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장의 활불
고검남은 몇 번 시험해 보았으나 제대로 설 수 없자 울음을 터뜨렸 다. [아버지, 어쩔 도리가 없군요!] 고명원은 실망했으나 얼굴에 여전히 미소를 띄웠다. [상관 없다. 우리가 곤륜에 도착하면 너는 반드시 걸을 수 있게 될 것 이다.] 고검남은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그러나 저는...] 고명원은 무거운 어조로 그 말을 잘랐다. [얘야, 실망하지 말고 초조해하지도 말아라. 어둠이 다하면 동이 크기 마련이다. 넌 걸을 수 있고, 다른 사람보다 빨리 걸을 수 있을 것이 다.] 고검남은 울음을 멈추고 자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굳센 음성에 마음이 움직이는 듯했다. [네, 저는 저 자신에 대해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했어요!] 고명원은 웃었다. [그래야 착한 아들이지!] 그는 아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우울한 표정을 보고 속으로 결심했다. (아! 기필코 이 애의 고통을 없애고 말겠다.) 고검남을 광주리 안에 넣고 입을 열었다. [얘야, 나는 네가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현천도장께서는 조금 전에 너를 위해서 한평생 갈고 닦은 공력을 모조리 너의 몸안으 로 주입했다. 그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고통은 사파의 산공보다 심한 것이다. 훗날 네가 걷게 된다면 결코 현천도장의 커다란 은혜를 잊어 서는 아니 된다. 그 분은 너를 위해서 목숨을 희생한 것과 다름 없 다.] 고검남을 위해 단약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면 현천도장은 암습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현천도장이 단로(丹爐)가 다 되어 방심하지 않았 다면 현청이 노릴 기회를 주지 않았으리라. 따지고 보면 고검남은 무 당 참극의 빌미가 된 셈이었다. 고검남은 참을 수 없어 눈물을 흘렸다. 고명원은 자기 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우리들은 현천도장의 법체를 잘 모시도록 하자. 그래야 훗날 네 가 다시 무당산으로 오게 되었을 적에 다시 그 분의 유용(遺容)을 우 러러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매우 공경하게 고명원은 현천도장을 향해 깊이 절을 했다. [도형의 도움을 불초는 한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훗날 다시 무당산 으로 오르게 되었을 적에 다시 인사를 드리도록 하지요.] 그 말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참지 못하고 두 줄기 영웅의 눈물을 흘 리고 말았다. 소맷자락으로 가볍게 눈물을 훔친 그는 현천도장의 법체 를 석관 안에 넣었다. 관뚜껑을 봉하고 다시 절을 한 후에 입을 열었다. [얘야, 이제 곤륜으로 가자. 현청이 장문의 자리를 쟁탈하고 사형을 시해한 일을 무림 육대 문파들에게 알리고, 곤륜 장문인 옥진자를 만 나 구전속명금단을 얻어야지.] 그는 품 속에 우피지를 갈무리했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그는 대광주리를 들고 그 비밀 통로로 걸어 나 갔다. 어느덧 이십 일이 지났다. 그 동안 고명원은 열 필의 말을 바꾸어 타 면서 곤륜산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길을 가는 동안 그는 적지 않은 칼과 검을 지닌 무림인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고명원이 혈수천마인 것을 알고 고개를 숙이고 한 옆으로 비켜섰다. 어느 날 황혼 무렵, 어느 조그만 고을에 이르렀다. 고명원은 그 석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얘야, 이틀 후면 곤륜산에 도달할 수 있다. 너는 기쁘냐?] 고검남은 대답했다. [저는 약간 긴장되네요!] 고명원은 웃으며 말했다. [긴장될 게 있느냐? 우리가 현천도장의 신표를 가지고 간다면 옥진자 가 구전속명금단을 내놓지 않을 리 있겠느냐?] [그게 아니고요! 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고명원은 웃었다. [너는 그 무림인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나타났다 하기 때문에 긴장되 는 모양이구나. 하! 하! 하! 안심해라. 