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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간에 내린 하늘의 뜻
사람 그림이라. 인간의 초상화이다. 그러나 사람의 얼굴을 그리지는 않는다. 인간에 비친 하늘의 얼굴을 그린다.
사람 그림은 강륜도설綱倫圖說ㆍ희보길상喜報吉祥ㆍ장수송축長壽頌祝ㆍ은일신선隱逸神仙으로 나누어진다.
강륜도설에서는 천명을 받아 지상에 살기 위한 윤리가 어떠한 범주에서 움직이는가를 알아본다. 희보길상에서는 하늘의 기쁜 소식이 인간에 깃들이기를 원하는 그림을 살펴본다.
장수송축에서는 하늘의 뜻이 내린 지상에서 오래오래 살아 영화를 누리리라는 염원을, 은일신선에서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다가 죽어 하늘나라로 돌아가리라는 이른바 귀천사상을 파고들게 된다.
귀천歸天는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한글 사전을 보면 ‘사람의 죽음’이라 풀이가 되어 있다. 동이의 시대에는 가매장을 하여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가족장을 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죽음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귀천사상은 바로 하늘사상이다.
동양사상의 근본은 하늘사상이다. 천명이라 하늘이 명하는 바요, 천기라 하늘이 내리는 기틀이다. 봉건 왕조와 봉건사회는 그러한 천명과 천기의 바탕에서 최근세까지 명맥을 이어 올 수 있었다. 궁중행사도는 천명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만조백관이 부복하고 있다. 마치 임금이 납시기를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용상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임금님은 어디 계시지? 투명인간처럼 용상에 앉아 계실 수도 있다. 사실 옛 그림에서 임금은 종종 그려지지 않고 대신 용상이나 태양으로 그려지기도 했었다.
이 그림은 엄청난 규모의 임금 행차를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위엄을 부릴 수 있는 배경에는 천명을 이어받았다는 정통성에 대한 신념이 자리한다. 궁중행사도는 인간 세상에 내린 천명을 확인하는 그림이다. 임금에 내린 하늘의 뜻은 임금을 통해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궁중행사도. 땅 위에서 하늘을 버틴 사람이 왕이다. 그래서 높다. 천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엇을 명했을까. 어떻게 천명을 받은 줄 알았을까..
마찬가지로 궁중행사도이다. 남면이라 했다. 그림의 위쪽이 북쪽이다. 신하들은 북쪽으로 부복 배례를 한다. 임금은 왜 북쪽에 있지?
위수조어도渭水釣魚圖는 위수에서 낚시질을 하는 강태공을 그린 그림이다. 천하의 인재를 찾아다니던 문왕이 미늘 없는 낚시를 드리운 이상한 낚시꾼을 방문한다.
평생 그 순간을 기다린 야심가의 경제제민ㆍ부국강병책이 육도六韜라는 이름으로 패기만만한 제왕을 압도한다. 태공망 여상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육도는 문文 무武 용龍 호虎 표豹 견犬의 도韜를 말한다. 문도 무도는 치국ㆍ용도는 기변ㆍ호도는 용맹과단ㆍ표도는 기계奇計ㆍ견도는 돌진이 주제이다. 육도는 보통 삼략三略와 함께 논의 된다. 삼략은 황석공黃石公가 편찬했다 전한다. 육도삼략이다. 오늘날도 지략과 병법으로 통한다.
강태공의 고사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봉건시대의 인재 발굴 관행이다. 과거나 추천을 통해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동양의 관행이었다. 재야의 인사를 영입하는 것은 악천顎薦이라 했다. 물새가 물고기를 챈다는 말에서 나왔다.
놀던 물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변은 부암판축도傅巖坂築圖 즉 고종몽부열도에서 볼 수 있다. 고종이 꿈에 본 부열의. 몽타주 그림을 그려 부암의 뜰에서 판자 사이에 흙을 다져 넣어 길을 만드는 판축을 쌓고 있는 부열을 만난다. 부열은 고종의 재상이 된다.
봉건 사회에서 만인의 위에 군림하는 왕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은 신분의 수직 상승을 의미한다. 왕에 의해 선택될 가능성에서 나아가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충성의 개념이다. 그 관행을 만든 것이 요 임금이다.
요임금이 동이족의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양위라 했다. 재야에서 어진 사람을 찾는 전통은 바로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군주의 마음이자 덕이었다. 강태공이나 부열이 신분의 수직상승을 이룰 수 있었던 뱌경에 동이의 정신이 있다.
위수조어도
부암판축도. 천명은 범주가 결정한다. ‘꿈에 남자를 보았다. 동북쪽에 있더라. 길을 닦고 있더구먼’ 그렇게 부열은 천명을 내려 받았다.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는 세 번 누추한 초가집을 돌아볼 만큼 정성을 기울였다는 뜻을 담았다. 유비가 남양南陽의 야인 제갈량을 찾았다는 고사를 그렸다.
삼국지연의에 제갈량은 지모와 경륜과 인품에서 고금의 유례가 없는 신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적벽대전에서 연환계로 묶은 조조군의 선단을 화공으로 격침하면서 동남풍을 부른다. 칠종칠금이라 만족의 장수인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 준다. 그러나 천기를 어찌 거스리랴. 삼국은 조조의 위나라에 통일된다.
역사가 이긴 자의 것이라면 오나라의 손권과 한나라의 유비는 패장이다. 그런데도 삼국지연의를 지은 나관중은 유비와 의리 형제들인 관우ㆍ장비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아예 삼국지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 이유가 뭔가. 유비가 한 종실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나관중의 시각에서 보면 한漢나라가 정통을 이은 나라였다. 정통성이라, 누가 결정하던가. 하늘이 내린다. 바로 천명天命라는 게다.
그런데 한국에서 삼국지는 동양고전이 아니라 ‘열 번을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도 하지 말라’는 불후의 고전이 되어 있다. 재미도 있겠지. 그러나 한 종실의 정통성을 강조한 나관중의 개가라고나 할까. 사실 서안의 한나라 유적 유물을 보면 우리의 신화와 원형이 보존되어 왔다는 감회에 젖게 된다.
천명이란 하늘이 명하는 바이다. 하늘은 말이 없다. 때로 조짐을 보일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정통성이란 동양에서 가장 중요한 대의명분이다.
왕실과 왕족의 운명, 국가와 사직의 장래가 모두 하늘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신봉한 금과옥조이다. 모든 왕은 천명의 노예였다. 천명을 타고 났다면 오죽이나 좋으랴 마는 만약 타고나지 못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천명을 조작하고 만다. 결국 결과에서 볼 때 왕은 천명을 타고난 인간의 것이 되고 만다.
하늘이 무엇인가. 인격화한 우주의 질서이다. 그 하늘의 뜻을 거스리지 않으려고 온갖 지혜를 기울였다. 왕의 치세에서 배놓을 수 없는 것이 천명天命의 천명闡明이다. 귀감이 될 만한 사적인 그려지는 이유는 결국 천명이 자기 것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홍보 자료를 세상에 펼치는 일이다.
삼고초려도
장판파의 장비는 단신으로 적병을 물리친다. 고슴도치도 구르는 재주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장비는 군신으로 추앙받지 못한다.
화용도의 관우는 제 목을 담보로 조조를 살린다. 의리의 사나이 관우는 군신이 되고 제갈량은 신기묘산의 모사가 된다.
수양채미도首陽採薇圖는 천명을 따라 살다 죽으리라는 염원과 동경을 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교화용으로 제왕ㆍ비빈ㆍ성현 등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실록에는 요ㆍ순ㆍ우ㆍ탕ㆍ고종ㆍ문왕ㆍ무왕ㆍ당태종의 귀감이 될 만한 사적을 그린다 했다.
모두 훌륭한 제왕들이다. 주문왕의 후비ㆍ선왕의 강비 등은 비빈의 수범이 되는 사례로 그려졌다. 조선조가 워낙 중국을 사대의 예로 모셨으니 궁중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은가? 그래도 하한선이 당태종이라는 점이 석연치 않다.
다른 민화를 보자.
