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돌아온 희년이다
어쩌면 마지막 희년일지 모른다
눈이 내리는 설날이다
새벽미사와 설 차례를 지냈다
없던 이름
잊었던 두 사람을 위해 처음으로 미사를 드렸다
김진선 김선희
김두영 조태완의 첫딸이다 둘째딸이다
세상에 태어나 이내 떠난
나의 누나들이다
엄마가 가끔 꺼내던 기억을 떠올려
이름을 지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일군 작품들중 온전히 한 사람을 위한 책이 있다
<흰>이다
낳았으나 곧 죽은 아이에 대한 소설이다
단 10분도 살지 못한 언니에 대한, 그 아이의 엄마에 관한
위로와 기원의 글이다
미술관을 빌려 50년 만에 죽은 아이를 위해 하늘길 제사를 바친다
한강의 작품들은
그녀가 직설적으로 말했듯이
ㅡ 과거가 현재를 살리고
ㅡ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그 주제를 묵직하게 다룬다
한강의 노벨상도
과거(4.3과 5.18)와 망자들이 준 현실적 선물이라는 것을 소름돋듯 깨닫게 된다
죽었지만
지나갔지만
죽지 않았고
지나가지 않았고
생생히 살아 현존하며 생생하게 개입한다
(5.18의 경험이 돌대가리 찌질이 윤석열의 내란을 부순 것처럼)
오늘
성당 오가는 길
눈이 내렸다
그해 눈이 잔뜩 내리던 날
슬치로 남의 제사에 연도를 드리더 가던 엄마의 모습.
일제에 저항하다 관촌지서에서 고춧가루 물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늑막염에 걸려 죽은 외할머니에 대한 회한이었을 것이다.
인민군으로 무장한 채 슬치 고개로 넘어오면서,
환영 나온 사람들을 총으로 쏴죽인 국군의 만행.
그때 숨진 이들과 외할머니의 한이 오버랩되었을 것이다.
연도를 마치고 돌아와 하시던 말
ㅡ자식들이 젯상 앞에서 죽은 이들에게 쓴 편지를 읽는 것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참 좋더라. 우리 자식들도 그래줬으면, 하시던 모습
늦게나마
늦게라도
해야만 하는 일은 해야 한다
새벽미사가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ㅡ연령들의 영원한 행복을 비는 을사년 설날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