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h(쉿)
[ 5 화 ] 또 다른 마주침..part..1
"도대체 밖으로 나간 첫 날부터 또 집에 늦게 들어오니?"
집안으로 들어서자, 잔뜩 찌푸린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머리 검은 색으로 염색하라고 했지? 왜 안 해?"
짜증인 섞인 엄마의 음성에 나는 조용히 대꾸했다.
"가발 쓰고 가요."
그 순간, 내 머리를 가격하는 주먹이 있었다.
"똑바로 못 해!"
난 고개를 번쩍 들어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일 할게요."
난 그리고 내 방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렇다고.. 주먹으로 머리를 때려요.."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정말 창피스러워서.. 기집애가 퇴학 면하려고 전학이 뭐야. 전학이.. 내가 그 것 때문에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아! 망신은 있는대로 당하고! 기집애 하나 있는 것이 저렇게 아버지 명예를 더럽혀.."
아버지의 소리침이 집안에 울린다..
난 불도 키지 않고, 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 침대에 털썩 누워 버렸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니, 그대로 깊은 나락으로 빠지길 바라는 마음이 다시 들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이 교실은 유난히도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것 같았다. 아님, 여학교를 다니다 남녀공학으로 전학 와서 남자애들의 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보통 여자애들 보고 수다라고 하지만, 남자애들의 수다는 더 유난스럽다. 어제도 느낀 것이고, 오늘도 느껴진다.
"왔구나?"
자리에 앉자 은진이 내게 다가와서 웃었다.
난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고 책상 위에 내 가방을 올려놓았다.
"기말 고사가 곧 시작이야. 범위가 약간은 다를 텐데 괜찮아?"
난 은진이의 말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정말 내신을 올리기 위해서 전학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반을 난 생소한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상관없어."
알게 뭐야.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그렇구나."
은진이가 빙그레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나는 그녀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난 어떠한 범위든 다 잘할 수 있다.. 상관 없다로 들은 것 같았다.
담임이 마침 조회를 하러 들어와서 나는 더 이상 은진이의 말상대를 안 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수업시간은 숨이 막힐 정도로 상당히 타이트하게 진행되었다.
강남이든, 이 곳이든.. 어디든.. 고등학교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모두들 눈으로 칠판을 집중하며, 선생님이 뿜어내는 지식을 삼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되자, 난 도망치듯이 교실에서 나와 연못가로 갔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마치 이방인이 된 것처럼 이렇게...
답답해...
"이한 녀석. 이리로 오라고 했어?"
어떤 무리의 남자들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한? 강 이한?
"그렇게 전하긴 했는데.. 그 녀석 오늘 학교 안 왔어."
"안 왔어?! 이 자식. 일부러 내뺀 거 아니야?!"
이한 오늘 학교에 안 왔던 가?
그러고 보니, 못 본 거 같았다.
"그거야.. 모르지. 지금쯤 왔을 수도 있고.."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얼른 갔다와!"
험악하게 생긴 녀석이 소리치자, 인상을 찌푸리면서 한 녀석이 오던 길을 다시 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은.. 뭐야?
난 연못가에 시선을 두었다가 그들을 흘끔 쳐다보았다.
"뭘 봐?!"
내가 보는 걸 보더니, 그 험악하게 생긴 녀석이 버럭 소리쳤다.
[ 5 화 ] 또 다른 마주침...part..2
꼭 저런 녀석이 있다니까...
난 기가 막혀서 고개를 다시 돌려버렸다.
"영권아. 그렇게 신경 날카롭게 굴지마. 지금 태정이 녀석도 없는데.."
"뭐야? 태정이 녀석이 없으면 우린 허수아비란 소리야?"
"아니.. 난 그게 아니라....어? 이한이 녀석 오네? 데리러간 병주 녀석은 어디 가고.."
이한의 모습이 내게 들어왔다.
그가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흘끔 내려다보더니,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서 그 녀석들에게로 다가갔다.
"강 이한. 선배를 기다리게 해?"
"학교에서는 조용히 있고 싶어요. 태정 선배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 자식! 네 녀석도 지금 날 무시하는 거냐?"
영권이 소리치면서 갑자기 이한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격했다.
"영권아. 그만 좀 해. 이 자식아!"
다른 녀석이 그를 말리면서 소리쳤다.
"무시를 한 적도, 선배에게 맞을 만한 이유도 없는데요."
이한이 붉어진 얼굴을 약간 들고 가라앉은 저음으로 영권에게 말하였다.
그에게 저런 목소리가 있던가..
어제 들었던 장난기 가득한 음성이 아니었다.
저 녀석.. 뭐야..
"네 눈엔 태정이만 선배로 보일 지 몰라도, 나도 네 선배야. 후배면 후배답게 선배에게 깍듯이 해야할 거 아니야! 네 녀석은 너무 건방져."
"선배는 선배답게 행동하십니까? 후배에게 대접받기만 바라지 마세요."
"뭐야?! 이 자식이!"
영권이의 주먹이 위로 올라간 순간, 연못 반대편에 선생님 두 명이 담소를 나누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만 해. 임마."
그들은 일순간 모든 대화를 멈추었다.
"오늘 in으로 와라. 안 나타나면 가만 안 두겠어."
영권이 이한에게 강하게 말하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영권아! 이한이 녀석. 교실에 없던데.. 어? 이한이 녀석 왔네."
아까 병주라는 이름으로 불린 사람이 헐레벌떡 이 쪽으로 뛰어오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들은 곧 내 곁을 다시 스치고 지나가면서 멀어져 갔다.
난 이한에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려고 하다가 관두었다.
저 녀석도 알만 하군..
"빈아!"
나를 부르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또 여기 있을 줄 알았어."
환하게 웃으면서 은진이 내게 다가왔다.