이교납리도圯橋衲履圖는 한고조 유방의 신하인 장량과 황석공黃石公의 일화이다. 젊은 시절의 장량이 이교를 지난다. 늙은이가 신발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린다. 주워 드린다. 또 떨어뜨린다. 세 번을 주워 드리니 늙은이는 책을 내민다. 그 책이 소서素書였다.
“누구시나이까”
“나를 알려면 아무 아무 곳의 땅을 파보아라”
늙은이는 사라진다. 장량이 땅을 파자 사람형상의 누런 돌이 나왔다. 하여 황석공이라 했다. 황석공은 경세제민 부국강병의 병서인 삼략의 편자로도 알려져 있다. 장량은 황석공의 가르침대로 공을 이룬 후 은퇴하여 신선이 되었다 했다. 역시 민화의 소재이다.
수양채미도를 다시 보자.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따는 그림이다. 불의와 불충과 불효에 저항하여 고사리를 캐 먹다가 주려 죽은 이제夷齊의 고사에서 온다. 공자는 이제를 요순과 함게 최고의 성인 반열에서 추앙하였다.
이런 중국 이야기가 꽤나 민화에서 그려졌다. 정녕 그것이 중국 이야기인가. 민초들이 그린 것은 우리 이야기였다.
강태공은 동이족이라 했다. 사기史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의하면 여상呂尙는 백이伯夷의 후예로 산동성 해안 출신이다. 산동성은 동이의 무대였다. 장량은 박랑사博浪沙에서 창해역사와 함께 진시황을 습격하나 실패한다.
창해역사는 동이의 나라 창해군滄海郡 사람이다. 백이숙제는 동이족의 나라 고죽국의 왕자들이다.
수양채미도
공자는 요순과 아울러 최고의 성인으로 이제를 치켜세웠다. 흐뭇한가. 이당이 그렸다고 하는 채미도이다.
이교납리도. 서당공부를 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태공 장량 백이숙제 기자 이야기를 듣게 마련이었다. 한학에서는 동이의 전통이 회자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점을 치니 죽기 전에 천자가 되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 앉으나 서나 천자가 될 날만 기다린다. 그러나 임종에도 천자가 될 기색이 없다. 냅다 고함을 지른다.
“황후야, 태자 불러라. 짐이 붕하신다”
그래서 자칭천자다.
하늘이 내린 천자라도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찌 얻어지랴. 이야기는 그렇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스스로 나아가더라도 하늘의 뜻이 아닐 때는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시애李施愛 이야기를 보자.
이시애는 조선 세조 때의 무신이다. 함경도 길주의 호족으로 세조의 중앙 집권 강화정책에 불만을 품었다. 반란을 일으켰으나 남이 장군이 이끄는 군사에 의해 토멸되었다. 참형을 받은 시체는 팔도에 효수되었다. 그 이시애의 손금이 황제가 될 뻔한 상이었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손금이 올라가면 황제가 된다 하여 이시애는 손금을 칼로 팠던 것이다. 천명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의지이다. 그러고 보면 자칭천자와는 서로 모순관계의 이야기가 된다.
따지고 보면 결과가 동기를 합리화하는 법이다. 만약 천자 상을 가진 자가 천자가 되었다면 천자는 하늘이 내린 것이 된다. 천명을 타고난 것이다. 천명을 받지 못한 자가 천자가 된다면 그는 천명을 조작한다. 용미어천가가 그러했다.
이성계는 고려조를 찬탈한다. 태종은 자신의 천명을 조작하기 위해 조상들을 신격화했다. 목조ㆍ익조ㆍ도조ㆍ환조ㆍ태조ㆍ태종을 해동육룡이라 했다. 이 조상찬가를 치화평ㆍ최풍형ㆍ봉래의ㆍ여민락 등 악보로 만들어 조정의 향연과 제사에 사용했다.
그것이 역사의 조작이다. 그러나 조작된 역사는 집권자에 의해 정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천명의 역사가 된다.
천명이란 하늘의 명이 아닌가. 남자가 아이를 낳았다 해도 천명이라면 그러려니 할 따름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했다. 남자가 아이를 낳다니 그 사연이 궁금하다.
천운이란 하늘이 운세를 내려주었다는 말이다. 동이족이 대륙을 지배했던 시절도 천운이었다. 대륙을 물려주고 반도로 물러앉은 것도 천운이었다.
종묘제례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제사지낸다. 태정태세문단세... 라 우리는 읊는다. 친자식과 형제를 시살하고 만들어낸 천명이 조선 5백년을 이끌었다.
26. 강륜의 문자그림
효제충신예의염치는 소박한 인간관계와 인격수양의 지침이 되는 덕목이다. 삼강오륜은 이들을 담는 그릇이다. 삼강오륜이 무엇인가. 답은 ‘떨어지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러니까 삼강오륜은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같은 것이다.
조선 시대의 삼강오륜은 조선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었다. 양반과 상놈, 백정과 머슴은 대를 이어 세습되었다. 삼강三綱란 무엇인가. 군위신강君爲臣綱ㆍ부위자강父爲子綱ㆍ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임금과 신하ㆍ부자ㆍ부부 간의 윤리규범을 규정한다.
강은 벼리이다. 그물을 위쪽으로 끌어 올릴 때 코를 꿴 굵은 줄이다. 그물을 당길 때 힘을 받는다. 임금과 어버이와 지아비가 벼리가 된다. 신하와 자식과 지어미는 그물이다. 종속적인 개념이 된다.
오륜五倫는 군신유의君臣有義ㆍ부자유친父子有親ㆍ부부유별夫婦有別ㆍ장유유서長幼有序ㆍ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군신ㆍ부자ㆍ부부ㆍ선후배ㆍ친구 간에 지켜야할 떳떳한 도리를 말한다. 의리ㆍ친애ㆍ분별ㆍ서열ㆍ신뢰이다.
삼강오륜의 사상은 공자에게서 나온다.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는 공자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죽기 전 소요하는 모습, 묘 앞에서 제자들이 애통해 하는 모습 등을 담고 있다.
스무 살에 처음 창고의 회계를 담당했던 직사위리職司委吏, 서른 네 살 때 주나라의 노담에게 가르침을 청했던 문례노담問禮老聃, 노와 제의 협곡회담에서 공자가 제의 경공을 제압하였던 협곡회제夾谷會齊, 기원전 479년 공자 사후 제자들이 삼년상을 지내는 치임별귀治任別歸 등의 화제도 있다.
제자들과 문도들이 공자의 덕을 기리기 위한 시각 교재였다. 나라에서는 교화용으로 삼강행실도ㆍ오륜행실도를 만들어 배포했다. 백성들은 효제충신 예의염치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중에서 으뜸은 효라 했다.
시골 혼례는 연기 나는 집에서 치러졌다. 동네 사람들을 두레와 동아리라는 이름으로 결속했던 농경 사회의 관례였다.
공부자성적도 중 치임별귀는 공자의 행적을 그린 그림이다. 공자의 교훈은 봉건 농경사회에 적용하기에도 힘겨운 것이었다. 헐거운 기성복, 그것은 공자가 요순을 이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자로부미도子路負米圖는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100리를 멀다않고 쌀을 지고 와 어버이를 공경하였다는 고사를 그리고 있다.
이 민화의 원본은 김홍도가 그린 오륜행실도이다. 원화와 비교하면 약간 구도가 바뀌긴 했지만 상황설정이나 등장인물, 그리고 배경이 같다. 오륜행실도는 조선 정도 21년에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수정한 색이다.
부자ㆍ군신ㆍ부부ㆍ장유ㆍ붕우의 오륜에서 모범이 된 사람 150명을 추려 그림을 덧붙인 책이다.
등장인물은 대부분 중국인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효자 네 명, 충신 여섯 명, 열녀 다섯 명이 수록되었다. 이를테면 의지의 한국인 혹은 자랑 스런 한국인만 수록된 것이다.
