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딸이 하나 있으면
강 동 구
나의 부모님은 여섯 남매를 낳으셨다.
맏이로 딸을 낳으시고 이어서 아들을 넷이나 내리 낳으시더니 마무리로 딸을 낳으셨다. 옛 어른들 말씀에 큰딸은 살림 밑천이고 아들은 기둥이라 해서 그러셨지는 모르지만 이처럼 조화롭게 자녀를 두신 부모님이 존경스럽다.
우리 육 남매는 다들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았는데 유독 나만 딸을 낳지 못하였다. 세상에 내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많기도 하지만 자식 농사만큼은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절대적 신의 영역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을 위로하려고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정작 자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말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때로 자식 때문에 가슴을 졸이는 부모는 무자식이 상팔자지 하고 푸념을 하지만, 자식을 두지 못한 어떤 이에게는 그 말조차도 부럽기 그지없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나도 자식 때문에 속을 한번 태워봤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할 것이다.
딸만 일곱이나 둔 친한 친구가 있다. 첫째 둘째 셋째도 딸이 태어나자 장손인 친구는 혹시 이러다가 대가 끊어질까 봐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다가 딸이 일곱이나 되었다. 그의 아내는 시부모님 뵙기가 민망하고 남편에게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게 어디 친구 아내 탓이랴. 만은 딸을 일곱이나 낳을 때까지 아들 하나 보내 주시지 않는 그녀가 섬기는 신이 원망스럽고 야속했으리라 누구에게는 딸을 일곱이나 주시더니 누구에게는 그토록 소원하는 딸을 끝내 외면하시니 신의 속마음을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
맏이로 아들을 둔 나는 둘째는 딸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가 믿는 하나님께 딸을 보내 주십사 하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드디어 아내는 둘째를 임신하고 입덧을 심하게 하더니 출산 예정일보다 이틀 정도 진통이 빨리 왔다. 혹 정월 초하룻날 출산하면 어쩌나 했더니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설날 이른 새벽 아내는 심한 진통을 하여 출산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직감하고 서둘러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아내는 그만 택시가 병원 앞에 도착하기 직전 택시 안에서 출산하고 말았다.
급히 산모와 아기를 병원으로 옮겨 산후 처리를 하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왕자님이에요 축하합니다. 라는 인사를 건네는데 설날 아침에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다.
조금 전만 하여도 이번에는 딸이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원했는데 왕자님이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까맣게 잃어버리고 아들이 태어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그토록 딸을 원했건만 아들이라는 말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변하다니 참으로 인간의 마음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나 보다. 다음 기회에 딸을 낳으면 되지라는 말로 변명이 될지는 모르겠다.
정월 초하루 설날 아침에 아들을 얻었으니 금 년에는 운수 대통할 거라고 사람들은 덕담을 건네지만, 하나님을 믿는 나는 그 말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축하의 인사를 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들을수록 기분은 너무 좋았다.
하지만 다음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1980년대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산아제한 정책이 펼쳤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외치며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벌리는 바람에 셋 넷을 낳으면 죄인 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딸을 꼭 나아야겠다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두 아들이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았는데 큰 며느리가 셋째를 출산하며 딸을 낳았다. 큰 며느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어머니가 해내지 못한 일 제가 해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의기양양하게 딸을 낳았다고 큰소리를 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부럽고 대견한지 모른다.
그래! 장하다. 우리 며느리 큰일을 해냈구나. 라고 축하해 주었다. 작은아들도 아들만 셋을 낳았으니 큰소리 칠만도 하다. 딸을 낳으면 이렇게 당당하고 축하를 받는 세상 예전 같으면 어디 상상이나 했으랴?
젊어서는 딸이 없어 느끼지 못했던 허전함과 쓸쓸함이 슬며시 찾아온다. 친구들과 형제들 주변 사람들은 딸 없는 사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마구 딸 자랑을 늘어놓을 때면 그 자리를 슬쩍 피하고 싶다.
나보다는 아내가 더 안타까워 보인다. 두 아들은 어쩌다 외국에 사는 바람에 아들 며느리 손자들을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할까 생각하니 아내가 너무 불쌍해 보인다.
딸이라도 하나 옆에 있으면 친구삼아 수다도 떨고 맛있는 식사도 함께하면 노후의 삶 위로가 되고 행복할 것 같다. 젊은 시절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을 무릅쓰고 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후회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딸을 낳는다는 보장은 없었겠지만.
세월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딸을 둘 셋이라도 낳고 싶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정책을 펼친 정부가 원망스럽다.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 소멸 위기에 처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딸이 없어 쓸쓸하고 허전한 노후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되면 조상 탓이고 잘되면 내 탓이라더니 푸념할 데가 없어 정부를 탓했나 보다. 정부로서도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들을 얻기 위해 무작정 자녀를 낳다 보니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택한 정책이지만 결과적으로 큰 패착이 되고 말았다.
전후 베이비 붐 시대에는 급속하게 늘어나는 인구에 식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한 반에 육십 명 칠십 명을 수용하는 콩나물 교실도 모자라 이부제 삼부제 수업을 했으니 정부로서도 할 말은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에게 살가운 딸이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에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