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집사람은 몇 년 전부터 생전에 세상 구경을 능력 한도 내에서 해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일본과 중국을 다녀와 생각한 것이 조금이라도 젊을 때 먼 곳을 여행하고, 나이가 들었을 때 가까운 동남아를 둘러보기로 결정 하였다. 그 후 작년에 지중해 터키, 그리스, 이집트, 두바이를 다녀와 이번에는 어디를 둘러볼까 고민하다, 떠나기 열흘 전에야 서유럽을 둘러보기로 결정하였다. 집 사람은 서유럽을 가더라도 제대로 보기위해 4~5개국으로 가자고 하였고, 내가 가능하면 한 개국이라도 더 보아야 한다고 우겨, 8개국 15일 패키지가 있기에 결정하였다. 이런 패키지여행을 통해 한 나라를 대충 둘러보는 형식이라도, 일 년에 한번 정도 어렵게 시간과 돈을 마련하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겨울에 원정 온 대학팀들과 2달을 바쁘게 보내고, 마지막 팀 계명대팀이 떠난 이틀 뒤 떠나는 여행이라 여행지에 대한 공부는 하지도 못했다. 서유럽 나라들은 부유한 나라이기에 가서 눈으로 직접보고, 음식 맛보고, 와인의 산지이기에 다양한 와인을 맛보기로 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와인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술을 좋아했던 나이기에 최근 들어 국내에서 와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고,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았던 관계로, 도대체 얼마나 좋은 술이기에 그런가 싶은 관심의 발로다. 내 생각은 와인이 좋다지만 남의 나라 술이기에 가능하면 우리 술을 가까이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서둘러 구입한 디지털 카메라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렌즈와 호환이 되지 않는다기에 부랴부랴 호환이 되는 니콘D80 카메라로 교체하여 떠나기 전날 오후에야 받았다. 비디오 카메라와 트라이포트(삼각대)를 가지고 갈까 망설이다 가지고 가기로 결정하고 카메라 가방을 챙기니, 무게가 꽤 나간다. 사실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 다니면서 촬영 하노라면 여행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사이도 없다. 그렇지만 사진과 동영상을 가지고 있는 게 설명을 들은 후 지워지는 기억과는 차이가 있다. 동영상은 작년 지중해에서 촬영한 그림을 보고 깨닳은 바가 있어 트라이포트를 구했지만 무게가 만만찮아 한동안 망설이다 가지고 가서 후회하기로 하고 가지고 가기로 결정하였던 터다.
첫날 2월 28일, 드디어 떠나는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허리 보강 운동을 하였다. 서둘러 운동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가방을 챙기고, 아침을 대충 먹고, 집에서 새벽 5시 30분에 출발 하였다. 제주시 까지 차를 갖고 가 시내에 세워놓고 공항까지는 택시를 이용하였다. 제주 공항 7시 35분발 김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에서 김포까지야 한 시간 거리이니 금방이다. 김포에서 내려짐이 많기에 리무진 버스를 이용하자고 하였더니, 집사람은 지하철을 이용 하는 게 값이 저렴하단다. 아낄게 따로 있지 멀리 서유럽까지 가는 여행이라 짐도 무거운데 투덜거려 보지만 거역하다간 자칫 여행을 망칠수도 있기에 그러자고 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였다.
일찍 도착하였기에 인천 공항에서 한숨을 돌리고 무언가 빠진 게 없나싶어 돼 집어 보지만 이제와 빠진들 뭣 하겠나싶다. 한참을 기다리다 만나기로 한 구역에 가니 함께 떠나는 분들이 하나둘 오시고 다 오시고 보니, 젊은 아가씨 2명을 빼고는 우리가 가장 젊은 것 같다. 작년 지중해 여행에서도 우리가 가장 젊은 부부였는데, 이번에도 막내인 것 같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수속을 밟고, 오후 13시 20분 스위스 취리히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취리히 까지는 12시간이 걸린단다. 이제부터 지루한 시간과의 몸부림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비행기를 장시간 타면 숙면을 취하면 금방 도착지에 도착할건데, 잠을 자지 못하는 관계로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나로서는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비행기 좌석 여분이 많아 널찍한 앞자리에 가서 두 다리를 올리기도 하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기에 큰 고생은 하지 않았다. 취리히 공항에 도착하니, 이곳 시간은 우리보다 8시간이 늦다. 시계를 뒤로 돌리고 곧 바로 버스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출발하였다.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이 아름다운 것 같은데, 차창 밖은 어두워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없다. 스위스 주변국으로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있다. 이곳의 공용어는 독어가 60%를 사용하고, 불어가 30%, 나머지가 이탈리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로마노 언어를 사용하는 1%가 전부란다. 숙소인 호텔은 알프스 산맥에 있는 아담한 호수 위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베텐베르그 호텔, 해발 1250m 자리하고 있다.
이곳 시간으로 밤늦은 시간이지만 호텔에서 저녁을 준비해 주었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멀미를 한 집사람은 식사를 하지 못하겠다기에 밖에 있고 나만 식사를 하였다. 숙소에 들어가 짐을 꺼내고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시차 때문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새벽 2시 45분 다시 잠을 청해 보았지만, 한국 시간으로 아침이라 잠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봐야 피곤만 더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포기를 하였다. 시차 8시간이면 앞으로 최소 5일에서 일주일 정도는 시차로 인해 밤에 잠을 설치게 될것이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버스에서 잠을 자게 되면 여행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느껴야 하는데 걱정이다.
