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자
◎ 위치 및 환경
우리 마을은 장흥군청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35㎞, 회진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의 거리에 위치한 해변마을이다. 마을 북서쪽으로는 신선산(공기산)을 끼고 동쪽으로 뻗어난 끝자락에 앞으로는 남해바다가 있고 덕도, 노력도, 탱자도, 대마도, 소마도가 병풍처럼 펼쳐져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순흥농장이 있으며, 앞바다는 천혜의 청정해역으로 바지락, 피조개, 낙지 등이 많이 생산되고, 겨울에는 돌김, 미역, 다시마, 꼬시래기, 등이 생산되어 마을의 소득원이 되어준다. 농사위주의 생활일 때는 빈곤한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어장과 수산업의 발달로 비약적인 부촌이 되었다. 마을은 웃대미, 아랫대미로 구성되어 있다.
<공지산>
◎ 풍수지리적 유래
마을 뒷산 계곡에 나무가 울창하여 ‘목골’이라 부르다가 마을 규모가 커지면서 주민이 바닷가로 이주하는데 마을의 모습이 부채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부채 선(扇)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선자(扇子)라 하고 ‘목쟁이’라 부르는 모래잔등이 부채자루 모양이며 탱자섬이 부채자루 마지막 걸이(장식품)에 해당된다.
또한 마을 뒷산에 ‘징바위’라는 두 개의 바위가 있어 마을의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으며 마을 남쪽에는 황금등이라 부르는 들판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목화 재배단지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도 종묘회사에서 각종 채소종묘를 계약 재배하였다. 이곳은 양지바르고 토양이 매우 비옥하여 밭곡식이 어느 지역보다 영글어 풍요로운 마을로 전한다.
◎ 마을의 연혁
1500년께 마을 북쪽에 위치한 목골이라는 곳에 처음으로 터를 잡았다하며 그 후 1600년께 인천이씨, 전주이씨, 진주강씨 등이 입촌하여 성촌되었으며, 1800년께부터 마을 이름을 선자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1900년경부터 덕도지역을 제외한 회진지역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회진에서 향교(지금의 학교)가 우리 마을에 최초 설립되었으며, 일제강점기 해태 건조장, 집하장도 우리 마을에 지어져 해산물 수매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런 것으로 볼 때 그 때만 해도 회진 지역의 중심 역할을 했던 것으로 회진 1번지가 선자마을에 있다.
◎ 세대수, 인구, 마을임원
선자마을의 세대수 및 인구는 다음과 같다.
연도별 인구 및 세대수
연도별 | 세대수 | 인 구 (단위; 명) | 이장 / 연락처 |
남자 | 여자 | 계 |
2010.12.31 | 49 | 44 | 50 | 94 | 강신한 / 010-4161-6082 |
2011.12.31 | 52 | 48 | 51 | 99 | |
2012.12.31 | 50 | 52 | 54 | 106 | |
2013.12.31 | | | | | |
2014.12.31 | | | | | |
2015.12.31 | | | | | |
2016.12.31 | | | | | |
2017.12.31 | | | | | |
2018.12.31 | | | | | |
2019.12.31 | | | | | |
<자료제공: 회진면사무소>
(2010.12.31.현재)
세 대 수 | 49 세대 |
인 구 | 남자; 44 명. 여자; 50명 (합계); 94 명 |
마을임원 | 이장: 강신한(010-4161-6082). 새마을지도자; (남)박용식. (여)송연심 |
◎ 마을의 지명 설명
• 굴등재: 선자 마을에서 삭금으로 넘어가는 재.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포장도로 가 되었다.
• 굴앞: 마을 선창 옆 조그마한 천연 굴. 예살에는 이곳에서 멸치를 가공하였다.
• 그낭골: 황금들녘 북쪽에 위치한 산등성이와 등성이의 깊은 골짜기. 선자와 경계 를 이루고 있음.
• 냇고랑: 마을에서 제일 큰 냇가. 삭금리와 경계를 이룬다.
• 노랑독살: 마을에서 제일 큰 독살. 옛날에 아줌마들이 이곳까지 물이 빠져야 조개 를 주우러 갔었다.
• 대마도: 마을 앞 큰 섬이 큰말처럼 생겼다하여 대마도라 한다.