고려의 누백은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도끼로 때려죽인 후 호랑이 뱃속의 뼈와 살을 거두어 장사지낸다. 조선의 자강은 삼년상을 지내고도 무덤을 떠날 줄 모른다. 가족이 움막을 태워도 움쩍 않고 무덤을 지킨다. 조선의 석진은 자기 손가락을 잘라 악질에 고통 받는 아버지에게 달여 먹인다. 그렇게 병이 나아 효자로 수록되었다.
사실 중국의 끔찍한 효부ㆍ열녀ㆍ충신ㆍ열사의 열전을 주워 모은 것이 행실도라는 것이다. 쌀을 지고 백리를 다니는 것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호랑이를 때려잡아야 한다면 더 큰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평생을 어버이 무덤 옆에서 살아야 하고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를 먹여야 효도가 된다면 오늘날의 신세대가 아니더라도 고개를 흔들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범주였다. 위정자가 내세운 겁주기 작전의 일환이었다. 오늘날 읽어 보아도 끔찍한 사례들에 몸서리치면서 옛사람들은 어지간한 효도는 효도로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끝이 없는 갚음의 도리가 효도이다. 어버이가 나를 낳아 주었으니 그 은공이 하늘에 사무친다. 어찌 몸과 마음을 바치지 않을 수 있으랴. 효도뿐인가. 효제충신 예의염치는 자신을 닦기 위해서도 자신을 바쳐야 하는 봉건 윤리를 그림으로 그린다. 강륜문자도가 그것이다.
자로부미도
삼강행실도나 오륜행실도는 중국의 것을 조선에서 받아들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공자는 요순을 본받고 조선은 중국을 본받다니... 삼강행실도이다.
중국이 늙은 효자인 노래자는 때때옷을 입고 춤추어 팔순 노모를 즐겁게 했다. 그러나 조선이 상찬한 것은 하늘이 감동할 이야기였다.
강륜문자도 중에서 효제충신孝悌忠信이다. 효도와 형제우애, 충성과 신의로 풀이된다. 왕권이 중심이 되는 봉건 농경 사회의 대가족 제도에서 지켜야 할 덕목이다. 문자로 쓰고 그림으로 그렸다. 주로 아이들 방에 병풍으로 둘러쳤다.
효孝 자는 왕상고빙王祥叩氷ㆍ맹종읍죽孟宗泣竹ㆍ황향선침黃香扇枕 등이 소재가 된다. 지극한 효도는 하늘이 돕는다는 사상을 시각화한다.
제悌 자는 할미새척령鶺鴒ㆍ아가위상체常棣ㆍ버드나무가 소재이다. 할미새는 머리와 꼬리를 까딱까딱하며 걷는다. 날아갈 때 운다. 형제가 위급할 때 구원한다는 뜻으로 시경에 묘사된다.
아가위 역시 시경에 나온다. 꽃받침이 환하게 피어 형제의 우의를 연상케 한다 했다. 버드나무는 부모 사후 형제가 가산을 모아 함께 살았더니 뒤뜰의 버드나무와 느플나무가 붙어 자라더라 했다.
시경詩經은 서주西周의 시가들을 모은 것이다. 동이족의 입김이 드높은 시대의 노래들이다.
충忠 자는 어변성룡魚變成龍ㆍ하합상하蝦蛤上下ㆍ용방직절龍逄直截가 소재이다. 하늘의 명에 따라 임금이 나아갈 길을 바로 인도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변성룡은 잉어가 변해 용이 되듯 높은 벼슬에 올라 충성한다는 뜻이다.
하합상하는 새우ㆍ대합을 그린다. 화합和合=하합蝦盒으로 발음이 같다. 용방직절은 관용방이 하의 걸왕에 충간하다 죽자 서책을 진 거북이가 나왔다는 고사를 그린다. 하상주는 동이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신信 자는 청조와 흰 기러기가 소재이다. 청조가 무제의 궁전에 날아든다. 동방삭이 서왕모의 방문이라 해석한다. 언약과 믿음의 상징이다. 서왕모는 동이족의 신모神母라 할만큼 동이와 연관이 깊다.
흰 기러기 다리에 묶은 편지, 즉 안서雁書가 한 나라의 행궁으로 날아든다. 흉노에 억류된 한나라 사신이 항복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역시 의리와 믿음의 상징이다. 한나라는 동이계의 신화 원형을 상당부분 간직하고 보존해온 나라이다.
강륜문자도 중 효제충신
맹종읍죽이라, 겨울 양지 녘에서는 철 이른 죽순이 올라오기도 하리라. 맹종의 지성이 하늘을 감동케 한 것으로 각색될 수도 있다.
장원급제에는 삼일유가가 따른다. 모든 것이 천명이었다. 수인사대천명이라, 열심히 공부했는데 낙방했을 때도 핑계가 있다. 천명이라는 게다.
예의염치禮義廉恥는 소박한 인간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수행의 도리이다.
예禮자는 낙구부도洛龜負圖, 행단고슬杏壇鼓瑟이 소재이다. 낙구는 낙수의 거북이다. 우 임금이 치수할 때 등에 마흔 아홉 개의 점이 찍힌 거북이 나왔다. 하도낙서이다. 홍범구주 및 팔괘가 여기서 나왔다.
행단은 공자가 예를 강론하던 곳이다. 그것이 지금 학문을 닦는 곳이란 뜻으로 쓰인다. 공자를 동이족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구이九夷에 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義자는 도원결의桃園結義와 관저화명關雎話鳴이 주로 쓰인다. 한번 맺은 의리를 저바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원결의는 유현덕ㆍ관우ㆍ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복숭아꽃이 그려진다.
관저화명은 시경에 나온다. ‘구륵구륵 징경이 물가에 있고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는 내용이다. 징경이는 물새이다. 동이시대와 맞물린 상징이 있음직도 하다. 후세에는 원앙이나 오리가 부부금실을 상징했다.
염廉자는 봉불탁속鳳不啄粟ㆍ염계진퇴廉鷄進退가 주된 화제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기호나 취향과 무관히 지켜야 하는 체면과 절제가 있다는 뜻이다. 봉은 천 길을 나는데 배가 고파도 조를 쪼아 먹지 않는다 했다.
봉 대신 닭을 그리기도 한다. 염계는 북송의 도학자 주돈이의 호이다. 발음이 같은 닭이나 한글 이름이 같은 게로 그린다. 진퇴에 절도가 있다고 한다. 봉은 동이족에게는 신조神鳥로 숭앙되는 새이다.
치恥자는 백이숙제의 절개가 주된 화제로 그려진다. 인간적인 도리와 절개를 벗어난 부끄러움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수양산 달밤의 매화首陽梅月는 이제의 맑은 정절-이제청절夷齊淸節을 나타낸다.
비석을 그려 백세청풍百歲淸風의 곧은 절개를 표현하기도 한다. 효제충신과 예의염치는 인간 관계와 도덕군자의 바탕을 이루는 덕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이숙제라, 공자가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한 인물들이다.
강륜문자도 중 예의염치
신과 의가 글자만 다르다. 그림 속의 사람들이 왜 싸우는지 어째서 신이고 어째서 의인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오직 그림만 남았다.
낙구부도이다. 예의를 논함에 낙수의 거북이 등장한다. 홍범구주나 팔괘는 예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행단은 예만을 가르친 곳이 아니다.
효제충신 예의염치는 제왕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 농경 사회의 절대적인 덕목이었다. 이들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강륜문자도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효였다. 살아 부모를 공경하고 죽은 조상을 사모하는 것이 바로 국가와 가족과 개인을 잇는 연결 고리가 된 것이다.
그토록 중요하기에 엄청난 물량의 시청각 교재가 만들어졌다. 특히 아이들 방에 둘러쳐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교재가 해서가 아닌 초서로 씌워진다. 글인지 글씨인지 분간이 안 간다. 글씨는 아예 흔적만 남고 그림으로만 구성되기도 한다. 왜일까.
혹시 한자가 우리와 문자가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그것은 나라의 기틀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의 방식으로 문자 이전의 정신을 깨우치려는 집단 무의식이 깃들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하필 중국 이야기인가. 중국의 효자ㆍ충신ㆍ서적 인간관계 등이 소재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들추어보면 많은 이야기가 동이거나 동이와 연관이 있다.
