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국 14대자오지천황님의 흔적>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아시아 종갓집이며
큰집이다”
중국 한족의 시조라고 만들어 놓은 ‘황제헌원’도 알고 보면 산둥성 유웅국 출신이라고 곰과 관련된 기록들이 있고, 요임금과 순임금 그리고 우임금까지도 우리의 직계선조라 할 수 있는 동이족이었던 ‘단군조선’에서 국가 성립에 깊이 관여하여 왔음을 추리할 수 있다.
당시 ‘단군’이란 직책은 ‘한·단·칸’으로 지칭되는 추장처럼, 요즈음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를 부르는 호칭인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과 정치를 같이 다루는 ‘제정일치’시대였음도 알 수 있고, 우리 민족의 표현인 ‘아사달’이란 말은 ‘밝은 땅·광명의 땅’이란 뜻이 되며, 선조들은 살고 있는 곳마다 이러한 표현으로 그곳의 지명 이름을 정하였으니, 비록 위치와 시대에 따라 한자 표현은 달리하였지만, 밝은 땅이란 원뜻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식민사관 단군조선 부정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형제국 이라고 하며 ‘2002년 월드컵 때’ 우리에게 친근하게 대해 주었던 ‘터키’도 본래 뿌리는 ‘돌궐족’이며 그들은 스스로를 ‘아사나 민족’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의‘달’과 터키의‘나’는 같은 말이며 땅이란 뜻이다. 같은 동이족을 뿌리로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뿐만 아니라 현 중국의 심양·북경·조양·고죽·부여·가야·일본·아스까·명일향 등의 일본 말과 왜(倭). 대인국(大人國) 이란 중국의 옛 역사책에 기록된 표현도 모두 조선(朝鮮)이란 한자 표현처럼 그 글자의 어원이 ‘밝은 땅’, ‘광명의 땅’이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언어학적 어원 풀이를 좀더 연구하고 밝히게 된다면 저절로 우리 민족이 전 아시아계의 종갓집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일제 식민사관과 동일하게’ 단군조선을 모두 부정하고 신화로 만들어 버렸으며, ‘조선왕조실록’ 중에도 단군조선이 137회나 기록되어 있고 공식적으로 각 왕조 때 마다 제사를 지내왔는데도 불구하고, 고조선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모두 부정하고, 일본 역사보다 짧게 만들어진 ‘위만조선’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만들며, 심지어는 은유법으로 글 표현을 해놓은 옛사람들의 스타일을 현대에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거짓을 스스럼없이 적어 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곰과 호랑이가 굴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며 100일을 지내야 사람으로 변한다는 둥 실로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 표현으로 혼돈시키고, 기원전 551년의 공자와 기원전 372년의 맹자 말씀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생각하며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공자보다 약 500년 뒤에 생긴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세운 ‘신라’와 기원전 37년의 고주몽은 알에서 태어났고 강을 건너갈 때 자라와 물고기가 떠올라서 밟고 강을 건넜다는 등의 기록은 우리 역사를 일부러 신화로 만들기 위한 고의적인 조작에 불과하다.
또한 몽골 침입 시 저항하기 위한 ‘항몽기’에 일부러 단군을 만들어서 국민들을 단합시키는 데 이용해 왔다는 것도 단군조선의 위대하고 긴 역사를 부정하기 위한 한 수법인 것이다.
이집트는 제3왕조 ‘조세르왕’ 때인 기원전 2667~2613년에 돌로 된 최초의 계단식 석조 피라밑을 20층 높이로 조성하고 이때부터 이집트 무덤의 기준을 삼았으며, 시나이 반도에서 아스완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만 여명의 기술자를 동원, 고대 이집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할 수 있는 ‘임호태’에게 파라오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주어 왕실 대리인으로 하여 국무총리겸 건축의 신으로 만들었고, 태양신 ‘RA(라)’를 처음으로 숭배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의 동양에서는 우리 민족의 중시조라고 할 수 있는 ‘치우천왕(자오지 천황)’이 기원전 2700년경 단군조선보다 약 400년 앞서 청동기의 꽃을 피우며 청동으로 투구와 갑옷과 농기구를 만들었으니, 지금도 치우천왕의 투구 쓴 모습을 형상화하여 기와에 귀면와로 남고, 도께비 상으로 남았으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기원전 206년에 한나라를 세운 한 고조 유방에 의해 ‘군신이요 무신’으로 표현되었다.
