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표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선거를 통해 사람을 선택합니다.
시·도의원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봅니다.
도덕성은 있는지, 약속을 지킬 사람인지, 주민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그리고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낼 능력이 있는지를 따져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아파트의 동대표는 어떻습니까?
시·구의원이 우리 아파트의 가계부를 직접 들여다보고 관리비를 결정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들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 생활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우리 집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관리비와 장기수선충당금,
각종 공용시설의 유지·보수비를 직접 다루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의 생활과 재산에 직접 관계되는 동대표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동대표가 관리하는 것은 남의 돈이 아닙니다.
매달 주민들이 내는 관리비이고,
오랜 세월 동안 한 푼 한 푼 모아 놓은 장기수선충당금이며,
우리가 함께 소유하고 있는 공동의 시설과 재산입니다.
그러니 동대표는 단순히
“우리 동을 대표해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공동체의 살림을 함께 맡아볼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출마하기 전에 적어도 이런 생각은 한 번쯤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주민들의 의견이 내 생각과 다를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자리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이고, 주민들에게 돌려주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대표가 되었다고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공동주택 관리에 전문가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회계도 배워야 하고, 시설도 공부해야 하며, 장기수선계획도 알아야 하고,
관리비가 어떻게 쓰이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동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면 배우고,
잘못 알았으면 고치고,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묻고,
주민들의 의견이 다르면 귀 기울이는 자세.
그것이 동대표에게 필요한 공부이고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동대표에게는 전문성만큼이나 도덕성과 희생·봉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 아파트의 살림을 맡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전문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주민들이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돈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돈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에게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며,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권한을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대표를 뽑을 때
“누가 더 말을 잘하는가”
“누가 더 큰소리를 내는가”
“누가 선거에서 이기는가”
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 공동체의 살림을 맡겨도 마음이 놓이는 사람인가.
이것을 먼저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동대표 선거가 승부가 되어버리면
양보보다 경쟁이 앞서고,
협력보다 편 가르기가 생기며,
주민을 위한 자리가 어느 순간 자신의 명예나 영향력을 위한 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동대표회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당신이 먼저 좋은 단지를 만들어 보십시오.
그다음에는 내가 더 좋은 단지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런 마음이면 어떨까요?
이기는 사람이 한 명이고 지는 사람이 한 명인 선거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 선택되고 좋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선거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동대표가 된 뒤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자신이 맡은 임기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언젠가 자신의 자리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권한을 오래 쥐고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이 끝났을 때 다음 사람에게 기꺼이 바통을 넘겨주는 사람이 공동체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우리가 이제 새로운 대표회를 시작하려는 이 시점에서
동대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지금이기 때문에 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3년 동안 우리가 살아온 아파트의 역사를 이제 새로운 주민자치의 역사로 이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선택 하나가
앞으로 몇 년의 공동체 분위기를 만들고,
오늘의 판단 하나가
우리의 관리비와 공동재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사람을 뽑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어떤 사람이 동대표가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부터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 집의 가계부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듯이,
우리 아파트의 가계부 역시 아무에게나 맡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엄격한 잣대는 남에게 들이대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들이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출마하고,
그런 마음으로 선택하고,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일한다면,
우리가 시작하려는 주민자치는
누군가의 권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1,772세대가 함께 살아갈 더 좋은 내일을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