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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24 / 생명평화세계관과 실천론 연구모임
8월 모임은 생명평화세계관을 ATD라는 프로그램의 시각에서의 해석 된 영상을 보고 공부를 진행했습니다. ATD 프로그램 및 영상은 세계적 환경단체인 파차마마 얼라이언스 (Pachamama Alliance)의 독립된 교육전문 기구인 ‘Awakening The Dreamer (줄임말 ATD)’에서 만들었습니다. 북 남미, 일본, 영국, 홍콩 등 세계 50여 개국, 수천 지역에서 실시 중 입니다. ATD영상 모두 파차마마 얼라이언스 명의 아래, 2010년 버전으로 새로 업데이트 된 것들입니다. 우리는 총 10개의 주체로 된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ATD영상과 내용을 모두 볼 수 있는 곳 : www.catholicjp.or.kr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리 더 나은 세상-더 나은 세상 커뮤니티-활동 및 정보공유 커뮤니티-공지15번(2016.08.16)부터 28번까지)
ADT 영상 나누기
- 지구의 자원 소비량이 인간의 쓰는 양보다 많았던 때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남겨져야 할 자원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모습과 인간들만의 발전을 위해 자연을 함부로 파괴한 일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들이 인상 깊었다.
- 우주이야기를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미리 이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영상을 보지 않고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정의, 영적 충만, 지속가능함을 연결하는 과정을 구체화 시키고 발견하는 마음이 있었다. 영상 중 인디언의 말에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에서 보면 빨리 멀리 가는 방법은 의식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가 세상에 기여하는 행동과 실천을 염두에 두면서 어디로 가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연결이 될까 생각했다.
- 영상 속에서 원시림 속 삼나무를 지키기 위해 2년 동안 삼나무 위세서 투쟁했다는 사람을 보고 굴뚝위에서 투쟁하던 노동자가 떠올랐다. 투투 주교가 말한 “악은 승리 할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평화가 전진하는 속도는 빨리 갈 수 없지만, 의식의 전환이 생각보다 빨라지면 더 망가지지 않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속도가 미진할 꺼라 생각되어, 그것을 보충하는 위해 적폐를 청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의식이 전환과 적폐, 악을 막는 것은 두 가지 흐름이 함께해야한다.
- 영적 충만, 지속가능, 사회정의, 환경정의, 그런 표현들이 제대로 된 표현인가 의문이다. 환경파괴는 우리가 추구해오지 않은 것들이 많기에 자연스럽게 병들고 훼손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사회정의는 왜 계속 추구하고 있는데 이루어지지 않을까? ‘정의’라는 말이 사회와 환경에 적용되었을 때를 곰곰이 누가 살펴서 말해줬으면 한다.
- 사는 동안에는 안다고 하는 것들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야겠다. 본 영상에서 아는 것들을 삶에서 살면서 살겠다.
- 첫 번째 봤을 때보다 지금이 마음에 울림이 크다. 영상을 본 세대에 따라 영상이 익숙한 세대와의 아닌 세대의 받아들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공정한 세상이 되어 제비뽑기로 자신이 살 환경이 정해져도 어디든 기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흑인으로 살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가 감동적이었다.
- 환경을 전공해 공부를 할 때는 환경이 파괴되는 안타까움에 집중했지만, 이를 떠난 일상에서는 잊어버리는 때가있다. 집단적 몽환상태에서 깨어나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했다. 밀양 송전탑에 현장에 머물 때 투쟁 중인 할머니의 허름한 집에서 자게 되었다. 300년 넘은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텃밭보고 개먹이도 주는 일상을 하면서도 송전탑 투쟁을 하는 모습에서 잠시 지구에는 머물고 가지만 내 터전인 집을 지켜야 한다는 간절함이 보였다. 할머니는 집에서 역사적 깊이는 느끼는데 우리는 이런 감각, 뿌리가 제거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이 되살아나면서 인간과 자연을 소비 자원으로 보지 않는 인식의 전환이 빨리 이루어지겠다는 생각을 한다.