"어? 강 이한. 너 거기서 뭐해?"
은진의 시선이 저 쪽 벤치에 앉아 있는 이한에게 돌려졌다.
"사색(四塞)."
씨익 웃으면서 그가 하는 말에 은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사색? 네가? 너.. 혹시 빈이한테 말 걸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눈치는 할튼 빠르다니까.."
금새 행동이 밝아진 이한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넌 이게 뭐냐? 둘이서만 햄버거 먹으려고 하는 거야?"
은진이가 들고 있는 햄버거를 보면서 이한이가 말하였다.
"빈이는 아직 우리 반에 적응을 못하겠나봐. 그치? 빈아."
은진이의 말에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김 은진.. 솔직히 말해.. 너 소문에 여자만 좋아한다던데.. 그래서 빈이를 이리로 빼돌리는 거지?"
"어머! 어떻게 알았어?!"
'아이~부끄러워'하는 듯이 은진이가 주먹으로 이한의 어깨를 쳤다.
"그만해! 지지배가 애교로 때리는 게 아니라 아예 폭력이야."
어깨를 매만지면서 이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래! 난 있는 거라곤 힘뿐이다!"
은진이가 그러면서 이한을 퍽 때렸다. 이한이 주춤대더니, 곧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었다.
"맛있게 먹어라."
비틀(?)대면서 그는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
"이한! 담임이 너 오면 가만히 안 둔대. 난 전했다!"
"고맙다."
손만 흔들면서 이한은 계속 걸어갔다.
"이한.. 저 녀석 어떤 녀석이야?"
난 그의 등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응? 이한이? 왜? 관심 있어?"
은진이 눈을 빛내는 것이 보였다.
"아니..그냥.."
"아.. 내가 말해줄께.. 이한이는.."
은진이가 내 옆에 앉으면서 내게 햄버거를 내밀었다.
[ 5 화 ] 또 다른 마주침...part..3
"이한이는 나도 잘 모르겠어."
"뭐?"
말해준다면서?
"성격이 활달해서 워낙 장난도 잘치고, 공부는 못하는 편은 아니고.."
"반장이잖아? 그럼 공부는 잘하지 않아? 못하는 편은 아니라니?"
나는 은진이를 보면서 의아한 듯이 물었다.
"아.. 워낙 리더쉽이 있어서 반장이 된 거야."
은진이가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가끔은 이상해."
"이상해?"
"그냥 범생이 같지는 않아. 주위에 맴도는 남자애들을 봐도 그렇고.. 있잖아. 그런 거 있잖아."
은진이가 은근한 음성으로 내게 몸을 기울였다.
"뭐?"
"뒤에서 몰래 노는 애들.. 그런 거 같애. 이한이는.."
"뒤에서 몰래 노는 애들?"
은진이의 표현이 재미있어서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빈아."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는 은진이 때문에 나는 웃음을 거두었다.
"왜?"
"너, 처음으로 그렇게 웃었다. 좀 웃어. 웃으니까 더 이쁘다."
"웃을 수 있다면.."
"뭐?"
"아니야.."
"난 그냥 웃으면서 지내는 것이 좋아.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이든.."
은진이 연못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금의 네가 어떤 모습인데?"
나의 말에 은진이가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래.. 너도 사람인데..무언가 마음속에 고민이 있겠지.. 사람은 누구나
각자만의 짐이 한가지씩은 있으니까 그 짐에 따른 고민은 있기 마련이겠지..
"빈아. 우리 반 애들 다 좋아. 네가 낯설어해서 애들이 접근하기 힘들어 해. 좀더 지나보면, 아마도.. 다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아, 아마도가 아니라 꼭."
"그런 거 원치 않아."
"뭐?"
은진이가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벤치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손에 들고 있던 햄버거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영문도 모르고 은진이 가만히 그걸 받았다.
"네가 내 주위에서 맴도는 것도 원치 않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하고 나는 등을 돌렸다.
"빈아!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가 있니?"
은진이가 내게 달려오더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넌 나와 어울리지가 않아."
"뭐가?"
난 대꾸를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빈아. 너와 내가 다를 것이 뭐가 있었어? 똑같은 18살 여자애잖아. 그런데, 뭐가 어울리지 않다는 거야? 넌 사람 사귈 때 그런 거 정해놓고 사귀니?"
"응. 그래. 난 그런 거 정해놓고 사귀어."
냉정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 애와 자꾸 얘기를 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옴이 느껴져 난 그 애에게서 도망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지 모르게.. 난 은진이 부담스러웠다.
은진은 멍하니 나를 쳐다볼 뿐 더 이상 잡지는 않았다.....↙
"재헌이한테는 연락 왔어?"
친구들이 기분을 풀어준답시고 나를 락바에 억지로 끌고 왔다. 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난 멍해져 있었다.
진아가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을 뿐이다.
'그런 걸 왜 묻고 그래?'
보흠이가 진아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귓속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무시하고 가만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답답해. 나가서 춤출래."
그렇게 말하자마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모든 것을 폭발시켜버릴 것처럼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은 나의 모든 것을 버리게 해주었다.
난 음악에 빠져 내 온 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
이대로....이대로 멈추어 버려..
내 머리속에서 빙빙도는 모든 문제들의 답을 주지 않으려면 이대로 멈추어 버려....
그렇게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던 나는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난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몸이 정지되었다.
이한?
그가 분명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몸을 멈추자 내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5 화 ] 또 다른 마주침...part..4
난 그가 내 곁으로 다가오는 동안 가만히 생각했다.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지?
잠시동안 머리 속이 멍해졌다.
아까의 연못가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in으로 와' 분명.. in이라고 했는데.. 왜 여기 있는 거야...
허긴, 여기가 뭐 나 혼자만의 공간도 아닌데..
