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와 실천을 위한 교육사랑방 6월 모임
프레이리의 삶과 교육사상
심성보(부산교육대학교 교수)
I. 왜 지금 프레이리냐?
저개발과 반민주로 얼룩진 브라질에서 태어나 문맹퇴치 교육운동을 펼치며 억압받는 민중 스스로 사회적 정치적 각성을 위해 싸운 민중교육자이며, 교육철학자이며, 사회운동가이며 20세기 대표적 교육사상가인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1997)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척박한 현실은 프레이리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반교육적 공세는 프레이리의 교육론을 복원시키고 있다.
인간화 교육, 의식화 교육, 민중교육의 철학이 담긴 [억눌린 자의 교육학] 과 [교육과 의식화] 등은 7-80 년대 제 3세계 젊은이들에게 필독서로 꼽힌 책이다. 1970년에 발간된 프레이리의 [억눌린 자의 교육학]이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 가톡릭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이름으로 비밀리에 해적판으로 유통되다가 1995년 한마당 출판사의 이름으로 공식 출판되었다. 사회정의와 변혁을 위한 민중들의 의식화에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지하서적인 [억눌린 자의 교육학]은 70년대 후반과 87년 6월항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숨어 지하운동을 하던 노동자들의 노동운동과 교사들의 교육운동, 대학생들의 학생운동을 하는데 있어 이념무장을 위한 바이벌이었다. 억압을 깨기 위한 의식화 교재인 이 책은 우리의 노동현실과 교육현실의 억압성을 폭로하는 계몽적 역할을 하였다. 책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감옥을 가야 했고, 자기가 다니던 직장을 떠나게 했던 의식화 교재였다.
[억눌린 자의 교육학] 때문에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지만 이제 그 희생의 대가로 우리나라는 지금 군사정부의 억압에서 벗어나 문민정부와 국민정부를 탄생시켰고 민주시민사회의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느정도로 자유로운가? 이전의 군사정부때보다 물리적 억압이 상당히 사라지고 자유를 다소 누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기실 우리가 초보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정치경제적 자유, 그리고 내적인 자유 등 고차적인 진보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멀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보적 자유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억압이 사라진 민주주의 시대에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항변하지만, 물질적 정신적 빈곤이 여전하고, 폭력적 제도와 관행이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억압적 현실이 존재하기에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더욱 현재적 의미가 크다. 더욱이 비판적 대화를 가로막는 ‘시장주의적 신자유주의’ 공세가 거세어지고 있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도 프레이리의 ‘의식화교육론’으로 다시 무장할 필요가 있다.
II. 프레이리의 지난한 삶과 교육의 역정
프레이리는 1921년 9월 19일 브라질 동북부 레치페에서 태어났다. 군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의 보호아래 성장하였다. 비교적 안정된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랐기에 프레이리의 어린시절은 아주 행복했다고 한다. 프레이리는 부모들이 보여주는 인내심, 관용, 사랑의 능력에 대해 큰 존경심을 보냈다. 프레이리는 스스로 네 명의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부터 화목하게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이유들을 알게 되었고, 이로부터 부모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졌다. 부모들은 정서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하였고, 논쟁적으로 사고하도록 하였으며, 종교적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였다. 특히 프레이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 자유주의적 삶과 태도는 아버지가 믿고 있는 카톨릭의 신앙과 영혼과 관련된 지역 모임 참석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같다. 아버지는 프레이리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잠에 들게 하였을 뿐 아니라, 이야기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어린 프레이리는 아버지에 의해 망고나무 아래에서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을 배웠다. 프레이리가 고백하듯 아버지가 ‘최초의 교사’였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 또한 프레이리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기에 그의 지적 정서적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프레이리는 이런 분위기에서 행복한 어린이시기를 보냈다.
10살이 되자 프레이리는 레치페에서 11마일이 떨어진 작은 도시(야보아토)로 이사를 했다. 이 때부터 프레이리의 삶은 어려워졌다. 이 시기는 1928-1932년 사이의 세계대공황이 있었기에 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프레이리에게는 더욱 고통스런 시간이었으며 배고픔을 참아내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 때 프레이리는 괴로움과 고통의 쓴 맛을 보았다. 프레이리는 13세가 되던 1934년 아버지가 작고하는 슬픔을 겪었기에 더욱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는 스스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고 고백할 정도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형제들과의 다투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웠다. 그것은 과부가 된 어머니로부터 배운 삶이다. 어머니의 삶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 속에서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배웠다.
가정이 궁핍하게 된 이 때부터 프레이리에게는 가난한 민중의 참상과 굶주림의 고통이 언제나 벗어나야 할 해방의 과제였다. 프레이리는 가정의 현실적 요구로 법과 철학을 동시에 공부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에게 법률학 공부는 크다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당시 대학에서는 주로 프랑스 학자들의 급진적 서적이 많이 나돌아 프레이리를 자극했다. 그는 당시 알튀세, 푸코, 프롬, 레비스트로스, 마리탱. 무니어, 샤르트르 등의 책을 두로 섭렵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슬럼가에서 야학을 하기도 한다. 이 때 그의 첫 부인이 되는 엘자를 만난다. 19세가 되는 해 프레이리는 1년여 동안 유치원 교사인 애인의 가정교사 부탁을 받으면서 더욱 정서적으로 가까워졌다. 프레이리는애인이 유치원 원장이 될 수 있는 자격시험을 대비하는 가정교사의 일로 인해 더욱 가깝게 했다. 애인을 가르치는 기간은 프레이리를 교육학에 관심을 끌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인생진로의 변화는 애인의 영향이 지대하였다고 고백한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인 1944년 프레이리는 애인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결혼을 하게 되고 세 딸과 두 아들을 두게 된다.
대학졸업 후 프레이리는 대학때 언어학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결과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면서 교직에 첫 발을 들여 놓는다. 프레이리는 변호사 자격도 갖고 있었으나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고, 교육자의 삶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후 박사학위논문이 통과될 때까지 그들의 생활은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1959년 레치페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된 후 1960 레시페 대학의 교육철학과 교육사를 가르치는 정식교수가 되면서 삶은 펴이기 시작한다. 그의 주 관심사는 문맹자들을 상대로 한 교육실험이었다. 정부의 문해 프로젝트 참여에 초청을 받아 시자간 북동부부지역에서의 문해 프로그램은 정부로부터 상당한 인정을 받게 되면서 자문도 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혁명적 교육개혁 실험은 당국의 정책과 마찰을 자주 빚게 된다. 자신의 문맹퇴치 교육사업에 어떤 이데올로기를 집어넣으려는 당국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았다. 생각할 권리와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그는 착취당하고 있는 브라질 민중의 현실을 그냥 보고 지낼 수 없었고 이렇게 된 원인을 알게 되면서 분노를 삭이지를 못했다.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좀처럼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허위의식=침묵문화의 유포)때문이기에 그 사실을 일깨워(=의식화) 주는 활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기능적 문맹퇴치(문해) 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문해교육을 하였다.
이러한 문해교육을 한 결과 프레이리는 1961년 대학교수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으로 끌려 갔다. 교육이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도 몸소 깨닫는 경험을 하였다. 이리하여 1964년 4월 쿠데타로 두 차레에 걸쳐 75일간의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 프레이리는 폭 150cm, 길이 60cm의 작은 독방에서 갇혔다. 그는 이 때 자유가 박탈당한 억압적 감옥 속에서 진정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하였다는 역설적 의미를 고백한다. 이후 브라질 군사정부에 의해 추방되어 칠레에서의 망명생활이 시작된다. 칠레에서의 망명생활(1964- 1969년)을 하면서 그의 성인들을 위한 문해교육활동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다. 프레이리는 이 때부터 남편으로서나 아빠로서의 모든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프레이리는 1969에서 1970년까지 케브리지와 매사츠츄세츠에 살면서 하바드대학의 객원교수를 하며 강의와 연구를 하여 보냈다. 1970년에는 민중들의 성인교육을 위해 [억눌린 자의 교육학]을 출판하였다. 망명생활이 프레이리에게는 책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는 고백하기를 망명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조용히 책도 보고, 글도 쓰게 되면서 교육과 학습의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자신의 교육사상체제를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다.
1970년 중반에 들어 분명 해방을 위한 의식화 교육을 하려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피억압자들의 정치적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변혁전략의 수정을 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일원으로 아프리카 정부의 기네-비사우의 성인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경험한 이후 혁명 그 자체는 교육적 사업이고 교육자는 또한 정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레이리에게 있어 아프리카 기니아의 반식민 민족해방을 위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었던 카브랄(Amilcar Cabral; 1973년 저격을 당하여 사망)의 강연을 들은 후 많은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이후 프레이리는 폭력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교육적 투쟁에 대한 ‘혁명적 열정’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이며,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해방을 위한 무장투쟁과 탈식민화를 열어주는 변혁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의 변화는 [진보의 교육학](1979)으로 나타난다.
이후 프레이리는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재적 식민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한다. 식민주의나 억압의 시대가 끝났어도 내재적 식민주의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 억압은 사라졌어도 그 빈 자리에 새로운 의식과 가치로 채워지지 않고 있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새 부대에 새 술이 채워지지 않으면 새 부대는 여전히 이전의 부대와 다름없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프레이리는 ‘아프리카인 다시 되기’를 위해 의식화교육을 다시 시도한다. 이후 프레이리의 의식화론은 억눌린 자의 마음과 의식 내부에 있는 과거의 독을 ‘해독하는’ 심리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변화한다. 민주화 이후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이전의 억압자처럼 군림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마음과 태도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없어 새로운 차원의 의식화를 강조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제 억압을 당한 억눌린 자의 상처난 마음에 새로운 의식 불러 넣기를 위한 새로운 의식화 프로그램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기니아에서의 혁명적 체험은 프레이리로 하여금 급진주의에 대한 가능성을 더욱 갖게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행동은 덜 하게 되고 문화적 행동을 더 중시하는 운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운동노선은 상대적으로 외적인 물리적 억압이 줄어든 탓도 있을 것이다. 프레이리의 판단으로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억압에 의해 초래된 개인의 마음을 심리치료방식으로 해결한다면 잘못된 처방을 할 위험이 있으며, 그리고 외적 억압이 완벽하게 소멸된 것도 아니라면 의식화의 미시적 거시적 치료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실제 ‘민족해방’을 위한 ‘비판적 의식화’와 ‘내재적 탈식민화’를 위한 ‘치유적 의식화’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의 변화를 보인 프레이리는 이후 스위스의 제네바로 가서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교육자문활동을 하는 변화를 보이게 된다. 아프리카,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을 방문하여 강연도 하고 자문도 하였다. 이러다가 군사정권이 물러난 1979년 프레이리는 기나긴 16 여년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을 하게 된다. 그동안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전세계 28개 대학의 명예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학]은 그가 망명생활을 하면서 더욱 유명하게 되어 24 개국 이상에서 번역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사가 되었다.