2일째 29일, 여명이 밝아오지 않은 시간에 일찍 호텔을 나서 인터라켄 오스트역에서 융푸라우행 산악 열차를 07:10분 타고 알프스 산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눈으로 뒤덮힌 알프스 비경을 보노라니, 느리기는 하였지만 금세 융푸라우에 도착한다.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한동안 올라가 내렸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융푸라우 요흐 해발 3425m 올라갔다. 피곤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관계로 눈 덮은 고산으로 올라오니,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기도 하다. 이곳 온도는 영하 5도, 강한 바람이 불어 체감 온도는 더하다. 이곳은 만년설이 있는 고산이라 올라가면서 내려오면서 보았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속도가 빨라 우리 세대에 만년설이 다 녹아내릴 것 같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들었던 터다.
융푸라우에는 우리 말고도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가까운 일본 사람들, 중국 사람들중 일본 사람들은 이곳을 많이 다녀갔기에 마테호른 쪽으로 몰린단다. 우리도 융푸라우에 식상하면 마테호른이나 최고봉인 몽불랑으로 몰려 갈 것이다. 하산 중 날씨가 괜찮다가 눈이오다 금새 구름이 덮이는 모습이다. 융푸라우에서 내려와 오스트에서 스위스 음식인 미트퐁듀(쇠고기와 닭 가슴살을 끓는 해바라기 기름에 담궈 익혀먹는)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이 음식은 스위스 고유의 음식이고 가격도 만만치 않단다.(우리돈으로 6만원) 식사를 끝내고 쇼핑하러 가기 전 공원 같은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으니, 사방이 알프스 산맥으로 둘러쌓인 인터라켄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쇼핑을 끝내고 다시 버스에 탑승한다. 인터라켄에서 밀라노로 이동해야 한다. 스위스에 도착해 잠시 머물다가는 일정에 아쉬움만 남는다. 그래도 올라가면서 내려오면서 보았던 많은 스키어들 모습, 스키장 모습, 울창한 숲, 자연에 순응하려는 그네들의 아름다운 주택들, 험준한 산악을 깍아 초지를 만들어 놓은 모습, 모두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곳 스위스는 산악 지역이기에 터널이 많았다. 이렇게 많은 터널을 뚫다보니, 토목과 기계가 발달하게 되고, 제약업과 목축업이 발달해 있단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시계가 유명하기에 시계 산업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시계 산업은 이제 사양 산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나 갖고 있는 헨드폰으로 인해 시계가 팔리지 않는다니 말이다. 현재 시계 산업은 스위스 산업의 7%란다.
유가공 업체인 네슬러가 유명하고 관광, 케이불카 산업이 발달해 있단다. 그리고 스위스의 은행 제도가 발달해 있어 금융산업이 발전해 있단다. 이곳 스위스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국가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사람들일 것이다. 세금이 50% 이니 말이다. 우리 상식으로 말하면 세금 50% 이면 다들 죽는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나 역시도 수입의 50%를 세금으로 내라면 업을 접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많은 세금을 걷어 실업자나 사회 복지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유럽 전체가 과다한 복지비 지출에 혼쭐이 나 지금은 복지비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지 않는가. 내가 아는 스위스 노처녀가 서귀포 바다에서 가이드를 하였는바, 스위스 국가에서 매달 그녀의 구좌에 160만원 가까운 돈을 넣어주고, 직업을 구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편지를 보내온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길목에 알프스 산맥을 넘기 위해 만든 터널인 산고타도 터널의 길이가 엄청났다. 그 큰 산맥을 뚫었으니 오죽하겠는가, 터널에 들어서 한참을 가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자그마치 17km의 터널이라니 굉장하였다. 이 터널을 통과하면 이탈리아로 들어가게 된다. 건너기전에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터널을 통과하면 이탈리아어를 사용한단다. 이렇듯 알프스 하면 세계 3대 산맥(안데스, 히말리아)의 하나보다는 아름다운 꽃과, 아름다운 주택이, 잘 어우러진 멋진 산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29일 18시 25분 스위스 국경통과 이탈리아에 들어섰다. 국경이래야 조그마한 표지판 하나로 알려줄 뿐이다. 유럽이 하나로 뭉쳤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지루한 시간을 달리고 나서 이탈리아 밀라노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선 저녁에 성당과 갤러리아 아케이드, 스칼라 극장을 구경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3일째, 3월 1일 오전 8시 30분 호텔에서 출발, 피사까지 349km, 4시간 소요 끝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서 피사의 사탑도 유명하지 않는가, 만약 피사의 사탑이 기울지 않았다면 이렇게 유명하지도 않았을 텐데. 피사의 사탑을 관람하고 사탑옆에서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갔는데, 두 분이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가 두 분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기에 나가 보았더니, 세 번을 돌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단다. 두 분의 얼굴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지만,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 방향 골목으로 뛰어가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오니 가이드가 다른 가이드에게서 연락이 왔단다. 두 분이 찾다가 못 찾아 바깥에 나가 도움을 요청한 모양 이였다. 다행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식사를 마친 후 14시 로마로 향하였다. 밀라노는 경제 상업의 도시란다. 로마로 가는 길옆에 간간히 완만한 능선 정도의 산들이 있다. 노란 개나리가 피어있고, 매화가 피어 있는 모습이고, 들판에는 밀밭이 끝없이 펼 처져 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유럽은 전쟁의 역사와 흑사병이 창궐하였기에 흑사병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과 전쟁나간 남자들로 인해 여성들만 남아 정조를 지키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 살았단다. 그렇기에 산꼭대기와 산자락에 주택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옛날이야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 올라갔다지만, 지금은 많이 불편할텐데 그래도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은 이네들의 사고를 인정해 주어야 할듯하다. 우리 같으면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할 것 같다.