그 녀석들이 떼를 지어 덤빈다 해도 이 아비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고명원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천하에 두 세 사람 외에 나는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 허! 그 누가 감히 호랑이의 쓸개를 먹고 우리들에게 덤벼들겠느냐. 이 아비는 그런 자들이 있다면 단번에 혈수인을 맛보여 주겠다.] 그는 천천히 말을 몰아 그 조그만 마을에 들어섰다. 길 양쪽으로 나지막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말을 타니 지붕을 굽 어볼 수가 있었다. 말을 타고 고을에 나 있는 길을 다 지나가도록 객잔같은 것을 볼 수 없었다. 그가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등뒤에서 딱딱한 음성이 들 려왔다. [실례지만 시주는 객잔을 찾고 계신가요?] 고명원은 속으로 섬뜩했다.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 등뒤에 이르도록 모르고 있었다니? 경신 법의 고강함은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그는 온몸에 진기를 끌어 올렸다. 고삐를 끌어당겨 천천히 몸을 돌려보니 세 명의 붉은 가사를 걸친 라마(喇 )들이 서 있었다. 그 세 명의 라마들은 살결이 거무튀튀하고 체구가 우람하고 사십여 세쯤 되어 보였다. 가운데 선 사람은 비쩍 마 르고 단정해 보였고, 양쪽에 두 라마는 꽤 험상궂은 모습이었다. 고명원은 세 명의 라마들을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음! 세 분 대사님들은 객잔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중간의 비쩍 마른 라마가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시주는 고씨가 아닌가요?] 서장의 음조로 생경하게 말하는데 꽤나 귀에 거슬렸다. [대사는 누구시오?] 라마는 대답했다. [소승은 사와다(沙瓦多)라고 하며, 이 두 분은 나의 사제 장파격(章巴 格)과 노엄목(努嚴木)이라고 하오.]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세 분은 불초를 어인 일로 찾으시오?] 사와다 라마는 입을 열었다. [시주가 바로 중원에서 유명한 혈수천마 고명원 고시주가 맞지요?]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초가 바로 고명원이오.] 사와다는 대광주리 안에서 고개를 내민 고검남을 바라보고 입을 열 었다. [저 분은 아드님이오?]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세 분은 무슨 볼일이 있으시오?] 사와다는 대답했다. [우리들은 단주활불(丹珠活佛)의 명을 받아 고시주를 파격합도행궁(巴 格哈都行宮)으로 모시고 가서 하룻밤을 대접해 드리려고 왔소.] 고명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단주활불은 서장에서 으뜸가는 고수라는데 그가 웬일로 나를 찾는지 모르겠구나.)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세 분 대사께서는 단주활불에게 전해 주시오. 불초는 내일 아침 일찍 곤륜산에 가야 하기 때문에 그의 호의를 거절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 이오.] 사와다는 빙그레 웃었다. [시주께서는 곤륜산으로 달려가려 하시는데, 무당파 장문인이 무림첩 을 돌려 각대 문파의 장문인들에게 빨리 곤륜산으로 달려가 고시주가 전 장문을 죽인 죄를 따지라고 한 사실을 모르시나 보구려.] 고명원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오?] 사와다는 대답했다. [물론 사실이오. 우리들이 어찌 거짓말을 하겠소.] 고명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악독하기 이를 데 없는 현청이로구나. 다시 만나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 그는 안색을 바꾸지 않고 물었다. [대사들은 어떻게 해서 그 일을 알았소?] 사와다는 웃었다. [우리들은 이 일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고시주가 현천도장으로부터 천영상인의 장진도를 얻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요. 그 장진도를 위해 서 중원 각처의 무림고수 중 태반이 고시주를 쫓아서 곤륜까지 왔소.] 고명원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그는 어째서 그토록 많은 무 림인들을 볼 수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목적은 그가 지니고 있는 장진도였던 것이다. 