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슴속에 사랑의 씨를 뿌리는 정의 미학 [현대비평] - 최원현 고동주 수필선집 <동백의 씨>
최원현 1
수필은 작가의 내밀한 체온까지 전해지는 문학이다. 해서 수필은 사람다움을 중시하는데 사람다움은 인간애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그것은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사람답다는 판단은 누가 하는가. 판단하기에 앞서 어쩌면 먼저 느껴지는 것일 게다. 결국 자기 스스로가 먼저 느낌으로서 판단하고 다음에 남으로부터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곧 나다움이라는 것은 설혹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있을 지라도 진솔하게 자기를 드러냄이고, 그런 진솔함이 보다 나은 자기를 이루어 가게 하는 것인즉 '수필이 곧 사람'이란 말도 자기 성찰의 문학이라는 것이리라.
고동주의 수필집 <동백의 씨>에는 모두 34편의 수필이 실려있다. 그간 펴낸 수필집들에서 뽑아 실은 것들이지만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로써 고동주의 문학성, 인간됨, 삶의 자세,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늠해 보는데 충분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지만 표나게 종교를 거론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의 면면에 흐르고 있는 정서는 이 날까지 지쳐온 삶의 여정에서 체득한 지혜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에 짙게 깔려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친화와 조화로운 하나됨을 중시하며 인간 본성으로부터 경외심을 갖게 하는 그의 사상은 사랑인 것이다.
수필은 삶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누구에게건 삶은 주어지는 것이고 나름의 빛깔과 크기와 냄새를 갖기 마련이며 소리와 맛을 지니기도 한다. 각기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마다 가장 소중한 자기의 삶인 것이다.
고동주의 수필은 늘 눈물이 고이게 한다. 그러나 그 눈물은 슬픔이나 아픔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고통을 이겨낸 감사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다. 수필마다에선 그의 냄새가 짙게 풍겨나는데 고향냄새로, 유년의 그리움 내로, 그리고 발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맨발로 걸어온 그의 삶의 길에서 솟아난 싫지 않은 땀 냄새이다.
'험난한 세상에 혈혈 단신으로 남은 어린 조카를 거두어 바람막이가 되시고, 비빌 언덕이 되시고, 마음에 지주가 되어주신 어른' (수필 꽃다발 중)
그는 숙부의 따듯한 마음과 손길을 가슴 가득 느끼면서 '성상'(聖像) 이란 표현을 쓴다. 그는 민선시장 취임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꽃다발을 숙부의 가슴에 안겨드린다. 이 날이 있게 된 것을 모두 숙부께 돌리는 그의 마음이다. 장내는 커다란 박수로 가득 찼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다는 것은 이렇게 감동적이다. 수필이 삶의 이야기라지만 사실은 삶 자체가 수필인 것이다. 그렇기에 바르고 참되게 살아온 사람의 수필에선 그 맛, 그만의 향기가 짙게 풍겨난다.
< 그 아픈 이야기>에선 작가의 아픔이 그대로 배어난다. '밤하늘의 달과 심해의 어둠이 만들어낸 역설의 광채', 고동주의 수필에선 이런 아픔이 찬란한 생명력을 잉태하고 그것이 승화하는 눈부신 아름다움이 되어 감격으로 넘쳐난다.
또 고동주의 수필에는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잘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늘 소망을 공유한다. 바라보이는 것들에서 그는 쉽게 자신의 살아온 아픔과 슬픔을 보게 되지만 이내 새로운 소망의 빛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진주 층이 눈물처럼 쌓일 때마다 아픔을 배우고 그런 아픔을 이겨내는 진주조개처럼 신비로운 진주 빛 글을 남기고 싶다.'(그 아픈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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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주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전형적인 공무원으로 1984년에는 근정포장을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이 시대의 참으로 모범적인 공무원이다.
그는 1995년 민선 초대 통영시장으로 당선되었고, 1998년 민선 2기 통영시장으로 재선의 영광을 안았다. 뛰어난 행정가이기보다는 그가 겪어온 삶의 순간 순간들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게 만들기 때문인데 그런 그의 마음이 유권자인 시민들의 가슴으로 전해진 결과이리라. 그의 수필 한 편 한 편 속에 나타나는 마음과 생각, 곧 그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198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과 <한국수필> 천료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그는 등단하던 해에 첫 수필집 <파도에 실려온 이야기>를 내었고, 4년 후 해외 여행에세이를 모아 <하얀 침묵 푸른 미소>를, 그리고 다시 2년 후엔 수필집 <사랑 바라기 >를 내었으며, 지난 98년엔 각종 연설문들을 모은 <행복이 어떤 모양인지를 아무도 모릅니다>를, 다시 이번에 선집 <동백의 씨>를 내었다.
