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질문에 나는 아직도 확답을 못했다. 솔직히 자신에 개해 생각해 본 적이 많지가 않아서 그렇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을 해야만 나 자신을 아는 게 가능해진다. 그러려면 우선 나를 성찰해 봐야 한다. 그렇기에 이 글이 쓰인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쓴다.
나를 성찰하기에 앞서, 우선 지금 내 상태를 보자.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범위를 조금 넓혀보면 나는 엄연한 고3 수험생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내신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냉정히 말하자면 매우 긍정적이진 않다. 물론 그렇다고 회생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고, 단지 약간 불안정한 상태일 뿐이다. 왜인가? 일단 비교적 최근까지 게임을 즐겼다. 아니,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기 불과 10분 전에도 했다. 여기까진 사실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최근가지도 공부를 싫어해서 집중이 오래 가질 못한다. 하필 내가 고3인데다 게임을 좋아해서 더 치명적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를 알기 위해 나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지경까지 왔을까? 고등학교까지는 최근이라 보고 아예 먼 과거까지 거슬러 가본다. 그리고 내게 큰 영향도 없고 기억도 없는 것들은 모두 넘어가서 기억에 남는 것을 떠올려 보자면, 먼저 초2 학예회 때가 있다. 이 땐 어떻게 기억하냐면 그 당시 공연을 하는데 내 순서를 깜빡하고 약 10초의 정적이 있은 후 내 음계를 울린 적이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때부터 기억력이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난 과거부터 악기와 악연이 많았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시도해 봤으나 둘 모두 그 당시 선생님들과의 불화로 때려치우고, 사실상 쫓겨났다. 이 사례들을 보면 과거의 난 정신력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중1 때 학교 체험학습으로 울릉도를 갔다. 당시 기상이 좋지 못해서 독도엔 도달해 보지 못했으나 눈앞에서 보고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기억은 내가 언제 가지라도 기억할 만한 순간인 것 같다(독도를 또 가보지 않는 한). 이 정도가 내 관점에서 꽤나 큼지막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가진 삶의 태도들은 어떨까? 그런 앞서 말한 사건들에서도 파생된다. 우선 초2 때 사건으로 무대같이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악기들과의 악연은 모르거나 싫어하는 것, 확실하지 않은 것 등을 시도하는 걸 꺼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난 필수가 아닌 이상 뭔가 시도하는 걸 혹은 참여하는 것을 피하게 만들었다. 방과 후 수업이 필수가 아니던 초등학교에서는 도서관에서 있었고, 학교 행사도 필수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이는 나만 이러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난 웬만해선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말한 대로 하기 싫은 것은 피하니 부정적일 필요가 없었고 설사 필수라 해도 나는 운명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이런 방식들로 나는 그동안 날 극복해왔고 결국 내 삶은 소극적이지만 매우 긍정적이고 밝았다.
이러한 내가 만들어진 데는 여러 사람들의 영향이 있었다. 소극적인 것은 몰라도 긍정적인 사고관을 만드신 분은 여럿 계셨는데, 그중에서도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신 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난 어릴 때부터 일과 다른 가족들 때문에 내게 관심을 많이 주지 못했던 부모님 대신 조부모님 아래서 키워지고 사랑받으며,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날 가장 많이 놀아 주시며 집안의 일을 해결하신 것은 할아버지셨고, 날 먹이시고 재우시며 업어 키우신 것은 할머니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정신을 만드신 분들이 조부님들이시었는데, 우선 할아버지가 한 말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였다. 물론 이 말을 보고 비웃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만, 이 말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내 가치관을 정립해 주었다. 저 말의 뜻은 아득바득 이겨먹으며 이익만 챙기려다간 낭패를 보니, 상대 비위를 맞춰가며 취할 것만 취하고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 말라는 말이었다. 또한 이 말을 실천하려면 반드시 양보가 선행되어야만 했다. 그 결과 나는 적어도 다른 사람과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않고, 지속하려고 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게 다가온 일을 피하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싫다는 생각을 관두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라는 등의 말을 자주 하셨는데, 이 또한 자기 합리화로 볼 수 있으나 적어도 내게는 이러한 조언이 매우 효과가 컸다. 물론 당장 내 가족들도 이 말을 못 믿는 다지만, 가만히 보면 저 말들은 매우 현실적인 말들이다. 인생에서 싫은 일은 얼마든지 양산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일들은 모두 피하려고만 할 수는 없다. 당장에 공부만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싫은 것을 계속 생각하면 자신 정신력만 깎아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식으로 즐기며, 좋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양을 늘리면 적어도 자기 자신만큼은 정신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이론이었고 나는 이를 받아들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고관을 얻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한 것은 무엇인가? 일단 내가 좋아했던 것을 먼저 말해 보겠다. 초등학교까지 거슬러 가보면, 그때의 난 과학을 좋아했다. 놀랍게도 그저 공룡이 과학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그게 화근이 되어 결국 과학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파생되어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은 만화책이었지만 과학과 관련되어 있고 적절한 이미지 자료만 있다면 나는 어떤 책이든 좋아했고 나중엔 문학까지도 갔다. 그리하여 난 초등학교 때는 도서관에서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취미가 생기는데, 바로 게임이다. 휴대폰, 컴퓨터 가리지 않았으며 생존부터 시작해서 PVP까지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중학교 때에 방과 후 수업 강제로 도서관을 갈 기회가 줄어듦과 동시에 게임까지 시작하며 나의 책 취미는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이 취미는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면 여기서 내가 실질적으로 해왔던 일들을 알 수 있다. 학교 수업 같은 강제적인 것을 제외하고 내가 자기 주도적으로 한 것만을 고르자면 일단 책 읽기가 있었고, 그리고 게임하기가 있었다. 그 외에도 생각을 더듬어 보면 나름 어느 정도는 공부를 했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풋살(축구를 할 인원이 안됐다)을 하고, 학교에서, 혹은 가족과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돌아보면 나는 앞서 말한 대로 뭔가 많이 해본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 그러니까 고등학교부터의 나는 어땠을까? 솔직히 말하면 과거보다 악화되었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낙관적이었던 내 사고관이 무너질 뻔했고, 노력이 거의 없다 보니 당연히 결과도 좋은 편이 아니었고, 종합적으로 적응이 잘 안되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내 고등학교 초반이었다. 다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다시 정신 차리며 공부를 시작하고, 그리고 학교 자체에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치며 현재는 과거의 사고관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돌아본 나를 통해 앞으로의 인생을 예상해 봐야 한다. 아마도 노력이 없다면 나는 절대로 앞으로의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처하려면 부정적인 사고관은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인 공부에 최선을 다하고, 세상을 바꾸긴 힘들어도 나를 바꿔서 살아갈 수 있으리란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방식을 택하면, 적어도 앞으로의 삶을 영위하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 혹은 자기 자신에 미련을 가지고 얽매이며 자신의 행복마저 버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결과적으로 저런 방식들을 실천하며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리라 다짐한다.
그러면 아래의 가상 담화를 끝으로 글을 마치겠다.
"너는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냐?"
"나도 잘 몰라"
"그러면 그동안 뭐 했는데?"
"그냥 되는 데로 살았을걸"
"그러면 앞으로 뭐 할 건데?"
"모르지. 근데 어쩌겠어, 일단 부딪혀 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