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이랑민족회복운동”의 한 가지 정신
일제 강점기에 건전한 신앙, 건강한 종교를 일으켜 나라를 세워 나가자는 신앙입국의 사람들이 있었다. 김교신, 함석헌, 송재용 같은 당시 20대와 30대의 한창 나이의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1927년 초부터 유학하고 있던 일본 동경에서 조선성서연구회란 모임을 결성하여 매 주 한차례씩 모여 성서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들의 목표는 성서 속에서 조선이 나갈 길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운동을 ‘성서조선운동’이라 이름 하였다. 그들이 1927년 7월부터 자신들의 생각을 담은 성서연구를 위한 월간지를 간행하였다. 그 잡지의 이름이 『성서조선 (聖書朝鮮)』이었다. 이 운동의 좌장격이었던 김교신 선생께서 그 잡지의 창간호에 다음 같은 권두언을 실었다.
“우리는 그 동안의 경험과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오늘의 조선에 줄 가장 귀한 선물은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신.구약 성서’ 한 권이라고.
그리하여 같이 모여 걱정하고 같은 소망을 가진 어리석은 친구 대여섯 명이 동경 시외에 있는 스기나미 마을(杉竝村)에서 처음으로 모임을 가졌고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였다. 매주 때마다 모여서 조선을 염려하고 성서를 공부하면서 지내 온지 반 년 남짓 지났을 때, 누군가가 그 동안 스스로 연구했던 것의 일부라도 세상에 공개할 것을 제의하니 그 이름을 ‘성서조선’이라 하게 되었다.
그 이름이 좋은지 나쁜지, 그 시기가 적절했는지는 우리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우리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이라는 두 글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제일 좋은 선물은 ‘성서’ 한 권뿐이니 둘 중의 하나를 버릴 수 없어서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 소원하기는 이를 통해서 뜨거운 사랑의 순정을 전하려는 것이며, 정성을 다한 선물을 그녀에게 드리려는 것이다.
‘성서조선’아, 너는 우선 이스라엘 집으로 가라. 소위 기성신자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국인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를 중요시하는 사람의 집에서는 그 발의 먼지를 털지어다.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교 신자보다는 조선의 혼을 가진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골로 가라. 거기에서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을 너의 사명으로 삼으라.
‘성서조선’아,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 일자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인을 기다려 면담하라. 서로 담론하라. 한 세기 후에 동지가 생긴들 무엇을 한탄하겠는가.”
위의 글은 1927년 7월에 창간 된 『성서조선』지의 창간호에 실린 창간사의 뒷부분이다. 이 글에 담긴 정신은 소박하고도 분명하다. ‘성경’이라는 애인과 ‘조선’이란 두 애인 중에서 어느 한 편을 버릴 수 없기에 그 이름을 짓기를 ‘성서조선’이라 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보다는 외국인을 예배하는 자의 집에서는 발의 먼지를 털라고 권면하면서,『성서조선』이란 책이 조선혼을 지닌 조선인에게로 가라고 쓰고 있다.
나는 이런 말과 정신에 십분 공감한다. 이것은 바로 “알이랑민족회복운동”의 정신이기도 하다. 복음에는 국경이 없지만 복음의 사람들에게는 섬겨야 할 조국이 있다. 조선기독교인들은 조선을 섬김으로써 세계를 섬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알이랑 민족 우리 겨레는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후손으로서(창 10:21~30), 마지막 대추수를 위해 쓰시고자 동방의 땅 끝에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이므로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서구신학만 베껴서 소개하지 말고 우리나라을 향하신 하느님의 예언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기록된 계시인 성경을 통해 주체적으로 자각하고 우리의 신학과 영감을 조국 교회와 열방을 향해 담대히 선포하자. 성경에 그것이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 땅을 향하신 여호와 하느님의 때에 찬 경륜과 섭리를 우리 세대에 이루어 드리자.
“내가 보기엔 한국은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 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느님을 믿는다면 하느님께서 한국 백성에게 공동의 선(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만큼 한국으로서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이다. 교회의 우선적 과제가 그리스도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한국의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이 담당할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한 - 다시 말해서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는 한 - 그런 한국에 그리스도를 소개한다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대천덕,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 p. 70)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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