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단 비평가들의 글을 보면 그리스도인 다운 온유와 덕성이 아니라
상대를 헐 떧고 비난하고 마치 상대를 매장시키지 못해 치를 떠는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정확한 자료도 아닌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들로 왜곡하여 진리를 갈망하는 많은 심령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게 비방하고 판단하는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판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7:1,2; 눅6:37)고
친히 명령 하셨고 바울 사도께서도 (롬14:1,3,4,10,13)에서 편지로 기록 하셨고
야고보서에도 “(약4: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12)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하셨다
참으로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일은 참람 됨을 알아야한다.
그리스도인은 교리가 아니라 오직 성경의 신조로 옳으면 옳고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의가 발라야 한다.
남의 이름은 올바르게 불러줘야 되듯이 쉬는 “안식교”가아니라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약해서 “안식일 교회”라고 바르게 호칭 하는 것이 이방인이 보더라도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리고 너무나 터무니없게도 안식일 교회를 왜곡하고 매도하는 글들을 보고 이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기본교리 28”을 올린다.
정독하시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똑바른 시각으로 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신론(神論)
1. 하나님의 말씀
성경, 곧 신약과 구약은 신적 영감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말하고 기록한 것이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구원에 필
요한 지식을 인간에게 주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 무오류(絶對蕪誤謬)의 계시이
다.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체험의 시금석이며, 교리들에 대한 권위 있는 계시자요, 역사 속
에서 활약하시는 하나님의 행동들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다.-기본 신조, 1
2. 하나님
한 하나님이 계신다: 성부, 성자, 성령 곧 동일하게 영원하신 세 신격의 통일체 하나님은 불멸
이시고, 전지 전능하시고, 만유 위에 계시고, 항상 존재하신다. 그분은 무한하시고 인간의 이
해를 초월하는 분이시면서도 그분의 자기 계시를 통해 알려지신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경배와 숭배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기본 신조, 2.
3. 아버지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의 창조주, 근원, 유지자, 통치자이시다. 그분은 공의롭
고 거룩하며, 자비롭고 인자하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변함없는 사랑과 진실하심이 한량없는
분이시다.
성자와 성령 안에 드러난 성질과 능력들은 아버지에 관한 계시이기도하다. -기본 신조, 3.
4. 아들 하나님
영원하신 아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 하셨다. 그분을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
었으며, 하나님의 품성이 계시되었고, 인류의 구원이 성취되었으며,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
영원토록 참 하나님이신 분이 참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 그분은 인간으로서 생활하셨고 유혹을 당하셨으나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완전하게 예증해 보이셨다. 그분은 당신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
셨으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이심을 증명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 대신 자
발적으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우리를 위해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최종적으로 구원하고 만물을
회복하고자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 -기본 신조,4.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라는 기술 속에서 요한은 심오한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아들 하나님의 성육신은 신비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육신 속에 나타나신 것
을 "경건의 비밀"(딤전 3:16)이라고 부른다.
자신 속에 신성의 충만함이 거했던 세상의 조물주께서 구유 안의 속절없는 아기가 되셨다.
그 어느 천사보다도 뛰어나시고, 존귀와 영광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이신 분께서 자신을 낮
추어 인간의 형체를 입으셨다.
사람은 이 신성한 신비의 의미를 거의 파악할 수 없으며, 오로지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길
간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성육신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
해야만 한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신 29:29).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분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백성들은 그분의 신성을 인식했는가?
1. 그분의 신적 속성들. 그리스도는 신적 속성들을 소유하신다. 그분은 전능하시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 요 17:2)를 주셨다고 말했다. 그분은 전지하시다. 바울은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 2:3)고 말했다. 예수님은 당신의 편재성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보증의 말씀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약속을 통해 주장하셨다. 비록 그분의 신성은 본질적으로 편재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지만 성육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여 이 점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제한하셨다. 그분은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편재하기로 선택하셨다(요 14:16-18). 히브리서는 그분의 불변성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5)는 말씀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분의 자존성은 그분께서 당신 안의 생명을 주장하셨을 때(요 5:26) 분명해졌으며, 요한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고 증거하였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라고 선언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분 안에는 "빌려오지 아니하고 파생되지 아니한 고유의 생명"*이 그분 안에 있음을 확언한다.
