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도 먹는다. 커피를 때로 커피 맛뿐 아니라 분위기 맛을 즐기듯이. 깔끔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에도 한식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음식인지 새삼 확인한다.
1) 맛본 음식 : 정식(1인당 15,000원)
2) 맛본 때 : 2017.3.
2. 맛보기
1) 음식 전체 : 한식을 이처럼 우아하면서 아늑한 식당에서 먹으니 헷갈린다. 한식을 먹는지 양식을 먹는지, 한식과 양식의 구분이 무엇인지. 한식의 한식다움이 음식에 있었는지, 식기에 있었는지, 한옥의 고풍에 있었는지.
한식의 진화는 일탈일까, 모천(母川)회귀일까. 그 동안 진화나 세련은 한식(韓式)을 벗어나는 서양화인 것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식(韓式)으로 회귀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한식(韓食)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2) 주메뉴 : 훈제한방오리구이와 생삼겹살구이
삼겹살이 쫀쫀하고 냄새나지 않게 때맞춘 음식으로 식감이 좋다. 오리구이는 껍질이 약간 바삭하면서도 살이 퍽퍽하지 않다. 놀라운 것은 숙주와 조화를 시켰다는 거다. 우리 음식에서는 베트남 음식이나 중국 음식에 비해 숙주의 쓰임이 적다. 콩나물에 밀려 완전 곁방살이여서 진가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늘 아쉬웠다. 이처럼 살려 쓰는 것은 우리 음식의 외연 확대이다. 반갑다.
보조메뉴 : 호박전과 김치메밀전병
호박전 : 전은 들기름으로 부쳐야 제 맛이다. 들기름의 고소함은 아니어도 호박반죽을 노리끼리 부쳐내어 기름 맛이 좋다. 호박전에서 호박은 그 달착지근한 제 맛을 내놓아야 전의 풍미가 살아닌다. 얇지 않아도 호박 풍미가 제대로 드러나 있다.
김치메밀전병 : 겉은 쫄깃거리고 속김치는 아삭거리며 개운하다. 익은 김치가 제몫을 단단히 하며 맛을 낸다.
3) 반찬 : 먼저 나오는 호박죽이 색깔과 맛이 실하게 입맛을 돋운다. 야채샐러드가 산뜻하다. 고추장아찌가 좋다. 밀전병과 함께하면 풍미가 배가된다. 깻잎장아찌, 낙지젓갈, 배추백김치 등이 모두 놀지 않고 제몫을 성실히 한다.
4) 국은 된장국이 나온다. 일명 미소된장국이라 했는데 된장 콩 건더기 없이 맑은 가루 된장국이다. 가벼운 된장맛이다. 밥이 좋다. 갖가지 잡곡을 더해서 밥으로도 보약을 만드는 정성이 감지된다.
앙증맞은 양갱도 재미난다.
5) 먹는 방식 : 양식처럼 순차적으로 나온다. 한상차림이 아니어서 먹기 좋고 공간차지도 덜해 좁은 상에서도 불편하지 않게 먹을 수 있다.
3. 식당 엿보기
1) 식당 얼개
1) 식당 상호 : <소소한풍경>
2) 전화 : 02) 395-5035
3) 주소 : 서울 종로구 자하문화40길(부암동 239-13)
4) 주요 음식 : 한식
2) 음식 값 : 런치코스 ABC코스 각각 15,000원, 19,000원, 25,000원. 저녁은 22,000원부터 시작한다.
4. 먹고나서
오늘은 뙤약볕 아래 햇빛 쏟아지는 창가에서 농부 새참 먹듯이 식사를 했다. 논배미 앉아 먹는 새참이면 탁배기가 제격인데 분위기는 또 와인이어야 할 거 같다. 아침 내 준비한 음식을 또아리 위 투박한 광주리 안에 담아온 새댁이 느티나무 바윗돌에 차려놓는 새참상, 그런 새참상이 기대되는 햇빛 자리이다. 햇빛은 영낙없는 논배민데, 세련된 식기와 깔끔한 반찬 품새는 와인 정취이다.
둘 다 좋다. 맛은 와인과 탁배기가 반반이다. 샐러드는 와인인데, 김치전병은 탁배기다. 삼겹살오리구이는 와인 반, 탁배기 반이다. 양식이 한식을 품었나, 한식이 양식을 품었나.
주메뉴는 한식이고 양식은 장식이니 한식이 양식도 분위기도 품은 셈이다. 한식의 진화와 확장이다. 한시가 민요에게 밀렸던 문화 변이의 재현을 보는 거 같다. 결코 소소하지 않은 문화다.
서울 시내에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한식집, 많이 고맙다. 느리게 걷기 좋은 동네, 부암동에 있다. 골목길이 오르락내리락 게으르지 못하게 운동 시킨다.
김환기미술관이 곁에 있다. 미술관은 미술관 이름으로 붙은 화가 이름이 의아할 만큼 해당 화가의 작품이 없다. 확보된 전시 공간도 다른 화가의 그림이 많고 별관은 또 다른 화가의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가뜩이나 미술관 부족인 나라에 이름붙은 미술관마저 빈곤해서 허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