한참을 달린 뒤 끼안떼 지방의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곳에서 나는 다양한 와인이 우리나라에 들어가면 3배에서 10배 가까이 튀겨 진다니, 튀겨 지기 전 이곳에서 원 없이 마셔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휴게소에서 와인 2병을 구입하였지만, 아마도 이 와인도 거품은 있을 것이다. 이태리 와인은 브렌디 와인이라 무겁고 깊이가 있고 중후한 맛을 내는 와인이라고 한다. 내 혀로는 무게와 깊이 중후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소주와 양주 맥주에 길 들여저 있던 터라, 다양한 와인을 마실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구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레드 와인은 오픈 후 한 시간이 지난 후 마시는 게 상식이란다. 이마저도 이제야 알았으니.........
4일째, 2일, 호텔에서 폼페이로 이동, 폼페이는 2000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뭍혀 있다가 250년 전에야 발굴된 곳이다. 지금까지 발굴 된 게 4/3이고 조만간 완전 발굴이 되고 나서 제대로 복원해 놓으면, 인류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 소중한 유산이라 생각된다. 도시가 성으로 둘러 싸였고, 반경 3km 내에 계획된 도시모습 이였다. 큰 길은 상당히 넓게 직선으로 바닥은 돌을 박아 길을 내었고, 그 당시에도 집집마다 물을 공급받았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이곳에서 본 마을 모습과 뜨거운 화산재에 고통스럽게 죽어간 사람 모습과 동물의 모습을 보면서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과 그 옛날에도 사창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웃음도 나온다.
누군가 역사학자가 하였다는 말이 생각난다. ‘현재의 인류를 고스란히 간직하게 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한순간 화산재로 뒤덮는 방법”이라는 사실, 끔찍한 말이지만 인류를 공부한 학자이기에 가능한 말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폼페이를 관람하고 점심 식사 후 열차를 타고 소렌토로 이동하였다. 소렌토를 가면서 차창 밖으로 본 모습은 건물의 모습, 올리브 나무를 위시한 다양한 나무들 모습, 산 모습이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에서 본 모습이 고스란히 있는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소렌토 항으로 내려가는 꼬불꼬불한 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지은 집의 모습이 아름다운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항에서 잠시 머물며 사진을 찍어보니 파인더에 들어오는 하나하나가 그림 그 자체다.
항에서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이동한다. 배를 타고 약 50분 정도 지나니 아름다운 카프리 섬이 나타난다. 이곳도 유명한 관광지인 모양, 많은 사람들이 찾는걸 보니 말이다. 항에서 내려 조그마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지나, 엄청난 높이의 직벽에 콘크리트 교각을 세워 만든 길을 타고 올라가노라니 가슴이 섬뜩하다. 이런 꼬불꼬불한 길과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함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기에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을 보면서 제주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옛날 길을 직선으로 뽑고, 제주도 어디든 한 시간 거리를 만들고, 경치가 좋은 곳에는 의례히 호텔이나 민박집들로 채워져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모습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름다운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직선의 길과 자연을 훼손한 모습을 보고 무엇을 느끼겠는가. 쭉 뻗은 직선의 길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 머물지 않게 한다. 유럽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 옛것을 지키고, 사랑하면서 불편함을 감수함으로, 그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게 함으로, 금전적으로 보상받는 모습이 부럽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에게 준 것도 많이 있지만, 물질만능에 빠져 돈이 전부인양, 그저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여행하는 이유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함을 눈으로 보고,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함이다. 카프리 섬 절벽 중간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며 관망하는 마을과 절벽 정상에서 관망한 섬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내려와 다시 배를 타고 소렌토로 가지 않고, 항구도시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나폴리 항으로 갔다. 항에 들어서자 엄청나게 큰 배들의 모습에 압도당하는 것 같다. 나폴리 항도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내 눈에는 아름답게 다가오고, 내항 깊숙이 초대형 배들이 들어오는걸 보면, 바다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항만 시설을 보면 그 나라의 자연을 생각하는 정도를 알 수 있다. 우리의 모습은 물길을 막고 곡선도 아닌 직선과 직각을 이용 바닷물이 흐르지 못하게 하여 항 바깥이나 내항도 죽은 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왜 가까운 일본을 배우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항만 시설은 국가의 중요한 기간 시설이지만 자연을 망치지 않는 최소한의 배려가 아쉬운 부분이다.
5일째, 3일. 전날 아침에도 호텔에 물이 나오지 않아 샤워도 못하고 나갔더랬는데, 오늘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을 공급하는 시에서 문제가 있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데 분통이 터진다. 전날도 물이 나오지 않았고, 오늘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대책을 세워줘야 하는 게 아닌가. 선조들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 유적들로 이네들을 오만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화장실 가는데도 돈이요, 도시에 들어가는데도 돈이요, 그래도 세계에서 엄청난 관광객들이 몰려드니 말이다. 이렇게 오만함으로 일관하다가는 언젠가 우리나라를 위시해 아시아 및 개발도 상국들에게 추월당할 것이다. 스위스 같이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도 그네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세계에서도 부자 나라로 발 돋음 하였음이 말해준다.
어렵게 생수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한 후,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는데, 두 분이 타지 않았단다. 피사의 사탑에서 실종되셨던 부부가 버스를 타지 않았는데 버스가 출발하였으니, 가이드의 실수다. 오늘은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가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바티칸 시국으로 가는데, 로마시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체크 포인트에서 시내 진입료를 내야 한단다. 우리 돈으로 30만 원 정도. 바티칸 시국에 도착하니, 엄청난 사람들이 줄서 있다. 오늘 줄은 그렇게 길게 있는 줄이 아니라고 한다. 평소에 얼마나 길게 서있는 줄이기에 이 줄이 길지 않다고 하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바티칸 시국은 독립된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관광객들은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만 관람할 수 있다.
