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 중원 전역에 번진들이 군웅할거하던 당나라 말기 '위박'의 고위 관료의 딸로 태어나 장계안의 정혼자가 될 몸이었던 섭은낭, 위박의 정치적 지형도가 바뀌며혼약이 파기된 은낭은 여도사에게 맞겨지고 5년후 그녀는 살수가 되어 돌아온다. 부폐한 관료를 제거하는 목적으로 길러져 임무를 수행하나 연민의 감정에 사로잡혀 실패를 하고 만다. 스승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연인이었던 이제는 위박의 절도사인 전계안의 목을 가져오라 명하는데....
<느린 호흡의 미학>
2시간이 채 안되는 제법 짧은 무협영화였다. 한정된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생략하고 (은낭의 수련 과정이나, 어린시절의 인물들 관계등) 롱테이크와 긴호흡의 네러티브를 통해 인물들에게 서서히 감정이입하게 한다.
자객을 다룬 무협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에 리얼리티를 살렸다는 점이 독특했다. (마치 60년대 사무라이 영화들 처럼) 중국 영화 특유의 가벼움 대신 배우들에 몸짓에 무게감을 더하고 카메라의 시점 또한 인물이나 상황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관조하는 형태로 담아낸다.
< 대사와 상황이 아닌 미장센으로 >
영화의 첫번째 시퀀스는 흑백으로 되어있다. 스승의 명으로 부폐한 관리를 암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풀숲에 숨었다가 단칼에 목을 베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짐으로써 자객이란 어떤 캐릭터인가를 말한다. 그리고 장면은 다시 컬러로 돌아온다.
이영화를 보는 이에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 말한다면 단연코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장면들과 미술이라고 하겠다. 단순한 서사에 진짜 전달하고픈 메세지는 거기에 다 담겨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일단 인물들의 복식, 주인공인 섭은낭은 자객이다. 행동과 마음을 어둠에 감추어야 하기에 그녀의 복장은 늘 검정이다. 이것은 스승이 입고 있는 흰옷과 대비를 이루는데 임무와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반면 다른 인물들은 어떨까, 절도사 장계안은 화려함으로 자신의 위신을 드러내는 덩시에 연정에 대한 감정과 정치적 불안을 감추려 한다. 은낭의 모친과 계안의 정부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화에서 그녀들의 치장은 마치 전투를 앞둔 장수의 비장함을 느끼게 하는데 별다른 대사 없이 소품과 의상만으로 인물들의 심리적 불안과 의도를 보여준다.
풀샷으로 잡은 호수와 들판의 고요속에서 홀로 놓인 인물들도 인상적이다. 마치 수묵화를 스크린으로 옮긴듯한 압도적 화면에 그와 대비되는 촛불의 흔들림, 실루엣을 투과해 계인을 잡는 시점 쇼트는 아른거리는 촛불로 자신의 연정이 아직 남았을 보여주는 은낭의 마음을, 본심을 숨긴채 서로를 대해야 하는 불안을, 그 홀로의 고독을 비춘다.
< 목조의 세트가 주는 차가움과 이국적 정서 >
영화의 로케를 일본에서 대부분 소화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럴까? 건물들과 실내가 주는 질감이 기존의 무협에서 느껴지는 돌의 거칠음이나, 중국 영화 특유의 화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반듯하게 조형된 나무 세트가 주는 매끄럽고 어딘가 차가운 느낌이 이국적 정서를 보여준다. 세트와 복식의 이질감을 통해 감독은 중국이라는 개연성이 아닌 영화 그자체로써의 리얼리티를 완성도를 보여준다.
< 원 하나가 그려지면 떠난다. >
흑백 시퀀스에서 암살 임무를 성공하고 두번째 임무에서 실패를 한 은낭은 스승에게 마음을 베어내고 오라는 명을 받고 계안을 목을 가지러 간다. 손쉽게 기회를 얻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그의 주변만을 멤돈다. 번진은 여전히 안과 밖으로 암투와 정치적 방향을 찾지 못해 혼란 스럽다. 은낭은 스승을 찾아가 임무에 실패 했음을 알리고 그는 처음과 같은 말을 한다. "검은 무정하나 너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구나" 은낭은 신라로 길을 떠난다.
인간은 고요의 가운데서 흔들리고, 거기에서 길을 찾고 나아가려 하기에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