- 영상을 봐도 새로운 것이 없는 것 같다 어디선가 많이 본내용이다. 그렇지만 내 것이라고 체화된 것은 아니다. 지식e채널과 비교하면 감각적 요소들이 덜한 교과서적 학습 느낌이다. 각각이 이야기들이 영화한편이 될 것 같은데 짧은 시간에 한 번에 보니까 지식처럼 많이 아는 것 소용없다는 것 같다. 녹색평론을 보고 나름 오랜 세월에 여러 사회문제를 보면 삶에 그렇게 가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영상보다 여기 모인 젊은이들에게 울림이 온다.
- 세계인구의 5%인 미국이 전 세계 자원의 30%를 쓰는 현재를 봤을 때 앞으로 20%의 인구를 차지하는 중국이 얼마나 많은 자원을 쓰게 될지 걱정이다,(인도도 마찬가지) 중국이 원전을 100기까지 만든다고 하니 옆에 있는 우리나라도 걱정이다. 이렇게 봤을 때 지구에 희망이 있을까 하지만 영상을 보며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니까 희망이 있다 생각해본다.
- 지구가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는 가정했을 때 쉴 수 있는 집과 입을 옷, 먹을 음식이 있다면 83명의 삶보다 나은 삶이라는 것을 보니, 10년 전에 교육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 영상은 전반적인 모습을 통찰해주는 것이 특징이라 젊은 사람들에게 좋을 듯싶다. 영상 전반부에는 나오는 사회정의, 지속가능, 영적 충만 이 세 가지 틀이 전환에 적절한 틀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큰 전환을 이루어 낼 때 행동해야하나 의문이 들었다. 삼나무에 올라간 여성을 보고 조계종 상황과 오버랩 되어 인상적이었다. 스님모시고 6~7년 정도 종단에서 했던 일과 사회적, 불교적으로 화쟁, 대중공사, 붓다로 살자 라는 전환의 씨앗을 뿌렸는데 지금 상황은 싹도 자랄까 말까하는데 광풍이 풀어 쓸어져 나갈까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 인식의 전환이라는 것이 기억이 남는다. 많은 대중의 연말에 촛불을 들고 일어나 듯이 생명평화운동으로 모두가 일어섰으면 한다. 4차 산업혁명도 콘돌과 독수리가 함께 나는 것같이 올바른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 인간의 본성이 경쟁이 아니라 협동과 연대가 본성이라는 것에 동의가 안 되었다. 지난번 공부모임에서 습관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의지는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주체적이다 는 말이 있었다. 이런 사고는 본능에 충실한 파충뇌가 아니라 전두엽의 사고로 가능한 것이다. 본성보다는 노력에 의한 것 같다. 영상을 보면서 시각, 청각으로 또 다른 세계관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안보지만 내가 가야할 길을 가야한다 생각한다. 삼나무에서 투쟁했던 여성을 보며 김진숙님의 장면이 떠올랐다. 요즘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마주하는 게 안 되어 고민이다. 표면적인 따뜻함과 함께 진짜로 다른 사람의 짐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두 가지가 어렵다.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짐을 질 수 있어야한다.
- 지속가능 영적 충만, 사회정의를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었다. 우리 삶의 현존을 알아야한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봤다. 우리가 우주의 존재로 태어났기에 우주의 이치와 법칙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빅뱅에서부터 깨어나는 순간 우주에서 엮어지는 작용들 우리의 참모습이라는 것들을 조금씩 들어내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 있었다. 또 새로운 이야기를 구세대의 방법으로 한다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이이기를 잘 이해시키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도록 발심하는 과정에서 탐구하고 고뇌가 필요하다. 생명평화대학에서 생명평화를 가지고 만나는 벗들과 만날 때 어떤 방식이 좋을까 고민을 하면서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움직여야 한다 생각하고 있다.
- 영상과 같이 생명평화를 이야기를 커리큘럼으로 짜서 풀어내는 것이 생명평화대학의 과제다. 대학에서는 진부한 영상 말고 30분이 안 넘는 17년도 버전의 생명평화가 담긴 영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런 내용도 결국 불교공부하면 다 통한다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각자의 역할에 맞게 내용을 전달했으면 한다.
- 누구나 편히 볼 수 있게 생명평화철학이 담긴 우리말 영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ATD 영상을 본 후 참가자들 중 현대 사회를 보면 과연 인간의 도덕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제기 되었다.