고국으로 돌아온 1980년부터 프레이리는 대학에서 교육학 교수로 복직하여 연구와 사회활동을 겸하였다. 1989년 1월 민주진보세력과 <노동자당>(Worker' Party)을 건설하였고, 사웅 파울로 노동당의 승리로 교육담당 비서(우리나라의 교육감에 해당)가 되었다. 이제 자신의 전문적 식견을 교육행정으로 투영하여 실험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최대의 교육정책적 관심은 학교의 얼굴을 바꾸는 것이었다. 학교를 재건설함으로써 지역사회로 돌려 줄 필요성을 갖게 되었고, 비혁명적 상황에서도 ‘혁명적 교육학’이 여전히 현실적 힘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학교전문가, 교사, 교직원, 청소부 모두가 함께 운영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브라질은 8백만명에 달하는 취학적령기의 아동들이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최소임금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의 생활로 인해 60-70 %에 달하는 학교탈락자와 겨우 4년밖에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복지 대책,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인교육이 시급하였다.
프레이리가 시장의 교육비서가 된 시기가 민주정부 출현과 함께 동시에 이루어진 베르린 장벽의 붕괴 이후 시기와 맞물려 있는 국면에서 ‘혁명’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더욱 보였다. 유치원에서 8학년까지의 663개 공립학교와 72만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책임지는 최고관리자가 되었다. 이들 공립학교 중 390여개교가 빗물이 새거나 지붕이 붕괴될 위험마저 있는 헛간이나 다름 없었기에 이런 상태에서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판단한 프레이리는 이것부터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교육감이 된 프레이리는 기존의 제도교육을 ‘탈형식화’ 하고 ‘탈관료화’ 하는 시도를 하였다.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하루에 6백여건의 결재서류에 서명하는 관행이 관료주의에 젖은 교육풍토라고 본 프레이리는 이부터 시정하였다. 특히 동구사회주의의 붕괴이후 참여적 급진적 민주주의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그는 자신의 사상을 학교제도에 접목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자본주의 학교’보다는 ‘민중적 민주학교’(popular democratic school)를 새로운 학교의 모델로서 창안하여 교육현장에 구현하려고 하였다(Aronowitz, 1993: 19). 정보의 양에 의해 사람의 질을 평가하는 자본주의 학교가 아니라, ‘계층연대’(class solidarity)를 통해 사람의 질을 평가하는 ‘민중학교’(popular school)의 설립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민중학교를 통해 국가가 지원하고 통제하는 학교교육의 맥락 속에서 권력을 억눌린 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이를 위해 학교행정가가된 프레이리는 학교구성원이 직접선거를 통해 학교장을 선출함으로써 학교에 대한 ‘책무성’을 지는 참여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학교민주화 사업을 진척시켰다. 학교장 직선제는 언제든지 학교현장의 기초단위에서 대표자를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교육과정의 결정과 학교행정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주의 모형이다. 이런 민주적 역할과 책임을 구성원들이 직접 공유하는 평등적 참여적 관계 모델을 학교구성원들이 모두 가질 때 ‘직접적 책무성’(direct accountability)은 발휘된다고 보았다(Aronowitz, 1993: 19). 직접적 책무성은 단순히 참여하는 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결합체인 ‘프락시스’를 구현하는 책무성이다. 그러나 프레이리의 교육개혁사업은 결국 1991년 5월 22일 노동당과 결별하면서 사임하는 것으로 마감하고 만다. 그의 사임의 변은 강의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더욱 즐겁고 의미있기에 교육행정직에서 떠나기로 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때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레이리는 1992년 [희망의 교육학]을 출판하면서 [억눌린자의 교육학]은 여전히 존재의의가 있음을 강조한다. 독일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한겨레, 1993년 9월 1일자 인용)에서 1993년 권력구조의 굴곡과 언론재벌의 위력 등 억압의 질곡 속에서도 계몽의 교육, 이성의 교육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고, 소비문화가 팽배한 현대사회 속에서도 문화적 해방에 희망을 포기하지 안았다. 남미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 선출된 브라질의 콜로르 대통령이 부패에 직면하여 폭력화의 조짐이 있었으면서도 군부가 재등장하지 않고 권력의 이해관계에 대한 토의가 공공연하게 논의되었다는 사실은 이성과 계몽, 그리고 문화적 의식 해방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이다. 이와같은 상황은 이전에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진전으로서 의식화론은 여전히 존재의미기 있는 것이다.
이후 1990년 프레이리는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맞이한다. 이제 그의 삶은 강연, 원고, 인터뷰, 문해 프로젝트 사업 등으로 바쁘게 된다. 1993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올랐다. 인간화와 의식화를 통해 민중의 주권으로서 정당화된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 인간의 정의를 향한 노력, 시민의 평화를 향한 노력 등 세계적 관심과 실천적 삶의 역정의 결과로 추대되었지만 입상하지는 못했다.
첫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심한 좌절감을 보이며 외로운 생활을 하던 중 1988년 과부였던 12살 연하의 제자와 재혼한 프레이리는 돈돈한 부부애를 보였고 학문적 동반자의 길을 같이 걸었다. 프레이리는 새로 얻은 부인과 늘 같이 다녔고, 두 사람의 사이는 독특한 관계로 발전하였다. 부인이 된 제자는 프레이리의 저서의 원고를 수정하고 강연을 따라 다녔고, 저자의 책 후기까지 쓸 정도로 가까운 학문적 동료였다. 프레이리는 부인이 된 제자의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는 사립학교에서 포르투갈어 교사였고, 제자는 프레이리로부터 포르투갈어를 배운 제자이다. 프레이리가 대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여러 해에 걸쳐 무료로 장소까지 빌려준 인연이 있다. 새 부인은 이전 부인의 죽음으로 상실의 마음의 가슴앓이를 하던 남편의 외로운 마음을 어루만지는 중화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애연가인 프레이리는 안타깝게도 담배로 인한 심장충격으로 인해 1997년 5월 2일 이른 아침 세상을 마감한다(향년 76세).
프레이리는 오랜 망명생활로 인해 추운 곳을 무척 싫어하였고, 따뜻한 물을 좋아하였으며, 해변가 걷기를 좋아하였다. 비행기 타는 것은 싫어했지만, 버스 타는 것을 좋아했으며, 세 기르기와 강아지 보기를 좋아했다.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은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따뜻한 마음과 경청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고, 불의를 참지 못했으며, 협동과 연대를 중시하였다. 일상생활의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자신의 전문적 분야에 대해서는 매우 공세적 태도를 취하였다.
III.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적 토대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해방’ 임을 알리고 이를 실천한 교육사상가이다. 그의 교육사상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입장에 서 있었다. 경제적으로 무력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상태를 ‘침묵의 문화’라고 규정한 그는 침묵의 문화를 영속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교육제도를 ‘대화의 교육’과 ‘인간화 교육’으로 대체하는 싸움을 계속하였다. 기존의 교육을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게 하는 지식을 축적시키기만 하는 ‘은행저금식 교육’이라고 비난하고, 대신 억압적 현실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는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창하였다. 비인간화된 사회에서 교육이 인간화 운동을 맡아야 한다고 믿은 프레이리의 인간해방 교육사상은 ‘문화적 서클’이라는 소집단 학습단위를 중심으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이 자신 자신의 눈으로 현실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해방의 교육학에 기반하고 있다. 몇 시간의 수업 끝에 농민들이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임을, 교육받은 인간임을 깨달았다”는 고백은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의 진수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프레이리의 저작활동과 실천활동은 교육학은 물론이고, 철학,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참여관찰연구, 신문학, 심리치료, 심리학, 의료학, 사회봉사, 생태학, 박물학, 예술, 음악, 체육 등 여러 지식과 학문 영역에 걸쳐 크다란 영향을 미쳤다.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에 영향을 준 사상들은 역사학, 철학, 신학 등 다양하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영향을 준 사람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락시스, 데카르트의 주체적 이성, 헤겔의 변증법, 룻소의 학습자 존중사상, 듀이의 경험중시 등을 비롯한 고전적 근대적 사상가들을 비롯하여 알튀세의 상부구조에 의한 중층결정론, 파농와 메미의 탈식민화론, 루카치의 대자적 의식, 모택동의 모순론,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상, 마르크스의 하부구조혁명론,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론, 게바라의 대중동일체론 등 변혁적 사상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부버의 인격적 주체성, 프롬의 인간주의적 맑시즘 등 전통적 기독교 신학과 본 헤퍼, 구티에레즈, 니버, 라너 등 해방신학적 사고와 융합되어 있다.
여러 사상가들의 철학과 신념을 교육사상으로 전환시켜 구조화한 것은 프레이리의 탁월한 업적이다. 현대교육학자들은 프레이리의 혁명적 교육사상에 영향을 준 사상을 프롬과 마르크스를 결합한 인간적 맑시즘과 비판이론, 모순과 갈등에서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저항이론, 주체성과 상호주관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와 현상학, 기억과 반기억의 정치학, 억압과 해방의 정치학, 사회적 민주주의와 근본적 민주주의, 탈근대주의와 탈식민주의 사상, 진정성과 인간화 및 자기해방을 기치로 한 기독교적 해방신학 등이 종합적으로 조합되어 녹아 있다고 본다(McLaren & Leonard, 1993).
이들 여러 사상들을 세 가지로 압축한다면 마리탱(J. Maritain)의 ‘실존주의’, 마르크스의 ‘맑시즘’, 무니어(E. Mounier)의 ‘인격주의’라고 압축할 수 있으며, 이 3대 철학적 기조를 중심으로 프레이리의 독특한 ‘의식화’와 ‘프락시스’로 개념화되었다. 마르크스의 비판적 실천, 듀이의 삶과 경험 그리고 하버마스의 비판의식과 의사소통,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 등의 사상을 잘 조합하여 개념화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론과 실천의 종합인 프락시스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마르크스의 개념을 종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의 주체성과 성찰성, 진정성과 인격성(인간화)의 강조는 무니어, 잭 마리탱, 데아트르 샤르텡 등의 사상적 영향이 컸다. 물론 이들 사상에는 카톨릭의 영성론의 영향이 컸다.
구체적으로 공교육개혁을 주창한 프랑스의 프레네(C. Freinet)가 주창한 ‘교육을 위한 자유’, 즉 자유로운 표현, 실험과 리어설, 그리고 행동의 철학으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 인간은 존재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되어가는 나타남’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프레이리는 프레네의 자유 사상을 아프리카 기네-비샤우에서의 교육실천사업에 접목시켰다.
프레이리는 동구사회주의 몰락(1989년) 이후 혁명적 맑스주의와 사회주의가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고,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변화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혁명’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 특히 보비오(Norberto Bobbio) 등의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새롭게 관심을 보인 사회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착근시키려고 노력하면서 혁명적 담론을 민주적 담론으로 전환한 ‘신사회운동’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핵심적 이념으로서 대중적 권력을 향한 급진적인 민주적 개혁을 위해 노동자 계급 지향적 정치구성체에 기반을 두면서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를 극복하려고 하였으며, 그 대안을 ‘급진적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에서 찾은 것이다.