한참 후대에 유럽에서는 기원전 47년 9월에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가 이집트의 여왕 크레오파트라 사이에 자식을 낳고, 소아시아 젤라 전쟁에서 이기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 세 마디 유명한 보고서를 원로원으로 보냈고, 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식민·간척·항만·도로건설·구제사업과 율리우스력 등 개혁사업을 추진하다가 기원전 44년 3월15일 부하이며 양자인 ‘부루투스’의 칼에 찔려 죽었다는 것이 이미 기록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다른 한편 문자와 언어로 조사해 본다면 우리 민족은 스스로 태양의 자손임을 나타내었었는데 태양신으로 표현하던 ‘라’가 소리 바꿈 되어 ‘나’가 되었다고,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시 앞바다에 있는‘오끼(隱)’섬의 향토지에는 나 스스로를 ‘라’라고 한다며 기록되어 있고, 조선조 말까지 사용하던 언어 중, 집에 있는 부인을 ‘안 해’라고 하여 집에 있는 ‘해’라고 표현하였으며, 새로 생긴 해 작은 해인 아이를 ‘아 해’라고 표현하였고, 올케를 오빠의 해인 ‘올해’로 표현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우리 언어에는 ‘아’, ‘하’, ‘라’처럼 태양을 상징하는 말들이 많고, 스스로 태양의 자손임을 인정하고, 우리 민족의 일파인 흉노·선비·돌궐·거란·여진·읍루·말갈·물길·일본·헝가리·핀란드 등의 일파 또한 우리 민족의 가지에 해당하며 많은 혼혈이 되어 지금은 모양이 많이 달라졌지만 뿌리는 하나인 것이다.
우리 민족 남미까지 내려가 번창
언어 또한 티베트의 지방 사투리 중에 우리말인 할매·할배·밥무운나·지렁·조푸·통시 등을 사용하고 있고, 인도의 북부에도 우리말인 할매, 할배 등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캐나다 인디언들의 말에도 밥·살·이랑·고랑·호미 등 우리말과 같은 말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는 남미 잉카제국의 마지막 할머니가 오래전 KBS TV에서 인터뷰할 때 시집 안 간 여자를 ‘체네’라고 하였으니, 태양족인 우리 민족의 일부가 캐나다를 거쳐 남미까지 내려갔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 적응능력이 얼마나 빠른지 보여주는 한 좋은 예라 할 것이다.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세계 최초인 고래 잡는 그림을 돌에 새기고 그려 놓았으니 경남 울산에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인 것이며, 충북대학교 고고학 팀이 발굴한 세계적인 것 중에 4만 년 전에 젖니가 있는 6세 미만인 어린이 가슴뼈 부근에 가을 국화꽃가루가 뿌려진 채 발굴된 구석기 유적이 충청도 두루봉 유적의 ‘홍수아이’로 명명되었고, 아직도 천여 군데 더 있으며 발굴 중 이라고 발표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대한민국 땅이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세계 고고학계가 알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우리 선조들의 문화 창조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본다면 인간의 기본 생활에서 의·식·주 문화도 이미 세계 최고 고급문화이고, 문자를 공식적으로 4번이나 만든 지혜는 조상대대로 이어온다고 할 것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옛 글자를 모방하여 새로 창제하셨다고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 서문에 기록되어 있고, 그 옛 글자가 ‘가림토 38자’인 것으로 추정되며, 다음으로 ‘이두문자’의 총 정리자 설총은 신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탄생한 사람이며 지금도 한자에 이두 글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 박사가 대만을 방문하여 파티석상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말하며, 한자 배우기가 쉽지 않다고 농담으로 말하는 자리에서 임어당 선생이 말하기를 “‘한자(漢字)’는 동이족(東夷族)인 당신 선조들이 만든 문자인데 왜 한글만 자랑하느냐”는 말을 듣고 쇼크를 받았다고 후에 여러분들에게 전했다.
뿐만 아니라 장개석 총통과 자기 자신도 산둥성과 절강성 출신 이라고 하였다는 것은 그들도 동이족이라고 말한 것과 같으니 안호상 박사님이 귀국 후 한자도 우리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근거를 찾았는데, 543년 양나라 때 처음 만든 옥편에는 동이족만이 발음 할 수 있는 ‘입성’발음을 발견하였고, ‘입성(겨울 발음)’ 발음은 ‘ㄱ·ㄹ·ㅂ’을 받침으로 하는 발음이므로 꼭 일음절로 발음하도록 발음기호가 한자 발음 표인 사성(평성·상성·거성·입성)에 적혀 있음을 발견하였다.