그나저나 저 녀석, 아는 척을 하려고 다가오는 거겠지?
빌어먹을.. 왜 여기서 마주친 거야?!
이한이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띄우고 내 앞에 섰다.
"저기, 혹시 쌍둥이 언니나 동생 있어요?"
"에?"
그의 질문에 난 순간, 당황을 했다.
"나 아는 친구랑 무척 닮았어요. 처음엔 그 친구인지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머리가 단발이었어요. 혹시 친척 중에 류 빈이라고 없어요?"
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난 저절로 내 긴 머리를 쓸었다.
이 녀석.. 아무리 헤어스타일이 다르고, 얼굴에 화장 좀 했다고 이렇게 사람을 못 알아보다니..
"없는데요."
난 차갑게 대꾸하고 몸을 돌렸다. 그 녀석에게서 빨리 떨어지고 싶었다.
"없어요?"
하지만, 그건 나만의 바람이었나보다.
그는 금방 나를 쫓아와서 물었으니까..
"네."
난 귀찮다는 듯이 그를 곁눈질로 흘끔 보면서 대꾸했다.
"휴~다행이다."
이한이 환하게 웃으면서 하는 말에 나는 눈썹을 치켜 떴다.
다행이다? 그건 또 무슨 뜻이야?
"그 친구가 성격이 워낙 나쁘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그 쪽이 그 친구와 무슨 관계라면 성격이 비슷할 수도 있잖아요."
성격이 워낙 나빠?
순간, 가슴속에서 울컥 하는 것이 있었는데 나는 내색을 하지 못했다.
"아~네."
"좀 사이코 기질도 있는 거 같고.. 좀 그래요. 아무튼.."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난 속으로만 숨을 쌕쌕거리고 그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슨 용건이에요? 왜 자꾸 귀찮게 해요?"
"저 쪽에서 보고, 그 쪽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몇 살이에요?"
"20살이요. 댁은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아, 나랑 동갑이다. 저도 20살이에요."
이한이 환하게 웃는 것을 보고 난 기가 막혔다.
이게 어디서 나이를 올려! 허기사.. 나도 올렸지만..
"우리 같이 놀자."
어쭈.
"나 이제 나갈 거야."
"그럼, 같이 나가자."
"됐어."
난 몸을 돌렸다.
"너 혹시 성이 정말 류는 아니지?"
"왜?"
"아. 넌 정말 그 애 닮았거든.. 널 보니까 그 애가 자꾸 생각나네...이러면 안되는데.. 내가 노이로제 비슷하게 걸린 것 같아. 그 애, 정말 성격 나쁘거든.."
야! 내가 언제 성격이 그렇게 나쁘게 행동했어?! 이틀 밖에 못 본 주제에!!
이 녀석이 그렇지 않아도 신경 예민한데..
"그런 애가 주위에 있으면 어떨 것 같아? 너는?"
"응? 모가?"
너 뭘 원해서 이런 질문하니?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만 했다.
"그렇게 성격도 나쁘고, 약간은 사이코 기질 있는 애가 주위에 있으면 어떨 거 같냐고."
"짜..짜증나겠지.."
입술을 악물면서 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내가 왜 이 녀석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해주고 있는 거지?
그 때, 나의 시야에 내 쪽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애들이 와서 '빈아!'하면 어떻게 하지?
그 순간, 난 그 녀석을 고개를 휙 돌려 쳐다보았다.
"나 귀찮게 하지마. 난 남자친구랑 왔어."
그렇게 말하고 나는 걸음을 빨리 옮겨 친구들에게로 다가갔다. 이한은 다행스럽게도 쫓아오지 않았다.
"빈아. 저 애 누구야? 괜찮다."
"야~ 쌈박하다."
보흠이와 진아가 이한이를 쳐다보면서 감탄사를 터트렸지만, 난 그런 친구들을 끌고 밖으로 향해 걸어갔다.
정말.. 어쩌자고 저 녀석을 이런 대서 만난 거야?!
빌어먹을.. 자식..
내가 뭘 자기한테 어쨌다고, 성격이 무지 나쁘고, 사이코 기질?
유치한 자식.. 사이코라고 한 번 말했다고 그거에 빼져서는...
"빈아..왜 그렇게 씩씩거려?"
"아냐.. 아무 것도.."
난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터벅터벅 크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선생님이 조회하러 들어오시기 전에는 항상 소란스럽다. 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 반 남자애들이 '한아!'하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교실로 들어서면서 그는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음과 같아서는 녀석의 면상을 갈기고 싶어졌다.
하지만, 난 참아야만 했다.
"야. 오늘 조회 없어. 담임 민방위 훈련 가셨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서서 얘기하다가 고개를 돌려 반 애들을 보면서 소리쳤다.
그리고는 다시 친구들과 무슨 장난인지 하면서 깔깔거렸다.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실 뒷문으로 걸어갔다.
"아. 류 빈."
뒷문에 거의 다 왔는데 갑자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이한이 친구들에게 떨어져 나와서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울컥 했지만, 참으면서 녀석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몸을 내 가까이 몸을 숙였다.
그러더니,
"조심해라. 가발 밖으로 머리카락 삐져 나올라."
나의 귀에 그렇게 속삭이더니 몸을 들고 씨익 웃는 것이 아닌가..
난 기가 막혀서 몸을 돌려 친구들에게도 돌아가는 이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기도 안차....
[ 6 화 ] 기다림...part..1
특별히 있을 만한 공간이 연못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아직은 학교의 구조을 잘 모르니까 장담은 못하겠지만..
나 혼자만의 비밀 공간은 어디 없을까..
점심 시간은 나에게 교실에서의 탈출구일 뿐이다.
