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짚어보기
2020년 시·글모음 출간 경향
이수용 목록위원회 시·글모음팀
시·글모음팀은 2019년 12월~2020년 12월까지 입고된 총 72종 중 65종(시 48종, 글모음 17종)을 평가하였다. 목록에 4종(시 3종, 글모음 1종), 도서관 목록에 20종(시 14종, 글모음 6종)을 추천하였다.
시·글모음팀에서 평가한 65종 중 24권이 목록과 도서관 목록에 추천되어 37%의 추천 비율을 보였다.
저학년 대상(8~9세) 시·글모음은 전체 65권 중 23권으로 35%를 차지하고 있지만, 도서관 이상 추천 비율로는 8.7%로 가장 낮은 추천 비율을 보여준다. 저학년 대상 시집들 중 추천하지 못한 책들은 아이들의 마음으로 가지 못하고 가르치려는 시들, 직업이나 곤충, 안전에 관한 기획 시들로 문학성을 담지 못한 채 출판되었다.
초판본을 다시 출간 했으나 시대를 아우르지 못하고 현재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없는 소재가 많아서 재출간의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들도 있었다. 16세 이상 책들은 3권을 평가해서 3권 모두 도서관 목록 이상으로 추천하였다.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읽을 만한 책들이, 현실을 비판하고 절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겨나갈 힘이 되어 주는 것 같아 뿌듯했다.
이준식 시인의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는 초등 1~2학년 아이들의 학교 생활 이야기가 넘치지 않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교사이기도 한 시인의 시는 시종일관 아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살아 있다.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은 저시력 장애를 가진 김학중 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장애가 있지만 친구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가 위트를 잃지 않는 시로 표현되어 깊은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허유미 시인의 《우리 어멍은 해녀》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소녀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집이다, 가슴 아픈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어, 청소년들이 타인의 아픈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권윤덕 작가의 《나의 작은 화판 -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는 작가의 그림책 10권의 작업 일기를 볼 수 있는 글모음이다. 작품을 하나 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과정을 담은 모습은 청소년이 읽어도 좋은 책이라 16세 이상으로 목록에 추천했다.
자기만의 색깔로 빛나는 도서관 추천 책들
■8~9세부터 : 쓰쓰이 도모미의 《멋지다!》는 스무 명 아이, 한 명 한 명을 개성 있게 잘 그려 놓은 글모음집이다.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묘사가 선명하고, 감정선을 세밀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0~11세부터 : 권정생 선생님이 1972년에 손수 묶어서 만든 첫 동시 작품집을 《산비둘기》로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림책 작가 강경수의 첫 동시집 《다이빙의 왕》은 걱정 많고 소심한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시들이 돋보였고, 제목과 그림과 글이 각각 1/3씩의 비중을 차지하는 독특한 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방주현의 《내가 왔다》는 간결하고 유머와 위트가 있어 소리 내어 읽어 주면 더 맛이 나는 시집이고, 김용택 시인의 《은하수를 건넜다》는 오래 시를 써온 작가답게 힘을 뺀 담백한 시들이 담겨 있어 시 하나로 세대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이안 시인의 《오리 돌멩이 오리》에서는 시로 그림을 그리거나 오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ㅅ’이라고 표현하는 등 새로운 감각으로 표현한 시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임수현의 《외톨이 왕》에는 끊임없이 상상하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시 전체에 잔잔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한 편 한 편 그림이 그려지는 것도 장점이다.
■12~13세부터 : 《고양이는 언제나 고양이였다》는 터키 작가인 얄바츄 우랄이 글을 쓰고, 페리둔 오랄이 그림을 그렸다. 고양이 명화집이라 해도 될 만큼 고양이 그림과 고양이가 주인공인 시들이 아름답다. 책 속에서 고양이는 반려동물 개념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생명체로 느껴진다. 문신 시인의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는 무심코 넘길 수 있는 것들을 잡아내는 시인만의 눈을 발견할 수 있는 시집이다.
■13세부터 : 김애란 시인의 《보란 듯이 걸었다》는 평범한 청소년도 등장하지만 특히 소외된 청소년 이야기가 꽉꽉 쟁여져 있다. 청소년들의 입이 되어 그들이 하지 못한 이야기를 대신 해 주려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에 뭉클하면서도 가슴 묵직해지는 시집이다. 오은 시인의 《마음의 일》은 청소년들의 속마음과 삶의 어려움을 차분한 목소리로 담아 놓았다.
