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나이키가 탄생하기 전에는, 훗날 나이키의 공동 창립자가 되는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오레곤 대학의 첫 육사임 감독 빌 헤이워드(Bill hayward)가 있다.
1904년부터 1947년까지 이 팀을 이끈 헤이워드의 노력으로 오레곤 대학 육상팀은 3회의 오림픽 출전
여러 국내 대회에서 뛰어난 성공을 거두게된다.
그의 이름을 딴 헤이워드 필드는 바로 나이키의 비공식적 근원지이다.
1948년 올림필 출전 선수이자 올림픽 팀 코치, 그리고 혁신자이자 선수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빌 바우어만은
1948년부터 1973년까지 오레곤 대학 육상담의 감독직을 수행했다.
1957년 훗날 나이키를 공동 설립하게 될 두 사람
(당시 미국 최고의 육상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과 바우어만의 팀 소속이 된 중거리 러너 필 타이트(Phil knight))
이 드디어 처음 만나게 된다.
1962년 필 타이트는 스탠포드대학 연구논문에서 낮은 가격과 고기능성의 일본 운동화를 수입 판매한다면
독일제 운동화 일색의 미국 운동화 산업을 뒤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MBA학위 취득 후 세계 여행을 떠난 필 나이트는 일본에 들러 당시 고품질의 운동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오니츠카 타이커(Onitsuka tiger)사를 접촉한다.
그는 즉석에서 '블루 리본스포츠(BRS, Blue Ribbon Sports)'라는 자신의 회사이름을 만들어 내어,
미국에 진출하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어 볼 것을 설득한다.
이 블루리본스포츠가 바로 나이키의 전신이다.
1963년 필나이트가 수입한 타이거사의 운동화 200켤레가 12월에 처음 도착한다.
1964년 피라이트와 빌 바우어만은 각자 500달러를 투자해 그들의 새로운 사업을 함께 시작하게 된다.
당시 필나이트는 회계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남는 시간에는 부모님 집의 지하실, 자동차 트렁크 위 등에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신발을 팔았다.
러너들은 빌바우어만이 대부분 직접 디자인한 BRS신발을 착용하고 미래의 신발기술 개발에 필요한 피드백을 전해주곤 했다.
1965년 필 타이트의 스탠포드대학 동기이자, 같은 육상 선수였던 제프존스(Jeff johnson)이 BRS의 첫 정식직원이 된다.
1966년 제프존슨은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첫 BRS판매점을 오픈한다.
1067년 필타이트와 빌바우어만은 BRS를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일본에서 수입되는 오니츠카 타이거러닝화의 독점 마케팅 및 배급, 판매권을 획득한다.
이 신발은 1967년 12월 26일 빌 비우어만이 제안한대로 폼 쿠션 뒤축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다.
1968년 훗날 베타랑 직원이 된 지오프 홀리스터(Geoff hollister)와 나이키 사장이 된 밥 우델(Bob woodell)이
BRS의 첫번째 서부지역 판매점이 오레곤주의 유진(Eugene)에 문을 연다.
1969년 필나이트는 회사일에 보다 전념하기 위해 포틀랜드 주림대학의 경제학 부교수직을 사입한다.
1970년 빌 비아우만은 자기집 와플 제조기에 액체 고무를 부어 고무 스파이크를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고,
여기서 나온 밑창은 런닝화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게 된다.
1971년 필 나이트와 안면이 있던 푸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디자인 학과학생인 캐롤린 데이빗슨(Carolyn davidson)이
35달러를 받고 나이키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우시(Swoosh)를 만들었다.
나이키의 첫 직원인 제프존슨이 회사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하게된다.
그는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에 관한 꿈을 꾸고 회사이름을 생각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