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의 코드가 있다면 무엇일까,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코드가 있을 테다. 송수권 시인은 노자의 ‘곡즉전曲卽全’(곡선은 완전 하다)이 시 쓰기의 코드라고 하였다. 산문집 『소리, 가락을 품다』에서 시인은 ‘곡선의 상법’이야말로 well-being(웰빙)의 선이며 생체리듬 의 선이라 하였다. ‘곡선의 상법’ 속에 소리가 숨 쉬고 가락이 있으며 이 가락은 느림으로 가는 삶이고, 시로 말하면 서정의 운율인데 이 상법에서 나오는 체험의 소리를 모아 『소리, 가락을 품다』를 엮었다.
따뜻한 향토적 이미지에 남도가락과 순수한 우리 언어를 보듬는 시인의 시 쓰기는 정지용, 서정주, 김영랑을 잇는 서정시를 구축하는 코드이었던 것이다. 시풍을 닮는다는 것, 코드의 기저를 가져보는 것 모두 시를 쓰는 데 자만할 수 없는 태도일 것이다. 자기 개성을 몰수하면서까지 아류의 행세를 하자는 말은 아니다. 또한 독보적일 수 없는 것이 성경을 가장 잘 우려먹은 시인은 윤동주이고, 불경을 잘 우려먹은 시인은 한용운인데 베끼는 것과는 다른 것인 만큼 자기 것으로 우려내야할 것 또한 중요한 일임을 가르치고 있다.
향토적 이미지와 남도의 가락을 시화 할 수 있는 작업, 송수권 시 인은 음양, 즉 쌍가락지 끼는 법을 자주 언급하곤 하였다. 그 하나가 ‘인연’이다. 연기설이라고도 하는 ‘인연’은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네가 없으므로 나 또한 없는 것이다. 소위 남성성과 여성성이 전인全 人에 속함을 일러주는 말이기도 한데 시가 시이기를 바란다면 음양 의 조화를 잘 짜야 한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돌아가시기 전 시인으로부터 절대 낮은 시를 쓰지 말 것과 명시를 쓰라는 당부를 받았다. 향토적 이미지와 남도가락의 중요성을 강조 한 듯싶어 나름 성근지게 시를 잘 치고 싶은 마음이 여전하다. 이차 에 영랑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의 「물꽃」과 나의 졸시 「물꽃」을 읽어 보고자 한다.
세월이 이처럼 흘렀으니/그대를 잊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강은 온몸 로 경련 을 일으킵니다/상처가 너무 깊은 까닭입니다/상처가 너무 큰 까닭입 니다/돌 하나가 떠서 물 위에 꽃 한 송이 그립니다/인제는 향기도 빛 깔도 냄새도 없는 그것을/물꽃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오 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
- 송수권, 「물꽃」 전문
이 시는 시집 『파천무』(문학과경계, 2001)에 수록된 작품으로 문학 평론가 황지헌은 해설에서 세속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혹은 속세의 존재 의의란 이 지상에서 찰나적인 ‘물꽃’ 하나 피우는 일이라는 통 찰에서 송수권은 세속적 삶의 원리로서 ‘인연’의 신비함으로 나아가 는 듯하다고 하였다. 시의 이미지가 도시 이미지가 아니고 자연 속의 삶의 이미지로 곡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곡선의 상법’과 ‘소리의 상 법’은 김준오 교수가 「송수권론」에서 처음 끌어낸 이론이다.
이렇듯 「물꽃」은 곡선의 강한 자연 속의 이미지이며 인연하여 사 는 사람의 문양이기도 하다. 하여 시인은 맹문재 시인과의 대담에서 도 언급했던 것처럼 직선은 악마가 만들어낸 죽임의 선이고, 곡선은 천사가 만든 살림의 선이란 뜻으로 풀이했다.
처음부터 고이는 것이 무엇인지/배우는 물이 있기도 하고/상처 하 나 없이 떨어져 강의 이름 받는/물이 태어나기도 하고//얼마나 고요 해지는지 푸르게 털이 자라/푸른 털이 말라 검은 거죽이 될 때까지/ 몸 태워 도해한 물의 흔적이거나//수평이 무너지는 여울로 기울어지 다/봉화산 높이 가늠하는 해면까지/강이 흔들릴 만큼 무수히 꽂혔다 든지/누구든 먹어 물이라고 하든지 간에//너에게로 오는 동안 부황난 꽃이/꽃물이 되려 했음도 잊어버리고/노랗게 먼저 피어나는 달맞이 강/동천 곁에/눈부신 물꽃으로 올 것이다
- 졸시, 「물꽃」 전문
송수권 시인과의 만남은 시집을 통해서다. 문하에 들어가 배운 것 도 아니고, 학생으로 제자가 되어 가르침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가 시인과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처음 식당에서 뵙게 됐을 때 시집 을 드렸다. 순천만을 연작으로 쓴 시들을 묶은 시집이었다. 며칠 후 시인과 가까이 지내고 있던 송준용 시인이 찾아왔다. 말하자면 시인 의 심부름으로 나를 찾아 아침 일찍부터 부르러 온 것이다. 그렇게 송수권 시인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제법 시인을 모시고 다닐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다. 바위를 가리키며 “저 바위를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불 멸의 신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때는 ‘석축 담쟁이’에 대한 시를 구상하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던 것 같다. 대답을 듣고 시인은 무릎을 탁 치면서 ‘똘 것’이라고 하였다. ‘똘 것’ 은 돌연변이의 방언이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똘 것’이라니 마음이 유쾌하지 않아 되물었다. ‘똘 것’이라니요? 했더니 동행하던 송준용 시인이 그건 욕이 아니고 칭 찬이라고 하여 오해를 풀었다. 그렇게 나는 시인으로부터 ‘똘 것’으 로 시작하였다. 당신의 가락을 닮았다고 끊지 말고 부지런히 시를 쓰라는 격려를 받았는데 들메끈도 풀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물꽃」은 시인에게 화답하며 쓴 시다. 나는 동천에 나가 인연의 소 중함을 생각하며 “눈부신 물꽃으로 올” 꽃을 기다리고 있다. ‘곡선 의 상법’인 물이 때로는 고이기도 하고, 곧바로 강물로 흐르거나 바 싹 마른 흔적이 되기도 하며, 수없는 곤두박질에 먹히기도 하다 결 국 수평의 꽃으로 피어나는 물, 그런 시를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