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음일양지위도
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장자<知北遊篇(지북유편)>에 나오는 동곽자와 장자의 대화를 살펴보자.
동곽자 : “이른바 도라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장자 : “없는 곳이 없단다.”
동곽자 :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장자 :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있지.”
동곽자 : “어찌 그런 곳에 있나요?
장자 : “쓸모없는 들풀 같은 데 있어.
동곽자 : “어찌 그런 곳에 있나요?”
장자 : “벽돌에 있어.”
동곽자 : “어찌 자꾸 이상한 말씀만 하시는지요?”
장자 : “똥과 오줌 같은 데 있다고!”
동곽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장자 : “너의 질문은 근본적으로 본질에 이르지 못하였다.”
시장을 관장하는 획이 시장의 우두머리에게 돼지의 살찐 정도를 알기 위해 돼지를 밟는 것에 대한 물음에서 돼지가 살찌는 것은 한결같지 않은데 아래로 발이 내려갈 수록 돼지의 살찐 정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 : “당신은 반드시 그렇다고 하지 마시오.”
“사물을 멀리하는 것은 없소.”
“지극한도는 이와 같은 것이오.......”
만물을 만물되게 하고 만물과의 어떠한 관계도 없다. 그러나 만물은 한계를 가지는데 그것이 소위 만물의 한계인 것이다. 무한계 속의 한계, 한계 속의 무한계인 것이다. 꽉 참과 텅 빔, 병노 등의 현상 그런 것들은 진정한 부가 아니고 진정한 病老(병노)가 아니다. 또 진정한 본말이 아니고 진정한 생사도 아닌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그렇다고 하지 마시오. 사물을 멀리하는 것은 없소.⌟라는 말은 도라는 것은 반드시 어떤 한정된 곳에 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 두루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사물에서 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이지 도가 구체적인 사물에 한정된다는 것은 아니다.
동양은 서양과 달리 전체와 개체에 대한 논쟁이 없다. 그 이유는 전체와 개체가 하나의 사상 속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 맹자, 노자, 장자는 모두 도의 전체성이라는 측면에서 ⌜一(일)⌟이라는 측면을 강조하지 개별성측면의 ⌜多(다)⌟라는 측면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공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고 하였고, 맹자는 “도는 하나일 뿐이다.”고 하였고, 노자는 “성인은 하나의 도만을 굳게 지켜서 천하의 모범이 된다.”고 하였고, 장자는 “서로 해괴망측하게 상대되어 있으나 도의 입장으로 보면 하나로 통한다.”고 하였다.
⌜도가 하나⌟라는 뜻은 첫째, 전체라는 입자에서 우주만물을 통괄하는 것은 一(일)이다. 一(일)은 절대적인 것으로 상대가 없다. 주역은 ⚊이라는 부호로 표시하는데 그것을 태극이라 명한다. 사실 태극과 도는 같은 것이다. 다만 관점이 다른 것이다. 즉 太極(태극)은 근원이라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으로 生生變化(생생변화)의 근본이고, 道(도)는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으로 생생변화의 법칙이다. 둘째, 우주 만물은 전체로서의 일에서 나왔지만 어떤 사물도 개체로서 완벽한 태극이다.
도의 流行(유행)이라는 것은 도가 본체에서 나타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용에서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도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구체적 실체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제한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늘 존재하고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있어 자연을 운행하는가? 사물과 도의 합일이라는 것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물의 밖에서 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변동자체가 바로 도라는 의미이다.
계사전에서 말하는 ⌜일음일양지위도⌟라는 구절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도의 유행은 圓道(원도)라는 것인데 성인들은 우주의 질서는 한 곳에 치우치지 않아서 원만한 도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보았다. 泰(태)괘 구삼 효사에 ⌜평평하기만 하고 기울어지지 않는 것은 없고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였고, <계사전>에는 ⌜두루 여섯 곳의 빈 곳을 유행한다.⌟라고 하여 도는 어느 한 곳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두루 미친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이것이 도의 원도이다.
둘째는 도는 만물변화의 생성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가 일자에서 내려와 음과 양의 분리되어 양은 시작하는 움직임으로 먼저 생기고, 음은 이를 이어받아 계승하는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계사전에서 말하는 ⌜일음일양지위도⌟의 뜻은 이어지는 다음 구절인 ⌜계지자선야(繼之者善也) 성지자성야(成之者性也)⌟가 핵심 포인트이다. 이를 이어받는 것이 선이라는 “계지자선”이란 말은 변화생성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고, 이를 이루는 것이 성이라는 “성지자성”이란 말은 음양이 만물 속으로 들어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