• 소마도: 탱자섬과 대마도 중간에 있는 작은 섬. 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 도둑놈골창: 황금들녘에 바닷가에 위치한 깊은 골짜기. 실제로 옛날에 도둑놈이 숨어 살았다 함.
• 독살: 옛날 고기를 잡기 위해서 바닷가 얕은 곳을 돌로 둥글게 쌓아 고기가 썰물 에 그 안에 남게 하는 고기잡이 뚝.
• 매끝테: 바닷가에서 삭금부락과 경계선을 이루는 곳으로 날아다니는 매의 부리처 럼 생겼다 하여 부른 지형 이름.
• 목골: 마을이 처음 들어선 곳. 나무가 울창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
• 탱자섬/ 탱자도: 회진항을 동남북에서 드나드는 거센 조류로 인하여 돌과 모래가 쌓여 자연스럽게 생긴 섬. 3,000여 평 규모로 고송이 울창하고 잔디가 있어 주 민들의 휴식처로 많이 이용 됨.
• 목쟁이: 물이 썰물 때 하루 두 번씩 갈라져 등이 보이는 곳. 바지락, 꼬막이 많이 서식한다.
• 물선창: 마을 선창 아래 작은 선창. 물이 차오르면 물속에 잠긴다.
• 산새고랑: 마을 뒤편의 산등성과 능선 사이의 깊은 골짜기.
• 아랫대미: 마을 2반에 해당하는 선창 쪽 지역.
• 웃대미: 마을 1반에 해당되는 마을 위쪽 지역.
• 징바위: 선자 마을 뒷산의 큰 두 개 바위.
• 창고터: 옛날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김을 보관했던 창고 터.
• 큰 목쟁이: 마을에서 탱자섬으로 가는 길의 모래잔등.
• 황금리: 마을 남쪽의 들판.
• 황금포: 마을 남쪽의 김발 양식을 하는 바다 이름.
◎ 마을의 문화유적
□옛터
• 창고터: 일제강점기 해태 건조실로 사용. 석탄을 태워서 건조하였고 그 후 창고로 방치되었을 때 야학교로 활용하였고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 건물기초 시멘트가 볼록하게 있었으나 회진~삭금간 도로 개설시 묻혀버렸다.
• 목쟁이 소금구이터: 탱자섬으로 건너가는 부짓등이에 마을 사람들이 가마솥과 드럼통을 이용해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구워 소득을 올린 곳으로 지금은 바닷물의 침수로 인해 흔적을 찾을 길 없다.
• 굴앞 멸치 가마터: 선자 선착장 건너 자갈밭에 솥을 걸어놓고 멸치를 삶았었다.
• 독살터: 아주 원시적인 고기잡이 방식으로 돌을 높이 쌓아 막아놓은 상태로 옛날 고기가 흔할 때는 엄청나게 많이 걸려들었다고 한다. 그 흔적이 4곳이나 남아 있다.
• 학교터: 대덕동초등학교(회진초등학교)는 최초의 학교로 교통이 발달되지 않는 시기에 지리적 여건상 진목, 삭금, 회진, 덕흥의 중간 지점인 선자를 택해 학교가 설립되어 아동들을 가르치다 한국전쟁 때 전소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다.
◎ 천연기념물
□탱자섬(撑資島)
회진항을 동남북에서 드나드는 거센 조류로 인하여 돌과 모래가 쌓여 자연스럽게 생긴 섬. 3,000여 평 규모로 해조류와 개똥나무, 소나무가 자생하였으며 지금은 해송과 몇 백 년으로 추정되는 노송 10여 그루와 전 면적의 1/2은 잔디밭과 모래밭으로 구성되었다. 사계절 각종 계모임과 휴양객들이 이용되며 특히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탱자섬은 조선 초 회진 마을이 형성된 후 선비들이 조류 관계로 모래와 자갈이 모여 생긴 섬이라 하여 지탱할 탱(撑), 모을 자(資), 섬 도(島)자를 붙여 탱자섬이라 이름 하였다.
□공기산(空基山,혹은공지산)
• 높이 : 213.6m
• 위치 : 회진면 안삭금, 이진목, 산저, 선자마을이 에워싸고 있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