이곳은 엄청난 높이의 내벽과 천장에 르네상스 예술 사상의 거장(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 젤로, 베르니니등)들이 그린 대형 그림들과 예술품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하게 한다. 그리고 엄청난 관람객들로 인해 가만히 서있어도 밀려갈 정도의 사람들, 한마디로 인산인해다. 나 역시 일행을 놓칠세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따라 다녔다. 그렇지만 광장에 나오니 우려했던 대로 두 분이 보이지 않으셨다. 한분은 조금 후 찾아 오셨고, 한분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와 합류 하셨다. 시국을 나와 중국식으로 식사를 한 후, 콜롯세움을 관광하고, 옵션 상품인 벤츠를 타고 로마 시내곳곳을 관광하기로 하였다. 벤허에 나왔던 마차 경기장, 트레비 분수등등. 로마 시내는 한마디로 시내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 60%가 로마에 있다니 할 말을 잊게 한다.
도시 전체를 벽돌과 돌로 만들었기에, 하물며 길바닥도 돌로 만들었기에, 세월이 가면 갈수록 진가는 더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거리의 젊은이들이 주변 사람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 껴안고 키스를 하는 모습은, 나에게 생소함으로 다가왔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려니 하면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정도의 유산을 가지고 있기에 세계에서 패션과 디자인 부분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가는 곳 마다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엄청난 관광객들로 붐비는 모습은 한 마디로 부럽기도 하다. 좁은 길에서 레스토랑 앞 길바닥에 의자를 놓고 한가롭게 여유로움을 즐기는 모습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6일째, 4일, 3일간 묵었던 호텔에서 07:40분 출발 피렌체 까지 4시간 가야한다. 피렌체로 가는 고속도로변 펼쳐저 있는 농촌 풍경은 밀밭과 완만한 능선 꼭대기에 집을 짖고 사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과 밭 하나의 크기가 우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상당히 크다. 피렌체는 200년 전에 만든 인구 50만의 일명 꽃의 도시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도시이다. 피렌체에도 체크 포인트에서 30만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시내에 진입할 수 있다. 먼저 미켈란 젤로의 언덕으로 올라가 도시를 조망하고, 시내에서 걸어서 도시를 관광하였다. 200년 전에 만든 도시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져 올수 있었다는 사실에 이네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오후 3시 20분 버스를 타고 베니스로 출발하여 베니스 근교에 있는 호텔에 투숙하였다. 밤에 호텔에서 나와 함께 여행하는 부부와 꽤 큰 할인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였다. 나는 먼저 와인 코너로 가서 와인 가격을 보노라니, 와인 가격이 10유로 이하의 와인이 대다수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가격을 기준으로 2병을 구입하고, 맥주 켄 2개를 구입하고 군것질 거리와 기타등 구입 택시를 타고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에서 같이 간 분들과 와인을 시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곳 호텔은 옆방과 문하나 두고 있는 사이라 옆방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릴 정도다. 잠을 잘 여는데 옆방에서 떠드는 소리에 잠이 올 리가 없다. 새벽 2시가 되니 잠잠해진다.
7일째, 5일, 07:45분 호텔에서 출발 물의도시 베네치아(베니스)로 들어간다. 차에서 내려 베니스 중심가에 있는 대운하에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관광한다. 그 옛날에 이렇게 물의 도시를 돌로 만들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웅장함 구역마다 작은 수로로 배가 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베니스는 인구 6만이고 점차적으로 인구가 줄고 있단다. 여기저기 보수 공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여행객들로부터 징수한 입장료 가지고는 보수 공사비 충당하기도 벅찰 것이다. 베니스 중심가에 내려 도보로 관광하고 어디든 가면 광장이 있기 마련, 산마르코 광장에 엄청난 비둘기 떼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곤돌라를 나눠 타고 베니스 작은 수로를 다니면서 관광하였다. 뾰족하고 좁은 곤돌라 길이는 약 7m 정도 되 보이는데 구석구석 부딪치지 않게 노를 잘도 젖 는다.
베니스에서 관광한 후 13:40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출발한다. 이번 여행에서 비행기 타고 온 거리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가 맞먹을 정도의 대장정이다. 지금까지 스케줄대로 움직이는걸 보면 신기할 정도, 도로가 좋고 차 막힘이 별로 없다. 고속도로변에 있는 농촌 풍경은 그림 같다. 가까운 곳에는 포도밭과 초록의 밀밭, 다양한 색상의 꽃나무, 올리브 나무, 멀리 펼 쳐져 있는 알프스 산맥의 눈 덮인 영봉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참을 달려 알프스 산맥 가까이 다가가니 협곡으로 들어간다. 도로변에 눈 녹은 물들이 흘러가는 강이 있고, 길옆으로 약간의 평지를 지나 바로 직벽에 가까운 알프스 산들로 인해 장거리 버스를 타면서도 이렇게 지루하지 않게 갈수 있는 것 같다.
