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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본질과 파리 코뮌, 그리고 “국가와 혁명”
전우재
1. 서론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선거 제도가 바람직하냐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는 연비제와 위성정당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우리 선거 제도를 지적하시는 분들은 다른 많은 사례를 제시하십니다. 영미권에는 양원제가 있고, 독일에는 강력한 연비제가 있고, 일본에는 석패율제가 있습니다. 선거 제도와 관련한 토론은 대개 결과물 없이 끝납니다. 제도마다 장점만큼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예시로 양원제를 들어보겠습니다. 양원제는 상, 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한쪽만 통과하고는 논의가 멈추거나,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됩니다. 우리 의회도 입법이 지연되는 판에, 양원제가 도입된다면 입법이 상, 하원을 떠돌아다니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까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선거 제도가 바람직하냐를 떠나서 선거 자체가 바람직한가도 문제가 됩니다. 어려운 절차를 거쳐 뽑은 대표자는 지역민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사례는 너무 많지만 가장 와닿는 예시로는 이완영과 정희용이 있습니다. 두 국회의원은 지역 현안을 대표하지 않는 게 국익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직도 성주는 일주일에 두 번씩 몸살을 앓습니다. 이는 지역민이 뽑은 대표자가 반드시 지역민을 위할 필요 없이, 국익을 위해 자기 판단하에 행동해도 되는 자유 위임 철학에 근거합니다. 근거는 하나 더 있습니다. 지역 현안을 지역민이 참여하여 결정하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과 관료와 같은 사람들이 결정한다는 대의 민주주의 철학이라는 뿌리 말입니다. 우리 선거 제도는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선거가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평등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평등하지 않습니다. 지역에서 지역민이 사용할 시설을 건설하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평등한 논의가 불가능합니다. 우리 사회는 땅 가진 사람이 얻을 이익이 중요한 사회입니다. 땅 주인이 내 땅 내가 써서 내 돈 벌겠다는 사회입니다.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간섭하기 어렵습니다. 땅 주인이, 땅 주인들이 마음에 안 들면 시설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사용하는 시설이라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땅 주인과 땅 주인 되지 못한 사람들은 같은 지역민이지만 의사 결정에 평등하게 참여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지역구 국회의원인 배현진은 실버케어센터 건립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며 논평을 올렸습니다. 실버케어센터는 65세 이상 노인성 질환 환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시설입니다. 혐오 시설이기도 합니다. 땅 가진 사람과 땅 못 가진 사람이 평등했다면 논의가 전자만을 위해서 이루어졌을까요 배현진은 지역민을 위했습니다. 지역민이 낸 목소리와 여론에 귀 기울여 지역 현안을 처리했습니다. 평등하지 못한 구성원들 사이에서 생겨난 여론이었지만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또한, 평등하지 않습니다. 참여와 평등이라는 두 글자는 가나다순으로 참여가 먼저이나, 그 구조를 살펴보면 평등이 먼저 옵니다. 평등하지 못하니, 참여하기도 어렵고, 참여하더라도 의사결정에 비중이 달라집니다. 또 다른 사례를 봐도 저 문제가 제기됩니다. 대학교 기숙사를 짓느냐 마느냐에 관해 주변 원룸 건물주들과 학생들의 의견이 대등하지 않고, 발전소와 쓰레기 매립지 등 여러 혐오 시설을 짓는 데에는 심지어 지역별로 의견이 대등하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깃발로 내세웁니다. 자유나 평등처럼 여럿 숭고한 단어를 열거합니다. 의문이 듭니다. 과연 우리는 헌법 등지에서 내세우는 논리와 철학대로 살고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그 적용에서 모순을 보입니다. 논리와 철학이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주주의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온 건지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지금 민주주의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과거 있었던 사건은 무엇인지 그 역사와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 사건이 있겠으나 저는 세 가지 사건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는 민주주의 고전으로 분석되는 그리스 사례, 둘째로는 파리 코뮌 사례, 마지막으로는 앞의 두 사례를 분석한 레닌의 저서 “국가와 혁명”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민주주의가 모순을 해결하고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 어떻게 해야 참여와 평등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좋은 참고를 얻었으면 합니다.
