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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밑에서 제비창고 공사를 보시다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 제업창골(帝業創谷) 천년도읍지(千年都邑地)...해월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 https://cafe.naver.com/godnjf12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guriever.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안동에서 영주 방향으로 4~5Km쯤 가면 안동 제비원 연미사(燕尾寺) 미륵(보물 115호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석불상- 제비 몰러 나간다!)이 나온다. 제비원이라는 원(院)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인근 한티재에 역원(驛院)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동 제비원(성주풀이=성주굿의 발상지)소주도 유명하다. 안동 제비원을 중심으로 북후 서후 남후면이 있어, 제후들이 빙 둘러싸고 옹위하고 있는 것이 특기할만 하다. . 천하신명을 제비창고로 몰아들이시다 (동곡비서 pp27-28) @ 하루는 형렬을 불러 일러 가라사대 "형어상천 형어지(形於上天 形於地)요 기양간자 인생(其兩間者 人生)이라. 만물지중(萬物之中)에 유인(惟人)이 최귀야(最貴也)라. 천지생인 용인(天地生人 用人)하니 불참천지용인지시(不參天地用人之時)면 하가왈 인생호(何可曰 人生乎)"라 하시고, "세계대운이 조선으로 몰아들어오니 만불실시(萬不失時)하라. 그러므로 사람이 가름하느니라. 남아가 출세하려면 천하를 능히 흔들어야 조화가 생기는 법이라. 이 세상을 신명조화 아니고는 고쳐낼 도리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형렬이 그와 같은 말씀을 조금 의심하는 차에, 하루는 형렬을 불러 가라사대 "오늘은 천하신명을 제비창고로 몰아들일 참이니 놀래지 말라. 제비창고 아니고는 나의 일을 할 수 없다." 하시고, 조금 있다가 형렬을 보고 "놀래지 말고 문 밖을 내다보라." 하시기로 형렬이 나서서 볼라 하니 "눈을 감고 보라." 하시기로 눈을 감고 바라보니, 운무가 자욱한데 기치검극이 볕 저리듯 한대 귀귀괴괴한 신장들이 말을 달리여 동구로 몰아 제비창고로 달려드는 통에,어찌 놀랫든지 "그만 보사이다." 하고 눈을 뜨니, 선생님이 웃으시며 "무섭느냐. 거짓말 같제야. 일후에 제비창고를 보라. 구중궁궐이 삼때같이 들어선 뒤에 정신 부족한 놈은 보기가 어려우리라. OOOO을 잘 기억하라." 그 후부터는 형렬이 신병소리만 하시면 더욱 열열 복종하는지라. (동곡비서 pp27-28) 감나무 밑에서 제비창고 공사를 보시다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 제업창골(帝業創谷)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33) @ 임인년 여름 하운동 제비창골 김형렬의 집에 계실세, 하루는 형렬에게 물어 가라사대 "이 골짝의 이름이 무엇이라 부르느냐." 하시니, 형렬이 대답하여 가로대 "전부터 부르기를 제비창골(谷)이라 하옵니다." 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는 그릇된 부름이로다. 이곳은 제비창골이 아니요 제업창골(帝業創谷)이니라." 하시니라. (동곡비서 p28) @ 하루는 형렬을 보고 "쇠머리 한 개를 사오고 떡을 찌라." 하시고 "제비창고 일을 해야 한다." 하시고, 감나무 밑에 음식을 차리시고 '만수'를 부르시니 이러하시니라.