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ㆍ유비ㆍ손권의 우열에 대한 논〔曹操劉備孫權優劣論〕
무릇 천하의 일은 할 수 있는 때가 있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때가 없기도 하며, 활용할 수 있는 형세가 있기도 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형세가 없기도 하다. 가령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겁쟁이이고 나만 홀로 용감하다면 용감한 사람이 이기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고 나만 홀로 지혜롭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이긴다. 하지만 용감한 사람이 용감한 사람을 만나면 용맹을 믿을 수 없고, 지혜로운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면 지혜를 쓸 수 없다. 곰과 호랑이, 승냥이와 이리를 한 우리 안에 둔다면 각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서 서로 해를 입히지 않지만, 만약 여우나 살쾡이, 사슴이 있는 곳에 풀어놓는다면 모두 물어뜯어 삼키고 갈가리 찢어발겨서 그 살점을 모조리 먹어 치우고야 말 것이다.
건안(建安) 연간에 천하가 어쩌면 그리도 어지러웠던가. 이때를 당하여 온 세상이 어둡고 도적 떼가 함부로 날뛰었는데 임금과 신하는 서로 알력이 있어 서로 보존하지 못하고 상하가 이익을 다투느라 서로 편안하지 못하였다. 황제의 수레를 끼고서 옛 도읍인 장안(長安)으로 돌아가서 유능한 인재를 부리고 간흉들을 제거하며 사방을 정벌하여 마침내 중원의 주인이 된 사람도 있었고, 어질고 능력 있는 인재를 발탁하고 일을 맡겨서 각각 자신의 마음을 다하게 하여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유역을 점거하고 있으면서 남해(南海)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천하와 더불어 우열을 다툰 사람도 있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실패를 밑천 삼아 공을 세우고 자신의 몸을 영웅호걸한테 낮추어서 강한 적을 꺾고 파촉(巴蜀)을 차지하여 천하에 대의를 편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 지방에 할거해 있으면서 끝내 상대방을 병탄하지 못한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용맹이 서로 대등하고 그 지혜가 서로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그 형세가 곰과 호랑이, 승냥이와 이리가 각각 상대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서로 해치지 못하는 것과 같았고, 여우와 살쾡이, 사슴처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원소(袁紹)와 원술(袁術), 유표(劉表)와 유장(劉璋)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논해 보면 모두 한 시대의 영웅이라 서로 더 잘나거나 못나지 않았고, 그 지역을 논해 보면 구구한 촉(蜀)은 넓은 삼오(三吳)만 못하고 삼오가 비록 넓긴 하지만 어찌 천하를 열로 나누었을 때 그 여덟을 소유한 사람만 하겠는가. 세상에 의론하는 자들은 흔히 “손권(孫權)은 조조(曹操)만 못하고 유비(劉備)는 손권만 못하다.”라고 말들 하는데, 이는 강약과 성패를 가지고 사람을 논한 것이지 시비와 곡직을 가지고 논한 것은 아니다.
맹덕(孟德 조조(曹操))은 환관의 서자로 우연히 기회를 틈타 음험한 이리의 자질을 품고 간교한 뜻을 마음대로 펼쳤으니,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시기하면 독사가 독기를 부리는 것과 같고, 성읍(城邑)을 도륙하면 만 명의 생령이 피를 흘렸다. 그런데도 끝내 천하를 제어하는 위치에 올라 국모(國母)를 효수하여 죽이고 꾀를 내어 구석(九錫)을 몸에 더하여 사백 년 종사가 이어져 내려온 대정(大鼎)을 옮겼다. 그런데도 호걸과 영웅들이 비분강개하여 소리치고 팔뚝을 흔들며 격분하면서도 끝내는 토벌하지 못한 것은 조조의 위엄과 폭압이 사람을 겁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조가 먼저 유리한 형세를 차지하여 사람들에게 천하의 대세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오왕(吳王)은 명철하고 지략이 있었으니 진실로 한 시대의 어진 주군이요, 주유(周瑜)ㆍ여몽(呂蒙)ㆍ노숙(魯肅)ㆍ육손(陸遜)은 충분(忠憤)이 격렬하니 또한 모두 제왕을 보필할 만한 인재이다. 바야흐로 조조가 수십 만 대군을 지휘해 몰아 질풍처럼 신속히 몰아치며 강릉(江陵)으로 내려올 때는 눈 안에 이미 오월(吳越) 따위는 없었는데, 오나라는 오히려 군신이 화목하고 기이한 지략을 짜내어 일거에 적벽(赤壁)의 아래에서 조조의 진영을 불태워 버렸으니, 이때를 당하여 위엄이 천하를 진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승세를 타서 멀리 추격하지 못한 것은 손씨(孫氏 손권(孫權))가 재주가 부족하고 지혜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강동(江東) 땅의 역량이 적어 그 형세가 거듭 싸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 예주(劉豫州)는 교룡(蛟龍)과 같은 형세로 신의(信義)의 군대를 거느리고, 장완(蔣琬)ㆍ비위(費褘)와 같은 사직을 함께할 만한 인재와 관우(關羽)ㆍ장비(張飛)와 같은 용맹한 장수와 난새나 봉황의 자태와 같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는 신하가 있었으니, 가령 하늘이 수명을 더 늘려 주어 그 뜻을 펼 수 있게 하였다면, 한(漢)나라의 왕업을 일으킬 수 있고 신주(神州 중원(中原))를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업을 절반도 달성하기 전에 갑자기 운명하였으니 애석하다 하겠다.
