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마을에서 온 전언
심 정 자
언니가 오지 마을에서 뜯었다고 건네준 검은 비닐봉지
잔설이 녹기 무섭게 햇살이 불러낸 어린 쑥이 있다
잘잘한 쑥빛
꼼지락 거리는 봄
얼었다 녹았다 하며 지상과 인연이 되었겠지
뿌리 근처까지 바짝 잘려 있다
잘라낸 자리로부터 퍼지는 쑥 향과 흙 향
눈앞에 삼월 들판이 펼쳐진다
저것은 언 땅과 녹은 땅의 경계를 넘어 내게로 온 전언
그녀가 내 마음속에 봄을 지피기 위해 애쓴 흔적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내내 겨울로 살고 있는 나에게
봄이 되라고 들판의 한쪽 부분을 떼어 냈겠지
바깥으로 향하는 틈을 모두 닫아버린 나에게도
볕 좋은 오후 쑥국을 먹으면
틈이 하나쯤 열리려나
눈물을 왈칵 쏟는다
긍정이라는 싹 하나 올라오라고.
비둘기 밥상
아침저녁 찾아오는 비둘기 한 쌍
마당 가운데 강아지 사료가 그들 밥이다
집 단장으로 밥그릇도 개집도 잠시 치워진 오후
작고 예쁜 발이 사라진 밥상을 찾는다
눈알을 굴리며 고개를 갸웃할 때마다 길이 된다
허탈감 배신감이 한꺼번에 몰려왔을까
생의 한 끼니 헛걸음치고 날아가고 만다
길들여진다는 건 언제나 쓸쓸한 것일까
떠나거나 이별하기 전까지의 달콤함이 한꺼번에 무너진다
시멘트를 발라서 미처 굳지 않은 앞마당
꽃을 피우듯 발자국이 지그재그로 찍혀있다
길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만드는 길 위의 길
비둘기가 만들어낸 꽃길
매번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담는 꽃잎 길
난 그 꽃길 끝에 가만히 비둘기 밥상을 다시 차려 놓는다.
[심정자]
한국문인협회. 인천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계간문예작가회. 한국문학세상. 옛정시인회. 국제펜인천지회회원. 수상 한울문학상. 한울문학작가상. 연암박지원 문학예술상. 570돌한글날기념 시장표창장. 허난설헌 문학상. 시집출간 : 『시인의 수레』 『그리움의 무늬』 『그때 그 저녁』 『언덕의 풀꽃』 『노란 새가 날고 있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