한글과 가림토 문자와 이두문자 그리고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가 같이 사용하는 한자(漢字)도 동이족이 만들었으니 우리 선조들은 문자문화의 꽃을 피운 지혜의 민족이라 할 것이다.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 최초 발명품인 금속활자(활판인쇄)는 구텐베르그(johan Gutenberg : 1397~1468)에 의해 1450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1200년에 시작되었다고 기록은 전하였고, 1377년 고려 우왕 3년 청주 흥덕사에서 ‘백운화상 초록불조 직지심체요절’을 상. 하권으로 찍었고, 그 하권 한권이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조선 세종 때인 1447년 동으로 한글 활자를 만들어‘월인천강지곡’을 인쇄하였는데 한자 활자와 30여 종의 한글 활자가 다양하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한참 뒤에 개발되었으니 우리 선조들이 개발하여 만든 활판 인쇄 기술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용한 나라에 갑자기 쳐들어와 우리 민족을 괴롭혔던 일본 해군들이 그 많은 배와 해군들을 거느리고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이순신’장군을 ‘바다의 신’이라고 말하였는데, 일본에서 군신으로 추앙받는 ‘도고 헤이 하찌로’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을 본 뜬 ‘정(丁)자 전법’으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괴멸 시켰는데, 한 신문기자가 자신을 넬슨, 이순신에 비교하자 “나를 넬슨에 견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인 이순신 제독에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 이라며 ‘나는 이순신에 비하면 하사관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역사가 아리모토는 “세상의 모든 영웅은 우러러 보이지만 이순신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며 “기독교인인 내게 이순신은 십자가를 선택한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우리 선조님들은 지혜와 용기를 가졌으며 인품이 훌륭하여 이웃 나라에서도 여러 가지 역사서에 우리 민족에 대한 기록들이 많다.
우리 민족을 이웃 나라들이 기록하기를 천손 민족으로서, 천성이 유순하고, 인성은 후덕하며 욕심이 적고, 도둑이 없어서 대문을 잠그지 않고, 부녀자는 정숙하여 음행하지 않고, 남자들은 정의감이 강하며, 서로 공경하며 남의 어려움을 도와주기위해 목숨을 바치는 어리석게 보이지만 “참으로 순박한 사람들이다”라고 하였으며 염체가 있어서 길을 가다가도 서로 양보하고, 흰옷 밝은 옷을 즐겨 입는 백의민족이며, 동성 간에는 혼인하지 않고, 자비심으로 살생을 하지 않고 홍익인간의 정신을 가진 군자가 끊임없는 도덕 국이며 군자국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순박한 덕으로 대우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충성과 신의로 섬기는데 한 나라의 정치가 마치 한 몸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이치인 진 성인의 정치를 하고, 조선의 세제는 1/20이며 공자도 살고 싶어했던 나라였다. 이러한 내용은 기원전 2200년 전부터 쓰여졌다는 ‘산해경·후한서 동이전·후한서 지리지·삼국지 위지 동이전·회남자·사기 진 본기·맹자 등 수없이 많은 기록들이 우리 이웃나라들의 기록에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과 훌륭함을 기록했으니 그만큼 본받을 점이 많았다는 증거가 된다.
이렇게 훌륭한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기 36년을 거치면서 바뀌기 시작하였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민족이며, 엽전처럼 앞뒤 생각이 다른 민족이며, 당쟁으로 밤을 새는 민족이며, 아침저녁으로 생각이 바뀌는 민족이며, 명태처럼 두들겨 패야 맛이 나는 민족이다.
1922년 조선총독 사이도 미노루(濟藤 實)의 교육시책에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역사·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先人)들의 무위(無爲), 무능(無能), 악행(惡行)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 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를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自國)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대해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帝國日本)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들의 귀에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식민 학정의 고통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그동안 국내의 유명 역사학자들이 국사 교과서에서 제외시킨 우리의 역사 중에는 단군조선을 신화로 만든 것 외에 부여의 역사도 제대로 기록해 놓지 못했고, 따라서 한나라가 기원전 206년부터 214년간 유지하며 망할 때까지 부여에 조공하였고, 우리 민족의 일파인 흉노(훈족)에게도 200년간 조공하였으며 공주까지도 바치고, 흉노를 부모님의 나라라고까지 기록하였으며, 흉노 역시 부여에 조공하였다는 기록 등은 아예 국사 교과서에 넣지도 않았다.