그는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소?] 사와다는 대답했다. [우리 단주활불은 총명하시고 중원 각처에 이목(耳目)을 박아 두고 있 소. 고시주가 무림을 진동시킨 큰 일을 그 분이 모르실 수 있겠소?] 고명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어째서 단주활불이 각처에 첩자를 풀어놓았다는 소문을 듣지 못 했을까...) 그는 잠시 생각해보고 슬쩍 물었다. [그렇다면 단주활불이 노부를 찾는 의도는 어디 있소?] 사와다는 대답했다. [우리가 이곳에 올 적에 단주활불의 명을 받았지요. 시주를 만나면 반 드시 시주를 행궁으로 모시고 하룻밤 재우고 보내라고 했소. 다른 뜻 은 없소.] 고명원은 그를 바라보았다. [돌아가서 단주활불에게 전하시오. 노부에게 중요한 일이 있어 반드시 곤륜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사와다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시주는 과연 단주활불의 말씀대로 행궁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군 요!] 사와다는 품속에서 봉인한 양피 봉투를 내밀었다. [시주께서 소승을 따라 행궁으로 가지 않는다면 이 서찰을 보이라고 하시더군요.] 고명원은 세 라마들이 무슨 수작을 벌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 다. 그는 그 양피로 된 봉투를 받았다. 뜯어 보니 그 위에는 붉은 글씨로 몇 줄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 갑추말(甲秋末)에 대협께서 탑이목제( 爾木齊)를 지나게되었을 때,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서장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십 년 후의 단주활불이오. 마음속으로 대협의 은덕을 고맙게 여긴 나머지 단주활불은 염탐꾼들을 보내 대협의 행적을 찾던 중, 대 협이 공자의 질환으로 바쁘게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소. 그리 하여 서장의 모든 의원들을 불러 대협과 근심을 나누고자 합니다. 근 자에 중원 무림에서 들려 오는 소문에 의하면 대협이 무당의 장문인 을 죽이고 장진보도를 빼앗아 곤륜산으로 가신다고 하더이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우리 절의 삼대호법을 보내 대협을 영접하여 행궁으로 모시도록 했소. 첫째는 잠시 무림의 이목을 피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공자의 옛 질환을 치료하자는 것이오. 아무쪼록 대협께서 파격합도(巴 格哈都)로 오신다면 이 단주활불의 그리워하는 정이 조금이라도 위로 받게 되겠습니다.> 고명원은 이 서찰을 보고 속으로 이십 년 전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되어서 그런지 자질구레한 옛일을 떠올릴 수 없 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단주활불이 천영상인의 무공비급이 탐이나서 계략으로 나를 유인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영상인은 두 차례나 서장으로 들어가 서장의 천룡(天龍), 보수(寶樹) 두 파의 종주들을 일제히 격패시켰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 단주활불 은...) 번개같이 생각을 굴리며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세 분 대사께서는 단주활불에게 곤륜산의 일이 끝나면 틀림없이 행 궁으로 달려가 그를 만나 보겠다고 전하시오!] 사와다는 빙그레 웃고 옆에 있는 두 라마에게 서장어로 뭐라고 했다. 두 라마는 덩달아 웃었다. 고명원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불초의 말이 우습소?] [아니오!] 사와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들은 고시주를 비웃는 것이 아니오. 우리 단주활불의 추측이 정 확한 것을 보고 웃은 것이오. 단주활불은 시주가 서찰을 본 후에 마음 속으로 틀림없이 우리 활불에게 의심을 품고 거절할 것이라고 말씀하 셨소.] 고명원은 웃었다. [당신네 단주활불은 신선이라도 되는 모양이군. 내가 가지 않겠다는데 그에게 무슨 방법이라도 있다는 것이오?] 사와다는 대답했다. [세번째 방법은 우리들이 시주를 행궁으로 잡아가는 것이오.] 고명원은 그 말을 듣자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는 노부가 당신들에게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오?] 