2. 그리스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어디서 왔느냐에 관해서 그리스를 많이 언급합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제일 먼저 사용한 곳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주민을 뜻하는 데모스와 통치라는 크라토스라는 말을 합쳐 만든 말입니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추첨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내일 내가 맡을 역할을 오늘 다른 사람이 하더라도, 내가 따르는 게 민주주의라는 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바가 있습니다. 구성원들 모두가 평등하게 역할을 수행하되, 추첨을 통해 다음 사람을 구하게 되니,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런 복잡한 정치체제가 나타난 건 아니었습니다. 평민들이 요구하고, 받아들이며 개혁이 진행되는 양상을 통해 정치체제가 복잡해집니다. 생산력이 발전해 농업 따위에 종사하던 평민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됩니다. 평민들은 커진 비중만큼 더 많은 정치 참여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참주가 등장합니다. 귀족 계급에 평민과 참주는 위기를 불러온 셈입니다. 귀족 계급은 여러 개혁을 통해 평민들이 요구했던 개혁을 일부 진행합니다. 수확량에 따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개혁을 진행한 솔론, 오늘날의 지역구 대표에 해당하는 개혁을 진행한 클레이테네스, 관료에게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한 페리클레스가 아테네 민주주의를 만들어갑니다.
아테네로 대표되는 그리스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점은 특정 집단만이 평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솔론은 소득을 기준으로 구성원을 네 부분으로 분할해, 가장 소득을 많이 올리는 집단 구성원만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장 낮은 등급 구성원은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후대에 페르시아가 쳐들어오고,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하층민의 비중도 커져 정치 참여도 확대되기는 합니다. 낮은 등급 구성원인 테테스에게는 정치 참여 기회가 생기지만 노예에게는 끝끝내 정치 참여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유민은 나뉜 등급 그 안에서는 평등했습니다. 노예와 자유민은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자유민만의 민주주의이고, 구성원 전체에게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아테네는 분명 귀족이나 왕이 다스리는 공동체는 아니었습니다. 다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통치 체제였습니다. 그 다수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노예는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관료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등 나름대로 농업에 종사하는 구성원과 정치 행정에 종사하는 구성원을 평등하게 만들고자 했지만, 그 재원은 평등하지 않은 노예에게서 나왔습니다. 특정 구성원들끼리만 평등하고, 다른 구성원들은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구성원을 평등하지 않게 부릴까를 특정 구성원들이 논의할 때만 민주적인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현대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국정 운영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했었다는 점입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추첨을 통해 비교적 많은 구성원에게 정치 참여와 행정 참여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하고, 내일은 남이 합니다. 내일 남이 하더라도 나는 남을 따르고, 남도 나를 따릅니다. 소수 엘리트가 독재하는 게 아니라, 다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민주적인 체제였습니다. 이건 다수끼리 서로 평등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평등했다고는 하나 등급 안에서 평등이고, 계급 안에서 평등이었다는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그 평등 또한 노예계급이 만들어준 평등이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는 존재했으나, 구성원들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아테네가 쇠락한 이후에도 아테네 민주정과 유사한 정체가 나타납니다. 지배계급 안에서는 서로 평등하되, 피지배계급과는 평등하지 않은 정체가 공화정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3. 파리 코뮌
맑스는 파리 코뮌을 극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하층과 중층이 노동자 혁명 주위에 공공연히 집결했다고 말입니다.