거룩함은 그분의 본성의 일부를 이룬다. 수태를 초지할 때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예수님을 보고 마귀들은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라고 외쳤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요일 3:16)안다고 기록했다. 그분은 영원하시다. 이사야는 그분을 "영존하시는 아버지"(사 9:6)라고 불렀다. 미가는 그분에 관해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고 말했다. 바울은 그분의 존재 시기에 관해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골 1:17)셨다고 말했다. 또한 요한도 동의하기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2, 3)라고 했다.*
2. 그분의 신적 능력과 고유 권한. 하나님의 행위들이 예수님께 돌려졌다. 그분은 창조주요(요 1:3; 골 1:16), 유지자 혹은 붙드는 자로 인식되고 있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7; 히 1:3). 그분은 당신의 목소리로 죽은 자를 일으키실 수 있으며(요 5:28, 29),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마 25:31, 32). 그분은 죄를 용서 하셨다(마 9:6; 막 2:5-7).
3. 그분의 신적 칭호들. 그분의 이름들은 그분의 신적 본성을 나타낸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 1:23)라는 뜻이다. 신자들과 마귀가 모두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불렀다(막 1:1; 마 8:29; 막 5:7 참조). 하나님의 신성한 구약적 칭호인 여호와, 혹은 야훼가 예수님께 적용된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위해 예비하는 사업을 묘사할 때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 "주의 길을 예비하라"(마 3:3)는 구절을 사용했다. 또한 요한은 예수님을 당신의 보좌에 앉아 계신 만군의 여호와와 동일한 분이라고 했다(사 6:1, 3; 요 12:41)
4. 그분의 신성에 대한 시인. 요한은 예수님을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묘사했다(요 1:1, 14). 도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요 20:28)이라고 인정했다. 바울은 그분을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롬 9:5)으로 언급했다. 히브리서는 그분을 하나님이시요 창조주라고 불렀다(히 1:8, 10).*
5. 그분의 개인적 증언. 예수님은 친히 당신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주장하셨다. 그분은 "내가(나는) 있느니라"(I AM)(요 8:58)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을 구약의 하나님["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출 3:14 참조]과 일치시키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는 말 대신에 "내 아버지"(요 20:17)라고 부르셨다. 또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는 그분의 진술은 그분이 아버지와 "한 본질"이요 "동일한 속성들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주장을 공포하는 것이다.*
6. 하나님과의 동등성이 주장됨. 그분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사실은 침례식의 공식 어구(마 28:19), 사도적 축도(고후 13:14), 그분이 떠나시며 주신 권면(요 14-16), 영적 은사들에 관한 바울의 설명(고전 12:4-6)등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요 14:9)다고 대답하셨다.
7.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경배를 받으신다. 백성들은 그분을 경배했다(마 28:17; 눅 14:33 참조).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 바울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빌 2:10, 11)라고 기록했다. 몇 개의 축복 기도가 그리스도께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기를 간구한다(딤후 4:18; 히 13:21; 벧후 3:18 참조).
8. 그분의 신성의 필수성. 그리스도는 인간을 하나님께 화해시키셨다. 백성들이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품성을 완전하게 그들에게 계시하는 일이 필요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으로 이러한 필요성을 충족시키셨다(요 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17:6 참조).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요 14:9)다고 증거하였다.