사와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단주활불은 패배할 사람들은 틀림없이 우리들이라고 했소.] 고명원은 어리둥절해서 웃었다. [허허, 당신네들은 패할 것을 알면서 어째 나와 싸우려 하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말이오?] 사와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단주활불께서는 우리들이 오십 초를 겨룬 후에야 시주의 손에 패배 하리라 말씀하시었소. 오십 초를 겨룬 후에 우리 단주활불께서 이미 도착하게 될 것이오.] 고명원은 껄껄 웃었다. [당신들이 사용하는 것은 지연책에 지나지 않는군. 하! 하! 하! 노부는 당신들과 손을 쓰지 않고 당신들의 단주활불을 기다리겠소. 도대체 그 가 누구인지 만나 보아야지.] 그 말이 끝나자 고검남이 대광주리 속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들은 아버지가 그렇게 나오기를 바라는 거예요!] 고명원은 어리둥절해졌다. [검남, 어떻게 하는 말이냐?] 고검남은 설명했다. [그들의 목적은 아버지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스스로 이곳에 남아 단 주활불을 기다리게 하는데 있어요. 아버님이 만약 믿으실 수 없다면 저 사와다 대사에게 물어 보세요. 제 말이 틀렸는지...] 사와다는 얼굴에 놀란 빛을 띄웠다. [정말 틀림 없소. 우리 단주활불께서는 제가 거기까지 말하면 틀림없 이 시주가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남을 거라고 하셨지요.] 고명원은 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떠나게 된다면 단주활불의 계산은 빗나가게 되 는 것이오?] 사와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시주의 성격으로 볼 때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고명원은 멍청해지고 말았다. 자기의 성격과 행위를 상대방이 모두 알아맞힌 셈이었고 전혀 상대방의 계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나를 위해 거처를 마련해 두었겠구려?] 사와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활불께서는 천룡사에서 장로 회의가 있기 때문에 잠시 떠날 수가 없 지만, 회의가 끝나면 직접 시주를 찾아오겠다고 하셨소. 그래서 우리 는 이미 방을 준비해 놓고 있소.] 고명원은 말했다. [좋소. 나는 오늘 밤 이곳에서 묵고 내일 떠나도록 하겠소. 도대체 그 가 어떤 모습인지 두고 보겠소.] 고검남도한마디 거들었다. [저 역시 단주활불을 만나고 싶어요.] 그는 고명원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아버지, 조심하세요. 어쩌면 그는 함정을 파 놓고 아버님이 그 안으 로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라요.] 고명원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단주활불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고수라는 소문을 들었다. 나는 몸소 그를 만나 그의 무공을 시험해 볼 참이다.] 사와다는 그 말을 받았다. [우리들은 오래 전부터 혈수천마라는 이름을 들었소. 그래서 밀종의 대수인(大手印)으로 시주에게가르침 받고 싶은데 어떠실지...] 고명원은 말에서 내려서며 낭랑히 웃었다. [이것은 단주활불이 헤아렸던 바는 아닐 테지...] 그는 두 눈에서 황황히 안광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자, 어느 분이 시험해 보겠소?] 사와다는 합장하고 절을 했다. [소승이 먼저 실례하겠소.]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합장했던 자세 그대로 일장을 급히 후려쳤다. 순간 장풍은 마치 칼날처럼 몰려들었는데 붉은 장포자락이 나부끼고 소맷자락이 펄럭이는 가운데 그의 그 앙상한 손과 팔이 드러났다. 고명원은 눈길을 번쩍이며 바라보았다. 사와다는 그 손바닥이 갑자기 자색으로 변하면서 마치 바람이라도 불어 넣은 것처럼 삽시간에 몇 배나 더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나직이 얍! 하는 소리를 내며 역시 일장으로 상대방의 대수인을 맞받아 쳤다.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래와 돌들이 튀어 오르고 기경이 소용돌 이쳤다. 사와다는 안색이 변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뒤뚱거리 며 잇달아 세 걸음 물러섰다. 고명원은 왼손으로 대광주리를 받쳐 들고 우뚝 서 있었다. 