시경은 서주의 시가를 모은 것이다. 주나라는 동이가 세운 상나라를 계승했다. 어변성룡의 원형이 되는 용어龍魚는 동이의 경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산해경에 있다. 용방 비간比干은 하ㆍ상 등 동이 세계의 충신들이다.
홍범구주 및 팔괘 역시 동이시대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봉은 동이의 신조라 할 만한 근거를 가진다. 백이숙제는 동이의 나라 고죽국의 왕자들이다. 결국 한국인이 강륜문자도를 통해 그려 나간 것은 조상들의 초상화였다.
동이의 하늘사상에서 강륜의 지침은 만들어졌다. 그것을 현실적인 중국인이 계몽의 수단으로 시각화했다. 한국인이 빌려 온 것은 계몽의 시각적 매체였던 것이다. 하늘사상이 의미하듯 동이의 정신은 은근한 데 있다. 자연이나 식물ㆍ동물에 깃들인 하늘의 뜻을 찾아낸 것이 동이의 철학이었다.
채색목각이십사효도는 원나라 곽거업이 선정하고 청나라에서 목각했다. 확대한다 해도 읽기는 어렵다. 몽골 알타이어족이 중국인을 계몽하기 위한 수단이니까.
전혁림은 읽지 못하는 문자도를 그렸다. 읽을 수 있는 도상은 의미 전달체로 인식되긴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문자도의 속성이다. 인간이 읽으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27. 자연에서 찾은 군자
도덕군자, 성인군자라 할 때 군자는 학식과 도덕이 높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지조가 빼어난 사람을 들라 하면 딸깍발이가 떠오른다. 딸깍발이는 비올 때 신는 나막신을 딸깍딸깍 끌고 다니는 선비를 일컫는다. 하여 가난한 선비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희승의 수필 딸깍발이에 보면 이 선비들의 자존심은 대단했다. 딴은 조선 500년을 버틴 저력이 이 선비 정신에서 나왔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산골 샌님, 딸깍발이는 가난한 선비의 전형이다. 밥이 나오나 술이 나오나 허구헌 날 사서삼경을 얼음에 박밀 듯이 달달 외었다. 아래 목의 자리끼가 꽁꽁 어는 강추위에도 오기는 살아 동장군에게 엄포를 놓는다.
“너 이놈! 네가 지금은 기세가 등등하다만 내년 여름에도 기승을 부리는지 두고 보자” 하고 별렀다. 그것이 딸깍발이의 정신이요, 그것을 집약한 것이 선비정신이다. 양반정신이다.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고 소나기를 만나도 뛰지 않는 것이 양반이었다.
물에 빠져도 개헤엄을 치지 않는다 했으니 죽어도 못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렷다. 그 중의 하나가 불의에 의한 치부였다.
훈장은 선비의 위엄과 지조를 살릴 수 있는 이상적인 생업이었다. 천하의 유랑객 김삿갓도 훈장의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훈장으로 부자가 된 선비는 없다. 그것이 선비들에게 훈장을 매력적인 것으로 만든다.
선비들의 검소한 생활은 물론 유교적인 가르침의 실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는 사상에 다름 아니다.
한국인에게 자연은 하늘과 같은 뜻이다. 그 자연 속에서 동물과 식물에 이르기까지 선비들은 그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찾았다. 물고기에도 군자가 있고 풀포기에도 군자가 있다. 하늘의 뜻이 새겨지는 데야 인간이나 금수초목이나 다를 바 있겠는가. 그것이 한국인의 하늘사상이다.
딸깍발이가 이랬을 것이다. 공자는 사십에 불혹이라 했다. 링컨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 했다. 청빈으로 닦은 준엄한 선비의 위엄이 있다.
군자는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이상이었다. 시경에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라 했다. 서주 이전에 이미 군자라는 개념이 있었다.
군자어해도君子魚蟹圖는 보통 어해도라 부른다. 물고기와 게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물고기를 그렸을까. 전설적인 구두쇠 자린고비는 조기를 천장에 매달았다. 밥 한 숟갈에 한 번씩만 쳐다보라 했다.
아들이 두 번 보자, “에끼, 이 놈, 물켠다”하고는 곰방대로 머리를 갈겼다. 그 자린고비의 조기였을까, 아니면 자연 학습도감, 또 아니면 텔레비전의 신비한 동물의 세계 프로그램과 같은 교양물이었을까.
어해도는 보통 병치의 기법으로 그려진다. 병풍이나 족자의 길쭉한 화면에 물고기와 게ㆍ수석ㆍ물풀 등이 같은 비중으로 나란히 그려진다. 하나의 화면에서 이야기를 꾸미려면 그다지 쉽지 않다.
왜 물고기와 게가 한 공간에 배치되었을까. 게는 물고기를 뜯어먹는다. 그러면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을 그린 것일까.
상징도상을 모르는 야나기 역시 그렇게 짚었을 것이다. 「조선화를 보면서」에서 야나기는 이런 어해도를 ‘미의 극치’라 일컬었다. 어해도는 일본인이 좋아할 만큼 채색이 섬세하고 선이 유려하다.
그것이 미의 극치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리라. 야나기는 이러한 미의 극치가 ‘좋고 나쁨을 초월한 아름다움無有好醜の 美’에서 오는 것으로 보았다. 한 공간을 공유할 수 없는 게와 물고기를 한 화면에 그린 조선의 화공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야나기는 외국인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조차 간파하지 못하는 상징의 언어를 읽어 달라 청원할 입장은 아니었다. 물고기에도 군자물고기ㆍ소인배물고기가 있다고 이야기해 줄 사람도 없었다.
상징이란 피의 약속이다. 하나의 문화권에서 피로 전해지는 범주일 따름이다.
잉어는 군자물고기이다. 군자의 풍모를 가졌다. 비늘에 열 십자 무늬가 있다. 이를 문리文理라 한다. 잉어의 리鯉는 고기 어魚자와 문리의 리里자가 합친 글자이다. 그래서 군자물고기이다.
게는 수중군자水中君子이다. 언제나 허물을 벗는다. 깨끗한 모습으로 산다. 그러하니 수중군자가 물고기를 뜯어먹겠는가. 물고기와 게는 그렇게 화면 위에서 공존한다. 그림에서는 군자의 상징일 따름이다.
군자 물고기가 있다 하여 모든 물고기가 군자사상을 담고 있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모든 동물과 식물이 군자가 아니다. 군자사상을 담고 있는 식물이 있다.
군자어해도
예부터 한국인에게 물고기나 게는 친근한 존재였다. 산해경의 시대에서부터 사람을 뜯어먹는 식인 상어 등을 경험하지 못한 민족이었다. 그것이 어해도로 나타났을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한국의 어해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일이 없다. 우리가 우에노 공원에서 까마귀들이 살아 퍼득이는 비둘기를 머리부터 쪼아 먹는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청군자도常靑君子圖는 늘 푸른 군자를 그린다는 뜻이다. 보통 사군자를 그린다. 매란국죽梅蘭菊竹이다. 사군자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 식물들이다.
사군자는 네 계절을 대표한다. 매화는 이른 봄 추위를 무릅쓰고 눈 속에서 꽃을 피운다.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멀리까지 은은한 향기를 퍼뜨린다. 국화는 늦가을 서리 속에서 꽃이 핀다.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프르고 싱싱한 잎을 자랑한다.
매화ㆍ국화ㆍ대나무는 모두 추위를 이기는 장함이 있다. 식물에게 추위는 군자에게 절개를 굽힐 만큼 혹독한 시련을 의미한다. 그 절개에 난초를 덧붙였다. 은자의 풍모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화내지 않는다는 논어論語 류의 사상이다.
식물에서 인간의 지조와 절개를 찾아낸 것은 사군자만이 아니다. 이아二雅ㆍ삼우三友ㆍ사군자四君子ㆍ오청五淸라 했다.
이아는 매죽梅竹를 말한다. 매화와 대나무이다. 옛 부터 선비들은 눈 속에서 매화향기를 찾아 나섰다. 탐매探梅, 혹은 심매尋梅라 했다. 대나무는 겨울의 푸르름,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 부러질망정 휘지 않는 절개를 높이 샀다.