아버지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요 5:30)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적 권능을 사용하셨다. 신적 능력을 통하여그분은 고치고, 회복하고, 죄를 용서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사랑의 구주로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다(눅 6:19, 요 2:11, 5:1-15, 36, 11:41-45, 14:11, 8:3-11). 그러나 그분은 다른 사람도 같은 처지에 있다면 당할 수도 있는 개인적인 고난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적을 결코 행하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성과 품성과 목적"에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시다.* 그분은 참으로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인간이시다. 성경은 그분의 신성에 추가하여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갖고 계심을 증거한다. 이 교훈을 수용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요일 4:2, 3)다. 그리스도의 인간으로서의 출생, 성장, 특성, 개인적 증언등은 그분의 인성을 입증한다.
1. 그분의 인간으로서의 탄생.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여기 "육신"이란 말은 "인간 본성", 곧 그분의 하늘 본성보다도 열등한 본성을 의미한다. 명백한 언어로 바울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갈 4:4; 창 3:15 참조)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모습"과 "사람의 형체"(빌 2:7, 8 RSV)가 되셨다. 하나님이 인성으로 나타나신 것은 "경건의 비밀"(딤전 3:16)이다.
그리스도의 족보는 그분을 "다윗의 자손"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일컫는다(마 1:1). 인간적 본성에 따라 그분은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 9:5) "마리아의 아들"(막 6:3)이셨다. 비록 그분은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여인에게서 나셨지만 엄청난 차이와 독특성이 있었다. 마리아는 처녀였으며, 이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마 1:20-23; 눅 1:31-37). 그분은 당신의 모친을 통하여 참된 인성을 취할 수 있으셨다.
2. 그의 인간적 성장. 예수님은 인간의 성장 법칙을 따르셨다. 그분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눅 2:40, 52)여 지셨다. 12세때 그분은 당신의 신성한 사명을 자각하셨다(눅 2:46-49). 소년기를 통해 그분은 당신의 부모님께 복종하셨다(눅 2:51). 십자가로 가시는 길은 고난을 통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그분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히 5:8, 9, 2:10, 18)었다. 그분은 성장의 과정을 거치셨으나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
3. 그분은 사람으로 일컬어지셨다. 침례 요한과 베드로는 그분을 "사람"(요 1:30; 행 2:22)이라고 칭했다. 바울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롬 5:15)라 했다. 그분은 "죽은 자의 부활"을 초래하시는 "사람"이시다(고전 15:21). 또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 스도 예수"(딤전 2:5)이시다. 당신의 원수들을 향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일컬어 사람이라고 하셨다.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 8:40). 예수님이 당신을 지칭하실 때 사용하길 좋아하신 칭호는 77회나 사용된 "인자"(마 8:20, 26:2 참조)였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삼위 하나님 내에서 그분이 갖고 계신 관계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사람의 아들("인자")이란 칭호는 당신의 성육신을 통한 인류와의 결속을 강조한다.
4. 그분의 인간적 특성. 하나님은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셨다(시 8:5). 마찬가지로 성경은 예수님을 "천사들보다 잠깐동안(난외주:조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히 2:9)라고 말한다. 그분의 인간적 본성은 창조된 것이었으며 초인간적 능력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인간이셨다. 이것은 그분의 사명의 일부였다. 그분이 인간적 본성의 특성을 필히 소유하셔야 했기 때문에 그분은 "혈육"(히 2:14)이셨다. "범사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동료 인간들과 "같이" 되셨다(히 2:17). 그분의 인간적 본성은 다른 인간들과 같은 심리적, 육체적 감수성을 갖고 계셨다.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 걱정 등(마 4:2; 요 19:28, 4:6; 마 26:21, 8:24 참조).
그분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실 때 동정, 의로운 분노, 슬픔을 나타내셨다(마 9:36; 막 3:5). 때때로 그분은 걱정과 슬픔을 느끼셨으며 울기까지 하셨다(마 26:38; 요 12:27, 11:33, 35; 눅 19:41). 그분은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으며 한 번은 피땀이 나도록 기도하셨다(히 5:7; 눅 22:44). 그분의 기도의 생애는 그분께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셨음을 나타낸다(마 26:39-44; 막 1:35, 6:46; 눅 5:16, 6:12). 예수님은 죽음을 겪으셨다(요 19:30, 34). 그분은 영으로서가 아니라 신체를 갖고서 부활하셨다(눅 24:36-43).