민주주의 정체로 나라를 꾸려가던 그리스 폴리스들은 마케도니아, 헬레니즘 제국, 로마를 거쳐 쇠락했습니다. 뒤이어 나타난 로마는 민회와 같은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민회는 민중을 대변하는 의회와 같은 기관이었으나, 오늘날의 하원이나 국회와는 달랐습니다. 간혹 민회를 통해 개혁 입법을 진행하려는 정치인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정치인들은 원로원을 운영하는 귀족 세력에게 대개 패배합니다. 간혹 민회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로마 지배자 자리를 꿰찬 인물이 나타났지만 민중 세력의 인기를 등에 업었을 뿐 민중의 이익을 위해 싸우던 인물들은 아니었습니다. 서로마가 망하고, 봉건 게르만 국가들이 나타납니다. 노예제가 망하고 봉건제가 들어섭니다. 과학 기술과 생산력이 발전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생산 양식이 변합니다. 생산력이 더욱 발전하자, 자본제적 생산 양식이 나타납니다. 시민 계급, 자본가 계급이 나타납니다. 국왕이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부유한 도시에 자치권을 하사합니다. 상공업에 종사하는 자유 도시민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커집니다. 자유 도시민들이 끼치는 영향력과 봉건 질서, 군주국의 질서가 서로 충돌합니다. 이런 충돌에서 생겨난 움직임이 바로 프랑스 혁명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여러 세력이 봉건 질서 타도를 위해 참여했지만, 주도한 세력은 시민 계급이었습니다. 시민 계급은 평등 가치를 내걸고 많은 계급에 참여를 독려합니다. 혁명이 성공합니다. 성공하고 나니 평등을 강조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정치 부문에서 평등을 이뤘으니 이제 경제 부문에서 평등을 이룰 차례가 왔습니다. 시민 부르주아 계급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자기 재산을 불리기 위해 재산 소유의 자유를 목적으로 싸웠는데, 그 자유를 빼앗길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 계급은 평등보다 자유를 더 강조하게 됩니다. 봉건제 맞서 평등은 주장했지만, 재산을 기준으로 한 차별을 함께 말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됩니다. 시민 계급은 평등과 참여를 확대할 수 있을 거라며 사람을 모았지만, 반쪽짜리 평등과 참여만을 대가로 되돌려주었습니다.
파리 코뮌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제 군주에 항거해 일어났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대통령 나폴레옹 3세가 일으킨 쿠데타로 제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엠스 전보 사건 등을 이유로 독일과 전쟁을 벌였고, 패배하여 포로로 잡힙니다. 왕당파 세력은 항복했으나 민중 세력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왕당파 세력으로 구성된 정부는 파리 시민에게 항복했으니 무장을 해제하라고 요구합니다. 파리 시민들이 거부하고 자치구 코뮌을 이룹니다. 파리 코뮌이 일어난 배경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일어난 파리 코뮌은 이전에 일어났던 혁명과 달랐습니다. 시민 계급이 주도하는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하층 계급이 주도했습니다. 민중 세력이 주도했기 때문에 시민 계급이 주도했을 때보다 더 급진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었고, 오늘날 참고할 수 있는 여러 진보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파리 코뮌이 가진 문제의식은 전제 군주제냐 공화제냐가 아니었습니다. 기존 국가 정체가 무슨 역할을 하는 거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참여와 평등을 위해서 공화국을 세웠는데, 정작 이전 혁명을 주도한 시민 계급은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봉건 왕당파 세력과 대립할 때 민중을 불러와 자기편으로 써먹을 뿐이었습니다. 봉건 왕당파 세력도 이와 같았습니다. 시민 계급과 대립할 때 민중을 불러와 전제 개혁과 같은 개혁 입법으로 민중을 매수하려 했습니다. 국가가 누구 편에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구성원 모두를 평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게끔 하는 기관이 맞기는 하냐는 질문이 중요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프랑스는 체계적인 관료제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관료제와 상비군을 정비하고, 행정의 중앙집중을 이뤘습니다. 이렇게 봉건 사회에 대항했지만,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모두에게 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전의 전제군주정과 본질 부분에서 차이가 없었습니다. 시민 계급은 구성원 모두가 평등해지는 걸 막기 위해 국가를 활용해 민중을 지배하고, 그 지배를 영속화하기를 원했습니다. 파리 코뮌은 지배 영속화에 반대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진행합니다.
