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후남이
- 여기 이렇게 보이시죠?
의사가 화면 속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평소 눈썰미 좋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뚫어져라 쳐다봐도
당최 어디가 얼굴이고 어디가 다리인지, 사람의 형상은 맞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의사 눈에는 보인다니 그런가보다 할 뿐.
- 아들...이라는 말씀이세요...?
- 네.
- 아......
- 왜 그러세요?
- 아, 아니요. 요즘은 다들 딸이 좋다고 해서요...
앞으로는 2주에 한 번만 오면 된다는 말을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2주 동안은 전전긍긍의 나날이었다.
성별이 바뀌면 어쩌지, 의사가 잘못 본 건 아닐까, 다른 병원에도 가봐야 하나?
요즘은 다들 딸이 좋다고 해서요...
아쉬운 척 실망한 척 말끝을 흐렸지만 사실 가증스러운 연기였다. 언젠가 자식을 낳게 된다면 꼭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나였다.
90년대 초 시청률 50%를 거뜬히 넘긴 국민드라마 ‘아들과 딸’의 후남이, 드라마의 배경은 60년대였으나,
70-80년대에도 여전히 수많은 후남이가 있었다. 존재하지만 존중받지 못하는 생명, 아들 바라는 부모의 셋째 딸로 태어난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태어난 지 몇 달이 넘도록 출생신고는커녕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머니는 생각이 깨어 있는 분이었다. 아들 낳으라고 채근한 적도, 또 딸이냐며 비난한 적도, 아들 손주, 딸 손주 대놓고 차별한 적도 없는,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어머니요, 할머니였다. 방치된 손녀가 안쓰러워 출생신고를 빨리 해야지 않겠냐며 조심스레 아들며느리 눈치를 살피던 분이었다. 차차 하겠다는 핑계로, 아직 이름을 못(안) 지었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몇 달째 이어지자 보다못한 할머니가 직접 이름을 지었다 한다.
아름다울 미(美)에 착할 선(善)을 쓰는 촌스럽고 흔하디흔한 이름, 집안에서 유일하게 철학관을 거치지 않고 탄생한 이름,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그 탄생 비화를 알고 나면 어딘가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이름 미선.
할머니 덕에 서류로나마 나는 존재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였다. 두 살 터울로 남동생이 태어난 후, 더욱 더 처절하게 찬밥이 되었다.
큰딸은 첫정인지라 아낌없이 퍼주었고, 둘째딸은 총명하고 의젓하여 아들 같은 딸로 의지하였으며, 출산의 최종목표였던 막내아들에겐 여느 왕국의 왕자 못지않은 대우를 하였다. 내 이름만 유일하게 철학관을 거치지 않았듯 유치원 또한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였다. 투명유리병에 담겨 그 뽀얀 자태를 뽐내던
배달우유는 언제나 남동생 머리맡에만 있었고, 엄마는 남동생이 일어나기 무섭게 빨대 꽂은 우유를 대령했다. 언니들이 나이키 신발을 신고, 조다쉬 청바지를 입을 때 나는 어디서 얻었는지 출처도 알 수 없는 옷을 입고, 시장표 운동화를 신었다. 나도 브랜드를 외치며 떼를 쓰고, 눈물로도 호소해 보았으나 내 유년은 변함없이 노브랜드였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초등학교 입학 후 천덕꾸러기는 집안의 기대주로 비약적인 신분상승을 하였다. 그간 기대주 역할을 했던
작은언니보다 공부를 잘했고,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며, 교우 관계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반장을 도맡아 했다. 나는 모범생일 수밖에 없었다. 설움과 차별의 유년기를 거치며 (관심받기 위한)처절한 삶의 몸부림, 발악 같은 게 은연 중 내 모든 행동으로 뿜어져 나왔으리라. 나만의 방식으로, 주린 정을 밖에서 채워야 했다. 온전히 나로서 존중받고 싶었다. 관심과 칭찬이 그리웠다. 그리하여 나는 모범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대주 생활은 좋았다. 국민신발이었던 술 달린 랜드로바 단화를 신었고, 80년대 잇아이템이었던 돌청 조끼를 입었다. 통지표를 받는 날은 부모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내 세상이었다. 그때부터 자존심과 승부욕이 생겼다. 특히 남자들한테는 절대 지기 싫었다. 지난 세월 받았던 천대와 괄시가 모두 그들 탓인 양 애먼 데 화풀이하고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죄인 취급하게 만들던 사회, 뿌리 깊은 남아선호. 그 피해자인 나는 제대로 된 자아정체성을 가질 수 없었다. 여성성으로 어필하는 게 싫어 여장부 흉내를 냈고, 남자들 앞에서는 일부러 더 강한 척을 했다.
다시 태어나면 되고 싶은 것은?
쇼핑몰에 가입할 때마다 ‘비밀번호 분실 시 질문’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질문의 답은 ‘남자’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탯줄도 자르기 전, 굴곡진 삶을 이미 시작한 탓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듯 내 유년의
경험과 상처 또한 평생 갈 듯하다.
결혼 후 출산, 육아를 거치며 또 한 번 여자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함께 만든 노래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중 ‘여자는 노예 중의 노예’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씁쓸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내 삶과 동떨어진 가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겪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이 힘든 삶을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세상 모든 여자들이 눈물겹다.
-선생님, 그때 아들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그 사이 바뀐 건 아니죠...?
-아니요, 아들 맞아요. 왜요?
-아... 아니에요.
요즘은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부부가 월등히 많다. 후남이의 시대는 막을 내린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남아를 선호한다. 부모님 세대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른 이유다.
후남이는 사라졌지만, 여자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내가 아들을 바란 이유다.
첫댓글 저는 집이 자매인데요. 둘 째로서 첫 째보다 덜 챙겨진 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셋 째 딸은 둘 째보다 더 할 수 있군요. 저도 좀 더 욕심내볼 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대단하세요.
둘째 스트레스도 익히 들어 알고 있어요. 첫째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고...외동도 그렇고... 인간은 다 각자의 입장에서 외로운 존재인 듯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