5. 예수님은 얼만큼 인간 본성과 일치되셨는가?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아담(고전15:45)이심을 계시한다. 그분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 혹은 "죄많은 인간의 모습"(롬 8:3, 공동 번역)으로 사셨다. 어느 정도까지 그분은 타락한 인간과 일치하셨거나 일치되셨는가? 죄된 인간, 혹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란 표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부정확한 견해 때문에 기독교 역사 전체에 걸쳐 파당과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1) 그분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셨다. 전에 언급한, 광야에서 들어올린 뱀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독사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놋 뱀은 백성들을 고치기 위해 높이 매달렸다. 마찬가지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구주가 되실 것이었다. 성육신 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난외주: 형체]"이셨는데, 이것은 태초부터 그분은 신적 본성을 소유하셨다는 것을 말한다(요 1:1; 빌 2:6, 7). "종의 형체"를 가지심으로 그분은 신적 고유 권한(prerogatives)을 유보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의 종이 되셔서(사 42:1)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셨다(요 6:38; 마 26:39, 42). 그분은 인성으로 신성을 옷 입으셨으며, "죄 있는 육신의 모양" 혹은 "죄 있는 인간 본성" 혹은 "타락한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롬 8:3 참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있다거나, 죄된 행위와 생각에 참여하셨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비록 죄있는 육신의 형체 혹은 모양이 되셨지만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며 그분의 무죄하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그분은 마지막 아담이셨다. 성경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여 아담을 "첫 사람",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 혹은 "둘째 사람"이라고 부른다(고전 15:45, 47). 그러나 아담은 그리스도보다도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타락할 때 그는 낙원에 살았다. 그는 신체와 심령에 활력이 넘치는 완전한 인성을 소유했다.
예수님은 그렇지 못하셨다. 그분은 죄로 저주받은 이 땅에서 4,000년에 걸쳐 이미 타락해 버린 인간적 본성을 취하셨다. 그리스도는 아담의 타락하지 않은 본성과 비교해 볼 때 신체적, 정신적 활기가 떨어진 인간적 본성을 취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결과를 지니고 있는 인간적 본성을 취하셨을 때 그분은 모든 사람이 체험하는 연약성과 약점을 가지셨다. 그분의 인간적 본성은 "연약에 싸여 있"었으며,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었다(히 5:2; 마 8:17; 사 53:4). 그분은 당신의 연약함을 느끼셨다. 그분은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 5:7), 이렇게 하심으로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곤궁함과 약점에 당신 자신을 일치시키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인성은 아담의 인성, 곧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이 가졌던 인성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또한 모든 점에서 타락한 후의 아담이 가졌던 인성과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담의 인성과 같지 않다. 왜냐하면 타락한 자의 무죄한 연약함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타락한 자의 인성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덕적 결함 속에 떨어진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의 우리의 인성과 같되 죄는 없는 것이다.*
3) 그분은 시험을 겪으셨다. 시험은 그리스도께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그분께서 그것을 저항하시기가 쉬웠을까, 혹은 어려웠을까? 그분께서 시험을 겪으신 방식은 그분이 참으로 인간이셨음을 증명한다.
a)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 그리스도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히 4:15)라는 것은 그분이 인간의 본성을 가지신 분임을 보여준다. 시험과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분에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만일 그분께서 죄를 지을 수 없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셨거나 우리의 모본이 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시험을 굴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여 온갖 불리한 조건을 지닌 인간 본성을 지니셨다.
어떻게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 있었을까? "모든 일"에, 혹은 "모든 점에"(NIV)라는 말씀은 그분께서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똑같은 시험들을 만나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분은 결코 퇴폐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자동차의 제한 속도 위반 같은 시험을 당하지 않으셨다.
모든 시험 속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문제는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시키는가의 여부이다. 시험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셨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그분은 인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상 혹심한 시험도 성공적으로 저항하셨다.
