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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전 선생님은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유림지도자과정을 수료하셨고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 기능보유자로 지정됐습니다. 1995년 종묘 세계문화유산등록 고유제를 집례했으며 궁중문화재현행사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전례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난 월요일 청와대 안에 있는 칠궁에서 제례가 열렸다고 해요. 사실 사람들은 청와대 안에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거든요. 어떤 겁니까?
이기전 : 일반인들은 잘 모릅니다. 칠궁은 말씀하신 대로 아들은 왕이 됐는데 어머니는 사사로이 사친으로 모셔져 있는, 그런 왕의 어머니의 신주를 모신 곳인데. 사실 칠궁 자리가 숙빈 최씨를 모셨던 육상궁 자립니다. 그런데 서울 여러곳에 모셔 있던 여섯 분의 궁을 한 군데다 융희 2년, 순종 2년에 모셔 놓고 칠궁이라고 별도 명명한 거지 다 다릅니다. 육상궁을 비롯해서 영조사친을 모신 연우궁, 경우궁, 덕안궁도 있고 일곱 궁의 이름이 다 다릅니다. 다르지만 그냥 통틀어 한 군데 모셔놨다고 칠궁이라고 합니다.
박인규 : 왕을 낳았지만 정식 왕비는 되지 못한 7분의 후궁을 모셨다. 말씀하신 중에 숙빈 최씨는 영조 대왕의 생모...
이기전 : 최무수리라고 하죠. 육상궁 자리가 그 자리였습니다.
박인규 : 제가 알기로는 보니까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장희빈으로 알려진 경종 어머니 되시는 분도 거기 모셨다던데요
이기전 : 대빈 장씨라고, 그 전에는 희빈장씨로, 국모도 했습니다. 그랬다가 강등돼서 희빈장씨로 됐다가 서거하신 뒤에 희빈장씨로 추전한 거죠. 그러고서 칠궁에 모신 겁니다.
박인규 : 일곱 후궁의 사당이 청와대 안에 모이게 된 데는 어떤 과정이 있었습니까?
이기전 : 서울시내 여러 군데 있는 것을 관리도 그렇고 어려운 점이 많아서 한 군데 모시면 보존하기도 좋고 제례 봉행하기도 좋아서 한 군데 모셨는데 사실 해방 후로 죽 그걸 못 모셨습니다. 그런데 참 2001년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를 개방한 뒤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누차에 걸쳐서 개방해서 제사를 모시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전에는 개방도 안 하고 들어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박인규 : 제사를 처음 지낸 게 언제부텁니까?
이기전 : 2001년 11월 24일에 고유제를 지냈습니다.
박인규 : 다 모인 건 언제에요?
이기전 : 융희2년.... 순종 2년입니다 그게
박인규 : 그리고 최근에는 제사를 못 지내다가 2001년부터 지내기 시작했다.
이기전 : 네. 김대중 대통령이 개방하면서 제사를 봉행해도 좋다고 하면서 11월 24일, 오래 안 모셨다가 하려면 고유제를 지내야 되는 겁니다. 참 제사를 근 60년간 안 지내다가 하니까
박인규 : 정식 왕비는 아니지만 그래도 왕을 낳으신 분들인데 이 분들에 대한 제사를 왕가에 준해서 지내나요?
이기전 : 의식은 사가의식으로 합니다. 그런데 조금은 다르죠. 종묘의식과는 완전히 다르고. 종묘는, 종묘제례나 사직제례는 흠향제례입니다. 모든 것을 날것으로 놓습니다. 소, 양, 돼지, 이런 고기도 날것으로 갖다놓고 곡식도 도량서직이라고 해서 네 가지 곡식을 날것으로 갖다 놓습니다. 배추, 부추, 죽순 이런 것도 날것으로 놓고, 호두, 밤, 은행도 까지 않고 그냥 갖다놓습니다. 어떻게 흠향을 하냐면 소털, 양털, 돼지털 잡아서, 원래 종묘 안에서 잡았습니다. 털과 피하고 기름하고 섞어서 화로에 태웁니다. 그러니까 냄새가 나죠. 냄새 맡는 게 흠향이죠.