입맛도 없어서 점심을 먹지 않아도 별로 배고픈지도 모르겠고, 식당에 혼자 가기도 그렇다.
이 시간이면 언제나 그래도 이 곳은 한가하다. 거의 모든 애들이 식당에 몰려 있을 시간이니까..
난 멍하니 연못 가운데서 분수랍시고, 어설프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난 달라. 빈아."
갑자기 옆에서 들린 음성에 나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은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제 많이 생각해 봤어. 그래, 나 너와 어울리지 않는지도 몰라. 하지만,
난 달라. 빈아. 넌 그렇게 생각할 지는 몰라도 난 널 친구로 만들고 싶어."
난 은진이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려버렸다.
"알아. 네가 날 귀찮게 생각하는 거.. 그런 너에게 조금은 서운해.. 하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다가가려고 하는 거니까 그런 것은 감수해야지.. 네가 날 거부하는 것도 알고, 네가 별로 날 달가워하지 않는 다는 것도 알아.."
은진이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네가 내 친구였으면 해. 난."
"어째서?"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라고 물으니까 참 당황스럽다."
"넌 나에 대해서 알고 있지도, 내가 네게 호감을 느끼게 하지도 않잖아."
"그래.. 난 널 몰라. 그리고 넌 날 거부해.. 그래도... 그래도야. 빈아. 어떠한 이유도 필요 없어. 난 그저, 널 친구로 만들고 싶어."
"그저?"
"응. 그저라는 표현이 제일로 맞는 거 같아..빈아. 내가 너 친구이게 해줘."
은진이가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이 쏟아졌다.
"거머리과라고 웃는 거지?"
은진이의 말에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나로 인해 불편함을 겪게 될 지도 몰라."
"얼마나 불편하겠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갑자기 배고픔이 느껴졌다.
"응."
은진이가 햇살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입가에 가득 띄우면서 내 옆에 섰다.....*^^*
생각해봐.. 그가 어디 있을 지...
조금만..더...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그러나 어디에 가도, 누구를 찾아가도 그에 대해서는 한 개도 알 수가 없었다.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목같이... 이젠 그 뜻이 무슨 뜻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난 허무하게 이미 깨져버려 그가 듣지도 못하는 그의 핸드폰에 나만의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 지금.. 네가 어디 있을까... 난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곁에서 돌아서면 네가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돌아보면 없어.. 그 어디에도 없어.. 너의 자취를 따라 움직여도 너의 머리카락 하나 발견할 수가 없어.. 그래도 괜찮아...정말....]]]
그가 지금이라도 바이크를 끌고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 화는 내지 않을게..어디에 있었냐 다그치지도 않을게.. 그러니까 그냥 제자리로만 돌아와 줘.. 아니, 어디에 있는 지 알려만 줘..네가 없는 자리가 너무 커.. 아직은 괜찮지만, 곧 안 괜찮아질 것 같아.. 나 이대로 내버려둘 꺼야? 그럴 꺼야?]]]
괜시리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나는 참아야만 했다.
[[[ 아냐.. 괜한 투정이 생긴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학교도 새로 전학했고, 부모님도 괜찮아. 참, 나 검은 색으로 머리 염색했어. 보고 싶지 않아?..... 사실은.. 다른 건 다 괜찮아. 하지만, 네가 힘들까 걱정이야.. 그게 제일 걱정이야.. 난 괜찮은데.. 네가 괜찮지 않을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되고, 그 것 때문에 제일 힘들어...]]]
결국은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서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아야만 했다.
난 힘없이 공중 전화박스 유리벽에 기대었다.
바보처럼...
멍하니 공중 전화기만 바라보다가 난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었다.
혹시나 그가 전화할까봐 하루 종일 켜놨던 휴대폰은 이미 밧데리가 다 되어서 꺼져 있었다.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고 전화카드를 밀어 넣었다.
[비밀번호를 눌러 주십시오.]
통신사에서는 언제나 같은 아줌마만 쓰나보다.. 어느 음성을 들어도 이 아줌마 목소리니까..
[수신된 메시지가 없습니다.]
힘없이 수화기를 다시 내려놓고 나는 공중 전화 박스에서 나왔다. 이미 어두워진 도시는 마치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키려는 반딧불처럼 하나둘 자신만의 불을 키고 있었다.
그 말을 못해주었다.
기다리고 있어..
난 멍하니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떤 이는 오늘 기분이 좋은 지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띄워져 있고, 어떤 이는 무언가 짐이 있는 지 얼굴에 근심이 가득 있다.
사람 사는 거야.. 다 비슷해.. 웃거나 울거나 그 두 가지 차이 밖에 없는 거 같아...
난 쇼원도우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무척 우울한 거 같고, 외로운 거 같은 무진장 청승맞은 얼굴...
그 때,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 6 화 ] 기다림...part..2
그 때,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난 그 앞으로 다가갔다.
재헌이가 타던 바이크하고 똑같은 기종의 같은 색깔의 바이크였다.
마치 그리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너무 반갑고, 애틋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렁거렸다.
난 조심스럽게 그 핸들을 잡았다.
***********************
"너하고 있을래."
"뭐?"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너하고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
난 눈을 빛내면서 몸을 앞으로 숙여 거꾸로 그의 바이크 핸들을 잡았다.
그런 나를 그는 가만히 응시했다.
"밀고 가버리기 전에 비켜."
여전히 그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그가 그렇게 하는 말에 순간, 나는 발끈 했다.
"밀어버려?! 무슨 말을 그렇게 끔찍하게 해!"
"네가 알아서 해.."
그러더니, 이놈의 자식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닌가..
"너.. 지금 나 담력 테스트하는 거야?"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렇게 물으니까 그 무표정은 입을 열었다.
"너 같은 애와 시간 낭비할 만큼 나 한가하지 않아. 그러니까 내 눈앞에서 당장 사라져."