고속도로에 대형 화물차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이 많은 화물차들은 동유럽으로 가는 차들이란다. 그리고 아름다운 알프스 산, 상당히 높은 곳 까지 아름다운 주택의 모습이 보인다. 이길 은 꽃이 만발하는 4월 말이나 5월이면 환상이란다. 지금의 이 길도 이렇게 환상이다. 이런 길을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 해도 나에게는 너무너무 행복하다. 마음속으로 10년 후, 다시 한 번 이 길을 여행하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특히 이 길이 환상이라는 것이 수 천 미터 되는 알프스 산맥의 무수한 봉우리 정상에서 협곡으로 달리고 있는 버스와의 거리가 가까워 경치를 감상하기는 적격이다. 서귀포에서 멀리 한라산 정상을 바라보는데 익숙한 내 눈에는 또 다른 감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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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분 국경을 통과하여 오스트리아로 들어선다. 이곳도 가이드가 말해 주지 않으면 국경인지도 모를 정도로 표지판 하나로 그냥 통과. 이제는 해발 고도가 높아 길옆에 온통 눈뿐이다. 차창 밖으로 눈발이 날리고 있다. 눈발은 잠시 날리더니 금세 멈춘다. 오스트리아의 주택도 이태리와 유사하다. 하얀 알프스 산맥에 상당히 높은 지역까지 주택들이 있고 주택밑으로 절벽이 보이기도 한다. 잘 못하다간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절벽 아래로 한없이 떨어질 것만 같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에야 인스부르크에 도착하였다. 인스부르크는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관계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인스부르크 시내를 관광하고 인스부르크에서 조금 떨어진 곳 호텔은 해발 1400m 있었다.
8일째, 6일,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독일로 넘어가기 위해 08:00시에 호텔을 나선다. 오늘도 버스를 타고 달려 독일로 넘어가야 한다. 설원을 달리니 눈밭을 달리는 스키어들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 아마도 50cm 정도 눈이 쌓였기에 스키를 타는 사람들에게 환상의 코스이리라 생각된다. 09:55분에 독일 국경선을 통과해 한참을 달리다 백조의 성에 도착하였다. 산자락에 요새같이 자리한 백조의 성은 바그너가 머물렀던 곳이고, 숲속에 고즈넉이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올라 갈 때는 걸어서, 내려 올때는 마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말 2마리가 끄는 마차인데 말 덩치가 제주도 말의 3~4배는 되어 보인다. 또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독일 휘센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14:00시에 로텐부르크로 출발하였다.
휘센에서 조금달리니 끝없는 평지가 나오면서 설원을 벗어났다. 완만한 능선만 보일뿐, 산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도로변에 나무가 많이 보인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고속도로가 독일의 유명한 아우토반 도로다. 아우토반 도로가 독일 전체를 그물망 같이 잘 깔려져 있고 아우토반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이용료를 내지 않는단다. 최근에 아우토반을 이용하는 차량들이 너무 많아 화물차와 관광버스는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단다. 그리고 주말에 화물차는 아우토반 진입이 불허되고 있단다. 통행료는 아우토반에 카메라가 촬영 인공위성을 통해 첨단으로 징수 한다고 한다. 로텐부르크에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도시에 들어가니 성으로 만들어져 있다. 성안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건축물과 시가지 성당을 관광하고,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나왔다. 19:30 곧바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출발한다.
9일째, 7일 08:00 로텐부르크를 출발 하이델베르그로 달린다. 유럽을 달리는 관광버스에는 다코미터가 있어 운전사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해 한 시간을 운행하면 10분을 휴식하고, 2시간을 운행하면 20분을 의무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단다. 이것을 위반시 한 달 월급에 준하는 과태료를 내야 하는 모양이다. 하이델베르그 중앙역에 도착, 현지 가이드를 태워 하이델베르그 성으로 간다. 하이델베르그는 출판, 미디어가 발달해 있고, 독일 역사상 최초의 대학이 생긴 곳 이란다. 이곳 대학에는 켐퍼스가 없고 단과대학 시내 전역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시 인구 14만 명중 학생이 3/1 이란다. 하이델베르그성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지만 예전의 약재 시스템과 초대형 오크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하게 한다. 이 오크통 크기가 22만 리터 통 2개가 있다.
독일은 잘 놓여진 아우토반으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발전해 있고, 그리고 맥주가 유명하다. 그 유명한 맥주보다 물값이 20% 더 비싸다니 아리러니다. 맥주 종류가 3000종이 넘고, 맥주 축제 기간 1주일 동안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맥주와 닭고기, 쏘세지양이 독일 국민이 1년간 먹는 양보다 많단다. 하이델베르그 시내를 흐르는 내캉강을 건너 산으로 올라가 시내를 조망하고 내려와 쇼핑을 하였다. 저녁은 이곳에서 한식으로 먹었는바, 유럽 식당 어디를 가나 음식이 한 결 같이 우리 입에는 짜다. 그래도 지금까지 식사는 좋은것 같다. 아침은 호텔식 점심과 저녁은 현지식과 중식, 한식으로 적절히 먹고 있어 그렇다. 또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이다.
10일째 8일, 07:30분 호텔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한다. 원래 숙소가 이곳이 아니었는데 프랑크푸르트에 패션 뮤직 박람회가 개최되고 있어 호텔을 잡을 수가 없었기에 이곳에서 자고 아침 일찍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2차 대전 때 도시가 거의 파손되어 새롭게 건설되어 서울과 같은 도시라고 한다. 프랑크푸르트는 금융이 발달해 있고 박람회가 많이 개최되고 있으며, 교민이 많이 있고, 한국 기업 지사가 많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 네모광장에 도착, 시청사 성당을 둘러보고 면세점 쇼핑을 위해 들어갔다. 면세점에 진열되어 있는 유명회사의 칼, 밥솥 가격을 보니 엄청나다. 그래도 우리나라 보다는 싸단다. 우리부부에게는 그림의 떡이라, 그저 아이쇼핑에 만족 할뿐이다.