그의 핏빛 을 띈 손가락은 천천히 원래의 색을 되찾더니 붉은 소맷자락 속으로 움츠러들었다. 사와다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시주의 신공은 정말 놀랍구려.] 고명원은 빙그레 웃었다. [나의 이까짓 재간으로 어떻게 단주활불의 적수가 되겠소.] 겸손의 말이었다. 그런데 사와다는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입니다. 시주는 단주활불보다 이푼 정도 손색이 있습니다.] 고명원은 웃었다. [소문에 의하면 고해이란인(苦海離亂人)이 서장의 으뜸가는 고수라고 하지만, 나는 한번도 고해이란인을 만난 적이 없으며,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른다오. 그리고 단주활불인가 하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십 년 전에 내가 그를 도와주었다고 하는데, 설마하니 이십 년 후에 그의 공력이 나보다 뛰어나게 되었다는 말이오?] 천하의 무공은 원래 세 부류로 나뉘어지고 있었다. 첫째는 서장의 일 지(一支)인데, 그것은 다시 밀종(密宗)과 보수, 천룡 삼파로 나뉘어졌 다. 둘째는 중원에 본래부터 있는 무공이었다. 소림파의 무공은 달마(達摩)가 동쪽으로 온 후에 창립된 것으로서 서 장의 무공이지 중원의 무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셋째는 마도(魔道)를 융합하여 천하 사공(邪功)의 우두머리가 된 서방 마교였다. 고명원이 바로 서방 마교 출신이었다. 이 일파는 내공을 증진시키는데 있어서 순서대로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고 편문(偏門)으로 공력을 증가시켰다. 고명원은 내공 수련에서 이십 년의 차이가 나는데도 서장 일파의 제 자가 자기를 뛰어넘는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와다는 고명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입을 열었다. [시주는 소승을 따라 오시오.] 고명원은 더 말하지 않고 사와다와 다른 두 명의 라마들을 따라 한 여염집으로 걸어갔다. 서장의 주민들은 라마를 극도로 존경했다. 그들은 세 홍의의 라마를 보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사와다는 얼굴에 엄숙한 빛을 띄우고 서장 말로 몇 마디 중얼거리고 손을 흔들어 그 서장 사람들을 물리쳤다. 그는 한 칸의 방 앞에 이르더니 문을 밀어 젖혔다. [시주, 들어오시지요!] 그는 말고삐를 창틀에 매었다. 고명원은 대광주리를 받쳐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는 꽃이 수놓아진 담요가 깔려 있었다. 담요 위에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소쿠리와 한 대야의 물이 있었다. 소 쿠리 안에는 소와 양고기를 섞은 쌀밥이 있었는데 한창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고검남은 냄새를 맡아보고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음식이에요? 냄새가 구수하군요!] 사와다는 설명했다. [우리들은 고시주께서 연일 길을 달려오시느라고 허기졌으리라 생각 하고 맛좋은 음식을 마련해 두었지요.] 고명원은 빙그레 웃고 담요 위에 앉았다. 한 명의 늙은이가 조그만 뚝배기와 잔 두개를 가져왔다. 그는 잔에 차를 따르더니 다시 말없이 물러갔다. 고명원은 물었다. [이게 무슨 차죠? 어째서 새까맣죠?] 사와다는 설명했다. [이것은 우리 궁에서 가져온 것으로 천축(天竺)의 아살모(阿薩姆) 홍차 (紅茶)인데 밥을 먹은 후에 마시면 좋지요!] 고명원 부자는 사와다의 지도하에 손으로 밥을 떠서 먹었다. 그들은 밥을 먹고 손을 씻고 난 후에 찻잔을 들었다. 고검남은 웃으며 말했다. [이건 중원에서 밥을 먹는 것보다 더 깨끗하네요. 식사 전과 식사 후 에 손을 씻으니 말이에요.] 말이 끝나자 그는 한 모금의 홍차를 마셨다. 그러나 입안이 쓰고 텁 텁해서 재빨리 뱉어내었다. 그가 차를 한 모금 토해 내었을 때에 노엄 목이라는 라마가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사와다에게 몇 마디 서장말을 지껄였다. 사와다는 말했다. [단주활불께서 오셨소.] 말이 끝나자 그는 총총히 걸어 나갔다. 시끌벅적한 주악소리가 들려왔다. 고명원은 문 앞으로 가서 바라보았다. 스무 명이나 되는 라마들이 한 채의 가마를 메고 문 입구에 이르러 있었다. 가마를 탄 사람은 네모난 얼굴에 커다란 귀를 지니고 있었고 살결은 눈처럼 희었는데 몸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있었으나 발에는 아무 것 도 신지 않은 중년의 라마였다. 