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8m봉 갈림길(쉼터의자). 이곳에서 우측 검봉산 방향으로 50여m정도 가면 두리봉(486.8m봉)이 있고 춘천지맥 길은 좌측 문배고개로 내려서야하나 우측 문배마을 두리봉으로 향한다.
▲두리봉(486.3m). 시그널. 표식을 인식할 수 없는 깨진군삼각점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식별불가 군삼각점
▲식별불가 삼각점
▲다시 쉼터갈림길(쉼터) 이정표로 되돌아 나가 문배마을2.0km 방향으로 내려간다.
▲ '486.3m'봉에서 좌측 사면으로 내려서서 가파르게 내려서면
▲문배고개(425m):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문배마을에서 남면 가정리를 잇는 고개로 차동차가 다닐만큼의 넓은 임도에 MTB 자전거 도로가 나있고, 춘천시에서 조성한 의암길이란 둘레길 이 있다 .등산 표지판과 입산통제 안내판이 서있다. 이곳에서 가정리로 내려서면 구한말의 위정척사론자이며 의병장인 의암(毅菴) 유인석(1842 ∼1915)의 묘역이 있다. 본관이 고흥(高興)인 유인석은 헌종 8년(1842) 춘천시 남면에서 태 어나 14세 때에는 친척인 중선에게 입양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 학 문을 배웠으며 그곳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오랑캐를 배척하는 존화양이(尊華攘夷)사상 을 익힌 분이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면 춘천지맥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구곡폭포가 가 까운 문배마을이 있다. 문배마을은 지금부터 약 200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 행정구역은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속하며 이 지역에 자생하는 돌배보다는 크고, 과수원 배보다는 적은 문배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고 마을의 지형이 짐을 가득실은 배의 형태이며 산 속에 푹 파묻힌 분지의 형태로10여 가구가 토속주를 팔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마을이란다.
▲산불예방기간 입산통제 안내판. 이정표(봉화산정상0.42km, 가정리, 검봉4.28km, 매표소 4.30km/문배마을2.10km), '의암순례길, 의암류인석 유적지8.6km, 구곡폭포 주차장4.3km'등 이 길 안내를 하고 있다. 검봉산 방향
"의암순례길"은 춘천 출신 의병장 의암 류인석 유적지를 중심으로 하는 충의현장 체험코스
로 의암 류인석을 비롯한 수많은 의병들이 넘나들며 의리정신을 실천한 의병들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길이다.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은 1842년 강원도 춘천시(춘성군) 남면 가정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고흥(高興)이고 자 여성(汝聖), 호 의암(毅菴)이다. 본관이 고흥(高興)인 유인석은 헌종 8년(1842) 춘천시 남면에서 태어나 14세 때에는 친척인 중선에게 입양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으며 그곳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오랑캐를 배척하는 존화양이(尊華攘夷)사상을 익힌 분이다. 1876년(고종13년) 병자수호조약을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며,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후 김홍집의 친일내각 성립 및 을미사변과 복제개혁, 단발령 등이 내려지자 의병을 일으켰고, 고종은 밀지를 보내 전국에 의병을 일으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승인을 내려주었다. 유인석은 단양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이며 진군하여 영월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그가 이끄는 의병대는 충주(忠州)로 진군하여 부패관리들을 죽였으나, 제천에서 관군에게 패전하고 강원도로 퇴각했다가 평안도를 거쳐 북상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국권피탈 뒤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15년 연해주 목화촌(포시에트)에서 병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입산통제 철조망이 가로막지만 돼지전염병 때문이고 멧돼지 진입을 막기 위함이라 연두색 팬스문은 잠기지 않아 통과 후 빗장만 걸어둔다.
▲팬스문을 열고 나가
▲다시 닫고 올라간다.
문배고개를 지나 감마봉으로 오르는 급경사 등로를 오르다 암릉지대를 지나고...
▲감마봉 오르는 길은 암릉구간으로 되어 있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암릉지대를 올라서니 감마봉 정상이 나온다.
▲개념도상'범바위'인 499.9m봉이다. 작은 정상석(‘감마봉/해발454m)이 박혀 있지만, 고도 표시가
잘못되었다.
▲감마봉(454m):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와 남면 후동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그리 높지 않 지만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오석(烏石)에다 ‘감마봉 해발454m’라고 새겨져 있는데 지도에는 범바위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아마도 개명된 듯싶다. 오석 정상석은 없어지고 누가 돌에 매직으로 감마봉(454m)이라 써놓았다. 정상봉우리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다. 개념도에는 범바위로 표시된 곳이며 우측에 살짝 조망이 트인다.
▲문배마을은 지금부터 약 200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 행정구역은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속하며 이 지역에 자생하는 돌배보다는 크고, 과수원 배보다는 적은 문배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고 마을의 지형이 짐을 가득실은 배의 형태이며 산 속에 푹 파묻힌 분지의 형태로10여 가구가 토속주를 팔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마을이란다.
▲삼악산(三嶽山,655.8m)은 산림청 선정 우리나라 100대산 중 하나로, 기암괴석과 봉우리 가 첩첩으로 있고, 용화봉•청운봉(546m)•등선봉(632m) 등 주봉이 총 3개라 삼악산이라 한 다. 화악산(華岳山)에서 남쪽으로 뻗어 오다 북한강과 마주치는 곳에 위치하며, 북한강을 막 아 조성된 의암호(衣巖湖)와 청평호의 상류가 삼악산 기슭을 에워싸고 있고, 많은 기암절벽 의 산세가 자리 잡고 있다. 기반암으로 이뤄진 계곡에는 등선폭포(登仙瀑布)를 비롯한 수렴 동, 옥녀탕 등 명소가 있고, 산 정상 북서쪽에는 춘천에서 덕두원을 거쳐 가평•서울을 왕래 하던 석파령이 있다. 삼악산 산록에는 도로를 따라 금성사•신흥사(新興寺) 등이 있으며, 능 선을 오르면 대원암(大院庵)•상원사(上院寺)•흥국사(興國寺) 등 오래된 사찰이 있다. 산정에 는 맥국시대(貊國時代)에 쌓았다고 전하는 삼악산성(三嶽山城)의 유적이 남아 있고, 삼악사 터[三嶽寺址]가 있다. [다음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감마봉 내림길은 암릉구간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를 내려간다.
▲능선에 붙어 소나무들과 바위들이 어우러진 능선 길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