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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과 하사
- 강 문 석 -
“야, 임마! 박병태 빨리 못 불러?” 새벽같이 기상하여 내무반과 맞붙은 중대 사무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나에게 이 하사는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사무실 중앙의 난로를 쪼그려 앉아 닦느라 난 그가 사무실에 들어선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지뢰밭에 잘못 들어선 것처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간밤 시내에서 외박을 하고 귀대한 이 하사에게 이 새벽에 누가 잽싸게 고자질을 했을까를 곱씹으며 내심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 이 하사의 얼굴에서는 좀처럼 감정의 변화를 읽기가 힘들었다.
그는 과묵한 편이면서도 일상적인 업무에선 늘 관대해 보였고, 부대 안에서 벌어지는 웬만한 사건사고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빠르게 해결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그런 때문인지 부대 안에서는 육사를 나오지 않은 소위나 중위들은 그를 맘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루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의 눈치를 보면서 그에게 알랑대는 허약한 장교들도 보였다. 사실 일반하사는 하사관이 아닌 사병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하사의 위상만은 분명 하사관을 앞서는 것이었다.
다들 이 하사에 대한 그런 대우가 그냥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부대 전입 후 그가 꾸준히 쌓아왔을 내공의 결과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칠팔 명의 신병에 끼어 처음 부대에 도착하던 날, 일행은 쓰리쿼터에서 내리자마자 인사행정과로 먼저 안내되었다. 그때 이 하사는 새로 전입해 온 우리 신병들에게 과의 주무로서 말 한 마디가 없었다. 신상명세서를 작성하고 있는 우리를 사무실 안의 고참병 몇이서 둘러싸고는 애인 있느냐, 여동생 있느냐 하며 농담짓거리를 할 때에도 그는 그저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날카로운 눈매로 한두 번 우리를 일별할 뿐 말이 없었다.
그땐 별다른 면접을 거치지 않고 전입자들이 작성한 신상명세서와 기록카드로 보직을 결정한 것 같았다. 나에게 떨어진 건 본부중대의 서무계 자리였다. 나의 군대경력이란 것은 이제 막 끝내고 온 신병훈련 6주간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의 보직이 너무 벅찬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부대에선 당사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배치한 때문에 개인적인 면담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게 했다. 혁명정부는 벌써 사오 년째 경제개발과 사회의 각종 부조리에 철퇴를 가하면서 뒤쳐진 분야는 과감하게 제도개혁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 중에는 비효율적인 낡은 행정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엘리트 장교들을 미국으로 보내 선진제도를 도입하는 프로젝트도 들어 있었다. 그런 덕에 나는 입대 전 공기업에서 새로운 문서제도에 의한 실무를 3년 가까이나 이미 경험했었다. 시계추처럼 매일 인사행정과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이 하사는 그럴 때도 아예 나 같은 햇병아리는 안중에도 없었던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의례히 똑 똑 똑 하고 출입문을 노크하면 퀀셋막사인 사무실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온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서서 “일병 강민수, 에스원에 용무 있어서 왔습니다" 하고 거수경례를 올리면, 사무실의 누군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꼭 “다시!”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면서 키득거릴 때도 이 하사는 무심한 얼굴 그대로였다. '서무계' 보직수행을 위해서라며 인사발령과 동시에 나에게 달게 했던 가짜 일등병이 진짜로 바뀔 무렵, 나는 자연스레 이 하사의 부대 내 역할과 존재감을 알게 되었다. 우리 대대를 방문하는 상급부대의 지휘관은 물론 군사령부의 참모들께 보고하는 모든 차트는 이 하사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는 장신의 건장한 체구로 잘 발달된 역삼각형의 몸집에다 보통 사람의 절반 크기로 매섭게 쫙 찢어진 두 눈을 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그를 처음 만나더라도 충분히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덩치와 인상이었다. 당시 그의 고향 마산에서 약혼녀가 자주 그를 면회하러 부대를 찾았다. 부대가 있던 도심의 거리에는 언제나 군인들이 득실거렸다. 1군사령부까지 주둔했던 도시에는 군인복지시설로 대형할인매장도 들어서 있었다. 이 하사는 그곳 서점에서 신혼에 갖출 살림으로 ‘세계문학전집’과 같은 고가의 책들을 구입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1,240원 일반하사 월급으론 아무리 할부라 치더라도 대금을 감당하기가 벅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몰래 숨기면서 혼자서만 사랑을 쏟았을 그의 여자가 들어있는 약혼 기념사진. 그 은밀한 사진을 졸병인 나에게까지 보여주며 인사행정과의 허 병장은 꼬드겼다. 이 하사가 제대하면서 곧바로 올리게 되는 결혼식장에 함께 참석하자고. 나는 속으로 이 강원도 산골에서 내 고향 남쪽바다가 있는 가고파의 고장 마산이 얼마나 먼 거리인데 이런 말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나의 업무가 그에게 직접 걸려 있어서 부인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날도 이 하사는 약혼녀가 결혼준비를 위해 정문 위병소까지 찾아와 일과를 끝낸 후 함께 시내로 외박을 나갔다. 그러고 곧 저녁이 되었다. 본부중대 내무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석점호를 끝내고 부대 뒤 4백고지를 비롯하여 서너 군데 외곽보초를 나간 병력을 빼곤 모두들 침상에다 매트리스를 깔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작전과의 박병태 병장이 만취한 상태로 자신의 내무반이 아닌 본부중대 내무반에 들이닥쳤다. 그 큰 키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복도를 휘저으며 저주에 찬 욕설을 고래고래 토해내기 시작했다.
