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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그로쓰
The Case for Degrowth(2020)
요르고스 칼리스, 수전 폴슨, 자코모 달리시, 페데리코 데마리아 지음, 우석영, 장석준 옮김, 산현재 2021
Q/A 묻고 답하기
녹색 성장
(1) 경제가 성장하여 부유해지면, 자연환경에도 피해를 덜 주지 않나?
그렇지 않다. 부유한 경제체제는 가난한 경제체제보다 자원을 더 많이 사용하고 (1인당)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 부유한 국가들의 경제는 GDP 단위로 계산할 때 자연환경에 영향을 덜 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1인당 총 GDP를 더 많이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1인당 자원량은 더 많고, 배출하는 1인당 폐기물량도 더 많다. 국가들은 발전하면서 자연환경을 더 많이 훼손하지만 부의 수준을 알려주는 특정 수치에 도달하면 자연환경을 덜 훼손하게 된다는 이른바 ‘자연환경 쿠즈네츠 가설Environmental Kuznets hypothesis’은 통계자료들에 의해 온당히 그 신뢰성을 꾸준히 상실해왔다. 일부 중위소득 국가들은 부유한 국가들보다 더 이른 시기에 환경 표준을 채택하고 있다. 탄소배출 같은 거대한 문제의 경우, 부에 따른 경향성에 변화는 없다. 즉, 부유해질수록 한 국가는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 더욱이 고소득 국가들은 자원과 산업 생산품은 수입하고 폐기물은 수출하면서, 자기들이 짊어져야 할 자연환경 비용을 더 가난한 국가들에 전가하고 있다.
(2)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원 사용량을 계속 줄여가면서 GDP를 계속해서 늘릴 수는 없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세계 물질 유동성global material flows은 매년 1.78%씩 증가했다. 이것은 세계 GDP 성장률보다 느린 추세이지만, 지속적 증가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세계 물질 흐름량은 매년 3.85%씩 증가했고, 이것은 세계 GDP보다도 빠른 증가율이었다. 현재, 경제체제 간 1% GDP 차이는 물질 사용량의 0.8% 차이에 해당한다. 미국 등 일부 고소득 국가들의 국내 자원 사용량은 정점을 찍고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자원 투입량이 세계화를 통해 아웃소싱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물질량을 수입품을 포함하여 계산할 경우, 그 물질 발자국material footprint은 GDP와 보조를 맞춰 계속 증가해왔다. (EU, OECD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미래가 과거와 같아야 하는 이유란 없다. 하지만 모든 모델 분석이 2050년까지 세계 물질 사용량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기술과 정책을 조율한다는 전제에서조차, 자원 사용량은 17%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3)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 경제에서는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수록 자원은 더 저렴해지고, 사용되는 자원의 총량은 증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제성장의 본질이다. 즉, 노동 생산성과 자원 생산성은 자원을 해방하지만, 그 자원들은 더 많은 가치를 뽑아내면서 더 많이 생산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투입된다. 특정한 응용이나 보존 조치로 인한 효율성 향상이 언제나 부정적 효과만 일으킨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자원 효율성이 더 높은 경제체제는 물질 사용량이 더 많은 경제체제이기도 하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우리도 자원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것 보다는 더 적은 자원으로 더 적게 생산하는 효율성을 요청한다. 더 많은 것은 더 많은 가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효율성을 실현하기 위한 한 가지 바람직한 방법은, 자원이나 오염물질의 (사용/배출) 상한선 또는 의무적 감축이라는 제한과 효율성 향상을 결합하는 것이다.
효율성 향상도 무한정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에너지·자원 효율성에는 상한선이 있고, 그것을 초과하는 경제성장은 더 많은 에너지 (자원) 사용을 유발한다. 효율성이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느냐만이 아니라 얼마나 더 빨리 향상될 수 있느냐에도 한계가 있다. 냉장고나 자동차 같은 일부 상품의 에너지 효율성은 지난 35년간 매년 2%씩 증가(평균 성장률에 근접)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빨리 개선될 수는 없다. 항공 여행 효율성에는 큰 변화가 없는가하면, 발전소는 매년 겨우 1%씩만 개선되었다.