삼우는 송죽매이다. 세한삼우라 했다. ‘추워진 후에 송백이 늦게 시듦을 알겠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는 논어의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모든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절개를 상찬한다.
특히 소나무는 한국인에게 지극히 친근한 나무이다. 한국인은 소나무 아래 태어나서 소나무 아래 묻힌다 했다. 삼국유사에서 가장 빈도가 높은 식물이 대나무ㆍ소나무ㆍ잣나무의 순이다. 송죽의 기개가 우리 민족의 사랑을 맏아 왔음을 잘 알 수 있다.
오청은 송죽매에 장수와 연관이 있는 국화와 수석을 더한다. 군자의 절도를 가지고 오래오래 사십시오 하는 기원이 담겨 있다.
동물ㆍ식물의 상징을 이용한 군자가 아니라 군자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들도 있다. 서원아집도가 기다린다.
상청군자도
사군자는 곰곰히 생각하면 중국인의 취향이 아니었다. 사자림의 매화창은 군자의 향기를 흠모한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 화사하지 않은가.
매화는 백이숙제와 연결된다. 난초와 대나무는 시경, 국화는 신선술과 연관이 있다. 중국인의 뻑적지근한 상징이 아니라 동이의 상징에 가깝다고 생각지 않은가.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는 서원에 모인 열여섯 명의 시인묵객을 그린 그림이다. 위나라 조식曹植의 정원 이름이 서원이었다. 북송대의 시인 묵객이 모여 풍류와 운치를 뽐냈다. 이공린이 그린 그림에 미불이 찬을 썼다 했다.
조선에서는 단원 김홍도가 그린 그림에 강세황이 제발을 썼다. 김홍도의 그림이야 민화의 환쟁이들이 최고의 모본으로 삼았으니 민화가 그토록 많이 그려진 이유를 알겠다. 그림이야 정통 원화체이다.
구성이나 색채ㆍ성격 묘사 등에서 우리가 봐왔던 민화와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민화이다. 낙관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그려졌다. 그런데도 조선의 민화이다.
많이 들은 이름이 있다. 소식ㆍ소철ㆍ이공린ㆍ미불ㆍ황정견 등이다. 가끔은 들었지만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도 많다. 채조ㆍ조보지ㆍ진관ㆍ진경지ㆍ유경ㆍ단통대사 등이다. 모두 열 여섯 명이다.
그림에서는 산수 병풍을 뒤로 두르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다. 이공린과 미불일 것이다. 앞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쪽에는 호궁을 뜯는 사람, 뒤쪽으로는 절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아예 멀찌감치 정좌를 한 스님도 있다. 자유롭고 시정이 넘치는 선비의 하루이다.
이런 그림이 민화라 한다. 민화라 부르니 민화지만 민화라 부르는 그림들과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시인 묵객을 화원이 그렸다. 구도는 정통 원화체이고 색채는 채묵이 위주이다.
민화이 구도와 다르고 극채색이나 오방색과도 다르다. 민화에 등장하는 신화 전설의 인물이나 영정 초상의 주인공 등과 달리 당대의 명사들이 초상화처럼 그려졌다.
민화라 부르기는 하지만 이런 그림은 민초들의 그림은 아니었으리라. 양반들이 자신의 풍류나 운치를 자랑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들로 보인다. 때로 화원에게 충분한 보수를 지불할 수없거나 화원과 연줄이 닿지 않는 양반이 환쟁이에게 부탁한 그림일 수 있다.
새삼스레 민화의 개념을 다시 음미하게 된다. 양반의ㆍ양반에 의한ㆍ양반을 위한 그림이 민초의 그림, 민화라니...
서원아집도
정선이 그린 서원소정은 아무래도 서원아집도와는 다르다. 조그만 연못 밖으로 자연을 둘러치고 인물은 조그맣게 그렸다. 그것이 산수화 아니었던가.
서원아집도에는 군자라 부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인간의 전범이 군자의 이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더욱 양반적이다. 귀족적이다. 민화와 더욱 멀어진다.
민화라 부르는 그림의 정신은 자연 속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난 그림이라는 데 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와 규범보다 자연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눈에 의해 발견된 철리를 더욱 높이 사는 그림이다.
그래서 민화수집가들은 도화원 화원들의 그림을 민화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서원아집도의 모사본이 민화라 불리는 분류의 오류는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못생긴 그림이 민화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오류를 안고 있다.
더욱이 민화라는 그림의 근본이 고려되어 있지 않다. 민화는 임금에서 시작되었다. 임금의 명에 의해 화원들이 원화를 그린다. 단원 김홍도가 금강산도나 삼강행실도 등을 그린다. 백성들 중의 환쟁이가 모사한다. 상징 체계를 이해할 수 없기에 도상이 흐트러질 수 있다.
솜씨가 미숙해서 원래 그림의 의도가 살지 못할 수도 있다. 기억에 의해 모사하다 보니 원래 그림과 멀어질 수 있다. 호랑이를 그리다가 고양이 그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었다.
그것이 민화였다. 원화는 숙련에 의존한다. 인간의 규범이다. 오랜 임모에서 터득한 그림의 내재율이 다음 작품의 분위기가 된다.
민화는 망각의 순리를 따른다. 자연의 규범이다. 시골 할아버지는 농사철에 처박아 두었던 몽당붓과 말라비틀어진 물감을 챙긴다. 장지를 모본 위에 얹고 어슴푸레 비치는 윤곽을 따라 붓을 놀린다.
따가운 태양 아래 더덕장아찌가 되도록 혹사당했던 손이 사뭇 떨린다. 눈이 침침해진다. 복사가 된 탑본을 떼어내면 영락없이 모본과 크기가 같을 뿐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도 그 차이를 알아낼 재간이 없다. 식별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화이다.
인간의 규범이 아니라 자연의 규범에 따르기에 그토록 자연스럽고 편안한 그림이 된다. 천의무봉이라, 바느질 자국이 나지 않는 자연스런 옷이란 뜻이다. 누가 꿰매는가. 하늘의 뜻에 따라 순박하게 살고 있는 이 땅 백성의 자연스런 삶, 그것이 바로 하늘이 꿰매는 이 땅의 질서가 아니겠는가.
난초를 그린 그림이다.
아무리 곱게 봐주어도 난 치는 운완필법 하나 배운 일이 없는 솜씨이다. 차라리 손가락이 낫지 않을까.
난초 필통이구나. 난초를 보며 ‘본래 그 마음이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아 사느니라’고 이병기가 읊었다.
한정수는 청나라 고기패의 지두화 기법에 민화의 자연을 버무린다. 망각으로 배어 나오고 진동으로 파고든다.
28. 까치와 호랑이
하늘에 침 뱉기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 침을 뱉어 봐라, 어디에 떨어지나. 그런데 이상하다. 왜 하늘에 침 뱉는 것이 얼굴에 침 뱉는 것이 될까. 그것은 하늘이 바로 한국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하늘 백성이다. 지상에서의 삶이란 하늘 삶의 연장이다. 또는 하늘 백성이 이 땅에 잠시 머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인은 죽는다는 말을 높여 ‘돌아가신다’ 라고 한다.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늘이다. 왜 땅이 아니고 하늘인가.
한국인읜 죽음을 귀천이라했다. 중국인도 귀천을 죽음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중국의 고어사전에 보면 하늘 천은 하늘의 절대자 혹은 범본이 될 만한 것이라는 듯이 강하다. 반면 한국인은 하늘나라를 생각한다. 그 속에 살고 있었던 고향으로 한국인은 생각한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읊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답다고 말하리라’ 고문에 시달려 고통 받았던 이 땅이 시인에게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땅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하늘 백성이 이 땅에 잠시 머물러 있었기에 아름다웠다.
한국인은 근본이 하늘 백성이니까 하늘이 길흉화복을 내린다고 믿었다. 길상 문양 등은 ‘기쁜 소식을 주십시오’ 라는 기원을 담는다. 부적에는 ‘나쁜 소식은 물러가시오’ 라는 염원이 담긴다. 그림 하나에도 하늘을 향한 기도를 담는 민족이 하늘에 침을 뱉을 리 있겠는가.