평소 나에게 스마일로 입력되었던 그의 이미지가 확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전시가 아닌 이상 작전운용과 업무라는 게 큰 변화 없이 늘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박 병장은 자주 사무실을 벗어나 빈둥거리는 것이 내 눈에도 띄었다. 그러다가 한 번씩은 대낮에도 내무반으로 나를 불러 “어이 강 마담, 우리 뽀뽀나 한번…”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나의 볼에다 대고 심하게 비벼대기도 했다. “야, 너 대구역 앞 왕중왕빠에 가서 이 박병태를 한번 물어봐라.” 이야긴즉슨 입대 전, 자기가 그 골목을 주름잡았던 주먹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를 그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구석은 없었다. 쌍까풀 진 왕방울 두 눈이 우선 그를 겁 많은 위인으로 보이게 하는데다가 평소 약간 맛이 간 사람처럼 늘 입을 헤벌리고 다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졸병들 앞에서 괜히 폼 잡느라 하는 소리로만 치부하고 있었다. 비록 허풍이라 하더라도 그를 탓하거나 누구도 그 말을 악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박 병장의 소탈한 인간성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런저런 요인들로 해서 비슷한 군번의 이 하사는 일찍 진급을 했는데도 그는 하사 진급을 못하고 병장으로 제대를 하게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은 박 병장의 실제 소속은 영내중대인 3중대가 아니라 양평에 있는 5중대였던 것. 그러면서 구두파견으로 3중대 막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걸 그날 밤, 박 병장 스스로가 실토해서 알게 되었다. 애당초 본부중대나 3중대로 발령을 받았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을, 제대를 불과 두세 달 남겨두고 그 문제로 시끄러운 사단이 벌어졌다. 그것은 군사령부에서 '각 예하부대는 편법으로 운용하는 구두파견 병력을 일소하라'는 명령이 시달되었기 때문이다. 부대별 식수인원을 감사하다가 구두파견 인력을 빙자하여 예상치도 못한 큰 부조리가 드러났다는 소문도 뒤따랐다.
실제로 구두파견이란 말은 군대에서만 통용되는 웃기는 용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이라도 박 병장이 소속부대인 5중대로 돌아가면 문제는 모두 끝나는 것이다. 그 무렵 정치권에서 생긴 지역감정 탓인지는 몰라도 부대 안에서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세력싸움이 대단했다. 군대란 무엇인가. 적을 물리치기 위해 똘똘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아군들끼리 출신지역으로 패를 갈라서 대립한다니 말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도 부대는 경상도가 한번 득세하고 나면 전라도가 또 한 차례 장악하는 사이클을 보이고 있었다. 신병들이 전입해 왔을 때 세력집단의 출신지역이 아니면 예하부대로 보내 버리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거꾸로 예하부대의 병력 중에서도 동향은 다시 불러들였다. 내가 도착했을 땐 경상도가 전성기를 맞아 판을 치고 있었다. 강원도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인데도 두세 명 끼어있는 강원도 출신들은 찍소릴 못했고 충청 서울도 마찬가지였다. 국토가 좁은 땅덩어리에서 실로 망국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부대장을 비롯한 수뇌부에서도 모르진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것은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에 우리는 박 병장이 만취하여 내무반을 잘못 찾아온 것으로 알았다. 평소 온화한 그의 성품 때문에 잠시 저러다가 곧 자기 내무반으로 돌아가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는 이번 자신의 원대복귀에 무슨 음모라도 있다는 듯이 이 하사를 겨냥해 이를 갈았다. 어쩌면 이 부대에 동료로 전입하여 그동안 하사와 병장으로 지내오며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았다. 부대 전입 반 년 미만인 우리 졸병 몇 명만 그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었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 좋아 보이는 박 병장이 이 하사 앞에서 깍듯이 예를 갖추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야, 이영호 이 새끼야! 너 이 박병태 한테 어디 한번 죽어볼래?” 일과가 끝나자마자 박 병장은 피엑스로 곧장 달려가 혼자서 울분을 삼키면서 막걸리를 세 시간 넘게 퍼마셔댔던 것이다.