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 솔씨 받아 소평 대평 던지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서 왕장목이 되었구나 청장목이 되었구나. 태평전 대들보가 되어 어라 만수 어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이 땅으로 설설이 내립소사. 시(始)도 여기서 일어나고 종(終)도 여기서 마치리라." 하시고, 금산사를 넘어다 보시고 "여기를 큰 집으로 할까. 여기를 적은 집으로 할까. 제비새끼 치는 날에 제비창고 가득찰 거라." 하시고 쇠머리를 땅에 묻으시니라. (동곡비서 p28) - 증산 상제님 친필 유서(단주수명서) 연자강남구심주 종시일신성인덕(燕自江南尋舊主 終是日新聖人德) 제비는 스스로 강남의 옛 주인을 찾으니, 결국 이 모든 것이 성인의 덕으로 날로 새로워지는구나! 대법천사님 유서 김형렬 김자현 가 보존서에 (大法天師님 遺書 金亨烈 金自賢 家 保存書) 만물지중(萬物之中) 유인최귀야(惟人最貴也)라 천지인생(天地人生) 용인(用人) 불참어 천지용인지시(不參於天地用人之時) 하가왈(何可曰) 인생호(人生乎)아 세계대운(世界大運)이 조선(朝鮮)으로 모아 들어오니 만부실시고(萬不失時故)로써 사람이 가름하느니라 이 세상(世上)을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는 고쳐낼 도리(道理)가 없느니라 하시다. 형열(亨烈)이 그른 말씀은 조금 의심(疑心)하였는지라 하루는 형열(亨烈)을 불러 오늘은 천하신명(天下神明)을 제비창고로 몰아 들일 참이니 놀라지 말라 제비창고가 아니고는 나의 일을 할 수 없다 하시고 조금 있다가 형열(亨烈)을 보고 놀라지 말고 문밖을 내다보라 하시기로 형열(亨烈)이 나서서 볼려고 하니 눈을 떳다가는 간담(肝膽)이 떨어질 참이니 눈을 감고보라 하시기로 눈을 감듯 하고 보니 운무(雲霧)가 자욱한데 기치금극이 별(星) 밖히듯 한데 기기괴괴(奇奇怪怪)한 신장(神將)이 말을달려 동구(洞口)로 모라 제비창고로 달려드는통에 어찌나 놀랐던지 그만 보사이다 하고 눈을 뜨니 대선생님(大先生任)이 웃으시며 두렵느냐 거짓말 같지- 일후(日後)에 제비창고를 보라 구중궁궐(九重宮闕)이 삼(麻)대 같이 들어서니 정신부족(精神不足)한 놈은 보기가 어려우리라 삼신일목을 잘 기억(其億)하라 그 후 부터는 형열(亨烈)이 신병(神兵)소리만 나오면 더욱 일일복종(一一伏從)하더라 하루는 형열(亨烈)을 보고 소(牛) 머리 하나 사오고 떡도 쪄라 하시고 제비창고 일을 해야 한다 하시며 나무 밑에 음식(飮食)을 차려놓으시고 만수(萬壽)를 찾으시되 이러하시니라 경상도(慶尙道) 안동(安東)땅 제비원의 솔(松)씨받아 소평대평(小坪大坪) 던졌드니 그 솔(松)이 점점(漸漸)자라 황장목(木)이 되었구나 청장목이 되었구나 대명전(大明殿) 대들보가 되었구나 어라만수(萬壽) 어라대신(大神)이야 대활연(大活然)으로 설설이 이 땅으로 내립소서 시(始)도 여기서 일어날 것이요 종(終)도 여기서 끝이리라 하시고 금산사(金山寺)를 넘어다보시며 여기를 큰집으로 할까 저기로 작은 집을 할까 - 제비새끼 치는 날에 제비창고 가득찰 걸 하시고 소머리를 묻었더라 하루는 형열(亨烈)이 대선생님(大先生任) 출세기일(出世期日)을 물으니 응 - 하시고 나의 말은 듣기가 어렵다 제비치고 눕히고 엎치고 뒤치고 들이치고 내치고 좌(左)로 돌리고 우(右)로 돌리고 알겠느냐 똑똑히 들어라 금산사(金山寺) 밑에 어찌 용화동(龍簧)일까 또 가라사대 어찌 제비창고일까 옛집을 다시 찾는다는 말이다 가라사대 만수대(萬壽坮) 성주(成主)풀이 만수(萬壽)가 들어오니 성주풀이를 알아두라 하시니라 성주풀이 경상도 민요 우리 민속에서, 집 터를 맡은 신령인 성조왕신과 그의 아내인 성조 부인은 집을 짓는 일로부터 일문 일족의 번영에 이르기까지 그 집의 길한 일이나 흉한 일을 도맡아 직접으로 다스린다고 믿어 왔다. 〈성주 본풀이〉라고 하는 서사적인 긴 노래가 있는데, 〈성주풀이〉(1)는 단순한 노래조로 된 것이다. '경상도 노래'다운 꿋꿋한 멋과 시원스런 느낌을 준다. 굿거리 장단에 맞춰 부르는데, 춤을 곁들이기도 한다. 5음 음계로 되어 있으며 장절 형식이다. 