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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曲禮 上 第1
4-36. 011101 夫爲人子者는 三賜(注1)에 不及車馬하나니 故로 州閭鄕黨이 稱其孝也하며 兄弟親戚이 稱其慈也하며 僚友가 稱其弟也하며 執友가 稱其仁也하며 交遊가 稱其信也니라. |
자식된 자는 〈벼슬이〉 삼명에 이르러 하사품을 받을 때에 거마까지는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여‧향‧당에서는 그의 효성을 칭찬하고 형제와 친척은 그의 자애로움을 칭찬하며, 동료들은 그의 공손함을 칭찬하며 동문들은 그의 어짊을 칭찬하며 교유하는 이들은 그의 미쁨을 칭찬한다. |
역주1 三賜 : 三賜는 세 번째 내리는 命이니 즉 三命를 말한다.[三賜三命] 《禮記注疏》 三命의 命은 爵名을 의미하며 三命은 곧 公이나 侯伯의 卿이다. 《漢語大詞典》 |
[集說] 言爲人子는 謂父在時也라. 古之仕者는 一命而受爵하고 再命而受衣服하고 三命而受車馬하나니 有車馬則尊貴之體貌가 備矣니라. 今但受三賜之命而不與車馬同受라 故로 言不及車馬也니라. |
[集說] 남의 자식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를 이른다. 옛날에 벼슬하는 사람은 일명에 작위를 받고 재명에 의복을 받고 삼명에 거마를 받았다. 말이 딸린 수레[車馬]가 있으면 존귀한 사람으로서의 체모가 갖추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만 삼사의 명만을 받고 거마까지 함께 받지는 않는다. 그래서 거마까지는 받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
君之有賜는 所以禮其臣이요 子之不受는 不敢竝於親也라. 二十五家가 爲閭요 四閭爲族이요 五百家가 爲黨이요 二千五百家가 爲州요 一萬二千五百家가 爲鄕이니 孝之所該者가 大라. 故로 其稱이 最廣이니라. 曰慈曰弟曰仁曰信은 皆孝之事也니라. |
임금이 하사하는 것은 그 신하를 예우하기 위한 것이고, 자식이 받지 않는 것은 감히 아버지와 대등하게 될 수 없어서이다. 25가가 여, 4여가 족, 5백家가 당, 2천 5백家가 주, 1만 2천 5백家가 향이다. 효가 포괄하는 뜻이 크기 때문에 그 칭송이 가장 넓게 미치는 것이다. 자‧제‧인‧신은 모두 효에 딸린 일이다. |
僚友는 官同者요 執友는 志同者니 同師之友는 其執志가 同이라. 故曰執友니라. 交遊則泛言遠近之往來者라. |
요우는 벼슬이 같은 자이고, 집우는 뜻이 같은 자이다.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벗은 그 지키는 뜻이 같다. 그래서 집우라고 하는 것이다. 교유는 원근에서 오가는 관계에 있는 사람을 범칭한 것이다. |
[大全] 藍田呂氏가 曰호대 五者之稱이 不同은 各以其所見으로 言之也라. 州閭鄕黨은 觀其行者也니 見其所以敬親이라 故로 稱其孝요. 兄弟親戚은 責其恩者也니 順於父母者는 親親之愛가 必隆故로 稱其慈요. |
[大全] 남전여씨 : 다섯 부류의 칭찬이 같지 않은 것은 각각 그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주‧여‧향‧당에서는 그의 행실을 보는데, 그가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의 효성을 칭찬한 것이다. 형제와 친척은 은애를 요구하는 입장이니 부모에 순종하면 친척을 사랑하는 마음이 따라서 반드시 커지기 때문에 그의 자애로움을 칭찬하는 것이다. |
僚友는 見其有所讓者也니 有孫弟之心故로 稱其弟요 執友者는 友其德이니 德莫盛於孝하니 孝者는 仁之本이라 故로 稱其仁이요. 交遊는 主於信이라 知其誠心於孝也라. 故로 稱其信이라. |
요우는 서로 사양하는 관계인데 그가 겸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의 공손함을 칭찬하는 것이며, 집우는 그 덕을 벗으로 하는 것인데 덕은 효보다 큰 것이 없고 효는 인의 근본이므로 그의 어짊을 칭찬하는 것이다. 교유는 서로의 믿음을 중시하는데, 그가 성심으로 효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미쁨을 칭찬하는 것이다. |
4-37. 011102 見父之執하고 不謂之進이어시든 不敢進하며 不謂之退어시든 不敢退하며 不問이어시든 不敢對니 此 孝子之行也니라. |
아버지의 집우를 뵈었을 때에는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지 않으면 감히 나아가지 않고, 물러가라고 하시지 않으면 감히 물러가지 않으며, 묻지 않으시거든 감히 말하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효자의 행실이다. |