자신이 지금 찾는 이 하사가 외박 나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이 하사를 향해 심한 적개심을 드러낸 욕설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저토록 취했으면 공격대상이 한 번씩 오락가락 할 만도 한데 그렇질 않았다. 스무 명 남짓한 내무반은 그가 들어선 밤 11시경부터 새벽 두 시가 지난 시각까지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 속에 갇히고 말았다. 초저녁에 페치카 옆에다 일찍 잠자리를 폈던 주번하사 박길남 중사는 박 병장이 나타나자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평소에도 심약하게만 보이며 얼굴에 기미까지 가득했던 박 중사가 그 밤에 도망가지 않고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새 박 병장은 유리창에 붙은 관물보관대에서 야전삽을 뽑아 각을 세워 들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무반원들이 머리를 누였던 그 매트리스를 섬뜩할 정도로 콱 콱 찍고 다니면서 공포 살인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고 있었다. 상황이 극도로 불길하게 치닫는데도 고참병 누구 하나 나서서 만류하거나 수습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라도 뛰쳐나가 위병소에서 헌병대에다 연락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박 병장은 급기야 입으로 들이킨 만큼의 배설물을 복도를 오가며 자신의 물건을 꺼내어 흔들면서 바닥에다 질질 갈겨대고 있었다.
아부를 잘하는 부대 내 상등병과 병장들은 평소에 이영호 하사에게 은밀하게 수시로 접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들의 진급과 보직 휴가 등의 혜택을 누리며 으스대기도 했다. 하지만 박 병장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타고난 그의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 병장과 작전과에 같이 근무하는 안준혁 병장이 나를 못살게 굴어도 박 병장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무반이 우리와 달라서 일석점호가 끝난 뒤에 안 병장에게 내가 호되게 얻어터지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소문만 들어도 금세 알 수 있는 일인데도 그는 모른체 하고 넘겼다.
안 병장이 나를 구타하는 사건의 발단은 작전과의 신참 김태환 일병 때문에 일어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S대 공대를 다니다 온 김 일병은 부대에서 비교적 근거리인 서울의 집에 다녀올 때마다 떡보따리 같은 것을 싸와서 내무반과 참모부 사무실에 두루 돌렸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부를 과시하면서 군대생활을 좀 편하게 해보려는 의도가 깔려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나보다 한 달 정도 입대가 늦었다. 하지만 참모부에 근무한다는 우월적 지위에다 대학 간판과 부유한 가정환경 같은 걸 내세워 웬만한 고참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난 그러한 그가 못마땅했다. 내가 김 일병을 의도적으로 빡세게 대하자 한번은 주보로 날 불렀다. 막걸릿잔을 앞에 놓고 내무반 불침번에 대한 청탁을 해왔다. 톱니바퀴처럼 순번에 의해서 돌아가는 교대근무를 자기만 초번과 말번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야! 김 일병,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버럭 소리를 지르자 단박에 자기가 생각이 짧았다고 그는 사과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김 일병의 사수인 안준혁 병장에게 대고 나를 헐뜯었다. 조수인 그는 일과를 마치고 사수와 주보에서 술을 마시며 내가 자기만 꼭 불침번을 한밤중인 새벽 두세 시에 넣는다고 모함했다.