박인규 : 이 냄새를 맡고 돌아가신 분들이
이기전 : 우리가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많은 제사음식을 만들면 사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점도 많고 춘하추동 지내면서 음식 만드는 게 굉장히 고역 아닙니까
박인규 : 선생님은 종묘제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셨는데, 종묘제례하고 사직대제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요.
이기전 : 종묘제례는 민신아닙니까? 역대 왕이나 왕비를 모신 거고. 사직은 태사는 국가를 얘기하는 겁니다. 후토는 토지를 얘기하고. 또 태직은 5곡의 신을 말하는 거고, 후직은 농사를 처음 발견한 실농시를 후직이라고 합니다. 국토와 5곡의 신을 모시는 데가 사직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대개 종묘사직 하는데 사직이 먼접니다. 사직종묘인데 보통 종묘사직이라고 말하죠
박인규 : 그 다음에 돌아가신 왕의 능, 서오릉이나 동구릉에 가서 하는 능제도 있다면서요?
이기전 : 그럼요. 능제는 61개 종묘제례 보존회에서 1년에 61번을 모십니다.
박인규 :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하시는 거네요. 전부 다 대동종약원에서 하시는 겁니까?
이기전 : 그렇죠. 종묘제례보존회는,.... 대동종약원은 전주시 씨족 단체고 종묘제례보존회는 사단법인체로 다시 등록됐고 종묘제례보존회에서 주관합니다.
박인규 : 각 왕들의 후손들도 계실 텐데 그 분들도 집에서 따로 제례를 지내십니까?
이기전 : 아닙니다. 왕이나 왕비는 불감지조라고 할아버지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전주이씨 할아버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박인규 : 개인적인 인연으로 할 수 없다
이기전 : 국부, 국모지... 절대로 개인하고는 아닙니다.
박인규 : 종묘제례 아니면 능묘로 국가적인 행사로 지내는군요.
이기전 : 그럼요 국가적인 행사로 올리는 겁니다.
박인규 : 그렇지만 모든 국민들이 제사를 지내잖아요. 사가제례, 일반 여염집에서 지낸다고 알고 있는데요. 사가제례가 조선시대에는 사대부와 일반 백성이 달랐다면서요?
이기전 : 좀 달랐는데 고종황제 등극하고 대원군이 섭정하면서 반상제도를 철폐했죠. 예전에는 사대부집안에서는 4대봉사를 하고 사서인은 3대봉사를 하고, 3대 봉사는 증조까지 하는 거고, 일반 서민, 천민들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만 제사를 지냈거든요.
박인규 : 제사도 신분에 따라서 급이 있었군요.
이기전 : 그렇게 내려오다가 대원군이 그걸 철폐했죠. 갓도 널찍한 데 쓰던 걸 짧고 조그만 걸 쓰게 하고
박인규 : 사실 국가적인 제례로는 사직대제가 가장 큰 거라고 하셨는데, 이게 다시 시작된 게 한 20년밖에 안 됐다고 해요.
이기전 : 1988년 올림픽 하던 해. 서울시가 주관해서 보고를 해놓고 종로구청에 위임해서 봉행해달라고 해서 했습니다. 처음에는 종로구청에서 전액 지원해줬습니다 제사 봉행하는 걸. 88올림픽이니까 관심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서, 그 후로는 종로구청에서 힘이 모자라니 지원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시나 문화재청에 요청해도 문화재가 아니니까 문화재청은 지원을 안 해주잖아요.
박인규 : 종묘제례는 문화재로 지정이 돼 있는데 사직대제는 안 돼 있군요.
이기전 : 안 돼 있었죠. 88올림픽부터 봉행했지만 문화재로 지정이 안 돼서 종로구청에서 조금 지원해주는 걸로 하고 사비로 다 그렇게 한 거죠.
박인규 : 지원 이전에, 사직대제가 언제부터 끊어진 겁니까?