[集說] 父之執은 父同志之友也라. 謂之는 命之也라. 敬之를 同於父니라. |
[集說] 부지집은 아버지와 뜻을 같이 하는 친구이다. 위지는 지시하는 것이다. 그를 공경하기를 아버지와 같이 한다. |
[大全] 嚴陵方氏가 曰 孔子가 曰호대 愛親者는 不敢惡於人하고 敬親者는 不敢慢於人(注1)이라 하시니, 見父之執하고 於進退之節에 有所不敢이면 則一擧足에도 不敢忘親을 可知요, 於對問之節에 有所不敢이면 則一出言에도 不敢忘親을 可知니 孝子之行이 孰過乎是리요. |
[大全] 엄릉방씨 : 공자가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남에게 악하게 굴지 못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남을 업신여기지 못한다.” 하였는데, 이제 아버지의 친구를 만났을 때 나가고 물러나는 절도에서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한 발짝 떼는 데도 부모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물음에 대답하는데 있어서 함부로 하지 않는 바가 있다면 말 한마디에도 부모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으니, 효자의 행실로 무엇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
역주1 愛親者……不敢慢於人 : 인용된 부분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이는 남에게 거만하게 굴지 않으니, 부모에게 사랑과 공경을 다하고 백성에게 은덕과 교화를 베풀어서 천하에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로 천자의 효도이다.[子曰 愛親者 不敢惡於人 敬親者 不敢慢於人 愛敬盡於事親 而德敎加於百姓 刑於四海 蓋天子之孝也]” 《孝經》 卷1 〈天子章〉 |
4-38. 011201 夫爲人子者는 出必告하고 反必面하며 所遊를 必有常(注1)하며 所習을 必有業하며 |
자식된 사람은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을 뵈며, 가는 곳에는 반드시 일정한 장소가 있으며, 학습에는 반드시 일정한 과업이 있다. |
역주1 必有常 : 有常의 常은 方과 같다고 하였다. 有方이라는 것은 부모에게 간다고 말씀드린 장소로 가는 것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은 부모가 언제든지 불러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注 鄭曰方猶常也 疏 正義曰 方猶常也 父母旣存 或時思欲見己 故不遠遊 遊必有常所 欲使父母呼己 得卽知其處也 設若告云詣甲 則不得更諸乙 恐父母呼己於甲處不見 則使父母憂也] 《論語注疏》 卷4 〈里仁〉 |
[集說] 出則告違하고 反則告歸호대 又以自外來라 欲省顔色하니 故言面이라. 遊有常은 身不他往也요 習有業은 心不他用也라. |
[集說] 외출할 때에는 나간다는 것을 아뢰고, 돌아와서는 돌아왔다고 아뢰는 것인데 밖에서 왔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자식의〉 안색을 살펴보고자 하시므로 ‘얼굴을 뵌다.’라고 한 것이다. |
가는 곳에 일정한 장소가 있다는 것은 몸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것이고, 학습에 반드시 일정한 과업이 있다는 것은 마음을 다른 곳에 쓰지 않는 것이다. |
4-39. 011202 恒言에 不稱老니라. |
평소 말하는 사이에 늙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集說] 恒言은 平常言語之間也라. 自以老稱이면 則尊同於父母하니 而父母爲過於老矣라. 古人所以斑衣娛戱者는 欲安父母之心也니라. |
[集說] 항언은 평소 말하는 사이이다.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 높음이 부모와 같아지고 부모가 너무 늙은 것이 된다. 옛 사람이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린 것은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자 해서이다. |
[大全] 藍田呂氏가 曰호대 出必告하고 反必面은 受命於親而不敢專也요, 所遊를 必有常하며 所習을 必有業은 體親之愛而不敢貽其憂也며 恒言不稱老는 極子之慕而不忍忘也니라. |