선집의 제목인 <동백의 씨>는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품인데 동백의 섬 고향마을을 찾은 이야기로 고동주의 어릴 적 고향과 가난과 외로움 속의 성장환경을 눈에 보듯 그리고 있다.
정목일은 고동주의 수필에 대해서
'그는 정과 인연을 무척 아끼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고독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자신의 삶을 혼자의 힘으로 개척해온 그로서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고싶어하며 그러한 삶을 갈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인간에게 따스한 체온을 느끼게 하며, 고독하고 외로운 이의 손길을 다정히 잡아주려는 휴머니즘이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그렇다. 고동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곳에서 독백처럼 하고 있다. 그러나 한참 있다보면 어느새 그의 주위로 사람이 몰려들어 그의 이야기 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게 한다. 아니 그의 손을 덥석 잡는다. 뿐 아니라 한 편의 수필이 끝나면 읽은 이의 가슴속에 씨앗 하나씩을 심게 한다. 그가 그렇게 한 것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따라한다.
수필 <군불>은 아버지 같은 숙부의 정을 더욱 짙게 느끼게 한다. 그의 가슴에 아무리 추운 겨울밤에도 꺼지지 않은 불씨 하나를 안고 살아가게 하고 있다. 숙부는 고동주의 오늘, 고동주의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받침대였다. 그가 삶의 지게를 지고서 너무나 힘이 들 때 그래도 잠시 내려놓고 숨돌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지게 받침대가 되어 주었고, 정신적 고향 같은 존재였다. 오직 하나 고마운 분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는 그것을 작품의 여러 곳에서 말하곤 한다. 그렇게 고동주의 수필은 그의 인간됨과 따스한 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강이 흐르게 한다.
고동주 수필의 특성은 짙은 서정성이다. 새벽 미명, 세상이 잠들어있는 시간에 저만치서 붉어지는 일출의 신호를 혼자서 보는 것처럼 삶 속에 맑은 영혼의 바람을 불게 한다. 자신의 삶과 사상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수필이 가장 빠지기 쉬운 신변잡기적 나열을 고동주는 오히려 시어(詩語)보다 더 맑은 서정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문학성을 살리고 독자의 심금도 울린다.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바람소리>는 예향 통영의 목민관으로서 그곳에서 태어난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을 통영의 숨결로 살게 하여 고향의 바람소리가 되게 하고자한다.
'그는 음악은 물결처럼 흘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당신은 멀리 갔어도 생전에 빚어놓은 예술의 혼은 고향의 바람이 되어 유럽의 화려한 옷으로 단장하고 이제 우리 곁에서 불고 있다. 내년에도 이맘때가 되면 한려해상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동산에서 그의 음악회가 다시 열릴 것이다. 선생의 숨결 같은 고향의 바람소리, 그 근사한 음률이 해마다 울려 퍼지게 된다면 내 고장 통영은 분명 품위 있는 음악도시로 거듭날 수 있으리니...'
그의 꿈은 자신에게서도, 그가 지키는 고향에서도, 그가 목민관으로 섬기고 있는 한 도시에서도 일관되게 한 송이 탐스런 꽃으로 피워내고 있다. 바로 고동주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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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주의 수필은 성찰의 문학이다.
'그날 그날의 건반을 어김없이 짚었으면서도 고저도. 강약도, 멋도 없이 그저 시끄러운 단음처리로 꿈인 듯 스쳐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본다.' (연주자의 꿈 중)
'이제 연주의 후미 부분이 가까웠는데도 스스로 연주자임을 망각한 채 어처구니없이 마른 강둑에 앉아 길어져 가는 산그늘만 바라보는가.' (연주자의 꿈 중)
'욕심으로 얼룩지고 순리도 거역하면서 내면을 자신 있게 드러낼 수도 없었던 자신을 뒤돌아본다. 미풍처럼 나무를 즐겁게 해주는 재주도 능력도 없으니 어찌하랴.' (만남의 의미 중)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환경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나 자신도 그런 세정(世情)에 물들었음인지 아직도 군불을 지피지 못하여 외롭게 떨고 있는 다른 가슴들을 찾지 못했다. 못 찾는 것이 아니고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군불 중)
단순한 일상의 보고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내며 꼭 자신의 모자람을 발견해 내면서 그 모자람을 통해 자신이 겪어온 쓰리고 아픈 삶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다독이고 아물려 주고파 하는 인간애로 승화되는 아름다운 성찰인 것이다.
고동주의 수필에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가슴에서 가슴으로만 전해지고 들려지는 소리이다. <귀뚜라미 소리>, <홀로 우는소리>, <그 기적소리>, <대바람소리>, <바람소리>, <종소리>, 그리고 <연주자>, <낙조의 노래를 들으며> 등 제목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소리에 예민해 있는가를 쉽게 알게 된다.