시동을 여전히 끄지 않고 있어서 난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물론 그건 절대 겁이 나서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옆으로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설픈 변명 같지만...
그런데 내가 자신의 바이크 앞에서 비켜서자 마자 그는 바로 출발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야! 나 너 찾을 꺼야! 잊지마! 기필코 찾아 낼 꺼야!"
멀어져 가는 그의 등에다 그렇게 소리만 쳤다. 더 이상 쫓아갈 수는 없으니, 목청이나 높여야 했기에..
그리고, 난 그를 곧 찾아 낼 수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난 오전부터 집에서 나와 이리저리 복잡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무료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공부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언가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뿐이 없었다.
꿈은 없었지만, 단 하나 되고 싶지 않은 것은 있었다.
어른...
그러나.. 소리 없이 스르르 다가오는 시간은 곧 날 어른으로 만들어 주겠지..
"아..심심해.."
일요일이기 때문에 번화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나 전화해서 불러낼까 하면서도, 또 애들과 있으면 쫑알쫑알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냥 쇼윈도우에 걸린 옷들을 구경이나 하면서 서 있었는데, 쇼윈도우에 무언가가 잡혔다.
그건.. 그였다.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내 등뒤로 지나치는 재헌이 쇼윈도우에 비친 것이었다.
난 확인을 하기 위해 고개를 휙 돌렸다.
맞았다..
분명히 며칠 전에 내 눈앞에서 바이크를 몰고 사라졌던 그 재헌이 친구 두 명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난 그의 등을 놀람과 기쁨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급하게 쫓아갔다.
"윤 재헌!"
가끔은 나도 나의 당돌함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가 맞는다는 증거로 고개를 뒤로 돌리는 재헌을 보면서 난 속으로
'yes!'를 외쳤다.
그의 눈썹이 자신을 부른 사람이 나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보기 좋게 위
로 치켜세워졌다.
그래서 속으로는 조금 서운했지만, 난 내색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거봐. 내가 너 찾는다고 했지?"
그를 올려다보면서 난 환하게 웃었다.
재헌이 짧은 숨을 내뱉더니, 귀찮다는 듯이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먼저 가 있어. 곧 갈게."
"그래."
그의 친구들이 나에게 시선을 멍하니 주면서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한 녀석은 자꾸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나를 힐끔거렸다.
"한숨까지 지을 필요 없잖아."
그가 너무 싫은 내색을 해서 나는 쌜쭉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너 왜 이러는 거야?"
"말했잖아. 너하고 있고 싶다고.."
"너, 자꾸 내 주위에서 맴돌려고 하지마. 난 너 같은 날라리 기집애는 질색이야."
그가 똑바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나 날라리다. 그러는 너는? 양아치 주제에.."
갑자기 불끈한 감정에 그를 노려보면서 나는 그렇게 말하였다.
[ 6 화 ] 기다림...part..3
"양아치?"
그러더니,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매력적인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날..날라리하고, 양아치는 잘 어울리는 커플이잖아. 그렇게 생각 안 해?"
고개를 약간 기울이면서 - 난 최대한 예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생각 안 해. 그러니까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그가 내게서 몸을 돌리자, 나는 급한 마음에 그의 팔을 잡았다.
"너..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어.. 나한텐 소용없어. 난 한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해..그래서 결심도 잘 안 하지만.. 난 정말 네 곁에 있을 거야..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말하는데.. 난 네가 곁에 있는 걸 원하지 않아."
"괜찮아."
나의 말에 '뭐 이런 기집애가 다 있나'하는 표정으로 재헌이 나를 쳐다보았다.
"괜찮다니? 뭐가 괜찮아?"
"내가 원하니까 상관없다고."
나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듯이 그가 피식 웃었다. 아예 '말이 안통하는군'하는 표정이었다.
"네가 내 주위에 있어봤자 얻는 이득 없어."
"이득 같은 건 필요 없는데?"
"도대체 뭐가 네 흥미를 그렇게 잡아끄는 거야?"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가 말하였다.
"너."
난 환하게 웃으면서 강하게 그렇게 말하였다.
그가 약간은 놀란 듯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 이미 맛이 갔거든. 네가 나 내려다보는 게 좋아."
그래.. 처음에야.. 너무 어두웠고, 잘 몰랐지만..
두 번째엔 널 보면 가장 좋은 게 네가 날 내려다보는 그 시선이야.. 난 그 시선을 잡아끌고 싶어..
*****************************************
그랬다..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다만, 너의 시선만 잡고 싶었을 뿐이었다. 너하고 처음 만났을 때, 난 그
저 너의 눈 속에 들어가고만 싶었을 뿐이었는데..
난 바이크의 핸들을 멍하니 쓸어보았다.
"뭐하는 거야?"
뒤에서 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어떤 놈이 자신의 바이크인지 다가와서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내 어깨을 잡은 손이 있었다.
"뒤에 타고 싶어?"
바이크 주인은 시궁창에나 들어가면 딱 어울릴만한 표정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꺼져."
난 조용히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뭐야?! 이 쌍년이!"
그러면서 내 머리채를 잡아끄는 게 아닌가..그 순간, 내 머리에 씌워져 있던 가발을 휙하니 벗겨졌다.
오늘 아침에 망을 찾다 못찾아서 그냥 쓰고 왔는데,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가발에서 벗어나게 되자 물줄기가 내려오듯이 흘러내렸다.
"어?"
자신의 손에 딸려 나온 가발을 보고 녀석은 조금 놀란 모양이다.
"가지고 싶으면 가져."
난 무표정한 얼굴로 녀석을 보고 몸을 돌렸다.
"이게 누굴 놀려."
뒤에서 그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발을 뒤로 돌려 녀석의 면상을 까버렸다.