[大全] 남전여씨 :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을 뵈는 것은, 부모에게 지시를 받아서 하고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가는 곳에는 반드시 일정한 장소가 있으며, 학습에는 반드시 일정한 과업이 있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체득하여 감히 근심을 끼치지 않는 것이고, 평소 말하는 사이에 늙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부모를 사모하는 마음을 극진하게 하여 차마 부모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
父母在而不敢有其身하니 如之何聞斯行諸(注1)아. 出入而無所受命이면 是는 遺親也니 親之愛子가 至矣라 所遊에 必欲其安하고 所習에 必欲其正이니 苟輕身而不自愛면 則非所以養其志也라. |
부모가 살아 계시면 감히 그 몸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법인데 어떻게 옳은 일이라고 그대로 행할 수 있겠는가. 들고 나면서 지시를 받는 바가 없으면 이는 부모를 버린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지극하기 때문에 갈 때에는 반드시 그가 편안하기를 바라고 학습할 때에는 반드시 바르게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니 진실로 몸을 가볍게 생각하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는 부모의 뜻을 받드는 것이 아니다. |
君子之事親에 親雖老而不失乎孺子慕者는 愛親之至也라. 孟子가 曰호대 五十而慕를 吾於大舜에 見之矣라. 故로 髧彼兩髦가 爲孺子之飾이나 親見然後에 說之라. 苟常言而稱老면 則忘親而非慕也라. |
군자가 부모를 섬김에 비록 부모는 늙고 〈나는 장성했더라도〉 어린 아이 때의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은 지극히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다. 《맹자》에 “50세가 되어서도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진 이를 나는 순임금에게서 보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두 갈래도 늘어뜨린 다팔머리(注2)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꾸밈이지만 부모는 이것을 보고나서야 기뻐하니, 〈자신이 늙었더라도〉 만약 평소에 늙었다고 말한다면(注3) 이는 부모를 잊은 것이며 그리워하는 태도가 아니다. |
역주1 如之何聞斯行諸 : 이 말의 출전은 《論語》이다. 聞斯行諸는 옳은 일을 들으면 즉시 실천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부모님이 계시면 반드시 여쭈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로가 ‘옳은 것을 들으면 곧 실행하여야 합니까?[聞斯行諸]’ 하고 묻자, 공자께서 ‘부형이 계시니, 어찌 듣자마자 실행할 수 있겠는가?’ 하고 대답하셨다. 염유가 ‘들으면 곧 실행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들으면 바로 실행하여야 한다.’ 하고 대답하셨다. 公西華가 물었다. ‘由가 물을 때는 ‘부형(父兄)이 계시다.’ 하셨고, 求가 물을 때는 ‘들으면 곧 실행하여야 한다.’고 대답하시니, 저는 의혹되어 감히 묻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求는 물러나서 나아가게 한 것이고, 由는 실행이 남보다 빠르니 물러나게 한 것이다.’ [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冉有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論語集註》 〈先進〉 |
역주2 다팔머리 : 다팔머리는 어린아이들이 배냇머리 중 약간을 양쪽에 눈썹 끝에 이르도록 자르지 않고 그대로 기르게 한 머리를 말한다. 그래서 孺子(어린아이)의 飾(꾸밈)이라고 한 것이다. 다팔머리는 마치 때때옷[斑衣]과 같이 아이들을 귀엽게 보이기 위해서 한 것이지만, 부모가 살아 계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대로 두는 것은 어릴 적의 부모를 사모하는 간곡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한 것이다. 이 머리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잘라낸다. |