- 지난번 공부모임에서 인간의 도덕성이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 영상과 연관시켜보니 의문이 있다. 통계로 설득을 하는데 엄연히 지구전체로 보면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아직도 도덕성이 높아졌다 볼 수 없다. 아추아족이 말한 콘돌과 독수리의 조화가 상징적으로 좋아 보이지만, 현실에서 보면 영성과 지속가능함을 나타내는 콘돌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콘돌의 옛 가치를 챙겨야하는데 국제 질서를 보면 가능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의 조화보다는 현실에서 약자 편에서 서야한다. 강자와 약자의 조화를 말하는 것을 보면 약간은 분노스럽다.
- 흑인들은 예전에는 노예였고 가축과 같은 재산이었다. 근데 세상이 변했다. 독수리가 콘돌의 영향을 받았나 싶다. 현실을 보면 미국은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 본질적 변화는 아니지만 인간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우리 이전 세대는 민주화 과정을 통해 억압된 세상을 바로 만드는 과정을 몸소 겪었고, 우리 젊은 세대들은 그것을 누린 세대이기에 강자와 약자의 조화가 편한 소리 같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의 길로 보인다. 상대를 적으로 두고 없애려는 운동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콘돌이 되어 독수리와 조화를 만드는 것이 내가 가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같다.
- 청년들의 이런 태도가 희망으로 느껴진다. 과거의 관념으로 현실을 재단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전환하는 태도가 희망이다
- 분노만 가지고 사회운동이 나가 갈 수 없다. 인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미 신념의 세대에는 교체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영성이 필요하다. 나와 너와 함께하는 부분이 사회운동에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적폐청산도 함께 가야한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매번 공부를 마치던 시간이 금새 돌아왔네요. 오늘은 이야기를 충분히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해보자 했습니다. 공부모임은 마무리 시간을 정하지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생명평화철학과 사고체계 머리형? 가슴형?
- 내 가족이 아프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몸이 움직인다. 그때는 당장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기에 밤을 새는 것도 고통과 강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생명평화을 알고 실천하는데 머리형, 가슴형 구분이 있을까 한다. 알면 저절로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살고 있다.
- 머리형, 가슴형 나눠진 게 아니라 출발이 가슴이여야 하지 않나 싶다. 생명평화를 머리로 생각하면 관념적인데 이것이 실제 경험으로 가는 과정을 막고 있다. 그전의 삶의 방식을 벗어나 온몸으로 끙끙 배워야 생명평화적으로 살 수 있나 싶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배우고 열리는지 생명평화대학에서 순례를 나서면서 확인하는 과정을 하려고 한다. 공부한 것들이 체화되는 과정을 확인해보고 싶다.
- 생명평화철학을 관념적으로 다루면 미래지향적으로 보인다. 구체화, 사실화 시키면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모습이다. 생명의 문제, 평화의 문제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것보다 절실한 과제이다.
- 우리는 생명평화이야기를 하지만 중도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지금 당장 중대한 과제는 생명이고 실제 먹는 것 숨 쉬는 것이 위협받는 현실이다. 아직 인식 못할 뿐 실제는 그러지 않다. 절대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이 나의 과제라는 투철한 인식과 이해가 핵심이다. 세상에서 벌어진 일들이 나의 행동과 사유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면 당장 내 가치와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을까한다. 이런 것들을 실질적, 구체적으로 확인해가는 과정이었으면 한다.
- 바른 앎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네가 처한 환경이 무엇인지 전체적인 모습을 잘 보며주며 현재 세계관 말고 생명평화라는 다른 세계관을 전달해주는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교육은 좋을 것 같다. 바른 앎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자기 삶의 직면한 현실을 이해하고 전환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가슴에서 느낀 것들을 지식과 같이 전달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렇게 삶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바른 앎을 가지고 접촉을 이루지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른 앎과 삶으로의 접촉이 필요하다.
- 생명평화가 미래지향적, 이상적, 추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마치 아이들에게 생명평화를 설명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생명을 살리는 가장 훌륭한 일을 하는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것이다.