그런데 하늘에 침을 뱉어 본 짐승이 있다. 호랑이다. 그야 짐승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호랑이는 그래봤자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늘을 향해 애교스런 웃음을 흘린다. 그 기생오라비같은 웃음의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외래 명절조차 우리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인의 심보를 호랑이로 대변한다. 작호도의 호랑이 아닌가.
중국 연하장이다. 중국인은 실리적으로 복을 빈다. 전가복이라니 모든 가족이 모두 복을 받으라는 말이다. 그려서 복스러운 가족을 그렸다.
희보작호도喜報鵲虎圖는 희보+작호도이다. 희보는 기쁜 소식이고 작호도는 ‘까치와 호랑이’이다. 어디서 듣던 말이다. 까치호랑이라고 하면 안 되나? 안되지, 안 돼. 버릇된다니까. 그렇게 안 고쳐 버릇했기에 우리의 문화와 상징의 언어가 오늘처럼 왜곡되고 은폐되었잖아?
작호도의 작鵲는 까치, 호虎는 호랑이다. 그래서 까치 ‘와’ 호랑이다. ‘까치호랑이’는 없다.
그림에서 까치는 소나무 위에 앉아 있다. 호랑이는 까치를 우러러 본다. 그래서 까치가 서낭신의 신탁을 전한다거니 까치는 어리석은 양반 호랑이를 조롱하는 민중이라느니 하는 해괴한 주장도 하는 모양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소나무 대신 서낭당을 그리면 서낭신이 쉽게 연상된다. 까치 대신 양반을 조롱하는 말뚝이를 그리는 것이 훨씬 쉽게 전달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까치와 호랑이다.
호랑이는 까치를 통해 하늘을 본다. 하늘의 기쁜 소식, 즉 희보를 기다린다. 희보는 한자이지만 한국에서도 기쁜 소식이 된다. 그런데 까치와 호랑이가 그려졌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상징과 의미와 형상이 바뀐다.
원래 중국에서 그려진 것은 작표도鵲豹圖였다. 까치와 표범이었다. 그것이 희보喜報가 되었다. 희보는 중국어의 희작喜鵲Xi-Que에서 희喜 자와 표범의 표豹Bao를 결합하여 희표喜豹Xi-bao가 된다. 같은 발음의 희보Xi-Bao를 대신한다.
기쁜 소식을 그리기 위해 비슷한 발음의 동물을 그린 것이다. 그것이 한국에서 까치와 호랑이가 되었다.
까치는 작은 까마귀이다. 까마귀는 태양의 상징, 삼족오이다. 소나무는 정월을 상징한다. 정월 초하루 태양이 뜬다. 태양력이 시작되는 날이다. 동이족은 태양의 나무를 세우고 그 위에 나무로 깎아 만든 태양새-양조陽鳥를 올린다.
태음력이 시작인 보름날, 태양나무와 태양새는 달집기둥으로 세워졌다가 불태워진다. 까마귀에게는 침을 뱉었다. 태양력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상징적인 세레모니가 수천 년을 거듭되면서 까마귀는 저주받았고 인가에서 쫓겨난다.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기억력이 나빠진다고 했다. 그릇을 깨트린다고도 했다. 그렇게 까마귀를 먹지 못하게 했다. 결국 정력제로 남획되기 전에 산이나 들에서 그나마 생존이 보장된 셈이다. 태양신의 자손이 태양의 상징인 까마귀를 먹으면 안 되지 않은가.
그 덕에 태양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작은 까마귀 즉 까치이다.
그런데 무슨 소식인가. 하늘이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는 기쁜 소식이 뭔가. 책가도에 그 실마리가 있다.
희보작호도
중국연하장에 길리吉利라고 썼다. 길하고 이롭다는 뜻이렷다. 그런데 귤을 그렸다. 이상할 것도 없다. 중국에서는 귤의 발음이 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송축책가도頌祝冊架圖는 송축의 기원을 담은 책거리 그림이다. 지필묵이라, 문방구가 보인다. 화병의 모란ㆍ수박ㆍ참외ㆍ석류ㆍ가지 등을 그린다. 나름대로 이들은 상징이 있다.
책은 서경書經을 주로 그린다. 옛 중국말로 상서尙書라 한다. 중국의 진시황 이래 조신과 천자 간의 문서를 맡았던 상서성의 장관이 상서尙書이다. 물 좋고 실속 있는 벼슬자리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 책가도의 단골 소재마다 상징과 기원이 있다.
문방구는 문관에 대한 선망이다. 모란은 부귀, 수박은 씨가 많으니 아들이 많으라고, 참외와 함께 덩굴이 무성하니 자손이 무성하라고 그린다. 석류ㆍ가지 역시 아들 낳으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책가도라는 이름으로 그려지는 그림이면서 온갖 욕심은 다 부린다. 송축과 기원이란 욕심이다. 누구에게 비는 그림일까. 책가도의 특이한 원근법과 관계가 있다. 책을 자세히 보면 앞쪽은 작고 뒤쪽은 크가. 저쪽에서 보는 시각이 되었다.
저쪽에 누가 있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과일이 놓인 방향을 보자. 하늘을 향한다. 하늘에 누가 있는가. 역시 문제이다.
다른 그림을 보면 여자 치마ㆍ꽃신ㆍ족두리 등이 보인다. 점잖은 양반네가 색을 발겨도 한참 밝혔구나 싶다. 사실 그럴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땅을 밟지 않았던 것이 양반이다. 양반개고 앉는다고 포개고 앉으면 다리가 마비된다. 양기가 쇠잔해진다.
그러면서도 자손을 봐야겠다. 색을 밝힐 만하다. 그러나 그런 용도라면 춘화가 있다. 그러고 보면 양반이 자기만 보려고 그린 그림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이 그림을 보고 즐기십사 하는 미인계이다.
“즐기셨으면 화대를 주셔얍지요...” “무얼 주랴?” “아, 벼슬ㆍ장수ㆍ다손 그런 것입지요”
엉큼한 미인계가 아닌가. 그러나 노골적인 염원을 그려 보이는 경우도 있다. 곽분양행락도이다.
송축책가도
책가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복이란 복은 모두 내 것이 아니겠는가.
곽분양향락도郭汾陽享樂圖는 중국 당나라의 실존 인물인 분양왕 곽자의郭子儀의 행적을 그린다. 풍채 좋은 노인네를 중심으로 앞 뒤 좌우에 처첩과 자녀들, 종복 등이 에워싸고 있다.
멀찍이 앞쪽에서 무희가 춤을 춘다. 집이 넓어도 한참 넓다. 팔자가 늘어진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도하다.
명장 곽자의는 반란과 외족의 침공에서 당나라의 위기를 잘 수습하고 숙종을 구한다. 그 공로로 태위 상서령 등의 벼슬에 이른다. 곽자의에게는 적이 없다. 심지어는 적장도 동지가 된다. 그러니 팔자가 나쁠 일이 있겠는가.
곽분양향락도의 원본은 조선 영조 때 화원 김득신이 그렸다. 벼슬아치들이 곽자의만큼 팔자가 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주문했을 수 있다. 또는 왕이 주문했을 수도 있다. 충성에는 대가가 있다는 무언의 약속일 수 있다.
딴은 조선 시대에 팔자 좋은 양반이야 높은 벼슬하고 평생 안락하게 살도록 타고나기도 했을 것이다.
무신 곽분양의 호사에 비길 만한 그림이 문신 홍계희의 평생도이다. 이 그림의 원화 역시 화원 김홍도가 그렸다. 유교사회의 이상적인 삶은 팔폭 병풍에 그렸다. 그것을 평생도라 했다.