그 때문에 낮엔 졸려서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것 말고도 본부중대 서무계에 대한 온갖 음해성 말들을 덧붙여 헐뜯었다. 혀 꼬부라진 안 병장은 그날 밤 내무반으로 들이닥쳐 다짜고짜로 나에게 매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난 영문을 모른 체 고스란히 당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헀지만 제대를 코 앞에 둔 고참이라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입 후 부대에서 보직수행을 배려해 처음 한두 달 이등병에게 일등병 계급장을 달아준 것까지도 그의 눈엔 가시처럼 보였던지 다시 들추었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안 병장은 입대 전 체신부 산하의 광화문전화국에 근무했던 공무원이었다.
명석한 머리에 아나운서 뺨칠 정도로 매력적인 음성을 가졌지만 안 병장은 냉혈인간이었다. 체형은 나와 비슷하게 깡말랐고 신장은 보통 남자들보단 약간 작았다. 내가 그에게 끝내 굽신거리지 않자 고참병에 대한 반항으로 받아들였던지 안 병장은 술만 걸쳤다 하면 수시로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럴 때마다 난 어금니를 물었고 살집이 적었던 엉덩이에선 피가 배어 나오는 고통까지 견뎌야 했다. 작전과에서 안 병장과 책상을 맞대고 근무하는 박 병장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겠지만 그는 무심하게 넘기고 있었다. 졸병인 나로선 끝까지 입을 닫고 안 병장이 제대하는 날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박 병장이 야속하기도 했다. 난 기름때 묻은 장갑을 허둥지둥 벗어던졌다. 그러곤 이 하사의 머리끝까지 치솟은 화를 직감하고 수화기를 재빠르게 집어 들었다. 씨이룩 씨이룩 뻑뻑한 전화기의 핸들을 힘들게 돌리면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3중대 내무반에선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무실을 뛰쳐나와 박 병장을 찾아 내달리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심장이 심하게 벌렁거렸다. 예상대로 박 병장은 널브러져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내무반에는 오늘도 각자 배당받은 연병장이나 수송부, 취사장과 각 참모부 사무실로 청소를 나간 듯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죽은 듯 기척이 없던 박 병장은 ‘이영호’란 말을 듣자 순간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번쩍 눈을 떴다. 불과 서너 시간 전까지 그렇게도 자신이 저주하며 악담을 쏟아 부은 이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을 터이다. 그보단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한 공포감에 떠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계급장을 떼고 일대일로 맞붙어도 그는 도저히 이 하사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이 분명했다. 이 하사는 폭력에 관한 한, 단 한 번도 자기 입으로 주먹을 자랑한 적이 없었지만 부대 내 중론이 그러했다.
내 직감에 박 병장은 마약 같은 그 술이 원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실핏줄이 드러난 토끼눈처럼 빨개진 왕방울 눈을 한두 번 끔벅인 후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힘들게 다리를 들어 발에다가 통일화를 끼워 신었다. 이 하사는 그 거구를 난로 앞에 떡 버티고 서서 손가락을 싹둑 잘라낸 가죽장갑을 양손에 낀 채 더욱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다가 사무실을 들어서는 박 병장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꽂았다. 그러면서 아주 묵직한 톤으로 짧게 또박또박 끊어서 “야, 박 병 태…!” 까지만 내뱉었을 때 박 병장은 내무반으로 통하는 출입문으로 후다닥 잽싸게 몸을 숨겼다.
그러자 이 하사는 엷은 미소를 흘리며 느린 걸음으로 그를 뒤따랐다. 그러면서 아마도 속으론 ‘너는 이제 독안에 든 쥐새끼'라고 생각했을 것 같기도 했다. 본부중대 내무반은 뒤편 육칠 미터 위치에 출입문인 퇴로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박 병장은 그쪽 출구로 달아나지 않고 곧바로 침상으로 뛰어 올라섰다. 그러곤 순식간에 관물보관대에서 야전삽을 뽑아들었다. 상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잡히면 죽는다는 극한적인 공포감이 불러온 마지막 선택 같았다. 그러고 그는 눈에 불을 켰다.