역주3 늙었다고 말한다면 : 이 말은 老萊子가 나이 80이 되어서도 때때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재롱을 떨어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린 경우처럼 부모의 마음이란 자식이 항상 어린 아이처럼 보이는 것이며, 이런 부모의 마음을 잘 받드는 것이 孝인데, 만약 자신이 늙었다고 하면 이는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잘 받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
4-40. 011203 年長以倍어든 則父事之하고 十年以長이어든 則兄事之하고 五年以長이어든 則肩隨之니라. |
나이가 자기의 배가 되는 사람은 부모를 섬기는 예로 섬기고, 열 살이 더 많은 사람은 형을 모시는 예로 모시고, 다섯 살이 많은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되 조금 뒤쳐져서 따라가야 한다. |
[集說] 肩隨는 竝行而差退也라. 此는 泛言長少之序니 非謂親者라. |
[集說] 견수는 나란히 걷되 조금 물러나서 뒤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나이에 따른 예절에 대하여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 것이지, 친척의 경우를 말한 것은 아니다. |
4-41. 011204 群居五人이어든 則長者가 必異席이니라. |
다섯 사람이 모여 앉는 경우에는 연장자 한 사람이 반드시 자리를 따로 한다. |
[集說] 古者에 地敷橫席而容四人하니 長者가 居席端이라. 若五人이 會則長者一人이 異席也라. |
[集說] 옛날에 땅에 자리를 깔면 〈한 자리에〉 네 사람이 앉는데, 어른은 〈상석인〉 자리의 끝에 앉는다. 다섯 사람이 모여 앉을 때는 연장자 한 사람은 자리를 따로 해서 앉는다. |
[大全] 馬氏가 曰호대 徐行後長을 謂之弟요 疾行先長을 謂之不弟니 堯舜之道는 孝弟而已矣(注1)라. 夫孝弟於步趨疾徐之間而聖人之道가 乃始於此者는 蓋達事長之禮는 無所往而不爲順也라. |
[大全] 마씨 : 〈맹자는〉 “천천히 걸어서 연장자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제라 하고, 빨리 걸어서 연장자를 앞질러 가는 것을 부제라고 한다. 요순의 도리는 효제를 행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효제가 걸음걸이를 빨리 하느냐 천천히 하느냐의 사이에 갈리고 성인의 도가 이 걸음걸이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윗사람을 섬기는 공통된 예는 어디서나 순종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
역주1 孝弟而已矣 : 《孟子》 〈告子章句 下〉 第2章 ‘曹交問曰’에 보인다. [徐行後長者 謂之弟 疾行先長者 謂之不弟 夫徐行者 豈人所不能哉 所不爲也 堯舜之道 孝弟而已矣] |
推其齒而以父兄事之者는 謂其愈長而愈加敬也니 長之五年이면 則肩隨者는 不敢與先生竝行也라. 其出也에 不敢與之竝行이면 則其居也에 可以同席乎아. |
그 나이를 따져서 아버지나 형으로 모시는 것은 나이가 많을수록 더욱 공경으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나이가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되 조금 뒤에서 따른다는 것은 나이 많은 사람과 감히 나란히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출할 때에도 감히 나란히 걸을 수 없다면 앉을 때에 동석할 수 있겠는가. |
蓋五人之群이면 當有所長이니 推其長者하야 必異席以敬之라. 古人敬長이 如此하니 則民之犯上而踰禮者가 宜鮮矣니라. |
대개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앉으면 그 가운데 응당 연장자가 있을 것이니 연장자를 높여서 반드시 자리를 따로 하여 공경의 뜻을 표한다. 옛 사람의 연장자를 공경함이 이와 같았으니 윗사람을 범하고 예를 어기는 백성이 의당 적었을 것이다. |
○ 金華邵氏가 曰호대 愛親者는 不敢惡於人이요 敬親者는 不敢慢於人이니 知愛敬其親而於人加忽焉이면 則愛敬之道가 虧矣라. 故로 年倍於我어든 事以父禮하고 長我十年이어든 事以兄禮하고 長我五年이면 差肩隨之라. |