돌잔치를 한다. 자라서 글공부를 하고 혼례를 올린다. 장원급제를 해서 삼일유가에 나선다. 이어 첫 벼슬을 한다. 지방감사로 도임한다. 관내 순시를 나선다. 늙어서 봉조하奉朝賀라 하여 왕의 예우를 받는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이상으로 삼았던 부귀장수와 입신양명의 현주소였다. 양반 부잣집에 태어나 좋은 스승 모셔 공부를 한다. 양갓집 규수와 혼례를 한다. 연달아 아들을 낳으니 자손이 창성하리라. 과거는 장원에 이르고 벼슬은 감사에 오른다.
나라 위해 평생을 바쳤으니 왕도 머리를 조아려 공을 치하한다. 한마디로 팔자 좋은 꿈이다. 꿈같으 인생이다. 이렇게 되기를 빌었으니 꿈도 야무지다.
그런데 어디에 빌었는가. 하늘이다. 하늘은 책거리에서 보여주는 기원과 애교를 받아들여서 까치와 호랑이 그림에서처럼 기쁜 소식으로 바꾸어 전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곽분양향락도와 평생도의 의미이다.
곽분양항략도
어쩐지 곽분양향락도와 비슷하다. 요지연도이다. 어느 쪽이 먼저 그려졌는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이다.
책거리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에게 미인도를 쓴다. 평생도에서는 “날 좀 보소, 나도 좀 봐주소” 하고 하느님께 호기를 부린다. 호랑이는 하늘을 향해 아양을 떤다.
작호도의 호랑이는 벽사도의 호랑이와 다르다. 작호도는 아양 떠는 호랑이를, 벽사도는 위엄 부리는 호랑이를 그린다. 아양은 하늘에 계신 우리 하느님에게 기쁜 소식을 달라는 간청이다. 위엄은 하늘에 있는 우리 하느님의 위엄을 대행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쨋건 모든 길은 하늘로 통한다.
새해의 시작인 정월은 호랑이 달, 인월寅月이다. 새해 연휴가 끝나면 상점들은 인일寅日에 문을 연다. 호랑이처럼 털이 많은 짐승의 날이라 모충일毛蟲日라고도 한다. 하필 호랑이의 날에 문을 열어야 일년 재수가 좋으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인사치례로 핀잔을 준다. “아, 한국 사람이 아닌개비여”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로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했다. 그건 한국인의 생각이다. 중국에서도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가죽을 남기는 것은 표범이다. 오대사五代史 「왕언장王彦章전」에 나온다. ‘표사유피豹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다.
결국 중국의 표범이 우리 나라에 와서 호랑이로 바뀐 것이다. 그 반대로 가능하다. 한국인에게는 오랜 호랑이 숭배 의식이 있다. 중국인은 표범 가죽의 실용적 가치를 높이 산다.
그래서 표범에 대한 비유가 생긴다. 한국인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표범 대신 호랑이를 대입한다. 표현의 수사법만 빌린 셈이다.
민족성의 차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상징 언어는 대부분 동물이나 식물 등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직접 인간이 그려진다. 우리의 상징 언어라는 것도 모두 중국의 전거를 가지지 않는가 하고 물을 수 있다.
물론 중국의 상징을 빌려 온다. 그러나 그것이 중국 것 그대로 민화에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나라에서 토속화하기 때문이다.
빌려 올 수는 있다. 그것이 민족 자존을 해치지는 않는다. 다만 언제 어떠한 상징을 빌려 오는가. 그 내막이 중요하다.
평생도야 평생이 보장된 양반의 것이었다. 지지리 못난 상놈들이 언감생심 그 자리를 넘봐? 그런데도 이 그림이 민초의 그림이라 했다.
29. 모란병풍 둘러치고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요, 입신양명하여 이현부모함이 효지종야라’ 했다.
풀이하나 안 하나 중년 이상 나이라면 이 정도는 줄줄 외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해석해 주어야할 만큼 세월이 달라졌다.
‘우리의 몸은 머리털 한 올, 살점 하나라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요, 입신양명하여 그 보모에게 칭송이 돌아가게 함이 효도의 마무리이다身體髮膚는 受之父母라 不敢毁傷이 孝之始也요, 立身揚名하여 以顯父母함이 孝之終也’라는 뜻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 우리 조상의 효에 대한 관념이 이렇게 어려운 문자를 줄줄 읊게 하였다. 단발령이 내렸을 때 머리털을 베이느니 차라리 목을 베이겠다고 나섰던 조선의 유생들에게 효라는 것은 바로 인륜의 총화였다. 효에서 시작하여 효로 끝났다.
입신양명이라, 몸을 일으켜 이름을 떨치는 것조차 효도였으니 교육이 오죽 소중했을까.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문명을 떨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생각했으니 그 전통이 오늘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교육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효도를 향한 입신양명의 가장 확실한 길이 과거급제였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급제를 송축했다. 그림으로도 그렸다. 그러나 그 기원은 글자나 알아볼 수 있는 도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상징의 언어였다. 우리의 문화권과 관습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상징이 거기에 깃들이어 있었다. 중국과 한자의 전거를 알더라도 해독될 수 없는 암호 체계가 거기 있다. 중국인의 글자를 도해했다.
한국인은 그림을 우리의 것으로 재구성했다. 문화기틀의 차이일 것이다.
그림을 보면 연꽃이 있고 아래로 내려가면 잉어가 있다. 연뿌리와 하나로 얽혀있다. 연달아 과거에 급제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나아가 줄줄이 과거에 급제하란다. 그런데 줄줄이를 어떻게 그림으로 그리나. 알사탕을 그릴까.
일로一路라, 백로 한 마리‘일로一鷺’를 그리면 되겠네. 청나라 그림의 전통이다. 청나라는 알타이어족이 세운 나라이다.
중국인들은 연하장에 물고기를 그물로 후리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는 여유가 많다고 썼다. 부자되라는 기원을 담는다.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지이다.
군자연과도이다. 얼레리 꼴레리... 연뿌리에 걸렸네. 저 놈의 잉어를 잡아서 고아먹을까. 회 쳐 먹을까... 하고 생각했다면 참 무식한 생각이다. 과거에 급제하라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는 고기가 변해서 용이 된다는 전설을 그린 것이다. 용문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는 용이 된다. 용문은 황하 상류에 있는 협곡이다. 물살이 폭포 같다. 일단 오른 잉어는 꼬리가 타서 없어지며 용이 된다.
용이 못되고 떨어진 놈은 점액이 생기면서 이무기가 된다. 때로 잉어가 용이 되는 순간이 그려지기도 한다. 허물을 벗는 모습이다.
어룡성변도의 배경에 물결이 그려진다. 물결은 조潮이다. 조정朝廷의 조와 같은 발음이다. 벼슬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위에는 용이 여의주를 향하여 목을 내밀고 있다.
여의주는 뜻을 이루게 해주는 물건이다. 태양은 임금이다. 그러므로 임금을 향하여 도약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여의주이다. 과거급제가 바로 여의주다.
잉어가 과거 급제를 의미한다 해서 모든 잉어가 과거와 연관 있는 것은 아니다. 숫자마다 의미가 다르다. 한 마리는 대개 군자 물고기이다. 어변성룡은 도약한 잉어가 용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담는다.
두 마리는 암수를 의미한다. 건강한 생명력을 가진 암수, 신혼부부를 상징한다. 세 마리는 삼어三魚=삼여三餘이다. 아홉 마리는 구어九魚=구여九如가 된다.
삼여는 학문을 위한 세 가지 여유이다. 밤과 비 오는 날과 겨울이다. 낮의 나머지, 맑은 날의 나머지, 일년의 나머지이다. 그 여유만 있어도 학문을 닦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여는 송축의 의미를 갖는다. 시경 「천보시」에 같을 여如 자가 아홉번 나온다. 그래서 길한 뜻이 된다.
잉어 뿐이랴. 다른 물고기도 상징적 의미가 있다. 과거와 연관 있는 물고기로는 메기와 쏘가리가 있다. 메기는 대나무를 기어오르는 재주가 있다. 과거급제를 의미한다.
쏘가리 궐鱖=대궐 궐闕와 한자로 발음이 같다. 끈으로 묶은 쏘가리는 벼슬이 따 놓은 당상이라는 뜻이다. 쏘가리는 한 마리만 그린다. 두 마리는 왕이 둘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물고기만 그런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도 그런 상징이 있다.