“파리에서는 소유자들이 도망가서 수많은 작업장들과 매뉴팩처들이 폐쇄되었다. 이러한 일은 산업자본가들의 낡은 수법인데, 이들은 자신들이 노동의 조건으로서 이윤을 노동으로부터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노동을 모두 중지시키고 노동자들을 도로로 쫓아내도록 ‘정치 경제학 법칙들의 자연발생적인 작용에 의해’ 자격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승리를 거둔 혁명이 자신들의 ‘제도’의 ‘질서’를 위협할 때마다 인위적인 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낡은 수법이다. 코뮌은 아주 현명하게도 코뮌 위원회를 임명하였는데, 다양한 직종들에서 선출된 대표자들과 협력하여 이 위원회는 버려진 작업장과 매뉴팩처들을 포기하고 간 자본가들에게 약간의 보상금을 주고 노동자들의 협동조합들에 넘겨줄 방법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4월 16일).(이 위원회는 방기된 작업장들의 통계도 작성해야 한다).” (맑스엥겔스 선집 4, 박종철출판사, 1995, P3-4)
시민 세력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작업장을 내버려 두고 도망칩니다. 코뮌은 그런 작업장을 접수해 코뮌 전체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 밖에도 혹독한 야간 업무를 중지하고, 임금 체불을 강력히 단속합니다. 전당포를 중지시키고, 교과서 값을 받지 말라는 조치를 시행합니다. 사적 재산을 소유할 자유는 이태까지 구성원들이 평등해지는 걸 막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걸 막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코뮌은 파리의 여러 구에서 보통선거권을 통해 선출된 시의원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책임을 지고 있었으며 언제라도 소환될 수 있었다. 그들의 대다수는 물론 노동자들이거나 노동자계급의 공인된 대표자들이었다. (...)지금까지 정부의 도구였던 경찰은 곧바로 그 모든 정치적 특성을 잃어버리고 책임을 지며 언제나 소환 가능한 코뮌의 도구가 되었다. 다른 모든 행정부문의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코뮌의 성원들을 비롯하여 공직자는 당연히 노동자 임금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았다. 국가의 고관에게 주어졌던 특권과 교제비는 고관들 자체와 함께 사라졌다. (...)코뮌은 구정부의 물질적 권력의 도구였던 상비군과 경찰을 일단 제거하고 나서 곧 정신적 억압 도구인 성직자 권력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법관들도 가시적인 모든 독립성을 상실하였다. 앞으로는 그들도 선출되고 책임을 지며 소환될 수 있어야 했다." (국가와 혁명, 돌베게, 2015, P80)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는 선출직이 관료를 대신합니다. 부르주아 시민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게 됩니다. 경찰과 같은 공권력은 주인이 변해 코뮌의 도구가 됩니다. 전제군주정에서 공화정이 되는 변화와 코뮌은 달랐습니다. “한 기구를 다른 종류의 기구로 바꾸어놓는 거대한 규모의 대체”입니다. 전제군주정과 공화정은 시민 계급의 도구이거나 봉건 세력의 도구였습니다. 경찰과 군대, 관료를 이용해 민중을 옥죄고 지배를 영속화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코뮌이 조치하듯 공권력과 관료집단을 언제든 소환, 파면할 수 있게끔 하고, 특권을 폐지한다면 민중을 옥죌 수 없습니다. 물리적인 억압인 경찰을 제거하고 이데올로기 억압인 성직자를 몰아낸다면 지배를 영속화할 수 없습니다. 코뮌은 공화국이나 전제군주국과는 다르게 피지배계급의 도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지배억압을 끝내는 도구가 됩니다. 본질에 있어 정 반대가 됩니다.