최종규 시인의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는 우리말을 잘 살린 단어들을 수수께끼 형식으로 풀어 놓았고, 김중석 작가의 《그리니까 좋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글모음이다.
13세 이상 추천 도서 5권 중 3권이 ‘창비교육’에서 나온 책들로, 창비교육은 몇 년째 꾸준히 청소년들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좋은 시집들을 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6세부터 : 김륭 시인의 《사랑이 으르렁》은 으르릉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청소년들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시집이다.
■교사, 학부모 : 이오덕 선생님의 《시정신 유희정신》이 읽기 좋게 편집되어 양철북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1970년대에 쓴 동시 평론이 지금 읽어도 빛이 나는 것은, 동시단이 지금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미 추천되어 있는 책이라 따로 목록 추천은 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는 요안나 콘세이요와 라파엘 콘세이요 부부 작가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담아 놓은 글모음이다. 《호두나무 작업실》은 소윤경 작가의 그림책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고, 미술과 출판에 관한 정보들 또한 담고 있다. 화가가 쓴 에세이라 글에 섬세함이 묻어나며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도 담고 있어 소윤경 작가의 팬이라면 환호할 만한 책이다. 영국 정원 문화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거트루드 지킬의 《지킬의 정원》에서는 정원 이야기를, 장흥 할머니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엮은 《할매들은 시방》에서는 진정한 ‘동심’을 만날 수 있다. 김용택 시인의 소탈한 시골 생활을 담은 산문집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와, 단비출판사에서 재출간되어 나온 서정홍 시인의 《아내에게 미안하다》도 사람에 관한,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라 시대를 아우르는 따뜻한 감성이 묻어난다.
2020년 시·글모음 출간 경향
2019년과 비교해서 목록 추천 책이 8종에서 4종으로 줄어들었고, 도서관 추천 도서는 28종에서 20종으로 줄어들었다. 추천 목록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도서관 추천 목록 중에서도 좋은 책들이 많았다. 평가의 기준이 너무 높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눈에 띄는 몇 가지 경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사가 있는 시집 :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처럼 서사가 있는 시집이 매년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시는 시 한편으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형식이라 시집 전체가 서사적일 필요는 없지만, 이야기가 주는 재미 덕에 시라는 장르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시집 : 그림책 작가가 시집을 내면서 글과 그림을 함께 감상해야 완성되는 새로운 시집이 나왔다. 2019년의 박정섭의 《똥시집》에 이어 2020년의 강경수의 《다이빙의 왕》이 그러하다. 실험적이고 새로운 장르이면서 재미도 잃지 않았다.
■시대를 담은 시집 : 하반기에 나온 시집들 중에서 ‘코로나’를 소재로 한 시들도 여러 편 있었다. 주로 초등 저학년과 중학년 대상으로 쓴 시들이었는데, 소재만 따 왔을 뿐 코로나로 인한 사회 현상을 희화화시키고 감동이 없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실을 소재로 삼는 시를 쓸 때는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야 하는지, 시인부터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재출간되어 나온 시집과 글모음 책 : 시대가 지나도 가치를 잃지 않고 재출간되는 책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가치관을 진솔하게 담은 책이어야 한다. 그러나 재출간되어 나온 책들 일부는 소재나 표현에서 요즘 아이들과 맞지 않는 시들이 작가의 인지도만 믿고 재출간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책들도 있었다. 시대를 아우르는지 시대에 역행하는지에 따라 추천과 비추천으로 나뉘었다.
■앞으로 더 기대되는 신인들 :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 이준식, 《외톨이 왕》 임수현, 《내가 왔다》 방주현, 《우리 어멍은 해녀》 허유미 시인은 첫 시집을 낸 시인이다. 《다이빙의 왕》 강경수는 여러 권의 그림책과 산문집에 그림을 그렸지만 동시집은 처음이고,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문신,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 김학중, 《마음의 일》 오은 시인도 시집은 여러 권 냈지만 동시와 청소년 시집으로서는 처음이다. 《사랑이 으르렁》 김륭 시인 또한 청소년 시집으로서는 첫 도전이다. 처음 내는 시집임에도 묵직한 무게감을 주는 시인들의 책으로 풍성한 한 해였다. 2020년의 전체 추천 종 수는 비록 많지 않았지만 이 시인들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