금화소씨 : 〈공자께서〉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남에게 악하게 굴지 못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남을 업신여기지 못한다.”하였으니, 부모는 사랑하고 공경할 줄 알면서도 남을 더욱 홀시하면 사랑과 공경의 도리가 손상된다. 그러므로 나이가 나보다 배가 되는 사람은 아버지를 섬기는 예로 섬기고, 열 살이 더 많은 사람은 형을 모시는 예로 모시고, 다섯 살이 많은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되 조금 뒤쳐져서 따라가야 한다. |
至於群居五人이면 則又異長者之席(注2)이니 其於人也에 庸敢慢乎아. 以此事親이면 愛敬之道가 盡矣니라. |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앉는 경우에는 또 그 중에서 나이 많은 이의 자리를 따로 하는 것이니, 남을 대함에 조금도 거만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세로 부모를 섬기면 사랑과 공경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
역주2 則又異長者之席 : 四庫全書本 《禮記集說》과 衛湜의 《禮記集說》에는 모두 “則又異長者之席焉”으로 ‘焉’ 자가 더 있다. 문맥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본 번역본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
4-42. 011301 爲人子者는 居不主奧하며 坐不中席하며 行不中道하며 立不中門하며, |
자식된 사람은 방의 서남 쪽 구석[奧]에 거처하지 않으며, 앉을 때 자리의 한가운데 앉지 않으며, 길 한가운데로 걷지 않으며, 중문에 서지 않는다. |
[集說] 室西南隅가 爲奧니 主奧中席은 皆尊者之道也라. 行道則或左或右하고 立門則避棖(注1)闑(注2)之中은 皆不敢迹尊者之所行也라. 古者에 男女異路하야 路各有中이요 門中央에 有闑하고 闑之兩旁에 有棖也라. |
[集說] 실의 서남쪽 모퉁이가 오이다. 오를 차지하고 자리의 한가운데 앉고 하는 것은 모두 존귀한 자가 하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에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걷고, 문에 설 때는 문설주와 문기둥의 가운데를 피하는 것은 모두 감히 존귀한 이가 지나는 곳을 밟지 않으려는 것이다. 옛날에는 남녀가 걸을 때 길을 달리 하였으므로 길에는 〈오는 쪽과 가는 쪽에〉 각각 중앙이 있다. 문의 중앙에 문기둥이 있고, 문기둥의 양쪽 곁에는 문설주가 있다. |
역주1 闑(얼) : 闑은 문기둥이다. 문이 있는 길 양편(좌우의 통로)의 한가운데 나무를 세워 길의 중앙을 표시하는 것이다. 어떤 책에서는 문설주로 훈을 풀었는데 이는 맞지 않은 것이다. |
역주2 闑 : 얼 |
4-43. 011302 食(注1)饗에 不爲槪하며, |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거나 제수를 준비할 때에는 〈자식이〉 미리 〈물품의 양을〉 한정하지 않는다. |
[集說] 食饗은 如奉親延客及祭祀之類가 皆是라. 不爲槪量은 順親之心而不敢自爲限節也라. |
[集說] 사향은 어버이를 받들어 손님을 대접하는 일과 제사지내는 따위가 모두 해당된다. 개량하지 않는 것은 어버이의 마음을 따를 뿐 감히 자신이 한계를 정하지 않는 것이다. |
역주1 食 : 사 |
4-44. 011303 祭祀에 不爲尸하며, |
제사지낼 때에는 시동이 되지 않는다. |
[集說] 呂氏가 曰호대 尸는 取主人之子行而已이니 若主人之子면 是는 使父北面而事之니 人子所不安이라 故不爲也라. |
[集說] 여씨 : 시동은 주인의 아들 항렬에서 〈뽑아〉 쓴다. |
만일 주인의 아들로 〈시동이〉 된다면 이는 아버지가 북면하여 아들을 섬기는 것이 되니 아들로서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동이〉 되지 않는 것이다. |
4-45. 011304 聽於無聲하며 視於無形하며, |
소리 없는 것에서 듣고 드러나지 않는 것에서 본다. |
[集說] 先意承志也라. |
[集說] 부모의 의도를 먼저 헤아려 그 뜻을 받드는 것이다. |
○ 疏에 曰호대 雖聽而不聞父母之聲하며 雖視而不見父母之形이나 然이나 常於心에 想像似見形聞聲하야 謂父母가 將有敎使己然이라. |
소 : 비록 듣는다고 했으나 〈실제로〉 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며, 비록 본다고 했으나 부모의 형체를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늘 마음속에서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들은 것같이 생각하여 마치 부모가 나에게 지시해서 그렇게 한 것처럼 한다는 말이다. |