"코뮌은 의회적 단체가 아니라 행정과 입법을 동시에 맡아 일하는 단체일 수밖에 없었다." 보통선거권은 3년 또는 6년에 한 번씩 지배계급의 어떤 성원들이 의회에서 인민을 대표하고 인민을 짓누를 것인가를 결정하는 대신에 마치 개인적 선거권이 고용주가 자기 사업에 필요한 노동자나 감독, 부기 계원들을 선발하는 데에 쓰이듯이 코뮌으로 조직된 인민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앞의 책, P85)
코뮌은 공화제와 함께 기존에 진행된 대의제도 거부합니다. 기존 대의제는 행정과 입법이 분리돼 있어, 입안된 법안이 가지는 파급력과는 아무런 책임 관계가 없었습니다. 구성원을 대변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대의제를 폐지할 수는 없으니 대의제는 유지해야 했습니다. 대표하는 사람은 똑같이 뽑았지만, 입안과 행정에 책임을 지웠습니다. 언제든지 다시 소환, 파면할 수 있게끔 조치했습니다. 대의제가 가지는 단점을 다소 보완하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파리 코뮌이 가진 문제의식은 국가 파괴입니다. 참여와 평등을 확대하지 못하게 국가가 기존 지배계급인 봉건 세력이나 시민 세력만을 보호하고 있다면, 그 성격을 본질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참여를 막고 평등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은 자유와, 경찰 성직자와, 의회제였습니다. 사적 재산을 소유할 자유가 구성원들을 평등하게 만드는 걸 막고 있었고, 더 평등한 세상을 요구할 목소리를 경찰과 성직자가 막고 있었고, 더 많은 사람을 참여하게끔 하는 방법을 의회가 막고 있었습니다. 이 셋을 보호하는 게 국가가 하는 역할이라면,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바꿔버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4. 국가와 혁명
파리코뮌을 분석한 후대 사상가들은 파리 코뮌이 참여와 평등을 확대하기 위해서 국가 자체를 파괴하려 한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봉건 세력에서 시민 세력으로 지배 계급이 바뀌었을 뿐이고, 지배 자체는 계속된다면 참여와 평등을 다소 확대할 수는 있으나 다수 구성원에게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시민 계급은 의사 결정에 모든 계급이 참여해야 하고,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며 소수의 자리에 슬그머니 시민 계급을 끼워 넣습니다.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약한 민중을 배려하기 위해 주창되어야 할 이론이, 소수 특권 세력을 보호하는 데에 쓰이게 됩니다. 시민 계급은 국가를, 이전 아테네 자유민들이 그랬고, 봉건 영주들이 그랬듯이 자신들 사이에서 평등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헌신해주는 기구로 주인을 바꾸었습니다. 참여와 평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저렇게 소수 특권 계층을 보호하는 국가를 파괴해야 했습니다.