< 귀뚜라미 소리>에서는 나만의 특성을 지닌 나만의 소리를, <홀로 우는소리>에서는 지나치면 소음이 되지만 보살피는 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정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대바람 소리>에서는 잃어져 가는 우리의 옛 소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
그의 수필을 통하여 그가 크게 소리내어 울고 살아오기 보단 늘 속으로 흐느끼며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보살피는 정이 없으면 들을 수 없다. 가난이라는 체험이 없어도 들리지 않는다. 사랑이 메마른 가슴은 전혀 들을 수 없고 고독을 모르는 자에게는 더욱 들리지 않는다' (홀로 우는소리 중)고 소리의 의미를 정의한다. 그의 삶은 늘 '비우며 사는 삶'이요, '마라톤 선수처럼' 사는 삶이었다.
'과감히 가려내고 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삶의 향기와 빛깔을 제대로 빚어낼 수 있으리. 비우고 또 비운 자리에 나도 무욕의 호수 하나쯤 가꾸어 간직할 수 없을까.' (비우며 사는 삶 중)
'15만 시민을 대표해서 아베베처럼 맨발로라도 뛰고 또 뛰어야 한다. (중략) 철저한 천치 바보로 되는 한이 있어도 묵묵히 그리고 끈기 있게 뛰고 또 뛰어보리라.'(마라톤 선수처럼 중)
고동주의 수필은 자연 속의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어 조화를 이루는 모습으로 창조의 질서를 소리 없는 외침으로 독자의 가슴에 심고, 스스로는 그 실천자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진실과 사실이 가슴을 맞댄 그의 수필세계인 것이다. 해서 그는 그의 글을 '가슴으로 쓰는 글'이라고 말한다. '작은 감동이라도 전달할 수 없는 글이라면 차라리 쓰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생각', 그것은 철저한 '장인 정신'같은 그의 수필정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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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기 마련이다. 수필은 그런 아픔, 슬픔, 고통, 외로움을 많이 겪은 사람이어야 쓸 수 있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손으로도 느껴서 문자화 할 때 감동도 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동주는 다분히 정감 넘치는 수필을 쓸 조건 속에서 자라온 셈이다.
고동주 수필에서 자연과의 만남은 도 하나의 특징이 되고 있다. 보는 것까지도 만남으로 보며 그런 만남을 통해 자연과의 하나됨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에 대한 겸허한 자세요.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이다. 태어나서 자란 곳 그리고 그의 삶 내내 울타리를 하고 그곳에서 숙명처럼 사랑하고 봉사하며 붙들고 있는 한려수도는 일찍 여위고 만 어머니의 가슴처럼 아니 그를 탄생시킨 자궁과도 같이 그곳에 있게 하고 있다.
그의 정서는 늘 소박하여 전혀 낯설지 않다. 군불, 박꽃, 고향바다, 성묘길, 허수아비 등 그냥 듣기만 해도 우리의 가슴에 정겨움으로 따스하게 해주는 단어들 아닌가. 그만큼 고동주의 수필은 소박미를 가득 품고있다. 특히 많은 수필들이 고향을 소재로 다루면서 농촌의 고향을 그려온 데 비해 고동주의 수필은 바다가 있는 고향을 그려 더욱 이채롭다.
문학이 이르는 최종 목적지는 감동으로 이어지는 진실의 세계일 것이다. 감동을 통해 인간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그것은 작은 창조를 이루어 보다 나은 세계를 열게 하는 것이리라.
결국 '훌륭한 문학작품은 자기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고,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인간을 이해하고, 이해의 범위를 확충하려는 노력에 의해서 결실된다.'(윤재천)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찾아내어, 그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는 작업이 문학의 사명이며 나아갈 길'(윤재천)이기 때문이다.
고동주의 수필은 바로 자기 자신을 감동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곧 그것은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이들에 대한 동질감과 사고의 동화를 가져오게 함으로써 체험을 공유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작가의 상상의 배에 독자가 동승케 하여 더 많은 작가의 세계에 독자를 초대하고있다.
고동주의 수필은 따스한 눈빛, 따스한 가슴, 다정한 목소리를 느끼게 하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직접 말해 주지는 않고 가만히 알아차리게 해 준다. 그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배려가 수필마다에서 새록새록 정감으로 피어오른다. 삭막한 현대라는 얼음판 위에서 누군가의 체온에 의해 따스하게 덮혀진 차돌맹이 하나를 받아 쥔 것 같은 따스한 늦은 오후의 한 때를 맞는 기분 좋은 나른함을 느긋하게 맛본다.
수필은 인간 본질과 진실을 향한 탐구와 규명일진데 곧 자기의 맛과 냄새와 분위기를 글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동주의 수필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 수필과 비평>> 2001.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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