시험을 이기심으로 그분은 인간의 연약성을 동정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셨다. 우리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그분을 계속해서 의지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 있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다는 것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명쾌히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신비이다"*
b)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음. 그리스도는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다(히 2:18). 그분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히 2:10)되셨다. 그분은 친히 시험의 권세를 직면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서 시험당하는 모는 사람을 도우실 길을 알고 계신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분은 인간 본성이 당하는 시험에 인간과 하나되어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스도는 시험을 받아 어떻게 고난을 당하셨는가? 비록 "죄 있는 육신의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영적 기능들은 전혀 죄에 오염되지 않았었다. 그 결과 그분의 거룩한 본성은 지극히 민감했다. 악과 어떻게든지 접촉하기만 하면 그분은 고통을 받으셨다. 이처럼 그분은 당신의 완전한 거룩성에 비례하여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은 다른 어느 사람에게보다도 그분께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리스도는 얼마만큼 고난을 당하셨는가? 그분께서 광야, 겟세마네, 골고다에서 겪으신 체험은 그분이 피 흘리기까지 시험에 저항하셨다는 것을 드러낸다(히 12:4 참조).
그리스도는 당신의 거룩성에 비례하여 더 많은 고통을 당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 인간이 직면하는 것보다도 더욱 강력한 시험에 직면하셨다. 웨스코트(B. F. Westcott)는 말한다. "고난 중에 빠진 죄인에 대한 동정은 죄에 대한 체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죄한 자만이 그 최대 강도를 알 수 있는 죄의 유혹력에 대한 체험에 의존한다. 유혹에 넘어지는 자는 최후의 분투 이전에 굴복하는 것이다."* 브루스(F. F. Bruce)는 다음과 같이 동의하고 있다. "그분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온갖 형태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견디시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약화되거나 그분께 대한 순종을 조금도 이완시키지 않으셨다. 이러한 견딤은 보통의 인간적 고난보다도 훨씬 심한, 결코 적지 않은 고난을 수반한다."*
그리스도는 또한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는 강력한 시험을 직면하셨다. 즉 당신의 신적 능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시험이었다. 엘렌 G. 화잇(E. G. White)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분은 하늘 궁정에서 영예를 받으셨으며 절대적 권능에 익숙하셨다. 그분에게 있어서 인간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타락한 본성이 처한 저열한 수준을 넘어서 신적 본성에 참여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4) 그리스도는 죄를 범하실 수 있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실 수 있었는지에 관한 문제에 제각기 다른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필립 샤프(Philip Schaff)의 말에 동의한다. "그분[그리스도]이 시초부터 절대적인 범죄 불가능성(犯罪不可能性) 혹은 죄 짓는 일이 불가능함을 부여받으셨다면 그분은 참 인간, 혹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본이 되실 수 없었다. 그분의 거룩성은 스스로 획득한 행위나 고유의 공로가 되는 대신에 우연적이거나 외부에서 부여한 은사가 될 것이며, 또한 그분의 시험들은 비실제적인 연극이 되었을 것이다."* 칼 울만(Karl Ullmann)은 추가해서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되던지 간에 그분이 시험을 받은 역사적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히브리서에 그분이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라고 표현한 말씀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의 무죄함. 예수님의 신적 본성은 무죄했다는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그분의 인간적 본성에 관해서는 어떠한가?
성경은 예수님의 인성을 무죄한 것으로 제시한다. 그분의 탄생은 초자연적이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마 1:20). 신생아로서 그분은 "거룩한 자"(눅 1:35)로 기술되었다. 그분은 타락한 상태의 인간 본성을 취하셨는데, 이것은 죄의 결과들을 지닌 것이지 그 죄됨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죄를 제외하고 인류와 하나가 되셨다.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신 분이며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히 4:15, 7:26 참조)신다. 바울은 그분을,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고후 5:21)라고 기록했다. 베드로는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벧전 2:22)다고 증언했으며, 또한 그분을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벧전 1:19; 히 9:24)으로 비유했다. 요한은 그분은 죄가 없고 의로우시다고 했다(요일 3:5-7).