프레이리는 말년에 이르러 엘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postmodern liberalism) 와 ‘포스트모던한 진보주의자’(postmodern progressivist)의 사상을 수용한다. 역사에 민감하고 역사와 역사와 더불어 살아가는 유권자들이 꿈꾸는 역사를 고대하는 포스트모던한 자유주의와 진보주의를 적극 옹호한다. 사회계급, 꿈, 유토피아 등을 사라지게 하는 이데올로기 종언을 선포하고, 공공행정을 정치성과 이데올로기를 제거한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로 만드는 반동적인 포스트모더니티를 거부하고, 생산성과 효율성, 투명성 등을 중심으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영화’(privatization) 논의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기술적이고 경쟁력있는 담론만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가장 유능한 사람들은 세상을 조직하는 반면, 무능한 사람은 다만 목숨만 유지하게 할 뿐 신자유주의 담론은 인구의 1/3한테만 이익이 돌아가게 한다고 보았다.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이 교육을 보수적으로 길들이기 위해 프레이리의 자유와 대화의 교육을 이데올로기적 함의(해방교육의 의미)는 제거한 채 방법론적으로 사용하는 것(구성주의 교육방법 등)에 대해 강한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지나친 확신이 강한 절대주의적 경향을 갖는 급진 좌파주의에 대해서는 분파주의와 권위주의적이고 심하게는 종교주의적 색채까지 띠기에 위험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의 진보주의자가 오늘날 반동주의자로 돌아서는 사태를 유감스럽게 본다.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의 흐름을 유추해 보면 전기사상에서 억압에 대결하는 네가티브한 비판을 주로 한 전투적 의식화론이 중심을 이룬다면, 후기사상에 이르러서는 오랜 폭력이 개인의 의식에까지 내면화한 억압성을 치유하는 것과 평화론이 중심을 이루는 시대의식의 변화를 보인다. 또 권위주의적 담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원적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대화적 태도의 훈련이 필요하며, 학습자에게 설득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내면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프레이리가 처한 존재조건의 변화에서 보인 결과이며, 시대상황의 변화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V. 프레이리의 저서 해제
프레이리의 저작은 단독으로 펴낸 저서와 동료학자와의 공동저작, 그리고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학], [과정의 교육학], [문해의 교육학], [해방의 교육학], [도시의 교육학], [희망의 교육학], [마음의 교육학] 등 여러 저서가 있는데 그 중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학]이 그를 유명하게 한 대표적 저서이며, 이후의 저서는 이 책의 확장 내지 설명으로 되어 있다. 전기의 저서에는 주로 투쟁을 위한 의식화 저서가 많고, 후기의 저서에는 절망을 딛고 일어서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낙관주의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는 저서를 중심으로 하여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한다.
1. [억눌린 자의 교육학](1970)
[억눌린 자의 교육학, Pedagogy of Oppressed]은 프레이리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여러 사상가들의 사고와 프레이리의 실천적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지어 탄생된 책이다. [억눌린 자의 교육학]의 기본사상은 프레이리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대표작으로서 다른 모든 저서의 입문서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모든 교육사상이 압축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처음 비형식적 성인교육 분야에 영향을 주었으나 차츰 제도교육의 영역에까지 비판적 시각을 던져 주었다. [억눌린 자의 교육학]은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의 이분법적 교육을 거부한다. 두 극단은 위험한 것이다. 단순 민중주의자는 위험하며, 신실성을 갖는 민중주의자여야 한다. 그의 지향점은 빈곤, 불의, 문맹 상태 등에서 벗어나는 교육이다. 길들이기와 해방, 비인간화와 인간화, 객체화와 주체화, 억압과 자유, 은행저축식 교육과 문제제기식 교육 등 이분법적 언어구사를 통해 자신의 교육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교육주체로 하여금 인간 고유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 이윽고 모든 인간의 해방을 가져오게 하는 [억눌린 자의 교육학]은 인간적 해방과 역사적 해방을 동시에 이루려는 변증적 운동관을 제시하고 있다. 억압을 억압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암울한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게 하는 침묵문화를 깨우치게 위한 ‘의식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2. [진보의 교육학](1978년)
[진보의 교육학, Pedagogy in Process](우리나라 말로 [제3세계교육론]으로 번역되어 있음)은 아프리카의 기니-비샤우에서의 성인교육을 위한 문해교육의 실천적 경험을 중심으로 쓰여진 저서이다. [진보의 교육학]에서는 [억눌린 자의 교육학]에서의 의식화 개념이 억압자를 인식하는 과정이나 억압이 지탱되어온 수단을 파악하고,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외재적 물리적 억압을 제거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려고 한다. 비판적으로 인식한다는 의식화는 구호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과 인간적인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일치를 위한 노력하는 대화와 의식화, 그리고 프락시스는 교육과 기초적 질서의 차원으로서 생산활동을 결합하는 것으로 ‘계급’과 ‘생산수단’의 문제를 결합하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사회의 발달을 위한 교육의 역할은 모든 시민의 완전한 참여에 위해 필요한 기본적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문해교육을 단순히 억압적 현실을 자각하는 의식화의 도구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생산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혁명은 생산수단에 대한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 것이기에 사회계급의 대체가 필요한 것이며, 이를 위해 정치적 조직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민족해방에는 민중들의 의식화뿐 아니라, 제국주의적 지배를 제거하는 것인 동시에 생산력의 발달과정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장악하는 것이다.
3. [교육과 정치의식](1985)
[교육과 정치의식, The Politics of Education: Culture, Power and Liberation](우리나라 말로는 [실천교육학]으로 번역된 것도 있음)에서는 제 3세계의 개념이 단순히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개념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권력은 부정과 긍정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변증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화의 개념도 경험과 문화적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이 갈려 있다. 교육적 언어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정당화하면서 탈정치화하려고 한다. 공교육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상승을 제한하면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 그람시가 주장하듯 이런 문제해야 하기에 모든 인간은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무엇이든지 간에 세계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행위하는 이론과 실천을 결합한 ‘유기적 지식인’이어야 되어야 한다고 본다.
4. [희망의 교육학](1992)
[희망의 교육학]은 [억눌린자의 교육학]이 출판되지 20여년이 되고, 동구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 발간된 책으로서 [억눌린자의 교육학]을 현대시기에 다시 불러와서 주요 주제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회고하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동구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프레이리의 입장이 어떤 것인가는 민중해방에 관심을 가진 교육운동가들에게는 대단히 관심의 대상이 된 책이다. 전자와 후자의 책이 많은 변화를 보인 것같다는 일반적 시각에 대해 그는 관점의 차이를 보인 것이 아니라, 상황과 현실의 달라짐을 반영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내용의 변화가 있어도 현실의 모순은 여전하기에 [억눌린 자의 교육학]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억눌린 자의 교육학은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교육으로서 희망의 언어로 가득 차 있으며, 국가를 새로이 건설하려는 교육을 지향한다. 그는 희망의 교육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압축한다. “억압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면 희망을 가져야 한다. 희망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 호흡이다. 오직 선함과 개방성과 진실한 명예감만이 선함을 산출한다.”
5. [프레이리의 교사론](1998)
[프레이리의 교사론, Teachers as Cultural Workers]은 생의 말년에 집필해 숨직 직후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그가 평생토록 쌓아올린 교육철학과 지침을 편짓글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모순덩어리 교육현장에서 참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에게 자신의 교육현실에 견주고 곱씹어볼 만한 교육사상을 담고 있다.
그는 ‘교육’은 부모로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보육’의 역할로 환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교육은 피교육자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전문성은 지식전달을 능숙하게 하는 능력이 아니라, 피교육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모순을 제대로 봄으로써 사실의 이면에 놓인 원인과 관계까지를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 주체로 만드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교사의 전문성은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 사이의 민주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휘해야 한다.
6.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2000)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 Pedagogy of the Heart]는 프레이리의 자서전 성격이 짙은 후반기의 저서이다. 자신의 삶과 역정을 통해 자신의 교육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투쟁하면서 겪은 인간적 고뇌가 책의 전반에 녹아 있다. 망명자의 아픔, 민선교육감 시절의 경험, 우파의 한계, 좌파의 분파주의 문제, 신자유주의자의 문제 등을 고찰하고 있다.
VI.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핵심
1. 앎의 과정과 공부의 의미
교육은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이므로 성장한다는 것은 원래 느림보일 수밖에 없다. 교육은 아동들을 ‘되어감’(becoming)의 존재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자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공부한다는 것은 대상을 좀더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는 일이며 다른 대상과의 관계를 깨닫는 일이다. 진정한 학생은 의문을 표출하고, 사실 뒤의 논리를 알고 싶어하고, 단순히 암송만 하는 순진한 학생이 아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진실,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진실, 사물에 대한 진실 등 베일이 벗겨지기를 기다리는 모든 진실을 발견하는 일이자 규명하는 일이다. 비판적인 공부에는 비판적인 가르침과도 연관되며, 배우는 활동은 가르치고 아는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가르치는 일은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한테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될 수 없다. 단순히 전달하는 가르침은 기계적인 전이이며, 기계적인 암기만 낳을 뿐이다. 지식의 목적은 소유가 아니라, 인식능력이 있는 주체가 되는데 있다. 비판적인 공부는 반드시 글과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고 깨닫는 방식, 즉 텍스트와 맥락을 비판적으로 읽는 일이 요구된다. 직접적 감각이나 경험에서 나온 지식은 비판적 사고의 여과 장치를 결여하고 있기에 대상에 접근하는 엄격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비판적인 공부는 일상의 경험, 즉 감각적인 경험의 세계에서 나온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소박한 언어’를 가치절하해서는 안 된다. 경험적 지식의 필연적 획득은 경험적 지식에 대한 존중을 통해 얻어지며, 경험적 지식 안에 그 지식을 넘어설 수 있는 점을 갖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한 ‘추상적 언어’가 소박한 언어와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적인 공부는 상식 수준의 경험적 지식과 더 체계적이고 정교한 추상적 지식 간의 이분법이 아니라, 상반된 두 지식의 종합을 추구하는 아동의 ‘조화로운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공부를 잘 하려면 잘 관찰하고, 잘 비교하고, 잘 추론하고, 잘 상상하고, 학생들의 감성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 필요하며, 관찰하고 추론한 것을 수정하고 검증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이를 위해 타인을 신뢰하는 마음은 기본적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인식론적 호기심, 대상과 ‘적절한 거리 두기’를 통해 그 대상의 베일을 벗기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즐거운 마음으로 대상에 ‘접근하는 것’만이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는 시작이다. 앎의 과정인 공부는 특정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호기심, 감동, 정서, 기억, 감정 등 총체적인 의식적 자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비판적인 마음뿐만 아니라, 동시에 감정, 직관, 정서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이 일을 위해 배움의 주체인 학생의 입장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것을 요구한다. 도전하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창조나 재창조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런 과정을 요구하는 공부하는 일은 외부로부터의 강제를 벗어나는 최소한의 자유를 보장하고 확대하여야 한다. 외적 강제로부터의 자유가 없다면 비판적인 공부를 할 수 없다. 동시에 비판적 공부는 내부적으로 엄격한 규율을 요구한다. 이 규율은 우리 내부에 형성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공부하는 일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고된 일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고통, 즐거움, 승리감, 패배의식, 회의, 행복감 등을 느낄 것이다.
2.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과 인간화를 위한 교육
인간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비인간화는 책임있는 인격체로서 자아실현이 방해되는 상황이다. 비인간화는 소외와 지배로 얼룩진 현상유지의 구체적 표현이다. 지배집단의 의식을 길들이는 교육이다. 인간의 최고목표는 소외와 지배를 벗어나는 해방의 과정을 위한 인간화이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되기 위해 인간화는 존재론적 차원과 사회정치적 차원 모두를 중시한다.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불의가 제거되는 이중의 과정을 요구한다.