순식간에 참지 못하고 나간 행동이었다.
발이 내려오면서 교복 치마가 엉켜서 나는 그걸 가만히 폈다.
"까불지마. 개자식아. 너 같은 자식한테 당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아."
약간은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는 녀석을 뒤에 놔두고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덩치만 컸지, 아무 것도 없는 놈인 모양이었다. 더 이상 덤비지 않는 걸 보니..
난 어렸을 적에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해서 중학교 때까지는 했다. 엄마는 여자는 자기 몸 하나는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무진장 귀찮았지만, 그래도 가면 조금은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으니까...
가끔은 이렇게 필요할 때가 있어서 다행이다...
난 목적지에 다 도착한 것을 알았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 곳을 바라보다가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사람들이 가득 찬 그 공간에서 세환은 바쁘게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빈아."
그가 나를 보더니, 조용히 불렀다.
난 그냥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가만히 흔들었다.
난 다시 그 PC방을 나와 거리로 나왔다.
어디에 있는 거야....
그렇게 혼자 있으면 좋아...
괜찮아.. 기다릴게.. 그럴 수 있어...
그 때,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에 얹어졌다.
난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
shh(쉿)
[ 7 화 ] 변하지 않는 세상...part..1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니 이한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힘이 축 쳐져서 걸어가고 있어? 뒤에서 보니까 금방이라도 쓰
러질 사람처럼 아슬아슬하더라.."
"넌 또 웬일이야.."
"아니.. 사람을 보고 반가워하지는 못할 망정, 짜증스런 얼굴로 쳐다보다
니.."
"어째서 널 이렇게 자주 보는 지 모르겠다."
"뭐야? 그건 내가 할 소리네.. 너 그런데.. 이 동네 사냐? 이 근처?"
이한이가 가만히 물었다.
"응.. 설마..너도?"
"설마자는 이왕이면 빼지.."
눈을 찡그리면서 말하는 이한이 표정이 귀여워서 또 다시 울컥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이 자식은.. 가끔 내게 웃음이 쏟아져 나오게 만든다..
"학교 멀지 않아?"
"그런데로 괜찮아. 너도 그렇지 않아?"
"응. 나도 그런데로 괜찮아."
이한이 빙그레 웃더니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발은 어쨌냐? 가방에 있냐?"
"잃어버렸어."
"그래? 뭐.. 그냥 이러고 다녀.. 이게 훨씬 더 예뻐. 머리는 검은 색으로 물들였네.. 그럼 됐지 뭐."
이한이 씨익 웃었다.
"넌 어째서 그렇게 잘 웃어? 웃음이 그 정도로 헤픈거야?"
"야. 말을 해도.. 헤픈게 뭐냐? 그냥 웃음이 많다 하지.."
눈을 약간 가늘게 뜨고 말하더니, 이한이 말을 이었다.
"난 그냥 좋은 사람과 있으면 자꾸 웃음이 나더라.."
"웃겨."
"에이쒸~ 그래. 잘못했다. 난 원래 웃음이 헤프다."
인상 찡그리는 그를 보면서 나는 드디어 웃음을 터트렸다.
"야~ 너도 웃을 줄 아는 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하도 빤히 쳐다봐서 나는 금방 웃음을 지워야만 했다.
"너..그런데 이중 생활 하다보면 찔리지 않아?"
"이중 생활? 내가?"
나의 질문에 이한이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너 학교에서는 범생으로 알고 있잖아.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아니지?"
"그러는 너는? 너의 이중 생활은 어때?"
"나? 난 이중 생활 아니야. 담임도 어차피 다 알고 있을테고.. 난 티만 안내고 있을 뿐이지.."
"담임도 어차피 다 알아? 너 전적이 아주 화려한 모양이구나?"
이한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화려? 글쎄.."
"흠."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떡거리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뭐가 또 흠이야?"
"글쎄라는 말에 어느 정도의 뜻이 내포되어 있나 해서.."
"넌 어디 가는 길이야?"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나는 다른 말을 꺼내었다.
"친구 녀석들하고 저 쪽에 있었는데.. 빌어먹을 영권이 자식이.. 아, 그런 사람 있어. 너도 아마 한 번쯤은 봤을 거야..아무튼 자꾸 귀찮게 굴잖아. 그래서 그냥 나와 버렸어."
"너랑 저번에 연못가에서 얘기했던 사람?"
"어? 아는 구나.."
"원치는 않았지만, 들어버렸어."
"좀 이상한 자식이야.. 자꾸 나한테 선배대접 받길 원해. 태정 선배가 없어서 그런 모양이야.. 아주 지 세상 만났어."
"태정 선배가 누구인데?"
"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배."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넌 어디 가는 길이야? 아직까지 교복 입고 있는 걸 보니까 집에 갔다가 나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집에 가는 길이야?"
"그럴까해.. 이 꼴로 어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 꼴로 갈 수 있는데를 데리고 갈까?"
"응?"
이한의 말에 난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따라와."
갑자기 손을 잡아서 나를 끄는 이한에게 난 얼른 손을 빼었다.
"함부로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날 힐끗 바라보는 이한에게 나는 그렇게 말하였다.
그는 별말 안 하더니, 그냥 씨익 웃고는 '이 쪽으로 와'라는 눈빛으로 날 이끌었다.
[ 7 화 ] 변하지 않은 세상...part..2
그가 데려간 곳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조금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아니, 불안보다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었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간 그 장소에 도착하자 내 속에서 울렁거리던 것이 폭발했다.
"왜 그래?"
나의 표정을 보면서 이한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냐.. 아무 것도.."
난 가만히 제일 높은 곳으로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이 곳은 이 동네 주민들이 가끔 모여서 운동을 하는 운동장 같은 공간이었다. 한 쪽 편에는 축구대도 보였고, 또 다른 쪽에는 농구대도 보였다.
