질투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인들은 저자 곧 장터에서 장사꾼들에게 뜯어먹고 사는 불량한 깡패들을 동원하여 기독교인들을 없애야 한다고 소동을 피웠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데모를 했다는 것입니다.
신흥 기독교에 대해 반대 데모하는 일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서는 이고니온의 유대교인들이 루스드라에까지 와서 바울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16장에서는 빌립보에서는 점쟁이 사업가들이 군중을 선동하여 상관들이 바울을 때리고 투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17장에서는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장터의 깡패를 동원하여 기독교를 반대하는 데모를 했습니다.
또한 18장에서는 고린도의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갈리오 총독에게 고발하여 죽이려고 했고, 바울을 받아들인 회당장 그리스보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19장에서는 아데미 우상을 숭배하는 에베소의 부적 장사들과 수만 명의 군중이 모여서 두 시간 동안이나 기독교를 배척하는 데모를 했습니다.
또한 21장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폭동을 일으켜서 로마의 군인들이 바울을 간신히 구출했습니다.
이처럼 신흥 기독교가 부흥하자, 유대교인들이나 귀신 숭배자들이나 우상숭배자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데모하고 폭동을 일으키고 고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가 부흥하면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부흥하니까, 반기독교 운동이 심하게 일어나서, 메스컴을 통해서 기독교를 비난하는 영적 전쟁이 심각합니다.
3.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유대교인들은 데살로니가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바울과 실라를 끌어내려고 찾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불법으로 주거침입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법적인 정당한 절차 없이 깡패를 동원하여 바울과 실라를 처형하려고 했습니다.
마치 과거에 공산당들이 기독교인을 잡아서 인민재판 하여 죽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때 바울과 실라가 야손의 집 즉 교회에 없었습니다.
아마 전도하러 갔든지 심방하러 갔을 것입니다.
6절.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1.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유대교인들이 장터의 깡패와 함께 데살로니가 교회인 야손의 집에 불법 침입하여 야손과 교인들을 강제로 끌어내서 읍장들 앞에 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교인들은 거룩하게 생활하지 않고, 깡패를 동원하고 남의 집을 불법으로 침입하고, 강제로 교인들을 끌어내서 끌고 갔습니다.
정당하게 읍장들에게 고발한 것이 아니고, 경찰이 아니면서도 폭력으로 강제 구인하여 읍장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교리가 옳다면, 행동도 옳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빼앗고, 마침내 죽이기까지 합니다.
2.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유대교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회사범으로 고발한 것입니다.
물론 다음 절에는 다른 임금을 섬기는 반국가적인 범죄자로 고발합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은 항상 기독교 지도자들을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회사범으로 고발하고, 또 자기들의 우상 문화를 반대하는 풍속사범으로 고발하고, 또 다른 지도자 예수를 섬기고 다른 법 성경을 따르는 반국가 사범으로 고발하곤 합니다.
사도행전 16장 20-21절(빌립보 전도)에서도 그랬고, 17장 6-7절(데살로니가 전도)에서도 그랬고, 18장 13절(고린도 전도)에서도 그랬고, 25장 18-19절(베스도 총독의 재판)에서도 그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요한복음 19장 15절에서 그렇게 고발했습니다.
이처럼 반기독교 운동가들은 자기들이 기독교를 시기하여 데모한다고 하지 않고, 기독교인들을 반사회적이고 반국가적인 죄목으로 고발하여,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선동합니다.
7절.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1. 야손이 맞아들였도다.
야손은 원래 헬라인인데 유대교를 숭배하면서 회당 예배를 드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고 자기 집을 교회로 내놓았습니다.
앞에 4절에서 경건한 헬라의 큰 무리 중에 하나로서, 사회적으로 귀족이었고 자기 부인은 귀부인으로서, 부유하고 집도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심이 깊고, 집도 부자인 야손이 자기 집을 데살로니가 교회로 사용하도록 개방했던 것입니다.
2.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유대인들은 읍장들에게 야손과 교인들을 끌고 가서 정치적인 문제로 고발했습니다.
이 유대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를 숭배하지 않고, 예수를 임금으로 숭배하는 국가의 반역자들로 고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이야 말로 어디서든지 로마 황제를 숭배하지 않고, 황제의 형상이 있는 화폐를 우상숭배라고 사용하지 않는 반역적인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에게도 가이사를 섬겨야 하느냐 섬기지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마태복음 22:21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이 가이사를 대항하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하나님도 섬기고 황제도 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역한다고 거짓으로 고발했습니다.
실상 유대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절하는 반역적인 민족인 것은 어디서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이 반국가적인 범죄 집단이라고 고발을 한 것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때도 “예수를 못 박아 죽이시오. 당신이 예수를 죽이지 않으면 가이사에게 충신이 아니요”(요 19:12)라고 하면서, 빌라도를 협박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에서도 유대인들은 예수님 믿는 성도들을 로마의 황제에게 반역하는 무리들이라고 거짓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리스도인들을 사회를 혼란케 하는 사회사범이고, 황제 숭배를 거역하는 반국가적인 반역자들이라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 때 우리 기독교인들은 일제 강점 시대부터 애국 독립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반국가 사범으로 탄핵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메스컴이 기독교 진리를 공격하고, 기독교인들의 부정과 죄악을 들추어내고 선전하므로 반기독교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영적 전쟁을 무서워하거나 움츠러들지 말고 복음 전도에 힘쓰고 교회를 부흥시켜야 합니다.
교회가 살아있을 때 오히려 이런 영적 전쟁이 치열함을 아시기 바랍니다.
3.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과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님, 주님>으로 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대로 “섬김을 받으려 오신 임금님이 아니고, 죄인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임금님이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믿는 <메시아상>은 폭력적이고, 무력적이고, 로마를 타도하려는 반역적인 임금님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5장에 갈릴리 유다나 드다는 <자칭 메시아>라고 하면서 로마를 무력적으로 뒤엎으려 했던 <폭력적인 메시야상>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대신에 석방된 <바라바>도 <폭력적인 메시야 운동>을 한 주동자였습니다.
8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1. 가이사 황제 외에 예수님 황제가 또 있다고 하니까, 소동이 일어난 것이지요.
가정에서 남편 외에 다른 남편이 있다면 소동이 일어납니다.
교회에 목사 외에 다른 목사가 있다면 소동이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에도 임금 외에 다른 임금이 있다고 하면, 소동이 일어나고 난리가 나지요.
9절.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 정치인들은 돈에 약합니다.
정치 자금이 있어야 사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표를 확보하기 때문입니다.
2. 다행히 야손과 나머지 교인들은 귀부인 성도들의 도움으로 보석금을 모아서 읍장들에게 보석금을 주고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0장 19절에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하면 믿고 환영하는 사람도 있고, 마귀처럼 반대하고 대항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생 천국에 가는 것을 보고, 기쁨으로 전도사역을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