우리를 한심하게 만든 학자들
한나라가 자존심이 상하여 노비 ‘노(奴)’자를 붙여 흉노(匈奴)라고 한 그 흉노는 사실 훈족으로 유럽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 훈족들의 일부가 서쪽으로 나아가 ‘헝가리와 핀란드’를 만드는 중심역할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훈족들의 압력으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로마’가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이것이 모두 우리민족의 일부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부작용인 것이다.
또한 가야라는 말의 어원은 ‘가라’이며 ‘가라’의 어원은 ‘하라’인데 ‘하’는 ‘해의 원형’이니 이 뜻은 ‘광명의 땅·밝은 땅’이 된다. 전 중국 지역과 몽골 러시아까지도 ‘하라’였다가 독립하고 나라를 만들다 보니, 한반도 까지 밀려 내려 왔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日本)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곳이 ‘라라’였는데 소리 바꿈 되어 ‘나라’가 되었다.(말은 어떻게 태어났나? 소리 바꿈 법칙·박병식 저)
백제도 ‘삼국사기’와 ‘만주 원류고’, ‘남제서’, ‘최치원전’에 보면 당시 76만 호의 인구로 백만 대병을 거병할 수 있고 현 중국 지역에 있던 소국인 ‘유·연·제·노·오·월을 마음대로 농락할 엄청남 힘을 갖고 있으며, 8왕과 4후를 두는 황제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나라 원로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걱정하지도 않고 이러한 내용이 있는 줄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식 국제지식만 가지고 있다 보니,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이 역사왜곡을 하도록 원인제공을 한 것으로 판단될 정도이다.
아직도 북한 평양을 한사군의 ‘낙랑군’이라고 엉뚱한 거짓말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심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거짓 역사와 문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것과 같다.
안중근 의사·윤봉길 의사·이준 열사·이봉창 의사들은 우리 민족의 올바른 역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국가와 민족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다.
/강동민 칼럼니스트.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역사바로세우기와 민족의 자존심은 찾는 글들을 계속 써오고 있다.
minjock1944@hanafos.com
치우천황이 우리나라 역사가 맞나요?
1.
한단고기 뿐만 아니라 중국민족사, 사기, 사기주해, 사기정의 등에도 치우천황은 '옛 천자(蚩尤古天子)'라고 명시 되어있으니 도깨비지 사람이 아니다 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또한 위만조선을 격파했으나 북부여에 패배해 동이족 합병에 실패한 한무제 시대에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에 의해 `금살치우' 라고 왜곡되어 쓰였으니 역사적으로 없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2.
중국은 중화족이며 우리민족은 동이족입니다.
동이족은 고구려와 부여뿐만 아니라 여진,거란,말갈족등도 동이족이었다고
중국역사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과의 다른민족 즉, 오랑캐라 불렀습니다.
상고사에 등장하는 배달국가의 민족들은(배달국가는 단일 영토의 국가가 아니라 부락의 연합에 가까웠다죠)
동이족인데, 중화족과의 치열한 영토싸움을 하였습니다.
밀고 밀리는 치열한 싸움속에 중화족을 중국대륙 가운데까지 밀어붙인 환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18대 배달환웅 자오지 천황 즉, 치우천황 이었습니다.
소뿔이 달린 금속투구를 쓰고다녔다하여 `우두(牛頭)머리'라고 불렸고
이 우두머리는 지금도 지도자를 칭하는 대명사로 통하고 있습니다.
중국역사학자들의 꾸준한 노력과 일제의 한민족 역사죽이기 이후 일제사관이 뿌리박힌 한국역사인들의
역사회복의 노력이 아무 것도 없는 현재, 중국에서 치우천황이 중국황제다 라고 외쳐도 아무도 이이를 제기하지 않는, 아니 이이조차 제기할 수 없는 현 상황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아래는 배달국의 역대 환웅 연대표입니다.
신시배달(神市1~13대 환웅)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B.C 3897)
(일명 배달 환웅, 온밝누리 한)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B.C.3803)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B.C.3717)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B.C.3618)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B.C.3511)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B.C.3419)
7대 거련 환웅 (居連, B.C.3320)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B.C.3239)
9대 양운 환웅 (養雲, B.C.3166)
10대 갈고 환웅(葛古, B.C.3070)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B.C.2970)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B.C.2878)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B.C.2773)
청구배달(靑丘14대~18대 환웅)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B.C.2597)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B.C.2453)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B.C.2452)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B.C.2380)
(일명 단웅(檀雄) 천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