프레이리는 인간이 네 가지 존재론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Lankshear, 1993: 95). 첫째, 인간은 의식을 갖고 있다. 둘째, 세계의 탐구와 창조적 변혁에 참여할 때만이 진정으로 살고자 하는 프릭시스적 존재이다. 셋째, 인간은 대화 속에서 인간화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넷째,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말은 인간이 의식을 갖게됨으로써 진화된다는 말이다. 인간은 동물과 같이 세상에 살고 있고, 살기 위해 세상과 상호작용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세상을 점차적으로 독특한 방식에 의해 객관적으로 의식을 하고, 관계를 맺는다. 동물은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고, 접촉이 무비판적이고, 시간 속에 매몰되어 무시간적 존재이지만, 인간은 세계와 더불어 살고, 대상에 대해 비판적이며, 부단한 시간적 연속성 속에 존재한다. 마리탱이 지적하듯 오늘날 자기가 해야 할 단일한 일에 모든 지력을 고정시키고, 자기의 전문 영역을 벗어난 문제는 상관하지 않는 기술적 전문가나 만능인만을 양산하는 교육은 인간의 정신과 삶을 ‘동물화’ 시키는 것에 불과한다. 그래서 프레이리는 전문기술과 인문정신이 결합된 교육을 지향한다.
의식은 세계를 향한 의도성이다. 의식은 인간과 세계와 관계를 문제화하여 만들어지고 창조된 것이다. 인간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다. 의식이란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으면 힘을 갖지 못한다. 단순히 말을 한다고 하여, 그리고 문자해독을 시킨다고 하여 의식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교육을 한다고 현실을 변혁시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개인과 개인과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비인간화와 소외를 극복할 때 비로소 인간화된다. 인간의 비인간화는 일종의 왜곡으로써 인격체로서의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프레이리는 ‘의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개념과 ‘세계를 향한 의식’ 개념을 모두 채택한다. 의식의 본질은 세계와 더불어 있는 존재로서 진정한 인간성을 창조하는 길이다.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은 소유하는 사물화의 존재방식이 아니다. 인간은 소외극복과 노동해방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활동적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때 ‘인간화’(humanization) 된다. 인간화는 인식, 감정, 활동이 결합된 인격화를 지향하고, 민중은 세계를 자신의 역사로 만들어야 비로소 인간화되는 역사적 인간화를 지향한다.
프레이리에게 있어 가장 핵심적 개념으로 사용한 ‘억압’(oppression)은 폭력을 유발시키는 부당한 질서의 내면화된 의식의 결과이다. 억누른 자와 억눌린 자들 양자에게 똑같이 영향을 미치는 비인간화의 총체이며 ‘길들이기’이다. 이런 비인간화의 길들이기에 순응하지 않고 의식의 눈을 떠 자신을 찾는 것이 ‘의식화’이다. 사람이 억압의 힘에 더 이상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거기에서 탈출해서 그 힘에 항거해야 한다. 그것의 처음은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근본적으로 이러한 과정은 ‘사랑’의 행위이며, ‘용기’있는 행위가 된다.
3. 사회모순과 변혁을 위한 의식화
의식화(conscientization)라는 말은 1960년대 중반 브라질의 주교인 까라마(Dom Helder Camera) 신부가 지도하는 토론집단에서 만들어졌고 가톡릭교회가 교육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민중들에게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반 들어 사람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애매하다는 비판을 받자 프레이리 자신이 이 말을 한 동안 사용을 중단한 적도 있으나 다시 자신의 사상적 중심틀로 자리잡게 된다.
교육은 사회모순 관계를 감지하는 것으로서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의식화’(conscientization)다. 의식화란 ‘의식을 발달시키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변혁시키는 의식적 힘’이다. 의식화는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복사물이 아니고, 그것을 재성찰하는 의식이다. 의식화는 억압적 현실에 길들여져 있는 순종의식에 눈을 뜨고 각성을 하게 되는 의식이다. 의식화는 현실을 변혁시키는 ‘앎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행위의 수단’이다. 의식화는 인간이 단순한 수용체 또는 객체가 아니라, 인식의 주체로서 그들의 삶을 형성하는 사회문화적 현실과 그 현실을 변혁시키는 능력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나가는 ‘각성’의 과정이다. 억압적 이성을 벗겨내고, 복종의 세계를 초극하기에 이것은 교육의 정치학인 동시에 해방의 교육이다. 의식화는 분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교육인 동시에 자유를 경험케 하는 교육이다. 분노와 희망을 함께 갖게 하는 교육이다. 진정한 도덕성은 사회정의를 깨닫는 의식화 교육에서 시작되며, 이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희망을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 교육이어야 한다.
의식화는 단순히 인간이 역사의 상황을 알게 하는 순수한 정신적 과정이 아니다. 행동이 없는 단순한 지식은 정치체제에 대해 무력하다. 현실을 고수하고자 하는 집단은 의식화에 대해 심한 반발와 거부적 태도를 보인다. 이와 달리 의식화는 현실을 단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실제하는 의식과 가능한 의식 사이에는 분명 간격이 있기에 이를 재인식하는 것이다. 허의의식을 유포하는 '대중화'(massification) 된 의식과정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식을 성취하는 의식화된 과정으로 유도한다.
프레이리는 사회적 변혁보다 문화적 변혁, 즉 의식의 변혁을 통한 의식화교육을 중시한다. 사회적 변혁은 분명 억압적 사회현실의 변혁이며, 이 변혁은 사회에 대한 의식의 급진적 변혁을 통해 가능하다. 급진적인 의식변혁은 교육을 통한 가능하다. 물론 변혁은 ‘역사적 사회적 과정’으로 파악할 때 근본적인 사회적 변혁이 가능하다.
이러하기에 의식화 교육은 ‘교육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명확한 인식을 함으로서 시작된다. 교육은 중립이 될 수 없는 명백한 정치적 과정이다. 중립성은 정말 해방을 가로막는 민중을 길들이는 이데올로기적 기제이다. 교육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거짓 신화를 유포시키는 침묵문화는 민중을 세계의 형성자이며 주체자의 역할을 자각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교육은 사회변혁을 향한 명확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4. 은행저금식 교육과 문제제기식 교육
억압자들은 사회의 급진적 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의 태동을 가로막고, 변혁적 의식을 태동시키는 교육체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사회의 급진적 변혁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억압자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억압의 중심지에 ‘은행저축식 교육’(banking education) 방식을 취한다.
1)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들은 가르침을 받는다.
2)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3) 교사는 생각하고, 학생들은 생각의 대상이 된다.
4) 교사는 말하고, 학생들은 얌전하게 듣는다.
5) 교사는 훈련시키고, 학생들은 훈련받는다.
6) 교사는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고, 학생들은 그것에 동의한다.
7) 교사는 행동하고, 학생들은 교사의 행동을 통해서 행동한다는 환상을
갖는다.
8) 교사는 지식의 권위를 자신의 직업상의 권위와 혼돈하여 그 권위로써
학생들의 자유를 억압한다.
9) 교사는 학습과정의 주체이고, 학생들은 단순히 객체일 뿐이다.
프레이리는 미리 만들어진 답안을 외우기만 하고 축적만 하는 은행저금식 교육과 대비되는 학습양식으로서 ‘문제제기식 교육’(problem posing education)을 제안한다. 공부하는 일은 교사의 입장에서는 가르치는 일을 포함하지만, 가르치기 전에 그리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도 포함한다. 공부하는 일은 또한 장차 가르칠 준비를 하거나 현재 좀더 가르치기 위해서 자신들의 지식을 재창조하는 학생들, 혹은 학교교육을 처음 시작하는 아동에게도 일어나는 것이다. 배움, 즉 공부를 위한 개인적인 준비가 비판적이고 창조적이며 재창조하는 활동보다 앞서 일어나야 한다. 참다운 공부(배움)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은행저금식 교육이 아니라, 소통을 의한 문제제기식 교육(배움)이다. 순진무구한 의식에서 비판의식으로 이동시키는 문제제기식 교육은 여섯 가지 학습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Lankshear, 1993: 110-111).
1) 세계는 학습자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이해하고 아는 대상으로서 접근한다. 게다가 앎의 행위는 자신의 존재, 환경, 욕구, 운영 등에 의해 형성되고 자극되어 이루어진다.
2) 역사적 세계는 인간이 그런 것처럼 끊임없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창조된 변혁적 실재로서 접근해야 된다. 학습자는 인간의 행동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3) 학습자는 자신의 삶의 조건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4) 학습자는 실재의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중시하고,이를 통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창조는 참여자의 목소리가 담겨진 집단적으로 공유된 사회적 사업이다.
5) 학습자는 문해의 과정에서 활자와 문해의 중요성과 역할을 보게 되고, 역사를 재창조할 것이며, 자신의 잠재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6) 학습자는 미신이 어떻게 존재하였고, 억압을 어떻게 견지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정보를 수용하여 저장하기만 하는 요점정리식 기계적 암기와 지식을 축적하기만 하는 은행저금식 교육은 설교식 방식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이기만 하는 객체화의 대상이 되게 하기에 반대화적이고 거짓 관용을 보여주는 동시에 학습자에게 허위의식을 심어주는 ‘길들이기 교육’이다. 의식을 신비화하고 슬로건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화하는 것이다. 길들이는 은행저금식 교육은 지식과 권력의 연관관계, 교수와 학습의 상호작용, 학교교육과 사회의 연관성을 읽어내지 못한다. 온정주의적 사회적 조치를 통해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은행저축식 교육은 억압적 질서를 유지보존하기만 하기에 가치롭지 못하다. 전 세계 대다수의 교육자들은 권위주의적 전통에 사로잡혀 있어 민주적이고 진보적 교육에 대해 학문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데 있어서는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권위주의적 환경에서 권위주의적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권위주의가 그들의 내적 이데올로기를 결정하고 있다.
5. 소통을 위한 대화의 교육과 새로운 세계의 건설
교육은 대화를 통해 세계를 건설하고, 재창조하고, 인간화하는 역사의 과정이다. 그런데 기존의 대화 방식은 공허하고, 안이하고, 다만 느낌이 좋은 것으로 전락되어 단지 개개인의 생생한 경험 정도로 격하해 버려 공부해야 하는 지식의 대상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경험은 심리학적 용어가 아니라, 반성적 사고와 정치적 실천으로 구성된다.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인 대화법이 개인심리학에 초점을 둔 집단치료법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경험의 공유란 억압구조와 억압기제를 해체하기 위한 정치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있다.
대화는 지시(extension)가 아니다. 지시는 전달, 건네줌, 수여, 교도, 기계적인 이동, 구호, 조작, 독단, 문화적 침략 등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관련어는 자신의 세계를 타인이 닮게 하고 순응시키는 길들이기 행위이며 학생을 백지 상태라고 보고 선전하는 행위이다. 이런 방식은 소통(communication) 하는 행위가 아니다. 대화는 강제로 공부하도록 하거나 무조건 알도록 강제로 공부하도록 하거나 교과서에 복종하도록 하는 과정이 아니다.