생명평화가 무엇인지 단순하게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친구가 힘들고 괴로울 때, 기쁠 때 네가 느낄 수 있나? 있다면 자연이 그럴 때를 느낄 수 있느냐? 자연도 친구도 생명인데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기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그것을 잘 느끼면 생명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이다. 친구와 자연이 기쁘고 행복한 게 좋냐? 아프고 괴로우면 좋겠냐? 모든 사람과 자연이 기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연결된데 생명평화라고 이야기했다.
- 초등학교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문답식으로 알려줬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나?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어떠해야 될까? 훌륭한 일은 일을 해야 된다. 그럼 가장 훌륭한 일은 무슨 일을 무엇일까? 그것은 가장 생명을 살리는 일이어야 한다. 인간이 하는 일중에 최고의 일은 생명을 살리는 최고의 일은 농부다. 이렇게 아이들과는 복잡하지 않게 다들 대답할 수 있었다.
생명이 죽이거나 평화를 깨는 행위를 막는 것, 생명을 해치는 일을 막을 때 싸울 수도 있어야하나? 라는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 생명을 지키는 일, 반 생명을 막는 일을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문제를 풀다보면 약자 편에 서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는다.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것은 편들어 싸우는 약자에게 도움이 된다. 문제가 안 풀릴 경우를 보면 편 가르기를 했을 때다. 강정, 대추리, 밀양, 쌍용차 문제를 보라 편 가르기로 안 풀렸다. 편을 드는 것보다 투철하게 문제를 다루되 평화적이어야 한다.
- 싸우는 약자를 보면 싸우려고 시작하지 않았다. 막판까지 가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평화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데 평화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가 안 간다.
- 분노, 증오, 투쟁의 관점으로 문제를 다루지 않고 연민심, 평화적으로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문제를 투철히 안 다루지 않는다.
- 분명히 정의로운 마음이 에너지가 되어 투쟁이 시작된 것은 맞다. 예를 들면 밀양 송전탑 주민들은 순수했던 마음에 송전탑에 대한 신념이 생겨나고 이 마음에 보태진 것들 많다. 그것들은 문제를 푸는 쪽이 아니고 진영을 고착시키면서 다들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불의에 저항하는 마음이 잘못이 아니라, 진영을 굳히고 억울함을 쌓아 분노를 만들어 빠질 수도 없고 힘들게 만든 것이다. 어떠하면 고통을 줄이는데 효과적인지 생각해야한다. 단적으로만 누가 잘 못되었다 볼 수 없다.
- 문제를 푼다는 말이 껄끄러울 때가 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게 있고 숙고해야할 때가 있는데 항상 배우고 살펴야하는데 풀려고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 사회적 집단적으로 생긴 문제는 풀어야 하고 밖에서 접근해서 풀어야한다. 싸워야 한다는 접근보다는 그 문제 자체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들의 고통이 더 커져간다. 스스로가 너무 힘든 상태로 몰린다.
- 쌍용 자동차에서도 해결해보자는 뜻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자리를 가보니 힘들게 싸워 20여명이 죽었고 장기화 될수록 투쟁동력도 잃어 가는데 투쟁을 계속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 수 있는 전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종교인들이 모여 사회통합을 논리로 쌍용자동차 문제를 풀려고 노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정적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지만 기업쪽에서 해고 노동자도 복직의 대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는 여지가 열리고 기업노조와 해고노조가 만나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면서 문제가 풀리는 쪽으로 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사례가 있는데 당연 문제를 푸는 방향이 좋지 않은가?
- 당사자들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고통을 들어 내줘야 한다. 문제를 스스로가 풀어야한다. 서로의 고통을 잘 살필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중재자가 들어내고 풀어내는 것은 당사자가 해야 한다.
- 문제를 다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 평화적인 방법의 기준이 폭력이 유무가 아니라, 내가 싸워야할 대상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간디라는 인물을 보면 영국을 적을 보지 않고 안타까운 존재로, 인도를 지배한 역량이 안 되는 대상으로 봤다. 악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 논지에서 할 수 이는 모든 투쟁을 했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비밀이 없었다.
간디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을 할까?