(4) 오염시키는 자원을 청정자원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깨끗한 자원 역시 오염시킨다. 또한, 만일 경제가 성장하면 그만큼 자원 사용량도, 오염물도 증가하게 된다. 태양광과 바람은 석탄보다는 깨끗하지만,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리튬이나 코발트를 사용하는 배터리에 저장된다. 이러한 청정 기술을 사용하여 파리 기후 협정의 목표를 충족시키려면 희소 물질(지구를 파괴하는 광업과 정제 산업)에 대한 세계의 수요가 2050년까지 300%~1,000% 증가해야 한다. 진정한 목표는 더러운 선택지(화석연료, 가스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자동차 등)를 줄이는 것이지, 새로운 선택지를 그저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SUV 판매량 역시 마찬가지다. 태양광·풍력 발전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 그저 현행 시스템에 에너지를 더했을 뿐이다. 청정한 대체물을 늘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5) 비용만 제대로 부과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맞다. 오염자들은 오염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러나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바른 가격’ 같은 건 없다. 필요한 감축량에 맞게 충분히 높은 세율로 자원세와 탄소세가 부과되어야 한다. 현재 8달러에 불과한 탄소 1톤당 세금(일부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높은 세금 범위)을 2030년까지 100달러~5,000달러로 높인다면, 실질적으로 석유와 석탄을 금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경제의 속도가 느려질 것이고, 이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것은 현존 권력이 이런 일의 발생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성장은 값싼 것들에 의존해 있다. 문제는, 만일 오염 산업들이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활용해 지불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진짜 어려운 과제는 시장이나 가격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 하기 위해 현존 정치권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6) 정보와 아이디어만으로 경제성장을 할 수는 없나?
공상 과학 소설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니다. 로봇으로부터 먹을거리를 제공 받고 그리드에 꽂힌 채 잠을 자며, 자신들의 꿈의 세계에서 많은 자원을 사용하지 않은 채 많은 돈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정보통신 기술ICT의 엄청난 성장 덕에 자원 사용량이 감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ICT가 더 많이 발달한 국가가 더 큰 물질 발자국을 보이고 있다. 농업에서 산업으로, 서비스로 경제가 이동했고, 그에 따라 물질 발자국은 감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ICT 서비스는 자원·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서비스이며, 정보나 통신을 팔아 돈을 번 이들은 물질적 상품을 구매하거나 투자하는 데 돈을 사용하고 있다.(IT 사업가들이 소유한 전용 제트기를 생각해보라).
(7) 왜 순환 경제가 아니라 탈성장인가?
과다 발전된 현 경제를 순환 경제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제는 엔트로피적이어서 물건을 재순환시키고 재사용하거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려면 에너지와 (인간, 자연) 자원이 필요하다. 이 사이클의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순환 과정이 빠를수록, 에너지와 자원은 더 많이 사용된다. 산업혁명은 일종의 거대한 선형화 과정linearization이었다. 순환적이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물질 흐름으로 돌아간다면, 값싼 자원의 선형적 추출과 폐기에 맞게 설계된 현 경제의 속도는 (거의 확실히) 느려질 것이다. 그러니까 순환 경제와 탈성장은 함께 발전할 수 있고, 또 함께 발전해갈 것이다.
(8) 이미 일부 국가는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지 않은가?
맞다. OECD 36개국 중 18개국이 2005년에서 2015년 사이에 매년 평균 2.4%씩 탄소 배출량을 줄였다. 수입품을 계산해도 이러한 기본 패턴에는 변화가 없다. 이러한 감소는 의미심장하고 반가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계산에 따르면, 고소득 국가의 경우 매년 8%~10%의 빠른 탈탄소화가 요구되는 실정인데, 이 수치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성장 속도가 느린 경제일수록 배출량 감축하기는 더 쉽다. 만일 당신이 거주하는 국가의 경제가 매년 3%씩 성장한다면, 그 국가는 매년 3%씩 배출량을 줄이려면 경제 규모에 대비해 약 6%씩 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 매년 1% 성장하는 경제라면, 감축해야 할 양은 4%로 줄어든다.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기후변화에 대항하는 것은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하강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 위로 뛰어가는 것과 같다. 금세기가 끝날 무렵 세계 경제가 11배 성장하느냐, 아니면 현 상태를 유지하느냐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실제로, 탄소 배출량을 줄인 18개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적게 성장했다. (연간 에너지·GDP 성장률은 평균 1%였다.)