대화는 단순히 관점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행위이다. 대화는 자발성과 권위가 극단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적절하게 결합된 상태이다. 대화는 현실의 한계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연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대화는 억압적 조건과 지식이 결합된 교육내용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중요한 매개자이다. 대화는 인간의 존재론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질서의 역사적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화없이는 인간적일 수 없고, 역사를 담지할 수 없다. 대화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적 변화이며, 세계 내에 존재하면서 세계를 변혁시켜 나가는 인간을 발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화는 친교하는 과정이고, 주체화의 과정이며 인간화의 과정이다. 마르틴 부버가 강조하듯 대화는 ‘나와 그것’(I-It)이라는 사물대명사로서의 도구적 관계가 아니라, '나와 당신'(I-You)이라는 인칭대명사로서의 목적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대화는 인간들이 인간으로써 의미를 찾는 길이다. 대화는 실존을 확인하는 것이며, 하나의 창조과정이다. 대화가 빠를수록 그 운동은 보다 진실한 혁명이 될 것이다. 인간화를 향한 대화는 비인간화된 현실과 결별하고, 인간해방의 미래를 예고하는 역사적 인간화를 향한 의식화된 대화이다. 그리고 억눌린 자를 위한 역사적 실천의 대화교육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구성된다.
1) 대화가 박탈된 개인은 억압을 받고 있다.
2) 대화는 해방의 과정이고 실천의 과정이다.
3) 대화에 참여할 때 개인은 해방된다.
4) 대화는 한 사람 이상을 필요로 한다.
5) 더 많은 사람은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대화를 통한 참교육은 흔히 교수학습방법론에 보여주는 기술적 교육방법론이 아니라, 변혁을 지향하는 해방적 교육이다. 서로의 경험을 단순히 교환하는 의사소통은 변혁적 대화가 아니다. 프레이리에게 있어 대화는 근본적으로 억압적 현실을 변화시키는데 있다. 혼자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대화는 둘 이상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대화는 혼자서 지껄이는 독백이 아니다. 순진무구한 현실의식을 가진 대상으로서 ‘객체’가 아니라, 현실 뒤의 이론을 파악하는 비판의식을 요구한다. 대화는 인간적 현상인 동시에 만남이며, 성찰과 행동이 결합된 대화는 세계를 변혁시키고 인간화한다. 주체적 인간은 ‘대화적 인간’을 기대한다.
주체자의 공동 참여는 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의사소통을 차단하는 것은 곧 인간을 물건 상태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의사소통을 위한 변혁은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대화를 통해 더욱 고양된다. 각성과 공감을 요구하는 ‘대화적 의식화’는 '진정성'(authenticity)을 담지할 수 없다. 대화는 객체를 주체로 변화시키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의식화의 수단이다. 대화적 의식화는 억압사회를 해방시킨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인간을 사회적 정치적 존재로 동일시하는 존재, 사회의식을 가진 존재로 발전시킨다. 진정한 대화는 세계와 인간을 이분하지 않고, 양자가 분리할 수 없는 어떤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대화는 의사소통, 협동, 일치, 비판과 투쟁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함께 하는 대화는 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인식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이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오랫동안 잊혀진 사상을 되찾는 초보적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대화를 통한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민주적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이성적 어법을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로 인간이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전환을 시도한다. 혼자서는 생각할 수 없고, 잘 알 수도 없기에 둘 이상이 대화를 통해 우리를 형성한다. 따라서 “나는 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피아제의 인지발달심리학 어법을 “우리는 안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는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 어법으로 발전한다. 의사소통행위가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상호소통하는 주체들 사이에 조화되는 과정이다. 결국 교육은 의사소통이고 대화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대상의 의의를 탐구하는 대화 속에서 주체들간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과정이다. 의사소통하는 주체들에 의한 ‘대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교사가 단순히 학생들에게 성명서를 읽듯 하는 선전의 과정이 아니라, 알아 가는 주체들 사이에 앎의 행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기에 문제제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6. 생성어와 문해교육
언어는 학습자들의 실존적 경험과 무관한 정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대한 사고의 한 측면을 반영한 것이다. 언어는 ‘사고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학습자의 현실에서 발생된다. 그 발생의 뿌리가 ‘생성어’(generative word)이다. 지식은 중립적 언어로 되어 있지 않고, 모두 정치, 경제체제와 관련되어 있다. 언어는 세계를 이름짓고(naming), 말하고, 결정짓는다. 언어를 읽는 것은 세계를 ‘독해’하는 것이다. 독해 또는 해독은 편찬물이 인쇄된 낱말들이건 그림이건 ‘기술’과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실존적 언어습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어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프레이리의 생성어 개념에 영향을 미친 촘스키는 언어의 ‘표면구조’(surface structure)에서 ‘심층구조’(deep structure)를 '해독'(de-codification) 하는 과정을 문해교육으로 보았다. 학습자들은 편찬물들의 심층구조를 이해함으로써 표면구조 속에 제시된 각 요소들 간의 변증관계뿐 아니라, 표면구조와 심층구조간의 일치도 알 수 있게 된다.
프레이리는 성인교육의 새로운 개념으로서 정치적 문해교육을 제창한다. 생성어의 정치적 본질을 파악하고 문제제기식 원리을 바탕으로 한 문해교육을 한다. 문해교육은 문맹자가 주체적 참여를 하는 ‘문화서클’이라는 독특한 학습환경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슈를 둘러싼 비판적 탐구에 도움을 주는 ‘편찬화’(codification) 방법과 ‘생성어’를 이용한다. 생성어는 읽고 쓰기 활동이 이루어지는 문해교육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조사를 통해 골라내야 한다. 문해활동을 하기 위한 최소의 어휘인 ‘생성어’는 민중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민중의 실제생활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생성어는 언제나 각 지역의 생활에 대한 조사와 토론의 결과로 선택된다.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생성어는 말의 음절들이 재조합을 통해 새로운 낱말을 생성시킬 수 있는 근원어이다. 생성어는 기호언어학적 기준으로서 구문론적 기준과 의미론적 기준을 지니고 있다. 문맹자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고도 친숙한 문제의 토론을 촉진시킬 수 있어야 하고, 이야기의 언어 중에서 여러 음절로 된 단어가 쉽게 민중의 한 음절문자로 나뉘어져 새로운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산업화와 근대화로 비롯된 ‘오물처리’는 삶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인간활동이다. 이를 주제로 삼아 ‘물’(자연), ‘오물’(문화), ‘오물처리 작업’(노동) 등으로 그 뜻을 새김으로써 인간이 일을 통해 세계를 변혁시키는 과정에 참여하여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는 자각과 의식화를 꾀한다. ‘오물’은 공해와 자연을 동시에 연상하게 하는 생성어이다. 그리고 오물이라는 생성어를 해체하면 오라는 음절은 아-에-이-오-우 라는 발음군으로 구성되어 있고, 물이라는 음절은 물-멜-밀-몰-물 이라는 발음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레이리는 이렇게 선택된 단어를 대략 17개의 생성어를 찾았다. 생성어를 통한 기초적 문맹퇴치교육이 이루어지고 나면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 잉태된 ‘생성적 주제’( generative theme)를 가지고 발전된 대화를 할 수 있다. 생성적 주제는명사와 동사가 결합되어 나타나 있는 문장을 통해 나타난다. 사회적 역사적 현실에서 발생하는 언어(문장)는 동사와 명사에 모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고, 그것 속에서 정치적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순진무구하게 언어학적 규칙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학적 해석과 의미를 추출해야 한다. 빈민구역(집, 음식, 옷, 건강, 교육 등), 쟁기질(노동, 기술, 자본, 농지개혁 등), 토지(천연자원, 경제적 지배, 관개, 국가재산 등), 음식(영양실조, 굶주림, 유아사망율 등), 벽돌(건축, 노동, 근대화, 도시계획 등), 우물(급수, 위생교육, 건강, 풍토병 등), 일(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 일을 통한 인간의 가치, 기능, 육체적 정신적 기술적 일 등), 직업(일, 능력, 계층이동, 노동조합 등) 등 민중의 가장 모순이 집중된 구체적 관심 영역이 되는 주제군을 가지고 대화를 발전시켜 간다.
프레이리가 농민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방법은 분명 읽기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기능적 문해가 아니라, ‘정치적 문해’를 지향하고 있다. 문해교육을 하는데 있어서는 슬라이드, 포스트, 사진 등 많은 매체가 활용될 수 있다. 단순히 ‘오물’이라는 생성어를 읽기만 하고 쓰기만을 반복하는 도구주의적 문해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고, 사실의 이면에 놓인 이유와 관계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즉 비판적 사고를 개발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대신 프레이리의 문해방법(literacy)은 브라질 농민들이 세계를 읽을 수 있고, 글과 세계를 연관지을 수 있는 상태, 즉 브라질 농민들의 정치화에 더 큰 목표를 위해 구성된 것이다. ‘읽고 쓰는 능력’, 즉 문해교육은 체제 속에 머무는 교육이 아니라, 세계를 명명하고 변혁시키는 교육이다. 문해교육은 앎의 교육인 동시에 세계의 정치적 본질을 이해하는 교육이다.
문해교육은 언어의 표현과 현실의 변혁을 연관시키는 과정이다. 언어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문맹을 퇴치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문맹에서 해방시켜 정치적 각성을 일깨우는 교육을 지향한다. 비판적 세계 읽기는 세계에 대해 감성적 이해와 이성적 이해를 역동적으로 포괄하는 이해를 함축한다. 그리고 그 방법도 참가자 모두 주체로서 동등한 대화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인간관계를 실천하도록 한다. 인간의 존재는 자연, 문화, 인간의 관계를 파악하도록 한다. 그렇기에 변혁적인 정치적 성격을 띠는 문해교육의 변혁성을 제거하면서 읽기 쓰기식 언어교육으로 축소화하고 협소화하는 방법론의 주술화, 즉 기계론적 방법론은 진정한 의식화 문해교육이 아니다. 반방법론적 교육학(antimethod pedagogy)을 지향하는 문해교육은 세계를 변혁시키면서 이루어지는 결과물과 역으로 이 결과물이 인간에게 행사되는 조건화 사이에 이루어지는 변증법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실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적 실천을 목표로 하는 문해교육은 지배집단의 세계관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저항적 지식을 형성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학습자들이 읽기와 쓰기 작업을 점점 더 비판적으로 실험할 때 언어, 의사소통, 지식의 생산이 구성되고 재구성되는 사회적 구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촘스키가 강조하듯 언어는 정신적 과정과 함께 일어나기에 생각과 감정의 자유로운 확대뿐만 아니라, 창조적 상상력의 근본적 수단을 제공한다.