예수님은 온갖 불리한 조건을 지닌 우리의 본성을 자진해서 취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유전적 오염이나 타락과 실제적 죄와는 무관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적대자들을 향해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 잡겠느냐"(요 8:46)고 도전하셨다. 가장 혹독한 시련을 직면해서 그분은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라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악한 성향이나 기질, 혹은 죄된 정욕을 전혀 갖지 않으셨다. 그 어떤 시험의 사태(沙汰)도 그분께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을 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결코 죄를 고백하거나 제물을 드리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버지 나를 용서해 주소서"라고 기도 드리지 않으셨다. 도리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라고 기도하셨다. 항상 자신의 뜻이 아닌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신 예수님은 끊임없이 아버지를 의지하셨다(요 5:30 참조).
타락한 인간의 그것과는 달리 예수님의 "영적 본성"은 "모든 죄의 감염에서 벗어나"* 순결하고 거룩하다. 그분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전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분은 둘째 아담이시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드님이시다. 우리는 그분을 "죄의 성향을 지닌 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분의 인간적 본성은 인간 본성이 시험당하는 모든 일에 시험을 당하면서도 그분은 결코 넘어지지 않으셨으며,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분 안에는 악한 성향이 결코 없었다.* 진정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높고, 가장 거룩한 모본이시다. 그분은 무죄하시며,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완전하였다. 참으로 그분은 무죄한 인간의 완전한 모본이시다.
7.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셔야 할 필요성.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것을 말해준다.
1) 인류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하여. 메시야로서 예수님은 대제사장, 혹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 위치를 차지하셔야만 했다(슥 6:13; 히 4:14-16). 이 직능(職能)을 행하려면 인간의 본성을 취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스도는 이런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셨다: a) 그분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으로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으셨다(히 5:2). b) 그분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기에 "자비하고 충성된" 분이시다(히 2:17). c) 그분은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히 2:18). d)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이시기에 연약함에 대해 동정하시는 분이시다(히 4:15).
2) 가장 타락한 인간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백성들이 처해 있는 곳까지 도달하여 가장 속절없는 자까지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종의 수준까지 내려가시는 것이 필요하였다(빌 2:7).
3) 당신의 생명을 세상의 죄를 위해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은 죽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죽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인간적 본성을 소유해야만 했다. 그분은 인간이 되셔서 죄의 값을 치르셨는데, 그것은 사망이었다(롬 6:23; 고전 15:3). 인간으로서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히 2:9).
4) 우리의 모본이 되시기 위하여.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모본을 보이시기 위해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무죄한 생애를 사셔야만 했다. 둘째 아담으로서 그분은,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거나 죄를 이길 수가 없다는 신화를 추방하셨다. 그분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다. 첫째 아담이 타락한 곳에서 둘째 아담은 죄와 사단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시고 우리의 구주요 우리의 완전한 모본이 되셨다. 그분의 능력 안에서 그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요 16:33).
그분을 바라봄으로 사람들은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고후 3:18)게 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 3). 참으로 그리스도는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벧전 2:21; 요 13:15 참조)다.
두 본성의 연합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두 개의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을 가졌다. 그분은 신-인(神人)이시다. 그러나 성육신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본성을 취하신 것이지 인간 예수가 신성을 획득한 것이 아니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이 두 본성은 한 인격 안으로 융합되었다. 다음의 성경적 증거들을 주목하도록 하자.
그리스도는 두 본성이 연합되신 분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된 복수성은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님을 두 분이 아닌 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러 구절이 신성과 인성에 관해 언급하면서 오직 한 분에 관해 말한다. 바울은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여인에게서 나신(인간적 본성) 하나님의 아들(신적 본성)로 묘사하였다(갈 4:4). 따라서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신적 본성)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인간적 본성)"(빌 2:6, 7) 되셨다.