사설은 다음과 같다. (받는소리) 에라 만수(2)/에라 대신(3)/대활령(4)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에라 만수/에라 대신이여/놀고 놀고 놀아 봅시다/아니 노지는 못허리라 1 /낙양성(5) 십리허(6)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영웅 호걸이 몇몇이며 절대 가인이 그 뉘기며/ 운하춘풍은 미백년(7) 소년 행락이 편시춘(8)/아니 놀고 무엇하리/한송정 솔을 베어 조그맣게 배를 무어(9) 만만고 띄워 놓고/술이며 안주 많이 실어 술렁술 배 띄어라 강릉 경포대로 가자 /에라 만수 에라 대신/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에라 만수야/에라 대신이로구나 2/이 댁 성주는 와가(10) 성주, 저 댁 성주는 초가 성주/한테 간에(11) 공댁 성주, 초년 성주, 이년 성주/ 스물일곱에 삼년 성주, 서른일곱 사년 성주/마지막 성주는 쉬흔일곱이로다 /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에라 만수/에라 대신이로구나 3/성주야 성주로다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원(12)이 본이 되야/ 제비원에다 솔씨 받어 동문 산에다 던졌더니/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밤이며는 이슬 맞고 낮이며는 변(볕)에 쐬어/청장목 황장목(큰나무)도리지둥(둥근기둥)이 다 되었구나/에라 만수 에라 대신/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4/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세월이 여류허여 돌가나 봄 다시 와/천정세월인정수(16)요 춘만건곤북만가 (17)/어이타 세속 인심 나날이 달라 변천이로다/에라 만수 에라 대신/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1) 성주풀이 : 경기도 지방의 무속에서는 '황제풀이'라고도 한다. 황제는 중국의 고대 임금인 요순씨를 뜻하는데, 요순씨는 나무를 써서 배, 활, 집 따위를 만들어 사람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한 전설의 임금이다. (2) 만수(萬壽) : 오래오래 삶. 여기서는 만수의 신을 뜻하는 듯하다. (3) 대신(大神) :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은 큰 신. (4) 대활령(大活令) : 크게 사람을 살릴 영. '대한량(大閑良)'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5) 낙양성 : 중국의 하남성 북쪽에 있는 옛도읍지. 여기서는 '서울'의 뜻으로 쓰였다. (6) 허(許) : 그쯤 되는 곳. (7) 운하춘풍미백년(雲霞春風未百年) : 봄에 이는 구름과 노을과 봄바람은 백년이 못 된다. 곧, 좋은 인생은 잠깐이다. (8) 소년행락편시춘(少年行樂片時春) : 젊어 즐겁게 노닐 시간은 짧은 봄철과도 같으니. (9) 무어 : '묶어'의 방언. (10) 와가(瓦家) : 기와집. (11) 한테 간에 : 알 수 없다. (12) 제비원 : 안동시에서 서북쪽으로 6킬로미터쯤 떨어진 이천동에 '연미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옆에 큰 미륵이 있는 일대를 가리킨다. 