이기전 : 한일합방 되면서 국토라는 개념을 말살하고, 파묻어버렸어요 아주
박인규 : 그렇다면 해방 이후 바로 복원됐어야 하는 건데
이기전 : 바로 했어야 되는데 못한 거죠
박인규 : 지금도 지원이 부족해서 제대로 못하고 있는 측면이 있나요
이기전 : 하여튼 예산이 부족합니다. 서울시에서도 한 5천만원 지원해서 행렬을 하게 하고 제수비 같은 건 문화재청에서 좀 주는데 모자랍니다.
박인규 : 종묘제례를 비롯해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제례를 집도하시는 분이셔서 여쭤보는데, 전통제례라는 게 왜 중요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기전 : 조선도519년간 제례문화가 굉장했죠. 제례문화는 충효사상을 고취시키는 거란 말이에요. 사직이 먼저고 종묘가 다음이라고 하는 것 마냥 충효라고 말하지만 효가 먼저지 충이 먼저 아닙니다. 부모한테 효가 먼저니 국가는 부모가 있음으로써 있는 거지. 효가 먼저인데 충효라고 하는 것과 똑같이 나라에서 효사상을 고취시키고 국가에 충성하게 하기 위해서 제례문화를 굉장히 조선조에서는 숭상했죠. 그러나 고려조에서도 역시 종묘가 있었고 다 이어져내려온 전통입니다.
박인규 : 자신의 뿌리를 되새기고
이기전 : 고려조에서 숭불정책을 많이 썼기 때문에, 조선조에서는 억불정책을 쓰고 숭유정책을 했지만 그래도 처음에 조선조 개국 초에는 숭불정책을 따른 왕들이 많죠.
박인규 : 사직대제나 종묘제례는 1년 중 언제 지내게 됩니까?
이기전 : 날짜를 받는 것이 음력 4맹월이라고 하는데 음력 1월, 4월, 7월, 10월. 이렇게 춘하추동의 첫달에 맹월이라고 하거든요. 4맹의 열흘 안쪽에 지금의 기상대 같은 관상감에서 날짜를 받아서 예조에 통보하면 의정부에서 왕의
박인규 : 원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첫달에 한 번씩 1년에 네 번이었군요
이기전 : 섣달그믐... 연말에도 하고
박인규 :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기전 : 지금은 1년에 한 번밖에 못합니다. 5월 첫 일요일에 모시는데 사실은 88올림픽 때 종묘제례를 세계에 방영하느라 밤에 지냈습니다. KBS에서 주관하고
박인규 : 요즘은 낮에 하시는 거죠? 낮 12시. 사직대제는 10월이죠... 칠궁제례는 일반에 공개를 안 하지만 능제는 공개해서 볼 수 있다고 하던데요
이기전 : 아닙니다. 칠궁제례도 공개합니다. 아무나 가는 게 아니라
박인규 : 청와대 가는 게 힘들어서
이기전 : 미리 우리가 공문을 냅니다. 왕비문중이나 칠궁에 속해 있는 성씨 문중에다가 칠궁 제사를 모시니 와주십사 종친회에 통보하면 주민등록번호, 주소 적어서 신청을 합니다. 그럼 그분은 항상 올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지난 월요일 지낸 칠궁제례에도 많이들 참석하셨나요?
이기전 : 한 500분 오셨습니다.
박인규 : 곧 능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기전 : 능제가 11월 1일이 숙종대왕의 원비 인경왕후인데, 그분은 숙종 원비인데 20세에 승하하셨습니다. 아들, 딸 생산을 못하셨죠. 그리고 숙종대왕도 서오릉에 다 거기 모셔 있습니다. 인현황후도 거기 모셔져 있고. 거기 또 대빈장씨도 서오릉에 모셔 있습니다. 숙종대왕은 마나님이 네 분 아니에요?
박인규 : 11월 1일에는 인경왕후에 대한 능제를 지내는 겁니까? 서오릉에서...
이기전 : 네.
박인규 : 일반인도 볼 수 있고
이기전 : 누구나 다 참관합니다. 보통 광산김씨인데 버스 한 대씩 해서 많이 옵니다.