그리스도의 이중적 본성은 그분의 인간성과 관련된 추상적인 신적 능력이나 영향력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라고 기록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롬 8:3)셨다고 기록했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딤전 3:16; 요일 4:2)나셨다.
두 본성의 혼합. 때때로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을 그분의 인간적 본성과 관련해서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당신 자신의 피로 사셨다(행 20:28; 골 1:13, 14 참조). 다른 경우에 그분의 신적 본성과 관련해서 인자를 기술한다(요 3:13, 6:62; 롬 9:5 참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을 위해 "한 몸"이 예비되었다(히 10:5). 그분이 인성을 스스로 취하셨을 때 그분의 신성은 인성으로 가리워졌다. 이것은 인성을 신성으로, 혹은 신성을 인성으로 변화시킴으로 성취되지 않았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벗어나 다른 본성으로 옮겨가지 않으셨으며, 당신 안에 인성을 취해 들이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 었다.
그분이 성육신하셨을 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되시기를 그치셨거나 그분의 신성이 인간적 수준으로 격하되지는 않았다. 각각의 본성은 제자리를 지켰다. 바울은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라고 말한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분의 인간적 본성은 죽었으나 그분의 신성은 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두 본성의 연합은 왜 필요한가? 그리스도의두 본성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면 그리스도의 사명과 우리의 구원 자체에 대하여 긴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1.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오직 신성과 인성을 지닌 구주만이 구원을 가져올 수 있었다. 성육신할 때에 그리스도는 당신의 신성을 신자들에게 나눠 주기 위하여 당신 안에 인성을 취해 들이셨다. 신-인이신 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 신자들은 신의 본성에 참여할 수있다(벧후 1:4). 야곱의 꿈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다리는 우리가 있는 곳까지 이르러 우리에게 다다라 있다. 그분이 인간의 본성을 취하시고 승리하신 것은 우리도 그분의 본성을 취함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신적인 팔은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고 있으며, 그분의 인성은 인류를 감싸고 있다. 이리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땅을 하늘과 연결시킨다.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이 효력을 갖는다. 무죄한 인간, 혹은 그 어떤 천사의 생명도 인류의 죄를 속죄할 수 없다. 오로지 신-인이신 창조주만이 인류를 속량하실 수 있었다.
2. 인성으로 신성을 가리우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인성의 옷으로 당신의 신성을 가리우셨다. 그분은 천상의 영광과 위엄을 유보하셨는데 이는 죄 있는 인간이 파멸되지 않고 그분의 존전에 살아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 이셨으나 하나님처럼 보이지 않으셨다(빌 2:6-8).
3. 승리의 생애를 사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인성만으로는 사단의 강력한 기만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골 2:9)셨기 때문에 그분은 죄를 이길 수 있으셨다. 아버지께 전적으로 의지하심으로써(요 5:19, 30, 8:28) 그분의 "인성과 결합된 신성의 능력은 인간을 위해 무한한 승리를 거두셨다."
그리스도의 성공적인 생활 체험은 그분만이 가지시는 특권이 아니다. 그분은 인간이 행사할 수 없는 능력은 그 어느 것도 행사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엡 3:19)으로 충만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체험의 열쇠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약속"에 대한 믿음인데, 이를 통하여 우리는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벧후 1:3, 4). 그분은 당신이 승리하셨던 동일한 능력을 제공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충성되이 순종하며 승리의 생애를 살 수 있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안위하시는 약속 중 하나는 승리에 관한 것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같이 하리라"(계 3:21).
5. 성령 하나님
원하신 성령 하나님은 창조, 성육신, 구속 사업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로 더불어 활동하셨다.그
분은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능력을 충만케 하셨다. 그분
은 인간들을 이끄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며 이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항상 함께 하시도록 성부와 성자에 의해 파송되신
그분은 영적 은사들을 교회에 부여하시며, 교회에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도
록 하시고, 성경과 조화를 이루어 교회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기본 신조,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