관람객들이 보기 편하게 주변에 계단도 멋지게 있었다.
제일로 높은 계단에 올라가면 우리 동네가 다 보인다. 이 곳은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난 가만히 서서 아래쪽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가끔은 이 곳에 와.. 이 시간이면 여긴 텅텅 비거든.."
"응."
알아..
"어떻게 생각해?"
"뭐가?"
켜져 있는 촛불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느껴지게 하는 도시속의 야경이었다. 입으로 후 불면 다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세상.."
"세상?"
나의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한에게 몸을 돌려 난
그가 앉아 있는 옆에 앉았다.
제일 위의 계단 밑으로 어두운 운동장이 보였다.
"어차피 죽을건데.. 왜 그렇게들 복잡하게 사는 것일까.."
"죽는 거는 누구나 같지.. 사는 것만 약간씩 틀려도 어차피 같은 거야.. 누구나 매일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같잖아...그래도 삶이란 건 자신만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 거잖아."
"세상은 변하지 않아. 나 이렇게 힘들어도..답도 주지도 않고.."
"류 빈."
그가 조용히 불러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변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 각자 사는 거야.. 자신의 삶을 변하게 하고 싶어서.. 누구나 적게는 한 가지라도 힘든 건 다 있는 거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될지는 본인만이 답을 아는 거야.."
"넌 그래서 답을 아니?"
"아니.. 모르니까 이렇게 복잡하게 살지."
나를 보면서 이한이 씨익 웃었다. 나도 피식 웃고 말았다.
"우리.. 18살밖에 안되었데.."
"괜찮아. 아직은 18살이니까.."
나의 말을 고치면서 하는 말에 나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한."
"왜?"
"사이코라고 해서 미안해."
그가 웃으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봤다가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류 빈."
"응?"
"락바에서 놀려서 미안해."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왠지.. 같은 이중 생활 하는 사람들끼리는 잘 맞는 거 같다. 그치?"
"누가 들으면 같이 사는 지 알겠다."
나의 대꾸에 이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도 결국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한참동안 웃
었다.
그래.. 어차피 변하지 않아.. 세상은..
그래도.. 난.. 내 삶의 답을 만들면서 살면 되는 거야..
기다릴 사람은 계속 기다리면 되고..
나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살면 되는 거야..
어차피 내 꺼 잖아.. 내 삶은.....
[ 8 화 ] why?...part..1
교실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 과장하자면 모두들 경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빈아?!"
은진이의 놀란 음성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왜들 이러지?
난 아이들의 시선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내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으니, 갑자기 여자애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너 머리 길었어?"
"야~ 너 머리 진짜 예쁘다."
"너 가발 쓰고 다녔던 거야? 왜?"
아.. 머리..
난 무의식적으로 내 머리를 쓸었다.
모두들 호기심과 의아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별로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끊임없이 답을 요구하는 눈빛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빈이.. 우리 학교가 단발령인지 알았었대.. 그래서 처음에 가발을 쓰고 온 거야..나 같아도 이런 머리 자르지 못하겠다...모.."
은진이가 아이들 사이를 뚫고 나와서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가만히 은진이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구나. 요즘 단발령인 학교가 어디 있어?"
"있는 학교 있어."
"정말? 너무 한다.. 피 터지게 공부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머리까지 내 맘대로 못하냐?"
아이들은 내 주위에서 계속 수다를 떨었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은진이가 살짝 윙크를 했다.
"그런데 빈아. 너 머리 진짜 예쁘다..머리결도 진짜 좋다."
"이 머리에 염색하면 진짜 더 예쁘겠다. 만져봐도 돼?"
모두들 그렇게 감탄하면서 나를 쳐다봐서 나는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 때, 나의 시야에 뒷문으로 들어서는 낯선 여자애의 모습이 들어왔다. 분명 반에서 처음보는 여자애였다.
약간은 탈색이 된 듯한 갈색 머리에 눈초리가 상당히 사나운 그녀를 보면서 호기심이 일어났다.
"어? 조 다원 왔네."
내 앞에 몰려 있던 애들이 그녀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조 다원?
"언제 들어온 거야?"
"들어오면 뭐해? 또 나갈게 뻔한데.."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 머리 또 염색했나봐. 장난 아니게 탈색되었다."
"진짜 꼴불견이다."
"깡도 좋아. 저러고 학교에 올 생각도 하고.."
빌어먹을.. 시끄러워 죽겠네..
"너희들 자리 가서 떠들어."
난 조용한 음성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원이라는 애의 시선도 느껴졌다.
그녀도 물론 나를 처음 볼 테니까 뚫어져라 응시했다.
"빈이 책상 앞에서 너무들 수다를 떨어.. 너희들.."
은진이가 나의 행동을 무마하려는 듯이 애들의 등을 떠밀었다.
난 그런 은진이의 행동에 피식 웃고 말았다.
누군가가 계속 날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다원이라는 애와 눈이 마주쳤다.
뭘 하자는 거야?
눈싸움이라도 하자는 거야?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를 보면서 난 기가 막혔다.
난 무시해버리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머리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내일 모레면 기말 고사잖아. 기말 고사 끝나면 방학이라서 좋긴 좋지만.."
식당을 나서면서 은진이의 투정이 들렸다.
"방학엔 뭐 할건데?"
"이건 비밀인데...너만 알고 있어."
"응."
"학원 다닐 거야."
"정말.. 어차피 다들 그럴 거 아니야? 나 같은 애만 빼고.."
"만화 그리는 학원 다닐 거라고.."
"응?"
난 눈을 살짝 치켜 뜨면서 은진이를 바라보았다.