흡사 타자가 타석에서 공을 받아치려는 것처럼 긴장된 자세로 야전삽을 양팔로 꽉 움켜잡고 양쪽 무릎에다가는 연신 반동을 가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하사는 자기가 평상시 보아왔던 대로 박 병장을 아주 가소롭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야! 이 새끼가 못 내려와? 정말…” 하면서 이 하사는 왼팔을 뻗어 박 병장이 사생결단으로 움켜쥔 그 야전삽을 뺏으려고 했다. 이 하사가 침상을 막 오르려고 왼발을 옮겨 딛는 순간,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거구의 이 하사 몸이 중심을 잃고 붕 뜨는 장면이 슬로비디오 화면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머리와 상체는 복도의 콘크리트 바닥을 향하고 두 다리는 내무반 천장 쪽으로 낮게 솟구쳤다가 힘없이 푹 떨어졌다. 두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졌다. 가격한 부위는 왼쪽 눈에서 귀로 연결된 옆얼굴이었다. 만약 케이스가 없었더라면 야전삽의 날카로운 날이 얼굴을 상하로 두 동강냈을지도 모른다. 육중한 체구의 무게가 실린 때문에 충격은 그만큼 더 커졌고 심하게 으깨진 얼굴의 입과 코에선 피가 심하게 분출되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귀와 눈에서도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내무반은 온통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 순간 아직은 의사인 의무과장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환자를 의무대로 이송할 병력과 들것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 생명이 경각을 다투는 절체절명의 순간은 신통하게도 나와 같은 약골에게도 초인적인 힘을 부여해 주었다. 그런데 고꾸라져 축 늘어진 몸체는 생생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루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라 혼자서 지렛대 받치듯 널브러진 몸통 밑을 파고들어 이 하사를 들쳐 업는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막사 뒤로 난 야트막한 고갯길이 의무대로 질러가는 길이었고 거리는 팔백 미터가 약간 넘었다. 연병장을 돌아가면 두 배로 거리가 늘어나면서 울퉁불퉁한 돌계단도 세 군데나 있어서 산길을 택한 것이다.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는 그칠 줄을 몰랐다. 일전에 내린 눈이 군데군데 쌓여 미끄러운 산길에 선지피를 줄줄 흩뿌렸다. 한겨울인데도 땀에 흠뻑 젖은 채 악을 쓰며 겨우 고개를 넘었다. 기진맥진한 나는 의무대 침상에 환자를 눕히고 나서 잠시 정신을 잃었다. 사고보고를 받고 대대장 이상형 중령이 부대에 도착하면서 비상은 곧바로 발령되었다.
이미 노쇠한 부대대장 강인식 소령 이하 부대 내 전 장병은 철모에 집총까지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에 집합했다. 사고를 일으킨 단체기합은 부대에서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 문막까지 달리기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평소 연약한 체구에 조용한 성품이 흡사 학자처럼 느껴졌던 강 소령은 결국 중간에 앰뷸런스 신세를 지고 말았다. 애국심이라면 몰라도 의협심에선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던 나로선 심한 혼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이런 불행하고 끔찍한 사고를 혼자서만 목격한 때문이었다.
애써서 사건의 전말을 밝힌 사고보고서는 일순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대대장의 지시로 사고내용은 너무나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졌던 것. 대대장은 평소 서글서글한 외향적 성격에다 남자다운 면모가 돋보여 뒤에 별을 달더라도 멋지게 부하들을 아끼며 통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던 나였다. 그랬는데 자신에게 튈 불똥을 겁내어 몸을 사리며 비굴하게 사건을 축소 왜곡하겠다니 심한 배신감과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작성하라는 보고서 용지를 받아들었을 때 나는 그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양심선언을 할까도 생각했다.
마음이 한없이 여린 중대장 김정남 중위는 나에게 매달려 통사정을 했다. 자기를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참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뜻이 잘 관철되지 않자, 이번에는 나와 동향인 인사계 서정학 상사가 나섰다. 서 상사는 나보다 한 세대는 앞선 나이라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터였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충분히 자네 뜻이 반영되도록 최대한 힘 써볼게.” 난 그때 이미 알 수 있었다. 보고서 작성 끝나면 보상 하나 못 받을 억울한 피해자의 가족들만 가슴을 치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인사계가 대대장의 방침을 좇아가면서 사탕발림으로 하는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야, 서무계! 너 꼭 그렇게 강고집 티를 내야 하겠냐? 좋게 말할 때 알아들어!” 내가 양심선언을 하려고 해도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게 뻔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한 명의 목격자만 더 있다면 나는 그에게 결연히 진실을 밝히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그 한 명의 증인이 없어서 항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하사가 제대와 결혼을 코앞에 두고 세상을 등질 뻔 했던 끔찍한 사고처리는 결국 진실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쪽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상급부대로 보내고 끝났다.
