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새를 위한 기도
천성산 노전암에는 개와 고양이가 많다. 절집에 사는 생명이어서 그런지 노전의 개들은 참 순하다. 곁을 스쳐 지나도 미동도 하지 않고 선정 같은 잠에 들어 있을 때가 많다. 언젠가 노전암 능인스님께서 죽은 개와 고양이의 천도재를 지내는 걸 본 적도 있다.
생명의 가치에 무겁고 가벼움의 차이가 없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본다. 바닷가 마을에 작은 집이 있어 가끔 들를 때가 있다. 집에는 그 집이 품어 키우는 체취가 있다. 비어 있던 빈집을 열고 들어서면 숨바꼭질하듯 숨었던 체취들이 한꺼번에 꼬리를 치며 달려 나온다. 집과 나는 익숙해진 서로의 체취를 나누는 것으로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얼마 전 일이다. 오랜 만에 들른 집이 이상하게 서먹하고 멀뚱했다. 서늘하고 낯선 체취가 느껴졌다. 문 앞에는 누군가 흘리고 간 낯선 흔적들이 흩어져 있었다. 구석진 계단참에 흩뿌려진 윤기 나는 깃털들. 화장실 구석에 소복이 쌓인 핏기 없는 솜털들. 등이 서늘했다. 조심스레 닫아둔 커튼을 젖히자 고양이 한 마리가 화들짝 튀어나온다. 고양이처럼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실랑이 끝에 겨우 침입자를 몰아내고 보니 지난 번 미처 닫지 못한 건지 환기창이 열려 있다. 허락도 없이 침입한 한 쪽을 겨우 몰아내었어도 여전히 집은 어둡고 무거웠다. 또 다른 침입자의 남은 흔적들. 너무 가볍다. 딱새였을 것이다.
강한 것과 약한 것이 대립했던 흔적은 무겁고 가볍게 남아 있었다. 똥으로 남은 강한 것의 굴욕과 한없이 가벼운 깃털로 남은 약한 것의 두려움이 공존하는 빈자리. 무추룸한 침묵만 고여 있었다. 무엇이 가볍고 무엇이 무거운지, 어떤 것이 강하고 어떤 것이 약한 것인지 모호해졌다.
향을 피우고 딱새를 위한 기도를 했다. 길고양이에 대한 원망을 다 버리지 못한 마음 한켠이 계속 시달림을 받는 듯 했다. 어쩌다가 인간이 실수로 열어둔 창으로 들어온 딱새와 길고양이. 그들에게 나는 빚진 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길고양이의 부당한 침략과 약탈에 대해서 일방적인 분노를 지울 수가 없었다.
생명의 가치에 대한 편견의 무게는 기울어진 만큼 무겁다. 집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년 정도다. 먹이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다니는 길고양이는 온갖 위험에 노출된 채 고작 2~3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 상하거나 염분이 많은 음식쓰레기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시멘트 바닥을 흐르는 깨끗하지 못한 물로 목을 축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길고양이는 온갖 질병에 시달리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 무거움을 천형처럼 이고 사는 녀석들이다. 그들이 가벼워지는 순간은 생존을 위한 먹이를 포착하고 사냥할 때일 것이다. 식육의 고양이에게 딱새는 그저 무거운 사냥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한없이 가볍게 날아오르는 딱새의 가벼움은 고양이에겐 가벼움만큼의 무거움이었을 것이다. 무거움이 가벼워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렸을 고양이의 무거움을 생각했다. 생명을 강한 것과 약한 것으로 나누면 강한 것이 꼭 강한 것만이 아니고 약한 것이 꼭 약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불가에서는 영가를 천도하는 아주 귀한 의식이 있다. 어쩌면 천도의식은 경계와 경계를 넘어서게 해주는 의식인지 모른다. 경계와 경계를 벗어던지는 순간, 거기는 여기였고, 여기는 거기가 될 것이다. 마침내 여기도 거기도 없는 깨달음의 경계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을 것 같다.
미처 다 날아가지 못한 채 가벼운 깃털로 남은 딱새의 두려움이 무겁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고양이가 남긴 무거움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기를 바랐다. 무거운 어깻죽지를 깃털처럼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바람이 창을 넘어 들어왔다. 바람을 타고 향이 피어올랐다. 바람에 섞여 향기가 천천히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들은 참 가벼웠다.
지난 봄 노전암 대웅전이 화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천 년의 시간이 타고 남은 자리에서 찰나처럼 반짝이는 어떤 경계 하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는 노전암을 다녀와야겠다.
첫댓글 그 딱새, 한보경샘의 기도를 받았으니 자유로운 영혼으로 다시 피어나겠지요. 두 손 모아!
누가 골목의 저녁을 뒤지게 만들었나요... ?
사라지는 것들은 참으로 가벼웠다 문득 경계도 없이 반짝이는 것들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