미륵의 오른쪽 어깨 너머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 솔에서 솔씨가 온 나라에 퍼져 성주가 되었다는 전설 때문에 이곳이 성주신의 본향이라고 전해진다. (13) 변 : 볕. (14) 청장목, 황장목 : '장목(長木)'은 건축재로 쓰이는 굵고 긴 나무를 통틀어 일컫는 말인데, 푸른 장목은 말리기 전의 것이고, 누른 장목은 말린 뒤의 것이다. (15) 도리 : 서까래를 걸려고 기둥과 기둥 위에 돌려얹는 나무. (16) 천정세월인정수 : 하늘은 세월을 늘이고, 사람은 나이를 늘인다. (17) 춘만건곤북만가 : 봄은 온 천지에 가득하고 복은 집에 가득함. @@@@@@@@@@@@@@@@@@@@@@@@@@@@@@@@@@@ [ 안동 제비원 이천동 미륵불 전설과 "천년도읍지(千年都邑地)"성주풀이 ] 제비원과 법룡사의 절짓기 시합 안동시내에 법룡사는 절이 있었다. 6.25때 타버려서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신라때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법룡사 뒷편에 천년도읍지(千年都邑地)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던 걸 보아 사찰의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다래 덩굴이 절 둘레를 에워싸고 있어서 사람들이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왔다고 한다. 법룡사의 유래담은 제비원의 그것과 관련되어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에 절을 짓는 기술이 비슷하게 뛰어난 두 대목이 있었다. 기술이 막상막하였기 때문에 서로 경쟁의식이 강했으며 이 나라 제일의 큰 대목이 되려고 늘 애썼다. 그러던 참에 법룡사와 제비원 절을 지으면서 내기를 하기로 했다. "자네가 법룡사를 먼저 짓느냐, 내가 제비원 절을 먼저 짓느냐 내기를 하세. 그래서 누가 이 나라 제일의 목수인지를 판가름하세.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는 자신 있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일세. 내가 법룡사를 먼저 지어서 뒤편에다가 "천년도읍지(千年都邑地)"라는 현판을 달며는, 아마 그 서기(瑞氣)가 제비원까지 뻗칠 것이니 그렇게 알게." "자네 큰소리 치지 말게. 나는 제비원을 법룡사보다 먼저 짓고 한티재를 넘어 올테니 두고 보세." 이렇게 약속을 하고 각자 열심히 절을 짓기 시작했다. 제비원 절을 짓는 사람이 절을 하고 한티재 위에 막 뛰어올라가 보니 법룡사 뒷편에 "천년도읍지(千年都邑地)"란 현판 글씨가 광채(光彩)를 내고 있었다 . 그 서기가 한티재에 까지 비친 것이다." 법룡사를 지은 대목이 경쟁에서 이긴 까닭에 "예, 이놈아!" 하고 큰 소리로 호령을 하는 것이었다. 제비원 절을 지은 대목은 자기가 경쟁에서 진 것을 깨닫고는 "내가 자네한테 졌다. 그러나 내가 죽어도 내가 지은 절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한 내 이름도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소리쳤고 그리고 자기가 지은 절의 지붕위에 올라가서 밑으로 뛰어내렸다. 지붕에서 뛰어내리자 마자 제비가 되어 푸른 하늘 위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뒷 사람들이 이 절의 이름을 제비가 되어 날아갔다 하여 "연비원(燕飛院)"으로 지었다. 지금 법룡사는 불타 없어졌지만 아직도 연비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연비원은 현재 안동시 이천동 아랫지르네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제비원 미륵불도 이 곳에 있다. [출처] [思論]봉명조양(鳳鳴朝陽)으로 靑靑大林하는 신명행사(申命行事)에 대하여|작성자 장산 [新전설의고향]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 l 석불의미소 https://youtu.be/XM0iTZxJNo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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