“국가와 혁명”은 저런 배경에서 등장했습니다. 맑스는 파리 코뮌에서 일어난 여러 조치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규정합니다. 참여와 평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저런 과정을 거쳐 사유재산을 가질 자유가 박탈한 다음, 모두가 평등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풍요를 보장해야 합니다. 후대 사상가들은 저 과정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했습니다. 쟁점은 기존 국가체제를 그대로 두고 점진적으로 나아갈지, 국가체제가 가진 성격을 뿌리부터 바꾸어야 하는지가 되었습니다. 레닌은 국가가 가진 성질을 근본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보는 쪽이었습니다. 레닌은 국가 기구를 그대로 두고도 민주적인 국가를 꾸려갈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프랑스에서의 내전”을 길게 인용하며 국가는 지배계급이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함을 다시금 논증합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파리 코뮌이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을 분석한 결과, 국가는 지배계급을 위해 구성원 다수가 의사 결정에 평등하게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레닌은 참여와 평등을 확대하기 위해서 민중, 특히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여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요구, 혁명을 일으켜야 함을 주장합니다. 시민 세력은 봉건 세력에 맞서 평등과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시민 세력이 주장하는 논리대로 가면 민중 세력, 노동자, 농민 계급에도 의사 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야 했습니다.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시민 세력이 계급을 지배하는 도구인 국가를 장악했기 때문이고, 그 국가를 운영하면서 민중을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국가 기구가 가진 성격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민중 세력, 즉 노동자 계급이 이전에 국가 기구를 사용하던 지배 계급을 역으로 지배해야 합니다. 지배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국가 기구가 바로 그 도구입니다. 국가 기구는 폭력적인 기구이고, 구성원 모두가 의사 결정에 평등하게 참여하는 걸 막는 기구입니다. 그런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 국가 기구를 활용해 자유, 경찰 성직자, 의회제를 부수고 성격을 바꾸어야 합니다. 불평등이 생겨나게 하는 원인인 사적 재산을 소유할 자유를 없애고, 참여 확대를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는 경찰과 성직자를 몰아내고, 법안에 책임지지 않고 지역민을 대표하지 않는 의회제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레닌은 이 셋을 국가 기구를 활용해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철저히 수행될 경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전화하게 된다. 국가는 더 이상 국가라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인민 자체가 자기들의 억압자를 억압한다면 "특수한 억압권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앞의 책, P81-82)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할수록, 국가권력을 수행하는 데 많은 부분을 담당하면 할수록 국가 운영에서 지대한 비중을 차지하려 싸울 필요가 줄어듭니다. 다수가 참여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조치를 진행한다면 평등한 정도가 더 커지게 됩니다. 과학과 생산력이 발달해 행정을 포함한 국가 업무가 세분된다면 꼭 특별한 사람이 국정 운영에 참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모든 구성원이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추첨을 통해 구성원들 모두가 돌아가며 도시 운영에 참여했습니다. 내일 남이 감투를 쓰더라도 나는 남을 따르고, 오늘 내가 감투를 쓰면 남이 나를 따릅니다. 평등한 참여가 확대되어 구성원 모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걸 목표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과거에는 과학 기술과 재화를 생산력이 낮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아니라 자유민이라는 일부 계급만 평등했고, 노예처럼 직접 생산을 담당하는 계급은 평등하지 못했습니다. 생산력과 과학 기술이 많이 발전했습니다. 특권 계급만을 평등하게 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습니다.
"인민 자체가 자기들의 억압자를 억압"한다는 말은 수많은 (이전의) 피지배계급이 국가기구 운영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지배받던 계급인 민중이 지배계급인 봉건 세력이나 시민 세력을 억압하고 끝내 계급 자체를 없애버린다면 더는 누군가를 억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누군가를 억압하는 데 쓰이고, 특정 계급만을 보호하던 국가기구는 쓸모가 사라집니다. 민중이 국가기구 운영에 많이 참여하면 할수록 계급은 더 빨리 사라지게 됩니다. 계급이 사라지면 억압도 사라집니다.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혁명”은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세상을 목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노예 계급이 헌신해 평등 수준을 맞추어준 자유민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1800년대 유럽에서 민주주의는 민중이 헌신해 평등 수준을 맞추어준 시민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민주주의는 구성원끼리 평등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철학입니다. 문제는 구성원의 테두리가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노예와 민중은 구성원이란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실제 의사 결정은 누군가 대신 평등을 맞추어 준 자유민과 시민이 진행했습니다. 구성원들을 평등하지 못하게 막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그 요소를 보호하는 국가 기구를 다른 무언가로 바꿔버리는 과정을 진행한다면 평등한 참여는 확대될 수 있습니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그 과정으로 꼽고 있습니다.