7. 실천적 앎을 위한 프락시스
변혁으로 나아가게 하는 praxis는 practice(실천)으로 번역할 수 있는 동일한 어원이지만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실천이 이론없는 행위로 협소화하는 것을 막고, 성찰과 이론이 부재한 행위(action)와 차별화하기 위해 ‘이론적 실천’의 의미를 갖는 ‘프락시스’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론적 맥락은 구체적 실천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하도록 할 것이다. 이론은 실천을 숙고하게 한다. 실천을 숙고함으로써 더 잘 생각하고 더 잘 실천하는 방법을 배운다. 프락시스는 실천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것을 내포하며,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
프레이리의 비판적 교육학은 말과 실천이 일치되는 사고와 행동의 총합인 프락시스를 지향한다. 사고의 포기는 반성이 배제된 무조건 따르는 행동주의(activism) 경향을 보이고, 행동의 포기는 말만 하는 언어주의 경향을 보인다. 하이트헤드가 지적하듯 ‘말로만주의’(verbalism)는 ‘나는 의심한다’가 아니라, 단순히 ‘나는 한다’는 무기력한 이념일 뿐이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교육이 되지 못한다. 전통적 교육과정은 소리만 높은 어귀에 대한 순진무구한 의존, 기계적 암기 치중, 추상적 경향은 대화와 탐구, 조사 등 민주적 경험을 결핍하게 만든다.
이론은 보편적이고 맥락자유적인 경향이 있고, 실천은 구체적 맥락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론은 추상적 이념을 주로 다루고, 실천은 주로 구체적 현실을 다룬다. 이론은 시간의 압박을 받고, 실천은 상황의 요구에 반응해야 하는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단순히 행동하는 것은 노예의 기능이나 다름없다. ‘실천적 반성’이나 ‘반성적 실천’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며 ‘반성적 동물’로서 ‘인식하는 존재’ 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인식행위를 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진정한 반성은 행동에 유리된 채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을 대중화시킨 구체적인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응하고, 사고를 수정하도록 한다. 이렇게 이론과 실천은 대립된 반대 극단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양 측면으로 이해한다.
이런 연장선이라면 사회적 모순과 대결하며 역사를 전망하며 교직생활을 하는 진보적 교사나 교수, 그리고 모순된 사회현실과 대결하며 소외를 극복하는 노동자는 ‘이론적 실천가’로 명명할 수 있다. 또 관념적 유희만을 일삼는 교실의 말장난에 머물지 않고, ‘실천적 앎’, 즉 ‘지혜(wisdom)’을 체득한 교사라면 ‘실천적 이론가’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 실천과 실천적 지혜라는 말은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빌려온 것이며, 역사적 현실과 투쟁하는 마르크스와 접목시켜 ‘역사적 프락시스’로 발전한다.
프레이리는 인간과 세계를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결합시키는 문제인식을 갖도록 하는 이론적 실천을 하도록 하는 교육을 지향한다. 지식과 권력이 유착하는 것을 차단하면서 역사적 현실 속에서 지식과 교육이 결합하는 유토피아를 고대한다. 프락시스적 교육은 이론과 실천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실험하고, 성찰을 통한 ‘앎’(knowing)과 행위를 통한 ‘있음’(being)이 극단화되지 않는, 즉 인식론과 존재론을 변증적으로 통합하는 학습을 지향한다. 이러한 변증법에 터한 학습방식(학생들의 교실학습이나 교원연수 방식 등에서)은 자신의 실천을 해명하고, 오해와 오류에 발견되는 것을 반성하고 숙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한다. 이론의 렌즈를 통해 실천의 지평을 새로이 해석하고 숙고하는 과정은 실천의 지평을 새롭게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8. 비판의식의 발전과 열린 사회
프레이리는 목소리가 없는 교육은 주체성 없는 교육이며,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사람을 양산하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이런 저금식 교육을 극복하는 해방적 교육이 비판의식의 고양을 위한 ‘참교육’(real education)이다. 억압적 상황에서 파생된 사회적 불만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이끄는 것이 ‘비판의식’(critical consciousness)이다. 이 불만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침묵문화를 구성한다. 침묵문화는 중심부 국가가 제 3세계 주변부 국가에 강요된 문화이다. 이러한 사회적 침묵을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이끄는 의식이 각성된 비판의식이 요구된다. 야스퍼스가 강조하듯 우리가 대화를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비판의식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비판의식을 고양하지 고양하지 않으면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대량생산방식이나 다름없다. 사회적 현실에 대한 불만들이야말로 억압상황을 눈뜨게 하는 출발적 요소이다. 침전된 문화적 찌꺼기들을 제거하는 비판의식은 현실에 매몰된 ‘즉자적 인식’이 아니라, 현실 뒤의 배후를 통찰할 수 있는 ‘대자적 인식’을 하는 비판의식은 다음의 네 가지 특질을 내용으로 한다(Shor, 1993: 32-33).
① 권력의 인식: 사회와 역사는 인간의 행동과 조직화된 집단에 의해 만 들어지고, 누가 사회의 지배적 권력을 행사하고,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인식하기.
② 비판적 문해: 표면적 인상, 전통적 미신, 소박한 의견 등에 대해 사고하고 읽고 쓰고 말하고 토론하는 분석적 습관, 교과의 사회적 맥락과 결과들의 이해, 사건, 교재, 기술, 과정, 대상, 진술, 이미지, 상황 등에 대한 깊은 의미의 발견, 의미를 자신의 맥락에 적용하기.
③ 탈사회화: 대중문화를 통해 학습된 미신, 가치, 행동 그리고 언어를 인식하고 도전하기, 종족의식, 성차별, 계급적 왜곡, 남성중심, 돈있고 권력있는 사람에 대한 환상, 영웅숭배, 과도한 소비숭상, 막다른 개인주의, 군사주의, 민족쇼비니즘 등 우리의 의식을 내면화시키는 사회에서 작동하는 퇴행적 가치의 비판적 검토.
④ 자기조직화/자기교육: 권위주의적 관계, 비민주적 불평등한 권력배분을 멀리하는 학교와 사회의 변혁을 위한 주체적 발안을 하기, 사회변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대중교육이 초래한 반지성주의를 극복하기.
이러한 비판의식을 발달시키려고 노력하는 프레이리식의 교육학은 특정교과의 학문적 주제와 사회의 쟁점이나 일상생활로부터 ‘생성어’를 문제화하는 ‘학생 중심적 대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학생 중심적 대화는 다음과 같은 가치의 의제를 갖고 있다(Shor, 1993: 33-34).
① 참여성: 논쟁적 주제를 해독을 통해 교육에 참여하도록 한다. 학습과정은 교사의 말만을 듣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 토의하고 기술하는 상호작용적이고 협동적인 활동을 많이 하도록 한다.
② 상황성: 학습자료는 자신의 말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자료를 이해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상황과 관련하여 그들의 사고와 언어에 바탕한 상황을 설정한다.
③ 비판성: 학급의 토론은 이슈에 어떻게 말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며,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을 어떻게 배우며, 학습과정 자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의 차원에서 자기성찰과 사회적 성찰을 고무한다. 학생들은 교재내용은 물론이고 자신의 지식과 언어, 학습과정의 질, 지식과 사회와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④ 민주성: 교실의 담론은 학생과 교사의 상호구성에 통한 민주적 과정에 바탕을 둔다. 학생은 대화과정에서 평등하게 말할 권리와 동시에 교육과정을 협상할 권리가 있다. 그들은 교육과정을 공동개발하고 평가할 권리가 있다.
⑤ 대화성: 학급의 기본적 틀은 교사와 학생의 문제제기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대화적이다. 교사는 이러한 과정을 더욱 심오한 국면으로 이끌어가고 지도한다. 질문을 먼저 제기하고 그 후 강의를 곁들이면서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말과 대화하도록 유도하면서 교육의 주도성을 발휘하도록 한다. 교육이 다른 사람에 의해 주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행위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다.
⑥ 탈사회화: 프레이리의 대화는 학생을 교실의 수동성으로부터 탈사회화한다. 탈사회화는 무엇이 행해지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누군가에 의해 말해지는지를 기다리는 반지성주의와 권위의 종속에 도전한다. 전통적 교실에서 학습되어지는 침묵, 굴종에 간섭해 들어간다. 프레이리의 교육은 또한 교사들 어눌하고 거만한 교사의 말을 탈사회화하도록 하여 문제제기자이면서 대화지도자로 변화된 모습으로 사회화되로록 한다.
⑦ 다문화성: 학급은 사회의 여러 가지 종족적, 인종적, 지역적, 연령적, 성적 차별 문화를 인지하여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갖게 한다. 그리하여 지배적인 집단과 지배를 받는 집단의 문화를 검토한다. 교육과정은 성, 계급, 종족의 균형을 이룬다.
⑧ 연구지향성: 비판적 교육학은 교사가 학생의 인지적 정서적 발달은 물론이고 그들의 말, 행동, 조건을 연구하는 교실과 공동체에 바탕을 둔다. 학생들로 하여금 일상의 경험과 사회 그리고 학문적 자료를 통해 제기된 문제를 연구하고 탐구하도록 한다.
⑨ 활동성: 교실 자체는 문제제기적이고 협동적인 학습이고 참여적 형태이기에 활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이다. 비판적 대화는 또한 탐구로부터 행동결과를 추적한다. 지식은 힘인가? 사람들은 힘을 획득된 지식에 바탕을 두고 사물을 변화시킬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⑩ 서정성: 비판적 민주적 교실은 사회적 탐구와 마음의 개념적 습관의 개발과 함께 인간의 광범위한 감정의 개발에 관심을 둔다. 문제제기적인 대화의 방법은 유머에서 시작하여 모욕과 연민을 포괄한다.
이러한 특성을 갖는 비판의식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며 발전한다. ① 전혀 움직이지 않는 미몽의 단계: 순진무구한 의식이나 주술적 광신적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② 순진무구하면서 조금은 깨인 오성의 단계: 비판의식은 길들이는 교육과 가식적 의식을 벗겨내려고 한다. ③ 완전히 자각한 비판적 이성의 단계로 발전한다: 비판의식은 사실과 사실들의 유기적 관계의 흑막을 파악한다. 비판의식의 발전과정에는 허위의식을 벗겨내는 비판의식은 세계의 인과관계와 그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잠재력을 인지하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마술적 신화적 비논리적 비이성적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발전된 의식은 사회발달과 연계시켜 간다. 즉, 베르그송이 강조하는 ‘닫힌 사회’, ‘균열된 사회’, ‘비판의식을 가진 열린 사회’와 맞물려 발전한다. 동시적으로 개인과 사회에 긴장과 혼란이 심각할 때 위험사회에 직면하게 된다. 프레이리가 꿈꾸는 세상은 세계가 없는 추상적 인간을 원하지 않으며, 인간없는 대상화도 원하지 않는다. 닫힌 사회는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쉽게 깨지기 쉽고, 침묵은 오랫동안 변화될 수 없을 정도로 고정될 수 없다. 침묵이 깨어지거나 균열이 시작되는 열린 사회는 비판의식의 유입, 즉 의식화를 가능하게 한다.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은 그들을 ‘위한’(for) 교화된 교육보다는 ‘함께 하는'(with) 소통적 교육이어야 한다. 민중에게 강요하거나 ’위한다‘ 는 온정적 태도가 아니라, 민중과 ’더불어’ 대등한 위치에서 해결을 모색하는 상호공존하는 교육을 지향한다. 지도자인 교사는 민중이 역사적 과정에 비판적으로 참여하도록 민중을 밀어주는 입장을 취한다. 민중이 스스로 자기 책임하에 반성하도록 한다. 비판의식은 세계와 인간을 유기적 연대를 통해 세계를 변혁시키는 인간을 창조하고자 한다. 비판적 의식의 반성적 본성은 교사와 학생이 공동으로 세계를 변혁할 지식을 탐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력은 근본적으로 의사소통이 잘 되고 절차가 민주화된 자치정부를 건설하는 기초가 된다. 대화와 의사소통이 없이 자치정부가 건설될 수는 없다.