10:10분 쾰른으로 출발이다. 독일 아우토반 전체 거리가 176,000km 이고 오토바이도 운행이 가능하단다. 10:55분 라인 강변을 달리고 있다. 강 주변에 포도밭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이곳이 와인의 산지라 유명해 졌단다. 라인강은 폭도 넓고 수량이 많으며 평균 깊이도 27m란다. 컨테이너를 실은 큰 배들이 많이 왕래하고 있으며, 강 옆에 주택들이 늘어져 있고, 가파른 언덕에 포도밭과 간간이 보이는 고성들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한다. 고성들은 중세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그리고 물 색깔은 황토색이다. 라인강변을 한참이나 달렸는데도 교각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자연을 해치지 않을 여고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가는 길에 로렐라이 언덕으로 올라가 라인 강을 조망하고 쾰른으로 달린다.
쾰른에 도착, 쾰른에서 유명한 대성당으로 향하였다. 멀리서 보아도 대성당은 엄청났다. 높이가 157m 2개의 첨탑을 위시해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첨탑들이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 성당은 무려 632년 만에 지은 대성당이이란다. 중간에 약 300년간 공사가 중단된 것을 포함한 기간이란다. 그런데 외부에서 보면 성당 외벽이 까맣게 되어있는 것은 환경오염과 매연에 의해 그렇게 되었단다. 이것을 씻어내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부의 규모도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하게 만든다. 이 성당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일 년에 600만명, 년간 제주도를 찾는 방문객보다 많다니 놀랄 뿐이다.
쾰른에는 대성당과 맥주, 카니발이 유명하단다. 카니발 축제는 독일에서 가장 큰 축제에 속하며 시작은 부활절부터 금식기간(사순절) 이며, 카니발이 절정에 이르면 전국적으로 축제의 장이 된단다. 이 기간 중 초코렛과 사탕은 보기가 힘들 정도이며 축제가 끝나면 도시는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10달 후 카니발 베이비가 양산될 정도란다. 괼른 대성당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바, 돼지 족발을 주는데 양이 엄청나 겨우 먹기는 먹었지만 다른 분들은 다 드시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다 야채에다 감자튀김에 유명하다는 맥주 한잔까지 rut들이니 포만감에 움직이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14:20분 현지 가이드와 이별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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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분 독일 국경선을 통과하여 해수면 보다 낮은 지역이 많고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에 들어왔다. 전 세계 다이야몬드는 암스테르담에서 세공 및 가격이 결정되어 전 세계로 나간단다. 보험회사가 많고 치즈의 나라,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이 있단다. 19:30분 암스테르담 도착,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향하였다. 암스테르담에는 우리와 비슷한 아파트가 보이지만 높이는 그렇게 높지가 않았다. 밤에 호텔에서 나와 산책하느라 걸어보니, 도로옆에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는데, 폭이 2m정도 옆에는 수로가 이어져 있다. 횡단보도에 도달하여 신호등 옆 보 턴을 누르면 파란불이 켜져 건네게 되면 신호등이 바뀌었다. 차도에도 빨간 불이다가 차량이 전방에 나타나면 자동으로 파란불이 켜져 지나가게 만들어 놓았으며 곧바로 차량이 나타나도 연이어 파란불이 들어와 차량이 통과 하도록 시스템이였다.
이런 시스템은 우리도 배워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는 야간에도 신호등을 지킨다고 많은 차량이 대기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보면 엄청난 낭비가 아니겠는가. 사람과 차량이 편리하게 하기 위한 도로와 신호등이 사람과 차량이 불편하게 만들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보통 다른 나라에도 낮에 신호등을 지킨다고 서있으면 다들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량 소통에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사람이 먼저라는 인본주의가 합리적으로 보인다. 신호 위반을 적발한다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신호등 멀리서 신호 위반 차량을 적발하는 우리의 교통문화는 재고의 여지가 많다. 안 그래도 기름 값이 치솟고 있는 마당에, 이런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11일째 9일, 호텔에서 09:00출발 산세스칸스(우리 민속마을격)로 출발한다. 이곳 네덜란드는 농업은 GDP에 1%이고 크기는 남한의 반 크기이며,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은 해수면보다 7m가 낮은 지역이란다. 국토의 4/1이 해수면보다 낮아 길가 밭들과 논에 의례히 수로가 있는 것이 보인다. 풍차도 지금은 다 없어지고 민속 마을에만 있다고 한다. 풍차 마을에 도착 나막신 만드는 곳을 견학하고, 치즈를 만드는 공정을 견학한 후 풍차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풍차는 최초에 물을 퍼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다. 그리고 왕궁과 무명용사비 관광하고, 다이야 몬드 세공 및 판매소를 둘러보고 나왔다. 네덜란드는 수영이 국기이고, 강변에 선상 가옥이 보였다. 선상 가옥은 약 2500여 채가 있으며, 지금은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13:00시 식당 도착,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다. 이 식당에서 먹은 한식이 이번 여행 중 지금까지 먹은 한식 중 최고로 맛있었다. 13:38 네덜란드에서 벨기에로 이동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 다니면서 촬영하기도 힘들다. 촬영에 매달리다 촬영하지 못하면 할 일이 없어지는 것 같아 허전하기만 하다. 16:38분 벨기에 현지 가이드가 버스에 타고 브르셀 시내 투어를 하였다. 벨기에는 왕국이고 현재 6대 왕이 로얄 팔레스궁에서 집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벨기에는 네덜란드에서 1931년 떨어져 나와 독립하였으며, 브르셀에 1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벨기에 전체 인구가 1,000만 명이란다. 국민소득은 28,000유로(1유로 1,400원) 이고, 한국 교민은 500명이 산다고 한다.