"사실.. 난 만화를 그리고 싶어. 만화가가 되고 싶어.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그림을 못 그리게 해. 하지만, 나.. 이번 방학에는 정말 학원에 등록해서 본격적으로 해볼거야."
"열심히 해봐."
난 그녀의 등을 툭 쳤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확실하게 말하는 그녀가 부러웠다.
"빈아..넌 뭐하고 싶어?"
연못가로 오니, 많은 애들이 벌써 벤치를 장악하고 있었다.
"뭘? 꿈 얘기하는 거야?"
"응."
"나? 난 없어. 어차피 시간 가는 대로 있을 뿐인데.. 뭘.."
"그래도 무언가 바라는 점은 있을 거 아니야."
바라는 점?
"없어."
그가 내 앞에 나타나는 거...
난 가만히 연못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차라리 교실이 더 낫겠다. 안으로 들어갈래.."
교실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가는데 나의 시야에 조 다원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애, 도대체 뭐야?"
난 아까처럼 날 응시하는 그 애를 바라보면서 은진에게 물었다.
"누구? 아~ 조 다원."
은진이가 다원의 모습을 보고 말을 이었다.
"너 전학 오기 전에 가출했었어. 쟤는 가출 매니아라고 불러. 워낙 가출을 자주 하거든. 그런데 저 애, 너 보는 거 같아. 빈아."
"신경 꺼."
눈빛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난 무시하고 그 애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류 빈."
갑자기 등뒤에서 그애의 목소리인 듯한 음성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 8 화 ] why?...part..2
난 고개를 돌려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키가 좀 작은 편이었고, 체구도 왜소했다.
"얘기 좀 해."
"너 나 알아?"
은진이도 조금 놀란 듯이 나와 다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다면 알지. 너.. S 여중 짱 먹고 나온 애 맞지?"
다원의 말에 내가 오히려 놀랐다. 그런데 은진이가 더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너 어떻게 우리 학교야? 다른 학교로 알고 있었는데.. 전학 왔다면서?
왜? 사고 쳤니?"
"용건이 뭐야?"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다원이라는 애가 나한테 뭘 바라는 지도 모르겠고..
"얘기 좀 하자고.."
"좋아. 가자."
다원이가 먼저 몸을 돌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아가려고 몸을 움직였다.
"빈아. 빨리 와."
은진이가 내게 살짝 웃어 보였다.
다원의 알 수 없는 행동보다 은진이의 행동을 난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리고 나는 다원이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면서 그녀가 가는 길로 따라 갔다.
그녀는 강당 안으로 들어가더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어간 곳은 강당의 옥상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네..
난 옥상의 담에 팔을 올리면서 내려다보이는 학교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강당과 가까이에 있는 연못가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줄까?"
다원이 교복 치마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내게 내밀었다.
"아니. 안 펴."
"안 펴? 의외네.."
"목이 따끔거리고, 편도선이 부어. 담배를 피면.."
"그래?"
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다원이 길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아 내뱉었다.
"날 어떻게 알았어?"
"널 알았었으니까.."
난 의아하다는 듯이 다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널 좋아했었어."
진지한 그녀의 눈동자가 내게 꽂혔다.
"뭐?"
내가 순간 놀란 표정을 짓자, 다원이 깔깔대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첫인상은 상당히 사나워 보였는데 그렇게 웃으니까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 보였다.
"놀랐어?"
재미있다는 듯이 다원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놀리는 거야?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기분이 좀 안 좋아졌다.
"놀리는 거 아니야. 정말이야. 널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 나 중학교 A 다녔어."
A? A라면 내가 나온 중학교하고 상당히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우연히 널 봤어. 너랑 어울려 다니는 애들과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몇 번 봤어."
다원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좋아했다고? 왜?"
그냥 웃으면서 그녀는 날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날 좋아한다고?
진짜일까?
"처음 봤던 모습이 그랬던 거 같아.. 어떤 애들이 조그마한 초등학생 애들을 삥 뜯고 있었는데.. 네가 가서 뭐라고 하더라. 그리고 돌려보내는 모습을 봤어. 그 모습이었던 거 같아. 너 멋있었거든."
"기가 막혀.."
난 어이가 없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날 쳐다보는 그 애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이건 또 뭐야..
"어떻게 가출해서 돌아오니, 네가 같은 반일까.. 정말.. 놀랐어. 기쁘기도 하고.. 나 정말로 너 좋아하나 봐."
"이상한 얘기하지마. 난 여자끼리.. 그런 거 취미 없어."
차갑게 말을 한 후에 나는 몸을 돌렸다.
"나.. 너한테 바라는 거 없어. 정말이야.. 그냥.. 좋아서 그래."
"정말 이해할 수 없군."
난 더 이상 다원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바로 그 곳에서 나와 버렸다.
뭐야.. 도대체..
가출해서 돌아왔다는 애가 나에게 갑자기 말을 시키더니..
좋아한다고..
그것도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건 억지야..
뭐 하자는 거야..
"빈아."
교실안으로 들어가니, 은진이가 바로 내 옆으로 왔다.
"다원이는?"
"몰라."
"담임이 학생부로 오라던데.. 아마도 근신일거야.. 저번에 가출해서 돌아왔을때도 그랬는데.."
은진이가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내게 몸을 숙였다.
"나 멀리 하지 않을 거지?"
은진이가 내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난 고개를 돌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까 다원의 말 때문인가?
"넌.. 내게 왜 그러는 건데?"
아.. 그 조 다원인가 하는 애한테 이상한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갑자기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친구이고 싶은 건데, 이유가 왜 필요해.."
은진이가 환하게 웃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왜 라는 것은..사람 감정에 필요 없는 거야...
그런데.. 아무래도 다원의 감정에는 '왜'라는 이유를 자꾸 묻고 싶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게 첫 번째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