4-46. 011305 不登高하며 不臨深하며 不苟訾(注1)하며 不苟笑니, 011401 孝子가 不服闇(注2)하며 不登危는 懼辱親也니라. |
높은 곳에는 오르지 않으며, 깊은 곳에는 가지 않으며, 구차하게 남을 헐뜯지 않으며, 구차하게 웃지 않는다. 효자가 어두운 곳에서 일하지 않고 위태로운 곳에 오르지 않는 것은 어버이를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
역주1 訾 : 자 |
역주2 闇 : 암 |
[集說] 疏에 曰호대 不服闇者는 不行事於暗中이니 一則爲卒有非常이요 二則生物嫌(注3)이라 故孝子가 戒之니라. |
[集說] 소 : ‘불복암’은 어두운 장소에서 일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첫째는 갑자기 비상사태가 발생할까 해서이고, 둘째는 남들에게 의심을 받는 일이 생길까 염려해서이다. 그래서 효자는 그 점을 경계한다. |
○ 呂氏가 曰호대 苟訾는 近於讒하고 苟笑는 近於諂하고 服闇者는 欺人所不見이요 登危者는 行險以徼幸이니 是는 忘親也라. 非特忘之라 不令之名이 且將加之니 皆辱道也니라. |
여씨 : 구차하게 남을 헐뜯는 것은 참소에 가깝고, 구차하게 웃는 것은 아첨에 가깝다. 어두운 장소에서 일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속이는 것이고 위태로운 곳에 오르는 것은 모험을 행해서 요행을 바라는 것이니, 이것은 어버이를 잊는 행동이다. 단지 잊은 것일 뿐만 아니라 장차 좋지 않은 이름이 더해지게 되니, 모두 〈부모에게〉 욕을 보이는 길이다. |
역주3 生物嫌 : 내각본에는 ‘主物嫌’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 목판본 및 사고전서본에는 모두 ‘生物嫌’으로 되어 있다. 즉 主는 生의 誤字이다. 物嫌의 物은 物論‧物議의 物字와 같이 자신을 제외한 남이라는 뜻이니, 生物嫌은 남들에게 의심[嫌疑]을 불러 일으킨다는 뜻이다. 《禮記集說》 |
[大全] 金華邵氏가 曰호대 事親之道는 當自卑以尊其親이요 尤當自重以愛其身이라. 主奧中席은 皆尊者所居요 中道中門은 皆尊者所由요 爲槪爲尸는 皆尊者之事라 人子皆不敢當이니 旣不嫌於逼其親矣니라. |
[大全] 금화소씨 : 부모를 섬기는 도리는 마땅히 자신을 낮춤으로써 부모를 높이는 것이며, 자신의 몸을 무겁게 여김으로써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오를 차지하고 자리의 한가운데 앉고 하는 것은 모두 존귀한 자가 하는 것이고, 길의 한 가운데나 문의 가운데는 모두 존귀한 이가 지나는 곳이며,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거나 제사를 모실 때에〉 미리 물품의 양을 한정하거나 시동이 되는 것은 모두 존귀한 자의 일이어서 자식 된 사람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를 한다면〉 부모를 핍박하는 것임에도 혐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注5) |
聽於無聲은 常若親有命이요 視於無形은 常若親在前이라. 又不至於違其親이니 其尊之者가 爲如何아. 不登高而下는 皆愛其身也라. |
소리 없는 곳에서 듣는다는 것은 항상 부모의 지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뜻이고, 나타나기 전에 본다는 것은 언제나 마치 앞에 계신 것같이 한다는 것이다. 또 그 부모의 뜻을 어기는데까지 이르지 아니하니 존경하는 정도가 어떠하겠는가. 높은 곳에는 오르지 않는다고 한 이후의 조목은 모두 자기의 몸을 아끼는 것을 말한 것이다. |
○ 長樂陳氏가 曰호대 戒愼乎其所不覩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 不服闇也요 道而不徑하고 舟而不遊(注4)가 不登危也라. 父母가 全而生之에 子全而歸之니 則不苟訿不苟笑 不服闇은 所以全其行이요 不登高不臨深不登危은 所以全其體니라. |
장악진씨 : 〈군자가〉 남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는 것이 어두운 곳에서 일하지 않는 것이고, 지름길로 가지 않고 헤엄쳐서 강을 건너지 않는 것이 위태한 곳에 가지 않는 것이다. 부모가 온전하게 낳아주신 몸을 자식은 온전하게 해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니 구차하게 남을 헐뜯지 않고, 구차하게 웃지 않으며 어두운 곳에서 일하지 않는 것은 그 행실을 온전하게 하려는 것이고,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며, 깊은 곳에 가지 않으며 위태로운 곳에 가지 않는 것은 그 몸을 온전히 하기 위한 것이다. |