5. 결론
민주주의는 다수가 참여해야 한다는 철학입니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말하는 다수에는 노예가 빠졌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말하는 이념입니다. 왕과 귀족을 위시한 봉건 세력을 몰아낸 시민 부르주아 계급은 평등이 자유를 침해할 기미를 보이자, 평등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재산을 소유할 자유를 남기고 정치 참여를 요구할 자유를 억압하고 은폐했습니다. 노예를 다수에서 빠트리고 자유, 평등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막는 데에는 국가 기구가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도리어 특정 구성원 집단이 특정 구성원들을 평등하게 만들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진행했습니다. 아테네 도시 국가는 노예가 자유민을 위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자국 노예가 자유민을 위하도록 강제하는 방법만으론 부족함을 느꼈는지, 페르시아가 침략해올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며 델로스 동맹을 창립하고 이웃 국가에서 보호비를 갈취해갔습니다. 자국 노예가 자국 자유민을 평등케 만들도록 강제했을 뿐만 아니라, 타국 자유민과 노예를 이용해서 자국 자유민끼리 평등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시민 계급은 재산 소유를 자유로이 하기 위해 평등을 요구하는 상퀼로트들을 격퇴합니다. 자유를 침해하고 경찰 성직자를 박해하며 의회제를 분쇄한 파리 시민을 처형했습니다. 이 억압은 국가 기구를 통해 수행됐습니다. 국가 기구가 특정 구성원들만 평등을 누릴 수 있게 다른 구성원을 억압했습니다.
의사결정에 평등한 참여를 확대하려면 평등과 참여를 막는 국가 기구를 접수해야 합니다. “국가와 혁명”, “프랑스에서의 내전”은 누굴 위해 헌신토록 하는, 평등을 막는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참여 확대와 평등 확대는 국가 기구를 활용해 이룰 수 있습니다. 시민 계급과 민중은 계급이 달라 서로 평등하지 않습니다. 국가 기구가 시민과 민중이 평등해지는 걸 막고 있습니다. 평등하지 않다면 참여할 수 없고, 참여할 수 없으면 평등해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면 헌신하는 사람과 헌신 받는 사람은 평등해질 수 없습니다. 그 헌신을 강제하는 국가 기구를 바꾸어야 합니다. 국가 기구가 가진 성격과 성질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1800년대 유럽에서 있었던 파리 코뮌이 행한 여러 조치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평등한 참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참여와 평등이 민주주의가 본디부터 내세우던 논리입니다. 평등치 못하도록,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 장애물을 최대한 제거해야 평등한 참여를 최대한 확대할 수 있습니다. “국가와 혁명”, “프랑스에서의 내전”은 그 국가 기구가 장애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국가 기구가 계급간에 지배를 수행하며, 평등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국가 기구를 제거하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 가야 합니다. 그 과정은 피지배계급인 민중 세력이 지배계급인 시민 세력과 봉건 세력을 지배하는 과정이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이고, 파리 코뮌입니다.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을 지배한다면 지배계급은 사라지고, 모두가 피지배계급이 되고, 지배 피지배 개념이 의미 없게 됩니다. 계급이 사라진다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기능하던 국가 기구는 쓸모가 없어집니다. 평등한 참여를 막던 장애물인 국가는 비로소 사라집니다.
국가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면 의사 결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정도가 최대로 보장됩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사라져야만 최대로 기능할 수 있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가진 특수한 성질 때문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일 해주어 구성원끼리 평등하다면 민주주의지만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누군가 대신 일해주는 사람이 없이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때라야 참된 제 뜻을 되찾게 됩니다.
참고문헌
한국정치연구회 사상분과 편저. “현대민주주의론 1” 1992, 창작과비평사.
레닌. “국가와 혁명” 2015, 돌베개.
나종석.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제도의 이상과 현실에 대하여" 사회와 철학 no.8(2004) : 7-57.
정주환. "그리스 민주정치와 선거제도 - 아테네 민주주의의 형성과 추첨제를 중심으로 -" 법학논총 40, no.1 (2016) : 159-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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