12일째 10일, 08:00 부르셀 호텔에서 파리로 출발이다. 월요일이라 도로에 차량이 많이 막힌다. 길가에 개나리가 만개해 있고 벚꽃 같은 나무도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09:09분 프랑스 국경을 넘으니, 처음으로 경찰이 버스에 올라와 둘러보고 내려간다. 차창 밖을 보니 초록을 띠고 있는 밭과 갈아엎어 놓은 밭이 보이는데, 밭 하나의 크기가 우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 약 5000~10,000평 정도는 되어 보인다. 유럽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도 지형이 거의 대다수 평지다. 밀농사를 많이 짖고 있으니, 밀가루 파동은 안 겪을 듯하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찬란한 문화유산에다 드넓은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어 배가 부르니 거만해 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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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가까워 온다. 프랑스 인구 5,500~6,000만 명 파리 주변에 1,200만 명이 밀집해 산다고 한다. 파리에 국제공항이 2개나 있단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증거리라 1년에 프랑스를 찾는 사람이 7,800만 명 엄청나다. 12:10분 월드컵이 열렸던 생드니 경기장을 지나간다. 파리의 3대 박물관(르브르, 오르세, 현대)이 있고, 크고 작은 300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파리에는 파리 대학만 있고 제 1, 제 2, 제 3 형태란다. 파리시는 천년의 고도이고, 12 세기에 르브르가 건설 하였다. 파리는 전기줄과 현수막 입간판이 보이지 않고, 아파트에 에어컨도 없는 점은 도시의 미관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다. 나폴레옹이 빈을 정복한 후 만들었다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길이 나있는 모습이 신기하게 다가온다. 특히나 샹젤리제의 거리는 뻥 뚫린 듯, 거리에 세계적인 명품점들이 즐비하게 있는 모습이다.
14:42분 루브르 박물과 관람을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을 제대로 관람할여면 며칠은 걸린다는데, 우리는 시간이 없어 중요한 몇 가지만 둘러보기로 하였다. 루부르 박물관에는 30만점의 미술품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다 보겠는가. 루브르 박물관을 보면서 프랑스에서 갖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생각해본다. 우리의 문화재중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도 돌려주지 않고 있으니, 이것을 돌려받지 못하는 우리의 약소함에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것들을 보러 비싼 경비를 들여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을 보면 참말로 울화통이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말마따나 테제베를 들여 올 때 돌려받기로 하였을 시, 제대로 대처해 돌려받았었어야 할 것을 아직 돌려받지 못함은 우리의 무능이 아니겠는가.
루브르를 둘러보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러 갔더니, 많은 사람들로 인해 촬영도 힘들다. 이런 그림을 전문가도 아닌 내가 찬찬히 감상해 보았자 마음의 감동도 올 것 같지도 않다. 이네들의 사고와 같이 이런 그림을 훔쳐가 제주도에 갖다놓고 주지 않을 방도가 없는지 상상해본다. 이네들의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할 때 불태운 도서 4700여권을 생각하면 이곳에 있는 것들을 다 훔쳐간들, 하루빨리 대도를 키워야 할 것 같다. 그 나라의 문화재는 그 나라에 있는 게 상식 아닐까 생각해본다. 루브를 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많이 보였다. 다들 그림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분들만 오셨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야 그림에 문외한이니 대충보고 사진만 찍었다.
18:21분 식사 후 세느강으로 출발하였다.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돌면서, 파리시의 야경을 감상, 강에서 본 파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집중적으로 담아본다. 그중에 조명이 화려한 에펠탑이 장관이다. 그리고 세느강에는 다리가 200~300m 간격으로 많음을 볼 수 있었다. 다리만 하드라도 세느강에 37개가 있단다. 다리가 이렇게 많은데 모두가 예술적으로 만들어 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비가 오는 가운데도 파리의 야경을 둘러볼 수 있었음은 여행의 또 다른 감흥을 불러 온다. 로마와 함께 파리도 언젠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찬찬히 둘러보면서 유명한 레스토랑도 섭렵을 해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렇게 좁은 도시공간이라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과 함께 어우러져 도시가 더욱더 활기차 보인다.
13일째 11일 09:00 호텔이 변두리에 있었기에 또 다시 파리시로 들어가야 한다. 출근길이라 도로에 차량이 꽉 막혔다. 오늘은 유난히 심한게 이스라엘 총리가 왔기에 도로를 부분적으로 통제하기에 그렇단다. 100m 움직이는데 약 30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오늘은 먼저 베르사이유 궁전을 둘러볼 계획이다. 벌써 관람하기 위해 서있는 줄이 상당히 길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지루한 시간을 가이드의 화려한 언변에 귀를 기울여 본다. 궁전에 막상 들어가 관람하면서 실망을 하게 된다. 왕의 집무실 침실, 그림, 조각, 정원 이런 것 들을 보면서 시간에 쫒기다보니 대충보고 지나가노라면 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 찾아 해매다 길을 잊어 먹을까봐 함부로 다니기 겁난다. 대충보고 나오니 다들 기다리고 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에펠탑에 올라가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한다. 시간에 쫒기는 우리들로서는 비가 오늘 가운데 비를 맞으면서 긴 줄을 선다는 것은 고통이다. 혹시나 카메라가 젖을까봐 점퍼안에 넣어 웅크리고 있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어렵게 기다린 보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또 다시 갈아타 135m 올라가 파리시를 조망하였다.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 사진 촬영하기도 어려워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가서 몇 컷 촬영하였다. 서둘러 내려와 16:23분 버스에 올라탄다. 하도 버스를 많이 타다보니, 오히려 버스를 타는 게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쇼핑을 위해 쁘렝땅 백화점에 가서 아이 쇼핑을 해보지만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 할 뿐이다. 그리고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으로 출발하기 위해 역으로 갔다.