박인규 : 광산김씨에서 많이 오시고 능제는 전주이씨
이기전 : 사실은 돈이 없어서 봉양회를 조직했습니다. 61개 봉양회. 종묘제례보존회에서 주관하는 건 전주조경단, 우리 시조할아버지, 종묘, 사직, 건원릉, 칠궁, 그 다섯 곳만 우리 종약원에서 주관하고 다른 곳은 봉양회에 전부 위임했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이사조직화를 하고 해서 봉행하죠. 손을 얘기했습니다만 태종대왕이나 중종, 세종대왕, 성종대왕들은 손이 많지 않습니까. 손들이 봉양회를 조직해서 참 성금도 많이 내서 활성화해서 잘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11월 1일 능제는 몇 시에 하게 됩니까?
이기전 : 12시에 합니다.
박인규 : 보통 몇 시간 걸립니까?
이기전 : 한 30분에서 35분. 두 분 있는 데는 한 40분 걸리고요.
박인규 : 관심있는 분들은 가셔서 봐도 좋겠네요.
이기전 : 오십시오. 대환영합니다.
박인규 : 요즘 일반 가정에서 제사들 다 지내는데 선생님 보시기에 예전 법도에 비춰서 잘못된 부분이 많습니까 어떻습니까?
이기전 : 사실 제가 생각하면 많죠. 솔직히 여기 KBS도 추석이나 설에 제례법을 방영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몇 번 봤고...
박인규 : 가장 잘못된 것 한 가지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기전 : 향불에 술잔을 돌리는 거 많이 봤죠? 왜 돌리는 건가요?
박인규 : 저도 잘 모르고 남들 하니까 따라했습니다만, 왜 하는 겁니까?
이기전 : 기복신앙입니다. 무당들이 하는. 원래는 돌리는 게 아닙니다. 그럼, 아버지한테 술잔 드릴 때 돌려 드립니까? 살아있는 아버지께
박인규 : 그냥 올리죠.
이기전 : 똑같은 거예요. 기복신앙을 가지고 비느라고 술잔을 돌리고, 비느라고 술 드시고 내 병을 고쳐 주시오, 복 받게 해주시오 하는 건데. 정중하게 올려야지요
박인규 : 다녀보면 다 그렇게 하기에...
이기전 : 그게 제일 잘못됐죠. 그리고 반절이라는 말을 하죠. 두 번 절하고 반절을 하고. 그런데 읍례에요. 읍례를 반절이라고 표기하는 겁니다. 표현의 잘못입니다.
박인규 : 한 가지 배웠습니다.
선생님 만났으니 개인적인 질문도 드려볼까 합니다. 저희는 종묘제례 하면 종묘제례악 그런 것만 알고 있었는데 이기전 선생님께서 종묘제례를 주관하신다고 하니, 어떻게 해서 주관하는 일을 하시게 됐습니까?
이기전 : 제가 종묘제례를 한 건 우연입니다. 제가 정종대왕의 아홉째 아들 석포군파의 종사 일을 했습니다. 석포군파 종손이 내 제당질이기 때문에, 저는 한 세대입니다. 고등교육을 못 받았습니다 정식으로는
박인규 : 정종의 후손이지만 종손은 아니시고
이기전 : 네. 제 친척이 종손인데 문사일을 하다 보니 족보관계로 족보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고문서를 가지고서 진흥이냐 아니냐 따지다 보니 사실 난 그때 서울을 살았는데 종약원에 왔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이은표 인간문화재가 계시더군요. 그 양반이 내가 듣기로 한문도 나보다 실력도 굉장히 좋고 한학자라는 명성을 듣고 가지고 왔습니다. 내가 읽으면서 이게 맞습니까 하니까, 은표형님이 자네 한문 좀 배웠나? 읽었지만 다 잊어버렸어요 오래 전에 배워서, 그랬어요. 그때부터 나를 유심히 봐서 자네 와서 나를 도와주게. 그 양반과 내가 20살 차이에요
박인규 : 이은표 선생님이 그 전에 종묘제례를 주관해 오시고 물려받으신
이기전 : 제가 3대째에요
박인규 : 이은표 선생님도 전주 이씨겠네요 이 일은 전주 이씨에서만 할 수 있군요.