비스듬히 가마 위에 누워서 거리에 꿇 어 앉아 있는 서장의 백성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고명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대단한 위세군. 이 사람이 바로 단주활불인가? 나이가 젊구나.) 단주활불은 고명원을 발견하고 재빨리 가마에서 내려서며 한나라 말 로 입을 열었다. [고대협, 이십 년 동안 뵈옵지 못했는데 모습은 여전하시군요. 정말 소승은 놀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고명원은 그를 바라보았다. [노부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오. 단주활불, 당신은...] 단주활불은 미소를 띄웠다. [설마하니 고대협은 그 조그만 절간 옆에서 구해준 나이 어린 거지를 잊으셨소?] 고명원의 뇌리에 문득 초라하게 생겼던 나이 어린 거지의 얼굴이 떠 올랐고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당신이 바로 그 때 그...] 단주활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십 년 전에 대협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소승은 오늘날 대협과 만나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고명원은 의아하여 물었다. [당신은 신강 사람이 아니었소? 어떻게 천룡사로 가서 활불이 되었단 말이오?] 단주활불은 대답했다. [저는 제 오대 활불이 다시 이 세상에 환생한 것이고, 십팔 년 전에야 천룡사를 찾아간 것이지요.] 고명원은 껄껄 웃었다. [하! 하! 하! 당신의 운은 정말 좋소.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모셔져 활 불이 되었단 말이오.] 단주활불은 세상에 환생한 일에 대해 더 설명하지 않고 고명원의 손 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담요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입을 열었다. [이 분이 바로 자제분인가요?] 고명원은 대답했다. [그러하오!] 단주활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영특하고 준수하게 생긴 아드님이로군요.] 고명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빙천설지에서 분만했기 때문에 두 다리가 모두 마비되고 말았소.] 단주활불은 위로하듯 말했다. [대협께서는 자제분의 다리 병으로 무척 괴로워 하셨겠소. 천하의 부 모 마음은 모두 다 그렇지요. 어떤 희생을 치룰지라도 자기 자식이 훌 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요.] 고명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 아래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소? 자식이 훌륭하게 되고 행복 하게 되기를 한결같이 바라는 법이지요... 아...] 단주활불은 고명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희망은 희망이고 사실은 사실이지요. 부모들이 자녀에게 하는 일은 쓸모 없을 때가 있답니다. 예를 들면 자제분은 장래의 성취가 틀 림없이 대협을 능가하게 될 것이고, 결코 대협이 안배한 것처럼 되지 는 않을 것이오.]
카페--좋은벗약초나라
|
첫댓글 감사 합니다^^
즐겁게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잘보구 갑니다.
즐감합니다...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잘 보고 갑니다~~~~~~~~~~~~^^
즐겁게 잘보고 갑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즐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즐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리며 즐
즐감했네요!
즐독 감사,//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점점 재밌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요.
ㅈㄷ
ㅈ8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요!!!
즐겁게 잘보고 갑니다.방랑자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했습니다 ^-^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즐감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
즐감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