- 내 한 몸이 가장 약자와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러면 사회적 정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이 편을 가르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 문제가 생기면 저항과 투쟁은 당연한데. 꼭 당사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계가 참여를 잘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시민사회는 약자 편에서 정의 편에서 투쟁을 했다.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부작용이나 후유증을 줄이면서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다.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이 우리사회 전반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라는 문제제기이다. 한국사회를 바람직한 공동체로 가도록 하는 것이다.
- 그런 역할을 하셔야 할 분이 있고 함께 투쟁을 해야 할 사람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악화시켰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생명평화적, 간디같은 투쟁이 분노와 편 가르기로 싸우는 것보다 부작용과 후유증이 덜하다. 하지만 분노가 있어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생명평화적인 것과 토론이 필요하다.
- 생명평화적, 비폭력적이라고 해서 문제에 투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방식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 내 존엄이 침해되어 저항하는 노력이 문제가 아니고, 되찾는 행위에서 진영과 이념의 덧이 씌어지면서 아름다운 마음들이 어느 한편의 이데올로기와 싸움의 소재거리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처음에는 인간의 본연의 거룩한 마음이 움직이고, 그런 마음으로 투쟁해온 것인데 사회적으로 왜곡되고 그들이 힘들어하는 과정을 보면 저항하는 과정에서 편 가르고 덧 씌어지고 개입이 되면서 더 힘들게 만들어진다. 이것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격려하고 돕는 일은 계속해야한다. 나중에 고통은 당사자에게 남는다. 이 문제를 성숙하게 다루어 보자는 방식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것에 집중하지 않고 문제를 다루면 해결을 안 되고 고통은 늘어난다. 우리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패턴이다.
마무리 나누기
- 항상 정확히 보고 판단해서 행동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몇 번의 공부모임을 해보니 나야 말로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영상에서 크나큰 현실의 위기가 있기 때문에 높은 도덕적 행동을 하기 좋은 기회라는 독려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자칫하면 높은 도덕성에 의한 자만심과 함께 하지v못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자의식을 키우는 방식 같다.
-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내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 지키고 싶은 순고한 마음은 꺾이면 안 되는 거룩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런 투쟁과정에서 송전탑을 밀어붙이는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차차 거대한 진영 싸움이 되는 과정으로는 문제가 풀리기는 쉽지 않다. 서로 죽이는 과정으로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평화롭게 자기 삶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함께 가자. 부처님은 진흙탕을 마른 풀로 덮으라는 말을 왜 하셨는지 알아야한다.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 평화는 필수고 상대도 평화롭게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한다.
- 국가 폭력이 덜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나 싶었다. 그리고 약자의 싸움의 방식도 생각을 해봐야하며 분노의 싸움은 안 된다. 지난번 순례를 하면서 세 가지를 잊지 않고 지키려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갈등을 피하지 말자. 두 번째는 싸울 때는 싸우려고 애를 쓰자. 세 번째 싸우는 중에 기도를 잊지 말자.
- 생명평화는 큰 갈등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일로도 상처받는 일도 있기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공간에서 훈련을 받게 되면 큰 파도가 와도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차츰 연습해 나가다보면 세상에 대한 선한 마음이 확장되어 나는 무엇으로 기여할까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 바람직한 내용이어도 편을 들어 형식을 갖추느라 힘이 들 때가 있다. 바람직한 길을 찾아보는 노력에 두려움이 없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을 물을 수 없다. 강자약자, 진보보수, 보존개발 등 상충되는 현장에서 합리적으로 진실을 다뤄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설명이나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니 불편함, 의심이 있지만 실제 이야기를 하면 바람직하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
- 공부모임을 통해 생명평화철학을 스스로 구체화 시키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각자의 일상에서 기준 삼아 살 것인가가 문제다. 삶에서 구체적으로 생명평화적인 길을 명확히 제시를 해주는 것이 생명평화대학의 숙제가 아닌가 싶다.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보여줘야 한다. 10면 10 똑같이 할 수 있게 구체적이어야 한다.
- 지리산에 와서 살면서 땅과 연결됨을 경험하면서 나도 지구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삶이 생명평화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마을일을 손잡고 하는 모습에서 가치를 실현하는 모습이구나! 했다.
* 9월 모임 안내
- 일시 : 9월 28일 오후 7시
- 장소 : 생명평화대학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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