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벽량(碧梁).시호 충목(忠穆).
유응부는 포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키가 남보다 크고 얼굴 모습은 엄숙하였으며, 씩씩하고 용감하며 형 유응신과 함께 활을 잘 쏘아 새와 짐승을 쏘아 맞지 않음이 없었다.
집이 가난하여 항아리에는 식량이 없었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포천의 논밭에 나갈 때 하루는 말 앞에서 기러기가 나는 것을 본 벽량이 활을 당기자, 활시위 소리와 함께 기러기가 떨어졌고, 이것을 본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무신으로 출발, 첨지중추원사.
중추원은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첨지는 정삼품의 무관 벼슬.
(지금의 직책으로 치면 청와대 경호실 차장쯤)
후에 평안도절제사를 지냈다.
1455년 동지중추원사로 종 2품에 올랐다.
유응부 장군 왈.
“권람과 한명회를 죽이기는 이 주먹이면 족한데, 어찌 긴 창과 큰 칼을 사용하겠는가”
이들은 창덕궁에서 중국 사신을 위한 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날을 거사일로 잡았다.
일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연회석상에서 칼을 차고 임금을 지키는 별운검(別雲劒)으로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과 유응부를 선정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왕은 운검을 차지 못하도록 명하였고, 또한 세자도 질병 때문에 연회장에 나오지 못하여 난관에 처하였다.
한명회가 눈치챈 거죠.그러자 유응부 왈.
“이런 일은 빨리 할수록 좋은데, 만약 늦춘다면 누설될까 염려되오. 비록 세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주요 신하가 모두 있어 오늘 이들을 모두 죽이고 단종을 호위하고 호령한다면 하늘이 주신 기회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요”
그러나 성삼문과 박팽년은 굳이 말리면서 이르기를, “지금 세자가 경복궁에 있고, 왕이 운검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요. 만약 이 창덕궁에서 거사를 하더라도, 혹시 세자가 듣고서 경복궁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면 일의 성패를 알 수 없으니 훗날을 기약합시다”
김질이 배신으로 잡혔다.
수양대군 왈.
“너는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느냐” 유응부는 똑바로 임금을 쳐다보며,
“연회가 있는 날 한 칼로 족하를 죽이고 단종을 복위시키고자 하였으나, 간사한 자(김질)의 밀고로 이렇게 되었으니 다시 무엇을 구하겠느냐. 족하(足下)는 빨리 나를 죽여라”
유응부는 세조를 '족하'(足下)라고 불렀다. 족하는 자네라는뜻. 왕과 맞먹겠다는는 거다.
세조가 칼로 유응부의 살을 깎게 하니 온 몸이 남은 곳이 없고 선혈이 낭자하다.
열 받은 거다. 쇠를 달궈 지지니 두 다리와 배 아래서 불이 났다.
유응부는 안색을 바꾸지 않고 쇠가 차가워지면 “쇠를 다시 덥혀 오라”고 일렀다.
사육신 중 유일한 장군 .
“유응부는 무인으로 선비와는 더불어 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한 기개를 높이 샀다. 특히 그는 달군 쇠를 가져다 배 아래에 놓아 기름과 불이 함께 일어났는데도 '안색 불변'으로 끝내 불복하고 죽었다.”
장군은 청렴결백하여 관직에 있을 때도 가정이 어려움을 면치 못했고 때로는 양식이 떨어졌다.
장군이 사형 당하자 마누라 왈. “살아서도 끼니 걱정으로 생고생을 시키더니 죽어서도 큰 화를 남기고 갑니까.”
관아에서 장군의 재산을 몰수하러 포천 고택을 찾았으나 집은 쓰러져 가고 몰수할 재산도 없어 그냥 철수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