이기전 :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교육시키는 사람은 왕비문중도 있고 성균관에서 오는 사람도 있고 많습니다. 제가 교육시키는 사람이 230명이에요. 이 분들이 와서 종묘제례를 다 참석하고 하고 제관도 하고 중요 부서를 맡죠. 무형문화재제도가요... 보유자 밑에 조교, 조교 밑에 이수자, 그 밑에 전수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생이 있고. 5단계인데. 여기서 이런 말 해서 되는지 모르겠지만 인간문화재 한 사람한테 조교 둘을 두게 돼 있어요. 그런데 하나도 종묘보존회 지원이 하고 있어요
박인규 : 그건 경제적인 지원이 미흡해서 그런 건가요?
이기전 : 지원도 그렇고 문화재청에서 사실 조교를 빨리 해줘야 되는데 안 해줘요.
박인규 : 안타깝네요. 어쨌든 한 왕조에 대한 제사인데
이기전 : 아쉬운 점 많죠. 사실 아쉽다는 건
박인규 : 제대로 하려면 이런 정도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기전 : 지원을 얼마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사실 세계문화유산 아닙니까?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56호를 떠나서. 그런데 국가에서 참 충분하게 해줄 수 있는 뒷받침은 해줘야지요.
박인규 : 방송에 나오신 김에 적어도 종묘제례를 제대로 세계문화유산에 걸맞게 치르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그런데 안 되고 있다, 그런 게 있으면 한 가지만 말씀해 보시죠.
이기전 : 제기도 완비가 안 됐고요. 일제가 수탈해간 것을 완전히 다 보관을 못하고 있어요.
박인규 : 종묘제례면 왕만 해도 30분 넘으시고 왕비도
이기전 : 83위입니다.
박인규 : 그런데 그 분에 대한 제기 이런 것도 미비하다.
이기전 : 미비하죠. 그리고 제복 같은 건 문화재청에서 해주니까 되지만. 사실 그 전에는 제관들이 서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참 안 합니다. 자기가 제례를 모시면 성금을 자기 스스로 내고 옵니다. 또 제수도 증설을 하려면 굉장히 많이 듭니다.
박인규 : 그래도 500년 왕조에 대한 제사고 세계문화유산인데 명성에 걸맞게 충실한 제사가 됐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지원이 됐으면 좋겠고요. 혹시 앞으로의 계획이라든가 여쭤보지는 못했지만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마지막 정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기전 : 글쎄요. 제가 계획이라는 건, 무형문화재 56호고 세계문화유산인데 제가 건강한 데까지는 교육을 잘 시켜서 후진양성을 잘 하고. 교육을 잘 시켜서 세계문화유산답게 앞으로도 잘 보존하고 발전해나가는 걸 바라고 있고요. 후진양성을 하는데 사실은 국가 인간문화재 하면 굉장히 보수가 좋은 문화재도 많습니다. 그러나 생계가 유지 안 되는 문화재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의식인이라고 해야 되는데 예능인이라고 표현됩니다. 예술가가 아니잖아요. 의식인이라고 표현해주는 걸 바라는 거고. 모든 제례의식 이런 걸 집행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그러니까 참 각 문중에서 수강료, 식비를 대줘서 교육하고 있는데 그런 것도 안타깝고. 그리고 지원을 이수자가 전수자에게 많이 해줬으면. 사실 제가 34년쨉니다. 여기서 봉사한 지가. 그럼 어느 분야에서 34년씩 봉사했으면 대우가 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 건, 크게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후진들을 위해서도 대우를 해주면 아, 여기도 되겠구나. 저희들은 어디 대학교나 어디 강사 자격은 있습니다. 그러나 종묘제례를 누가 강사로 초빙하는 데는 없습니다. 솔직히
박인규 : 그렇겠지요. 전통을 잘 지키는 게 우리의 정체성을 잘 지키는 것이고 그게 문화의 저력이라고 한다는데 종묘제례가 충실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기전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중요무형문화재 이기전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나라 전통 제례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날 전통 제례가 갖는 의미가 뭔지.. 얘기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