어변성룡도
노은님은 물고기 세 마리를 그렸다. 민화의 상징은 아니겠지만 어쨋건 삼여도가 되었다. 중국어의 어魚자와 여餘자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시경에 여월지향하고 여일지승이라 했다. 같을 여與자가 평안이라. 혹시 중국어로 해석되지 않는 음운론적 배경이 있나?
일로연과도一鷺蓮果圖는 벼슬에 대한 동경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부귀ㆍ장수ㆍ다손ㆍ평안 등 바라는 것마다 상징언어가 있다. 이를테면 미후헌도도獼猴獻桃圖는 미후ㆍ즉 원숭이가 복숭아를 드리는 그림이다.
불경에는 미후헌밀도獼猴獻蜜圖가 있다. 바리때에 꿀을 담아 여래에게 공양한다는 뜻이다.
민화에서는 미후의 후猴가 제후의 후侯와 같다고 해석한다. 꿀은 봉밀蜂蜜이다. 봉蜂는 봉封와 발음이 같다. 제후에 봉한다는 말은 높은 벼슬에 책봉된다는 말이다. 오래 살건 높은 벼슬을 하건 송축의 의미는 같다.
벼슬을 바라는 많은 그림이 있다. 백로와 연밥을 한 화면에 그리면 일로연과一路連科가 된다. 연달아 과거에 급제하라는 뜻이다. 일一은 한길로, 로는 백로白鷺 혹은 갈대로蘆를 그린다. 연과蓮果=연과連科이다. 두 마리가 그려질 때도 있다 부부를 뜻할 것이다.
벼슬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그림도 있다. 까치와 사슴ㆍ닭ㆍ그리고 맨드라미를 그리는 것은 희록가관喜祿可冠이다. 까치를 뜻하는 희작喜鵲에서 희喜자를 딴다. 록鹿=록祿라 사슴이 벼슬로 통한다.
닭은 수탉이다. 볏이 있다. 관冠이다. 거기에 맨드라미를 그린다. 맨드라미는 닭 볏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관 위에 관를 쓰는 것이 된다. 벼슬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모두 한자 풀이가 따른다. 한자로 해석하지 않으면 많은 민화의 상징은 맥을 추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화가 한국의 그림이라 할 수 있을까.
한자의 원형이 녹도鹿圖 문자라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르되, 단군조선 이전에 배달국이 있어 환웅의 명으로 신지씨神誌氏가 만든 문자가 녹도문자요, 그것을 빌려 간 것이 한자란다.
또 하나, 도상을 빌어 한자를 대체하는 것이 청나라의 관행이라 했다. 청나라는 알타이어족의 나라이다. 그렇다면 녹도 문자와 알타이 언어의 관행을 빌려 간 것은 중국이 아닌가. 몰론 이 가설은 이견이 있다.
일로연과도
노르웨이 역사책 표지 그림이다. 민학1973, 173쪽 삽도에는 ‘바이킹이 바위에 이상한 글자 한글?를 새기고 있다’라고 해설되어 있다.
환국정통사1992 52쪽에는 가림토 문자가 실린다. 딴은 바이킹이 가림토 문자를 새기는 듯도 하다.
국색모란도國色牡丹圖라, 나라에서 으뜸가는 아름다움을 가진 꽃을 모란이라 했다. 모란은 수나라 양제가 처음 세상에 알렸다고 전한다. 당나라에서는 모란을 화중왕이라 불렀다. 꽃 중의 꽃이라 칭송하였다.
북송의 사상가인 주무숙周茂叔, 즉 주돈이周敦頤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모란꽃은 부귀라 말했다.
이렇게 하여 모란은 부귀의 상징이 되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모란이 나라 제일, 하늘의 향기를 지닌 아름다움이라 했을까. 국색천향國色天香가 그 뜻이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은 홀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다른 상징과 더불어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부귀와 함께 다른 송축의 상징이 등장한다.
해당화와 함께 그려지면 옥당부귀玉堂富貴가 된다. 해당화의 당棠가 집 당堂와 음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수석과 함께 그려지면 부귀장수가 된다. 수석이 장수를 상징함이다.
화병과 함께라면 부귀평안富貴平安가 된다. 병甁=평平로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발음이다.
다른 상징이 있다. 물고기는 여유이다. 어魚=여餘이다. 원앙과 비둘기는 금실을 뜻한다. 생태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장수를 의미한다. 묘猫는 70을 뜻하는 모耄와 같은 발음이다.
천도복숭아는 장수를 의미한다. 장미는 장춘長春, 청춘을 뜻한다. 수탉공계公鷄는 공명功名이다. 벼슬이 있고 공公=공功으로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그림을 보며 이름을 붙일 만하면 이미 민화의 새내기는 벗어난 편이다. 그러면 한번 물어보자. 모란과 원앙이 그려진 병풍이 있다. 이름이 무엇일까. 모란은 부귀라 했다. 원앙은 부부금실이다. 병풍은 병이라 한다.
이렇게 이름을 합하면...부귀금슬병富貴琴瑟屛이 된다. 모란병풍이라, 얄미울 만큼 기름기가 자르르르 흐르는 것이 포동포동 살찐 부잣집 마나님 같지 아니한가.
국색모란도.
김영애는 「그대의 세월 94-3」에서 모란화접도를 그렸다. 목안을 보아하니 부귀금실의 뜻이렷다.
중국 전지화의 수탉이다. 왜 웅계雄鷄가 공계公鷄가 되었을까. 공계가 왜 공명功名을 그림으로 나타내 준다고 생각했을까.
백석꾼은 사람이 만들 수 있지만 천석꾼은 하늘이 낸다고 예로부터 말한다. 인간이 하는 일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운명이란 하늘에서 정해준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운명이 정해졌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아무 일도 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았다. 우리네 백성은 하늘의 법도에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해도 좌절하지 않았다. 하늘이 내는 것은 천석꾼ㆍ만석꾼이지 백석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양반이 되는 것도 하늘이 내린 것이다. 양반이 아닌 백성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부귀는 결코 양반들의 것일 수 없음을 안다. 부잣집 마나님 같은 모란을 그려 병풍으로 두르거나 낱장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부자인 양했다.
그러면 정말 등 따뜻하고 배가 불렀다. 민화는 그래서 따뜻한 그림이었다. 민주적이기도 했다.
모란 그림은 백성의 안방이나 왕궁의 내전을 가리지 않고 치장되었다. 때로 이곳 저곡으로 옮겨 다니기도 했다. 그 이동에 신분의 차이가 없었다.
모란병풍은 태자나 공주의 혼례에도 쓰였을 것이다. 그 병풍을 먼발치로 양반들이 보았고 백성들도 숨죽여 감탄했을 것이다. 환쟁이들은 그렇게 본 모란을 그려 백성들의 안방에 병풍으로 둘러쳤을 것이다.
그렇다고 왕이나 양반이 백성들을 탓하여 곤장이라도 쳤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왕공 귀족이나 양반들도 백성들이 모란병풍을 신방에 둘러치고 밤잠을 설치거나 죽은 사람에 둘러치고 그 앞에서 왁자지껄 술판을 벌이더라도 책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혼인하여 아이 낳고 죽은 인생에 귀천이 있으랴 하는 생각일 것이다. 사실 하늘의 앞에서 귀천이란 한갓 하잘것없는 인간의 분별이 아니겠는가.
혼인하여 아이를 낳는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건 서 발 장대 거칠 것 없는 헛간에서 여물을 먹건 인간으로 태어나는 데 귀천이 없다고 한다. 그런가.
옥당부귀도 옥당은 홍문관이다.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삼사에 드니 위세가 당당하다. 그런데 해당화다. 해당화海棠花의 당자와 옥당玉堂의 당자가 같은 발음인 까닭이다.
김용철은 입춘대길-온수리의 모란 꽃에서 한국의 산하를 배경으로 화조와 아울러 모란을 그렸다. 모란도 이제는 한국적인 상징이 될 만큼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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