사람들은 모두 선주(先主) 유비가 익주(益州)를 취한 것을 두고 은혜가 적었다고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진실로 본말을 알지 못하는 자의 말일 뿐이다. 처음에 공명이 유장(劉璋)을 습격하여 죽일 것을 권하였지만 선주가 차마 하지 못하였고, 그 뒤에 누차 다급하고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 천하의 형세를 살펴보니 익주를 얻지 못하면 떨쳐 일어날 수가 없고, 유장은 암약(闇弱)하여 반드시 스스로 지킬 수 없기 때문에 한(漢)이 취하지 않으면 조조가 반드시 취하리라는 것은 사리로 따져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지 전혀 괴이할 것이 없는데, 어찌 필부의 작은 신용을 지켜서 천하의 대의를 허물어지게 해야 한단 말인가.
유비가 양양(襄陽)을 지나갈 때 귀의하는 고을 백성들이 많았는데, 어떤 이가 “속히 가서 강릉(江陵)을 보존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선주가 “큰일을 이루는 자는 반드시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나에게 귀부하는데 내가 어찌 차마 버리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넉넉히 제왕의 큰 도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조조나 손권이 방불하게라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만금의 재물이 길가에 떨어져 있는데 이것을 주우면 부자가 되고 줍지 않으면 자뢰할 데가 없다고 할 때, 조조는 요행히 그것을 주워 부자가 된 사람이고 손권과 유비는 줍지 않아서 자뢰할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하고 약한 것은 운(運)이고 성공과 실패는 명(命)이다. 또 할 수 있는 때인데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고 활용할 수 있는 형세인데도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이 역시 명이다. 어찌 감히 한실(漢室)의 도적을 형주(荊州)와 양주(揚州)를 다스리는 임금에게 비교하고 제왕의 후손과 견줄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한 뒤에야 정통과 비정통의 진위가 판단되고 그릇된 것과 바른 것의 잘잘못이 분명해져서 만세의 의론을 공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주1] 조조(曹操) …… 논 : 중국 삼국 시대의 세 인물인 조조, 유비, 손권의 우열을 평론한 논설문이다. 사람들이 유비는 손권만 못하고 손권은 조조만 못하다고 하는데, 이는 강약과 성패로만 사람을 논한 것이므로 정통(正統)의 진위를 변별하고 사정(邪正)의 득실을 따져야 만세의 의론을 공정히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저자는 이 글에서 조조와 손권, 그리고 유비의 인물평을 한 뒤에, 유비가 인덕(仁德)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중원을 회복하여 한실을 부흥하지 못한 것은 운명이지 유비의 능력과 그릇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조조가 황제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형세를 얻은 것은 요행이므로, 정통과 사정이라는 입장에서 유비를 가장 뛰어난 인물로 보고, 조조는 한실(漢室)의 적으로 규정하여 폄하하는 시각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주2] 건안(建安) 연간 : 건안은 후한(後漢)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의 연호로, 건안 연간은 196년에서 후한이 멸망하는 해인 220년까지 대략 20여 년간을 말한다.
[주3] 파촉(巴蜀) : 진나라와 한나라 때 파(巴)와 촉(蜀) 두 군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 말로, 오늘날 사천성(四川省)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주4] 삼오(三吳) : 한 고조(漢高祖)가 오나라를 오흥(吳興)ㆍ오군(吳郡)ㆍ회계(會稽)로 삼등분한 데서 유래한 말로, 장강 하류 일대의 오나라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는 손권(孫權)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을 의미한다.
[주5] 국모(國母)를 효수하여 죽이고 : 복 황후(伏皇后)가 죽임을 당한 것을 말한다. 복 황후는 복완(伏完)의 딸인데, 동승(董承)의 딸인 동 귀인(董貴人)이 임신 중의 몸으로 조조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껴 부친 복완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조조를 제거하려 하였으나, 일이 누설되어 직물을 짜고 염색하는 폭실(暴室)에 갇혀 죽었고 그녀의 소생인 두 아들도 독살되었다. 그녀가 죽은 뒤에 조조의 딸 조절(曹節)이 황후의 자리에 올랐다. 《後漢書 卷10下 皇后紀 獻帝伏皇后》
[주-D006] 구석(九錫) : 천자가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하사하는 아홉 가지 물품이다. 곧 거마(車馬)ㆍ의복(衣服)ㆍ악칙(樂則)ㆍ주호(朱戶)ㆍ납폐(納陛)ㆍ호분(虎賁)ㆍ궁시(弓矢)ㆍ부월(鈇鉞)ㆍ거창(秬鬯)이다. 《春秋公羊傳 莊公元年》
[주7] 대정(大鼎)을 옮겼다 : 국운을 기울게 하였다는 말이다. 대정은 구정(九鼎)의 하나로 발이 셋 달린 큰 솥인데, 여기서는 국운을 상징한다. 구정은 우(禹) 임금이 구주(九州)의 쇠붙이를 모아 만든 제기(祭器)로,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를 거쳐 주(周)나라에 전해진 제왕(帝王)의 상징이다.