역주4 舟而不遊 : 舟而不游에서 游는 헤엄치는 것을 말한다. 孔穎達 疏에 舟而不游라는 것은 물을 건널 때 반드시 배를 타고 건너며 물위에 헤엄쳐서 건너지 않는다. 배를 타면 안전하지만 헤엄치면 위태롭다고 하였다.[舟而不游者 言渡水必依舟船 不浮游水上 乘舟則安 浮水則危] 《禮記注疏》 卷1 〈曲禮 上〉 |
역주5 혐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 존귀한 자의 일을 자신이 한다는 것은 자신이 존귀하게 되었다는 것이니 이는 곧 자신이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늙어서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것이니 이는 부모를 나이로써 핍박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
4-47. 011402 父母가 存이어시든 不許友以死하며 不有私財니라. |
부모가 살아 계시면 친구를 위하여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사사로이 재물을 소유하지 않는다. |
[集說] 不許友以死는 謂不爲其友報仇也라. 親在而以身許人은 是有忘親之心이요 親在而以財專己는 是有離親之志라. |
[集說] 친구를 위하여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친구를 위하여 원수를 갚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버이가 생존해 계신데 몸을 남에게 허락하는 것은 어버이를 잊는 마음을 가진 것이고, 어버이가 생존해 계신데 재물을 가지고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은 어버이를 떠날 뜻을 가진 것이다. |
[大全] 永嘉戴氏가 曰호대 髮膚以上은 皆親之體니 豈敢許友以死며. 粒粟縷絲以上은 皆親之物이니 豈敢私有其財리요. 高者는 輕死하고 卑者는 重財하니 皆非孝也니라. |
[大全] 영가대씨 : 터럭 하나도 모두 부모의 분신이니 어찌 감히 친구를 위하여 죽는 것을 허락하겠으며, 쌀 한 톨도 모두 부모의 물건이니 어찌 감히 사사로이 그 재물을 소유하겠는가. 〈뜻이〉 높은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각이〉 비루한 사람은 재물을 중시하는데, 이는 모두 효도가 아니다. |
4-48. 011501 爲人子者는 父母가 存이어시든 冠衣를 不純(注1)素하며 |
자식된 자는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관과 옷에 흰색으로 가선을 두르지 않는다. |
[集說] 疏에 曰호대 冠純은 冠飾也요 衣純은 深衣(注2)領緣也라. |
[集說] 소 : 관순은 관을 장식하는 것이고, 의순은 심의의 옷깃에 가선을 두르는 것이다. |
역주1 純 : 준 |
역주2 深衣 : 深衣는 諸侯‧大夫‧士가 저녁에 입는 옷이다. 庶人은 深衣를 吉服으로 입는다. 심의는 겉에 입는 옷인데 위와 아래가 연결되어 있고 채색으로 가선을 두른 것이다. 심의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다른 의복은 上衣와 下裳이 분리되어 있는데 반하여 심의는 衣와 裳이 연결되어 身體를 깊숙이 덮으므로 深衣라고 한 것이다. 深衣의 制度는 《禮記注疏》 第39 〈深衣〉와 第13 〈玉藻〉 및 孔穎達 疏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
4-49. 011601 孤子(注1)가 當室하여는 冠衣를 不純采니라. |
고자로서 아버지의 대를 잇는 자는 〈상복을 벗더라도〉 관과 심의에 채색 천으로 가선을 두르지 않는다. |
역주1 孤子 : 孤子는 29세 이하인 자로서 아버지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孤子謂二十九以下而無父者] 《禮記注疏》 卷1 〈曲禮 上〉 |
[集說] 呂氏가 曰호대 當室은 謂爲父後者라. 問喪에 曰童子不緦호대 唯當室은 緦라하니 亦指爲父後者라. 所謂不純采者는 雖除喪이나 猶純素也니 惟當室者가 行之요 非當室者는 不然也라. |
[集說] 여씨 : 당실은 아버지의 후계자가 된 자를 말한다. 《예기》 〈문상〉편에 “어린 아이는 시마복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오직 대를 잇는 자는 시마복을 입는다.”고 하였는데, 또한 아버지의 후계자가 된 자를 가리킨 것이다. 이른바 채색 천으로 가선을 두르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탈상하였더라도 그대로 흰색으로 옷에 가선을 두르는 것이다. 다만 아버지의 후계자만 그렇게 하고 후계자가 아닌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