9. 진보적 교사의 역할과 민주적 학교의 건설
열린 사회의 건설을 위해 민주적 학교를 건설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좀더 평등하고, 공정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원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므로 학생의 입을 막는 교육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 교육은 토론을 즐긴다. 또한 사회와 경제에 참여하는 것을 중시하며, 사회적 모순에 대해 싸울 줄 아는 능력을 기른다. 학교가 민주적 성향을 쌓고 만들어내는 공간이어야 한다. 민주적 성향이란 호의가 아니라, 의무로서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존중하는 성향, 다수의 결정을 따르되 소수의 다른 의견을 표현을 권리를 인정하는 성향, 우리들 사이에서는 사적인 일로 다루어지지만 실제로는 공적인 그 문제를 존중하는 성향이다. 민주적 학교는 민주주의의 부정, 자유의 부정, 타인의 권리 부정 등이 가득찬 권위주의적 학교의 성질과는 정반대편에 있다.
민주적 학교는 구체적인 맥락과 학교의 관계를 학습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학교는 이론적 맥락과 실천적 맥락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프락시스의 장이기에 가정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일에 대해 적어도 민주적인 학교라면 학교 자체를 알기 위해 겸손해야 하며, 때로는 전혀 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들한테서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민주적 학교는 교사는 가르치기만 하고, 학생들은 배우기만 하며, 교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그런 학교가 아니다.
교사들은 반동적 교사와 진보적 교사로 나뉜다. 진보적 교사는 민주적 교사로서 대화를 사랑하는 교육을 한다. 온갖 사회현상에 대해 민감하고 반응하는 교사가 대화적 교사다. 민주적 학교를 만들어 가는 진보적 교사는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고, 그 학교의 교수활동을 더 잘 하기 위해 학생들이 처해 있는 맥락의 현실에 항상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학습자들의 조건을 존중해야 위해서는 학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구체적 조건을 알아야 한다. 학생들의 구체적 조건(현실)을 안다는 것은 교육실천을 하는 교사들에게 당연히 부과되는 과제이다. 이런 노력없이는 학생들의 사고방식을 알 도리가 없고,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밝히는 데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민주적 교사들은 학습자들이 교사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도록 한다. 민주적 교사는 학습자들에게 귀기울이고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학습자들이 교사에게도 귀기울이도록 가르친다. 교육자와 학습자가 말하고 목소리를 내고 비판적 대화를 할 권리가 방해받고 있다면, 발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가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민주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교실에서 학습자의 자유가 무질서로 빠져들지 않도록 할 한계가 필요하듯이 교사와 학습자의 발언권이 터무니없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윤리적 한계가 필요하다.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며 행복하고 능력있는 민주적 학교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몸과 세계 간의 모든 관계가 종합되어야 한다. 민주적 학교는 자유와 권위를 잘 조화하는 입장을 취한다. 권위의 움직임이 너무나 강력하면 ‘아니오’ 라고 할 수 있는 자유의 운동을 왜곡하거나 그 역동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또한 자유의 움직임이 너무나 강력하면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권위의 울타리 자체를 부정하고 만다. 따라서 자유와 권위를 조화시키는 민주주의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권위와 자유, 규율이 없는 것과 강제적인 규율 부과 사이의 변증법을 요구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의 기준을 설정하고, 책임과 의무, 권위주의와 방임 어느 쪽으로도 흐리지 않고 권위와 자유의 긴장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규율이며, 학생들이 이런 규율을 주체적으로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민주적 학교는 절제하고, 행위할 때 규율을 세우고, 공부에 적합한 규율을 세우고, 몸을 돌보는 일 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유는 결국 권위를 내면화하여 권위를 갖춘 자유가 된다. 자유와 권위 간의 모순적 운동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규율의 형성 과정 속에서 우리의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 윤리적, 심미적, 과학적 책임성이 명백해진다. 이런 민주적 규율은 인간과 사회의 성장발달을 위한 집단연수나 실천을 통해 비판적 반성으로 형성하게 되는 총체적 규율이다.
민주적 학교를 건설하려는 진보적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기만 하는 전문가 교사여서는 안 된다. 교사는 수학이나 지리, 역사 등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과를 유능하고 진지하게 가르치는 일과 동시에 사회의 불공평함에 뛰어들어서 헌신하는 일도 모두 진보적 교사의 몫이다. 즉 가르치는 일이 지식전수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특정한 내용이나 인지대상을 비판적으로 학습하도록 하여 자신이 배운 지식을 가지고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학습자들이 사고하는 주체가 되고, 그들도 교사들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할 때 비로소 학습자들은 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의미를 만들어내는 ‘생산적 주체’가 될 수 있다.
10. 교사자질론
프레이리는 ‘감히 가르치려는 활동을 하려고 나서는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을 제시한다.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자질로는 ‘겸손’, ‘사랑, ‘용기’, ‘관용’이다. 대화는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요구된다. 대화 자체가 사랑이다. 대화는 사랑하고, 겸손하고, 소망을 가지고, 신뢰하고, 그리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반대화(anti-dialogue)는 사랑의 부재, 교만, 절망, 불신, 무비판 등으로 이끈다. 반대화는 수직적 관계를 내포한다.
첫째 ‘겸손’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없다는 명백한 진리를 이해하게 해준다. 교육은 우쭐함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겸손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자신보다 능력이 낮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둘째,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상호소통을 위해 교사에게는 ‘사랑’이라는 평범하지만 본질적인 자질이 필요하다. 사랑은 무방비의 사랑이 아니라, ‘무장된 사랑’이다. 이 사랑은 싸우고, 고발하고, 선언할 권리와 의무를 믿는 사람들의 치열한 사랑이다. 무장된 사랑이 없다면 쥐꼬리만한 봉급과 교사들에 대한 홀대 등 정부의 멸시와 모든 부조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셋째, 이 사랑을 떠받칠 수 있는 자질로 프레이리는 ‘용기’를 꼽는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두려움을 껴안고 그것을 이겨낸 상태의 마음이다. 따라서 두려움없는 용기는 있을 수 없다.
넷째, ‘관용’도 교사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의 하나다. 관용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것에서 배우고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도록 가르친다. 관용이 없다면 어떤 진지한 교육활동도 불가능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도 경험할 수 없다. 관용은 존중, 절제, 윤리를 요구한다. 아이들의 차이를 인정해야 진정한 교육이 가능하다. 삶이란 저마다 다르기에 하나하나 존재의 차이를 다르게 감지해야 한다. 변화무쌍한 아이들의 차이를 끈기있게 받아들이고,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진보적 교사다. 참을 줄 모르는 교사는 진정한 교사가 아니다. 우리 모두 진보적인 교육자가 되려면 이밖에 결단력, 안정감, 인내와 조급함 사이의 긴장, 삶을 즐겁게 만드는 자질 등이 필요하다. 교사의 경험이 실천이 배재된 교사교육은 교사들을 수동화하고 관료화할 따름이다.
IV. 프레이리 교육사상을 넘어
프레이리는 50년대에 농민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치며, 자신의 교육사상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프레이리의 교육론은 교육적인 것과 정치적 것이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교육사상은 브라질의 피억압민중을 가르치면서 구체화했다고 할 수 있다.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억눌린 자의 교육학]에는 변혁을 위한 의식화와 인간화, 변혁을 위한 대화와 해방교육, 프락시스와 문제제기식 교육, 비판의식 함양을 위한 민주적 학교에 대한 전망 등이 압축되어 있다. 억압적 현실과 이를 자각하게 하는 의식화, 의식화의 한 방법으로써 대화와 토론, 대화와 토론을 거친 이후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프락시스를 중심으로 한 문해교육이 핵심이다. 혁명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꿈을 갖고 있는 프레이리는 정적이기 보다 동적이며, 죽음보다는 삶을, 현재의 반복보다는 인간의 창조력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미래를, 병적인 소유욕보다는 주체들을 해방시키는 사랑을, 차가운 추상보다는 삶의 정서를, 군생보다는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을, 침묵보다는 대화를, 법과 질서보다는 프락시스를, 수동적으로 조직되는 사람보다는 자기들 스스로 능동적 성찰적으로 조직하는 사람들을, 일방적 지시보다는 창조적이며 상호소통적인 언어를, 상대방을 길들이는 구호보다는 성찰적 도전을, 부과된 신화들보다는 체험적 가치들을 지향한다.
이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발전시키기 위해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이를 둘러싼 논쟁과 새로운 사상의 태동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째, 프레이리의 논법 속에서 그가 중시하는 상부구조를 형성하는 의식화 교육이 하부구조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안으로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연결이 그렇게 원활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식화가 대화에 기반하고 있다면 최대한 ‘합의’를 도출해야 하고, 적어도 ‘의견수렴’이라고 이끌어내야 하는데 함께 창조해야 하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딴 길을 걷고 있는 양자 사이의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고 대치하고 있는 지경이라면 어떻게 대화로서 가능하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사실 억압자가 억압을 계속하면서 대화를 선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억압자 측에서도 투쟁을 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용 또는 계량주의의 낙인이 찍힐 것이다. 이런 점을 염려해서인지 프레이리는 투쟁과 대화가 어떻게 병행될 수 있는지에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변한다. “대화라는 것은 동등한 권리가 부여된 파트너들 사이에선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직접적 투쟁상황에 처한 인간들 사이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재벌과 노동자의 사회적 제관계를 보면 쉽게 볼 수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한겨레신문> 1999년 9월 1일자).
그렇다면 대화는 결국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거나 평화적 관계가 어느정도 진행되고 있을 때 가능한 방법론이며, 억압된 현실에 대해 억눌린 자들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교육적 전략으로서 대화적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는 행동할 수 있는 변혁가능성을 내포하고, 혁명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고, 의식화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러한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프레이리가 상용하는 억압자와 억압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주관적이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지표가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것은 곧 억압적 현실을 그토록 거론하면서도 ‘불평등’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의문이라는 지적과 맞물려 있다. 프레이리는 자신의 생각을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틀에 넣어 규정되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스스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마르크스가 내 눈을 밝게 하고 교육에 대해 보다 진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에 대한 신념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술회한다(1990, 중앙일보 6월 5일자 9면).