[주8] 유 예주(劉豫州) : 유비(劉備)를 가리킨다. 유비가 예주 자사(豫州刺史)를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9] 한실(漢室)의 …… 있겠는가 : 한실의 도적은 조조를 가리키고, 형주(荊州)와 양주(揚州)를 다스리는 임금은 손권을, 제왕의 후손은 유비를 가리킨다. 한실지적(漢室之賊)이라는 표현은, 조조가 강릉(江陵)으로 쳐들어갈 때 주유(周瑜)가 손권에게 조조와 싸울 것을 권유하면서 “조조가 한나라 승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은 한나라의 도적입니다.〔操雖托名漢相, 其實漢賊也.〕”라고 한 대목에 보인다. 《三國志 卷54 吳書 周瑜傳》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한적(漢賊)이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데, 《삼국지연의》는 촉한(蜀漢) 정통론의 입장에서 쓰인 소설이다. 형주와 양주는 동오(東吳)의 손권이 다스리는 지역의 이름이고, 유비는 중산 정왕(中山靖王)의 후손으로 후한 헌제가 황숙(皇叔)이라 불렀던 한실의 종친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曺操,劉備,孫權優劣論。
夫天下之事。有可爲之時。而無可爲之時。有可用之勢。而無可用之勢。借使衆皆怯而獨勇。則勇者勝。衆皆愚而獨智。則智者勝。勇而遇勇。勇不足恃。智而遇智。智無所施也。令置熊虎豺狼於一室之中。則各負一隅。而不相害。若縱於狐貍麋鹿之場。莫不呑噬屠裂。盡其肉而後乃止。建安之際。天下何其紛紛也。當是時。宇宙屯蒙。群盜縱橫。君臣相軋而不相保。上下爭利而不相安。有能挾乘輿返舊都。驅策俊良。糞除奸兇。征伐四克。卒主中原。有能擧賢任能。各盡其心。跨據江淮。薄于南海。以與天下爭衡。有能出萬死。因敗爲功。屈體英傑。摧沮勍敵。奄有巴蜀。以伸大義於天下。然而割據一方。卒不相倂者。無他。其勇相等而其智相似也。勢如熊虎豺狼之各畏其偪而不相害。不如二袁二劉如狐貍麋鹿之易制矣。論其人則皆一代之雄。不相上下。論其地則區區之蜀。不如三吳之大。三吳雖大。豈能如十分天下有其八者乎。世之議者多曰。孫不如曺而劉不如孫。是以強弱成敗論人。而不論是非與曲直也。孟德以閹寺遺孼。偶乘機會。蓄陰狼之資。騁奸譎之志。猜忌賢能則蛇虺肆毒。屠滅城邑則萬口流血。卒至嬰制天下。梟殘國母。謀加九錫。以移四百年之大鼎。而豪雄之士悲嘯扼腕。終不得致討者。非獨操之威暴足以怯人。先據勢勝之地。以示天下之形耳。吳王明而有謀。固一代之賢主。周,呂,魯,陸。忠憤激烈。亦皆王佐之才。方操驅數十萬衆。飆忽奮迅。而下江陵也。目中已無吳,越。尙賴君臣輯睦。運籌出奇。一擧而焚之於赤壁之下。當此之時。威震天下。然而卒不得長驅遠馭者。非孫氏才短智劣。以江東土綿力薄。其勢不足以再勝也。劉豫州以蛟龍之勢。行信義之師。有蔣琬,費褘社稷之才。關羽,張飛熊羆之將。諸葛孔明鸞鳳之姿。借使天假之年。得行其志則漢業可興。神州可復。惜乎大業未半而遽爾殞歿也。人皆以先主取益州爲少恩。此誠不知本末者之言耳。初。孔明勸襲殺之。先主不忍也。其後屢濱顚沛。觀天下之勢。非得益州。不能奮起。劉璋闇弱。必不能守。非漢取之。則曺必取之。理勢自然。無足怪者。豈守匹夫之小諒。而虧天下之大義乎。其過襄陽也。州人多歸之。或曰。宜速保江陵。先主曰。濟大事者必以人爲本。今人歸吾。吾何忍棄去。此固恢恢乎有帝王大度。非操,權所得彷彿也。今有萬金之貲棄在道傍。得之則富。不得則無所資。曺操。幸得而富者也。孫與劉。不得而無所資也。故曰。強弱。運也。成敗。命也。有可爲之時。而不得爲。有可用之勢。而不得用。亦命也。豈敢以漢室之賊。擬諸荊揚之君。肩帝室之胄者乎。夫然後。正閏之眞僞辨矣。邪正之得失明矣。而可以公萬世之議論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