나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 격분했고 심한 허탈감에 빠졌다. 그야말로 지나가던 강아지가 보더라도 실소를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고서에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내무반이 된다. '사고 당일, 본부중대 내무반에서 이영호 하사가 아침에 기상하여 보니, 자신의 통일화가 맞은편 침상 밑에 가있었다. 그때 마침 그쪽 침상에선 박병태 병장이 눈을 떴다. 그래서 이 하사는 박 병장에게 신발을 건네 달라고 했다. 그러나 박 병장이 신발을 들고는 바로 건네주지 않고 홰홰 돌리면서 약을 올리는 바람에, 화가 난 이 하사가 그것을 잡으려고 건너뛰다가 실족하여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치고 말았다.'
박 병장에 관한 신병처리는 재빠르게 진행되었다. 사고 당일 바로 자대 영창에 수감되었다가 이틀 후 춘천의 통신대대로 전출 보내는 것으로 끝났다. 121후송병원으로 이 하사를 면회 갔을 때, 늘씬하게 제복을 빼입은 여군 간호장교는 침대로 다가서며 외쳤다. “야, 이영호! 너 있던 부대에서 여기 면회 왔다.” 대위 계급장은 달았지만 환자와는 비슷한 연령대일 것 같은데 계급적 우월감을 한껏 드러낸 그 당돌한 어투에 놀라면서도 이 하사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우리 앞에서 제스처로 너스레를 뜬 것일 뿐 이 하사는 의식이 살아있질 않았다.
이 하사가 그 말소리를 들었다기보다 가까이 다가선 전투화들의 진동을 약하게 느꼈을 것 같았다. 그는 작은 눈을 뜨는 시늉만 짧게 하고는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고발생 한 달도 안 되어 나는 미1군단으로 전출을 명령받았지만 그 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웠다. 이 하사가 제대를 못하고 병원신세를 더 오래 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진 속에서 수줍게 해맑은 미소를 머금었던 그 약혼녀와의 사랑은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도 궁금했다. 북의 무장공비 일당이 청와대 인근까지 들이닥쳐 서울 장안을 발칵 뒤집었던 1.21사태 두 달 후 나도 군에서 만기전역을 했다.
복직한 직장에서 마침 마산으로 발령을 받게 되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 하사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탄 시내버스가 3.15의거탑 정류장에 도착하자 천장에 머리가 거의 닿을 듯 건장한 사내가 차에 올랐다. 그가 바로 이영호 하사였다. 순간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마치 용수철처럼 튀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 얼굴을 살폈더니 사고를 당하기 전과 별다른 변함이 없었다. 우선 그가 생존해 있다는 반가움과 혼자서 거동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반색을 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살아있었지만 심한 기억상실증과 실어증을 앓고 있었다.
그러고 목과 눈동자도 방향을 잡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차내 승객들의 시선이 집중된 걸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이 하사의 반응을 더 주시하는 것 같았다. 이 하사가 그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내 손을 얼른 수습했다. “요즘 왜 이렇게 내가 허둥대는지 모르겠네”라며 오동동에서 도망치듯 차를 내렸다. 오륙 개월 함께 했던 부대생활에서 그와 둘이 대화할 기회를 단 한 번도 가질 수 없었던 아쉬움을 털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당신을 구한 생명의 은인이란 걸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런 것들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원주의 하늘 아래 병실 침상에서 외롭게 사투를 벌이며 진저리쳤을 병상일지를 함께 펼치면서 그를 위무하고, 진즉에 찾지 않은 무심함을 사과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의 손에 의해 작성되었던 사고보고서에 대한 진실도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 누구를 잡고 그러한 심경과 사실을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날 난 황망한 심정으로 땅거미 내려앉는 수산시장 뒷골목의 허름한 포장마차를 찾아들었다. 그러곤 독한 소주를 연거푸 몇 잔 목구멍으로 털어 넣자 망막이 서서히 뿌예졌다.
3년 전의 풍경이 오롯이 떠올랐다. 선지피 흩뿌려진 고갯길이 흙먼지 풀풀 솟아오르던 도로와 겹치면서 완전군장으로 헉헉대며 달리는 기진맥진한 부대원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이 하사, 미안하오. 나의 무심함을 용서해 주오. 부디 힘들더라도 지극정성으로 절대자에게 매달릴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만 생을 이어갈 수 있다면 반드시 진화하는 의술의 손길이 그대를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오. 나도 당신 위해 기도하겠소.” 나의 독백은 어쩐 일인지 허공으로 흩어지질 않고 알코올 기운으로 의식이 점점 몽롱해지는 귓전을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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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알코올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그 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