경제적 평등보다는 내적 자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았던 프레이리는 하부구조라는 경제보다는 상부구조인 ‘문화’와 ‘의식’에 관심을 더 많이 두었다. ‘교육자는 스스로 학습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잊지 않는다. 프레이리에게 있어 하부구조의 변혁이 일어나기 전에 대중의 동원과 조직화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선전을 유포하는 기계론적 마르크스주의는 민주주의를 반대하며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데올로기라고 본다. 스탈린주의를 배격하고 좌우익의 어떤 독재정부도 자유의식을 침해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낳았다. 그는 교육이 상부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하부구조인 물질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기계론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프레이리의 이러한 사고틀은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포이엘바하에 대한 명제와 신성가족 등)에 의존하였기에 결과적으로 억압을 문화나 의식 차원에서 파악하는 협소함 때문에 이러한 판단을 보였을 것이다. 결국 억압을 계급 개념과의 변증적 관계에서 찾지 않고, ‘계급의식’ 자체에서 찾음으로써 계급의 존재와 계급의식의 역동성을 상실하였다. 프레이리는 계급은 각 계급들이 자신의 계급의식을 획득하기 위해 시작할 때 계급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계급의식은 지식과 미래의 조건의 형성을 공유하는 억압을 받고 있는 노동자나 착취를 받은 계층이 가져야 할 권력과 의지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지식에 대한 권력을 공유해야 하며, 미래를 형성할 수 있는 권력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며, 지식인은 민주주의적 전망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이러한 입장의 전환은 혁명적 맑시즘과 사회주의에 대한 레닌주의적 전망이 실패한 데 따른 것이다. 프레이리는 마르크스주의가 억눌린 자와 함께 하는 구체적인 학습경험에 뿌리내린 실천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혁신적인 사회변혁과정에 참여하는 억눌린 자의 일상생활 및 문제들을 변증법적으로 반성할 필요조차 무시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보았다. 모든 인간은 지식인이라는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론을 받았들이면서 혁명적(극좌적) 맑시즘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프레이리는 후기에 들어서면서는 더욱 포스트모던 맑시즘 노선을 추구하였다. 그는 포스트모던의 진보성을 취하면서도 포스트모던의 회귀성이나 반동성을 거부하였고, 인종주의, 남성우월주의와 같은 권위주의적 경향을 거부하는 민주적 학교를 건설하려는 입장을 취한다.
셋째, 1970년에 발간한 [억눌린 자의 교육학]에서는 대화와 의식화를 말하면서 ‘혁명적 교육학’이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문해교육이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을 기르는 개인의 발달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회적 발전 또는 국가재건을 위한 것이라면 ‘혁명적 교육학’이라는 언어를 기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부구조의 경제적 개혁보다는 상부구조의 의식변화에 목표에 중심을 두었던 [억눌린 자의 교육학]의 사상은 급진적 혁명보다는 ‘인간주의적 맑시즘’에 더 편중되어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더욱 친화성을 보였기에 그럴 것이라고 예단할 수 있다. 또 경제혁명보다는 문화혁명에 종사한 유기적 지식인을 자처하였기에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넷째, 우리는 억압과 억압자에 대한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의식화를 강조하면서도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모순에 대해 교육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별 언급이 없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프레이리는 ‘자유를 위한 문화적 행동’이라는 언어를 사용할 뿐, ‘자유를 위한 계급적 행동’이라는 언어는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문화전략은 있어도 계급전략은 별로 없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개념의 개념에는 첫째 억압이나 해방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둘째 계급은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를 구별해 주는 중요한 준거로서 이런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계급의 범주와 그것이 이데올로기화하여 표현되는 문화, 이를테면 ‘계급문화’의 범주를 상정하여야 함에도 문화 속에 투영된 계급갈등의 문제를 설정하지 않았기에 프레이리의 의식화 개념에는 계급의 위치가 잘 설정되어 있지 않았고, 대화를 더욱 급진적이고 계급적으로 접근하게 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허위의식, 소외된 의식의 침묵문화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억압’이라는 의식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의식환원주의와 추상화의 한계를 보였다는 의문으로 발전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문화전략은 계급전략과 분리되어서는 안되며 기술, 계급, 문화, 교육을 동시에 파악하는 통합적 교육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프레이리의 생애 후년에 희망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테러리즘의 극단적 거부, 사회주의에 대한 포기로 오해되기도 했지만, 사회주의의 경제적 계급환원주의에 대한 경계가 자본주의의 옹호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은 체제대립이라는 자기정당화의 명분이 사라지면서 그 본질적 정통성의 크다란 기둥 하나를 상실하였기에 5년 내지 7년 안에 자본주의는 또 다른 위기에 빠져들 위험을 예고하고 있다. ‘투쟁’과 같은 개념으로 제3세계 해방투쟁의 결속감을 표했던 프레이리는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이 붕괴하고 몇몇 해방투쟁이 도착 증세를 보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의 용어가 현실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독일의 일간신문과의 인터뷰(<한겨레신문>, 1993, 9월 1일자)에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붕괴된 것은 억압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도착적 증세를 보이는 이념의 해방은 여전히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구체적 발전 양상에 대하 예언자는 결코 아니라고 말하면서 20년 전보다 더 다급한 현안이 아닐지 모르지만 ‘해방’, ‘주체성’, ‘양심’과 같은 주제들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문제는 마르크스에 대한 특정 경제적 해석에 기초하여 건설한 결과로 인해 경제적 토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의 주체성, 그 창조적 잠재력들, 또 인간의 영혼 차원들을 현실적으로 촉진시키지도 이용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위기에 봉착하였다. 따라서 경제가 인민의 기대에 못 미치자 그 체제를 유지하는 철학적 덮개나 정신적 통합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이 경제적 붕괴가 도래하면서 인민 스스로 곧바로 실상을 분명하게 자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VII. 결론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해방임을 알리고 이를 실천한 교육사상가이다. 그의 교육사상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입장에 서 있었다. 경제적으로 무력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상태를 침묵의 문화라고 규정한 그는 침묵의 문화를 영속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교육제도를 대화의 교육과 인간화 교육으로 대체하는 싸움을 계속했다. 기존의 교육을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게 하는 지식을 축적시키기만 하는은행저금식 교육이라고 비난하고 대신 억압적 현실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는문제제기식 교육을 주장했다. 비인간화된 사회에서 교육이 인간화 운동을 맡아야 한다고 믿은 프레이리의 인간해방 교육사상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이 자신의 눈으로 현실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해방의 교육학에 기반하고 있다. 몇 시간의 수업 끝에 농민들이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임을, 교육받은 인간임을 깨달았다라고 한 고백은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의 진수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첫째, 억압과 침묵문화를 강요하는 교화의 교육을 거부하는 것을 두고 자유주의적 또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자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와 민주주의를 동질화하여 프레이리에게서 대안을 찾는 보수적 길들이기 교육에 대해 실제 프레이리는 죽음을 몇 해 앞두고 매우 우려하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프레이리의 대화식 교육을 해방적 요소를 제거하고 방법론으로만 이용하는 사이비 교육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았다. 우리나라의 ‘열린교육’에서 보여주는 방법론적 극단화는 비판적 해방적 요소를 제거한 수업방법론의 극단적 모습을 보여 주었다. 프레이리는 자신의 대화식 교육에 대해 해방적 요소를 제거하고 방법론으로만 이용하는 사이비 교육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았다. 우리나라의열린교육에서 보여 주는 ‘내용 비판 없는 방법의 열림이나 정치적 관계를 배제한 구성주의 학습이나 수행평가는 모두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가치관의 팽배, 인간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해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매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이리의 대화교육과 현실변혁을 위한 의식화 교육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상품화의 주술화에 대한 매우 큰 우려를 표하고 있는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교육을 상품화하고 시장화하려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효력을 여전히 가질 것이다.
둘째, 프레이리가 강조하듯 대화, 의사소통, 비판적 사고의 실천이 중시되는 민주주의를 학교에 구현하여야 한다.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보인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학교에도 참여민주주의의 꽃을 피게 해야 한다. 프레이리의 생각으로 돌아가 보면 대화, 의사소통, 비판적 사고의 실천이 중시되는 민주주의를 학교에 구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므로 학생의 입을 막는 교육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 교육은 토론을 즐긴다. 또한 사회와 경제에 참여하는 것을 중시하며, 사회적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프레이리의 제도교육의 민주화를 위한 ‘민중적 민주적 학교’의 건설 노력은 제도교육의 가능성을 접고 새로운 학교를 창조하려는 탈학교론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아동인권선언이 유엔에서 제정되고, 현 정부 들어 청소년헌장이 선포되었음에도 청소년이 주체가 된 학생자치회 활동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지금 우리는 교실의 민주적 대화를 통해 학교의 권위주의적 관행을 극복해야 한다.
셋째, 억압은 사라졌어도 그 빈자리를 새로운 의식과 가치로 채우지 않으면 그 빈 의식의 공간이 파시즘으로 대체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새로운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우리도 억압에 의해 내면화한 오래된 내적 폭력을 치료하지 않으면 억압을 용인하는 새로운 폭력의 싹이 다시 움트는 것이다. 물리적 억압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오랜 억압으로 인한 피억압자의 내부에 내면화되어 있는 폭력적 잠재의식의 흔적은 그대로 있기에 그것을 치유하고 해독하는 해방적 심리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 프레이리의 원작 *
Freire, P.(1970), Pedagogy of Oppressed. New York, Herder & Herder. 성찬성(역)(1979/1997),
[페다고지]. 한마당.
------ (1972), Cultural Action for Freedom. Harmondsworth, Penguin. 채광석(역)(1979), ‘문화적
행동으로서의 교육’, 김쾌상(외역),[민중교육론], 한길사.
------ (1974), Education for Critical Consciousness. London, Sheed & Ward. 채광석․심지연(역)(1978),
[교육과 의식화], 새밭.
------ (1978), Pedagogy in Process. London, Writers and Readers Co-operative. 파도편집부(역),
[제3세계교육론], 파도.
------ (1985), The Politics of Education: Culture, Power and Liberation. London, Macmillan.
한준상(역)(1986), [교육과 정치의식]. 학민사.김쾌상(역)(1986), [실천교육학], 일월서각.
------ (1987), The Pedagogy of Liberation: Dialogue on Transforming Education. London, Macmillan.
------ (1992), The Pedagogy of Hope. New York, Continum.
------ (1998), Pedagogy of Freedom. Rowman & Littlefield Pub.
------ (1998), Teachers as Cultural Workers. [프레이리의 교사론], 교육문화연구회(편)(2001), 아침이슬.
* 공저
Freire,P. & Shor,I.(1987), A Pedagogy For Liberation, 김시원(역),(1988), [해방을 꿈꾸는 교육]. 이웃.
Freire,A. & Macedo,D.(ed.)(1998), The Freire Reader. Continum.
* 2차 문헌 *
심성보(1993), ‘프레이리의 강연장을 찾아서: 해방의 교육, 희망의 교육’, [우리교육] 12월호.
----- (2006), ‘비판의식의 각성을 몸소 실천한 민중교육자: 파울로 프레이리’, [우리교육] 5월호.
Aronowitz,S.(1993), 'Paulo Freire Radical Democracy Humanism', McLaren,P. &
Leonard,P.(ed.)(1993), Paulo Freire: A Critical Encounter. Routledge.
Figueroa,D.(1989), Paulo Freire Zur Einfuhrung. Junius.
Lankshear, C.(1993), 'Functional Literacy from a Freirean Point of View' McLaren,P. &
Leonard,P.(ed.),Paulo Freire: A Critical Encounter. Routledge.
McLaren,P. & Leonard,P.(ed.)(1993), Paulo Freire: A Critical Encounter. Routledge.
Shor,I.(1993), 'Education is Politics: Paulo Freire's Critical Pedagogy', Paulo Freire: A Critical
Encounter. Routledge.
Taylor,P.V.(1993), The Texts of Paulo Freire. Open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