19:10분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 런던으로 출발하였다. 런던까지는 2시간 15분 소요된단다. 저녁 식사할 시간이 없어 도시락을 받았기에 열차속에서 식사를 하노라니, 주변에 있던 젊은 사람은 자리를 바꾸는 모습도 보인다. 그렇지만 체면 불구하고 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한참을 달리니, 바다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해저터널로 들어간다. 그것도 잠깐, 해저터널을 통과하는데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런던 역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 할여고 하는데, 버스가 말썽을 일으켜 버스를 바꾸어 타야 하기 때문에 잠시 기다려야 한다. 역 대합실 마켓에 들어가 안주 거리를 하나 살여고 골라 유로화를 주니 유로화는 받지 않는단다. 가진게 유로화 밖에 없는데 유로화를 받지 않겠다면 사지 않을 수밖에....
14일째 12일, 08:35분 호텔에서 출발하니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분다. 영국은 섬나라이고 국민소득이 46,000불, 국민 일인당 녹지 면적이 가장 넓은 나라이다. 프로 축구단이 200개 아마 합치면 일 만개, 영국을 찾는 외국인 2,000만 명이 된다고 한다. 거리에 쓰레기통이 없는 것은 북아일랜드 분리 주의자들이 폭탄을 쓰레기통에 설치한 적이 있어 쓰레기통을 다 치웠다고 한다. 가이드 말은 담배꽁초는 거리에 버려도 된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은 평균 6년을 서있을 정도로 서 있는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런던시가 서울의 2.5배이고 공원이 많은데, 하이드 파크가 80만평 이만한 공원이 6개나 있다고 한다. 시내를 관통하는 템즈강에 내려 기념사진 촬영하고 웨스트 민스트 사원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하였다. 시내 도로에는 차들이 많이 막히고 런던의 명물인 2층 버스가 많이 보인다. 기념으로 2층 버스 탑승을 해보았다.
하이드 파크에 들렀다가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는 궁으로 가서 의장대 교대 장면을 보았다. 의장대 교대장면 이래야 별 볼 것도 없는데, 이 장면을 볼 여고 몰려든 사람 수가 엄청나다. 런던의 중심가 트라팔카 광장 광고판에 삼성 광고판이 세계적인 기업 몇 개와 나란히 서있다. 이 광고판 사용료가 년 간 50억 이란다. 해외 특파원들이 런던에서 방송을 할 때는 이 광고판이 나오게끔 하기에 이렇게 비싸다고 한다. 점심 식사 후 쇼핑한다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젊은 사람이면 모르지만 어르신들이 쇼핑을 하지 않는데도, 시간을 허비하는 건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거리의 차들이 우리와 같이 직각이지 않고 곡선을 이용한 차가 아름다워 보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거의가 블랙이고 모자를 쓰고 개를 데리고 다니는 젠틀맨도 가끔 보였다. 타워 브릿지에 분수와 옆에 있는 템즈강과 함께 아름다운 건물(엎어 질듯 서있음)이 환상이다.
16:30분 대영제국 박물관에 도착하여 관람하였다. 이집트 그리스 고대 유물을 다 옮겨 놓은 것 같다. 다른 나라의 유물을 왜 이렇게 갖고 와 전시를 하고 있는지, 하루빨리 자국으로 다 돌려주기를 기도해 본다. 대영 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우뚝 선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침략의 역사와 이네들의 옛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한 몫 한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박물관 안에 한국관이 있음은 의외였다. 그것도 한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 졌다 한다. 초라하긴 하지만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를 알릴 수 있음에 박수를 보낸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공항으로 향하였다. 20:00시 런던 발 인천공항으로, 영국과 우리와 시차가 9시간, 13일 오후 16:30분 인천공항 도착. 19:50분 김포발 제주, 집에 도착하니 21:15분 보름간의 여행을 종료 하였다.
이번 여행은 여행의 비수기라 많이 할인된 패키지 상품 이였고, 함께 한 일행은 가이드 포함 23명이였다. 부부가 9쌍, 혼자 오신 2분, 젊은 아가씨 2명, 부부로는 우리가 가장 젊었으며, 다음이 50중반 되신 분, 나머지 분들은 다 60세가 넘은 분들 이였다. 다들 치열하게 인생을 사시다 정년퇴임하신 분들인데도 체력은 젊은 사람보다 오히려 좋은 분들만 선발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보름간이라 체력이 약한 분은 엄두도 못 내고, 체력에 자신 있는 분들만 동참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부부는 한참 일해야 할 나이에 무모하게 여행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였다. 몇 분은 환갑을 맞아 여행하시는 모습에 보기가 좋았고, 부부의 금실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것 같아 보는 저희들이 행복하였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하여 유럽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말로만 듣던 알프스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보기 전에는 알프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환상이 깨졌다는 게 아니라, 우리와 비교해 그다지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럽은 바다에서 융기하였기에 거의가 평지에 가까운 지형이 이네들의 부에 큰 영향을 미친것 같았다. 그리고 가가호호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주택을 보아서는 빈부의 격차를 못 느낄 정도로 주택이 비슷하였다. 넒은 농지에 드문드문 있는 주택들이 하나같이 부유해 보였고 풍요롭게 보였다. 또 주변국들이 다 부유하여 여행이 일반화 되어있어 가는 곳 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음은 우리에게 시 사 하는 바가 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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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