[大全] 馬氏가 曰호대 孟子에 曰 父母俱存하며 兄弟無故가 一樂也라 하니, 樂於中者는 文必稱於外라. |
[大全] 마씨 : 《맹자》에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 번째의 즐거움이다.” 하였는데, 〈부모가 계시어〉 마음이 즐거운 자는 겉모습을 꾸미는 것도 반드시 그에 맞게 해야 한다. |
冠衣를 不純素는 所以文之也라. 孤子當室者는 謂嫡室也니 冠衣不純采者는 異於諸子也라. 蓋父之於長子에 冠於阼는 以著代也며 服之三年는 以稱情也니 則嫡之於父에 其可以不加隆乎아. |
관과 옷에 흰색으로 가선을 두르지 않는 것이 바로 꾸미는 것이다. 고자로서 실을 맡았다는 것은 적실(正寢)을 맡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관과 심의에 색깔 있는 가선을 두르지 않는 것은 여러 아들들과 구별하는 것이다. 대개 아버지는 장자에게 대하여 〈주인의 위차인〉 조에서 관례를 행하는 것은 대를 잇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복을 삼 년간 입는 것은 정리에 맞게 한 것이니, 이런즉 적자가 아버지에 대하여 더 융숭하게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
4-50. 011701 幼子를 常視毋誑이니라. |
어린 아이에게는 늘 속이지 않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
[集說] 視는 與示同이라. 常示之以不可欺誑은 所以習其誠이라. |
[集說] 시는 보여 준다는 시자와 뜻이 같다. 항상 〈아이에게〉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진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습관화되게 하려는 이유에서이다. |
[大全] 長樂劉氏가 曰호대 幼子之性은 純明自天하야 未有外物生其好惡者니 無所學而不可成也라. 如金之在鎔에 惟人所範하며 如泥之在鈞에 惟人所模라. 故로 視之以誠信이면 則誠信이 篤於其心矣요 |
[大全] 장락유씨 : 어린아이의 성품은 하늘로부터 받은 그대로 순수하고 밝아서 외물에 대하여는 좋다거나 나쁘다는 구분이 없으니, 배우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이는 마치 쇠가 용광로에 있을 때 사람이 어떠한 틀을 쓰느냐에 따라 나오는 모양이 다른 것과 같고, 진흙을 녹로(轆轤)에 놓고 그릇을 만들 때 사람이 어떠한 모형을 쓰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에게 진실됨을 보여 주면 진실함이 그의 마음에 쌓이고, |
視之以詐僞면 則詐僞가 篤於其志矣니, 模範之初엔 貴得其正이니 則五事(注1)之用이 靡不出於誠而適於道也라. 故로 曰幼子는 常視毋誑이라 하니라. |
거짓됨을 보여 주면 거짓이 그의 마음에 쌓인다. 따라서 처음 가르칠 때에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 〈그렇게 한즉〉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성에서 비롯되어 도에 맞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에게는 늘 속이지 않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
역주1 五事 : 五事는 고대의 통치자가 수신할 때의 다섯 가지 일을 말한다.[一曰貌 二曰言 三曰視 四曰聽 五曰思 貌曰恭 言曰從 視曰明 聽曰聰 思曰睿] 《書經》 〈洪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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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5.금)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
첫댓글 2020년도를 보낼 즈음
대한민국의 위상을 올려놓은 2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뉴스투데이 2020년 올해 10대 뉴스 '포스트 코로나'
https://todaynews9.tistory.com/18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이쁜이들!
한명 누가 빠졌나?
세계 기록을 세우고 있는 努力派노력파 人才인재 靑年청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