(9) 그린뉴딜GND을 위한 지출이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 같은데?
단기적으로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만일 GND가 화석 연료를 제거한다는 목표를 달성할 경우, 재생가능 에너지로 인한 소득 증대가 경제성장을 지속하기에 충분할지는 의문이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와 비교할 때, 태양광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 생산에 사용되는 에너지 단위 당 획득되는 에너지양은 더 적다. 순 에너지가 적다는 것은 노동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성장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GND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의미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 재원으로 가능한 사업들이 수익을 내면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GND는 경제성장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경제성장 없는 상태를 잘 관리하는 제도들이 적재적소에서 작동하는 한, 이러한 상태가 바람직한 상태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10) 왜 GDP라는 개념을 넘어서지 않는 건가?
GDP는 현 경제체제들이 의존하고 있는 것, 즉, 시장의 성장을 측정한다. GDP는 사회복지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며, 사회복지를 측정하더라도 형편없이 측정한다. GDP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뒤섞어버린다. 즉, 석유 유출 사건은 경제에 좋은데, 석유 청소에 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GDP는 무급 서비스도 계산에 넣지 않는다. 즉, 만일 당신이 당신의 변호사와 결혼하고 그녀가 당신과 관련된 사법 업무를 무료로 처리하면, GDP는 줄어든다. 참진보지표Genuine Progress Indicator같은 일련의 새로운 행복·번영 척도는 경제성장이 어떻게 사회들을 실패하게 하는지 밝히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성장의 종말 이후에 필요한 새로운 종류의 속도계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하지만 자동차 속도계를 바꾼다고 해서 자동차 속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자체도 바꿔야만 하는 것이다. 즉, 성장 본위 경제를 탈성장 경제로 대체해야만 한다.
(11) 복리福利의 성장은 왜 안 되나?
복리의 향상,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복리의 향상은 자원·에너지의 사용량을 줄이고, 자연환경에 대한 피해를 줄임으로써 달성된다. 이것은 물질적 성장, GDP 성장과는 다른 것이다.
(12) 좋은 것의 성장, 나쁜 것의 성장 지양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렇다. 선택적 성장 지양이 우리가 옹호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많은 좋은 것들(자연과 자원의 보존, 땅을 착취당하는 소외된 이들의 권리 증진, 노동시간 단축)이 GDP 경제의 속도를 늦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미래에 관한 전망과 더불어 추진되어야 한다. 좋은 것들(예컨대 태양광 패널) 조차도 나쁜 것(희귀 금속)을 사용한다. 따라서 어떤 좋은 것들을 얼마만큼 늘릴지가 조절되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중시하는 많은 것들(공공 보건, 공공 교육, 공공 육아)과 관련하여 필요한 것은 양적 증대가 아니라 질적 향상이다. 따라서 이 경우엔 성장 지양(탈성장)이라는 용어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13) 당신들이 말하는 소규모 솔루션은 대규모로 확장되나?
어떤 것은 가능하지만, 어떤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역성이 강화된 지역공동체 경제들이지, 모든 것이 소규모 또는 협동의 방식으로 생산되는 경제가 아니다. 탈중앙집중화된 생태적인 농업에는 산업형 농업과 비교할 때 농산물 단위랑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농업 과정에서는 화학 물질과 화석 연료도 더 적게 소비된다. 지역사회 지원 농업으로 제공되는 식량의 양을 늘리는 행위는 음식 폐기물을 줄이고, 육식을 덜 하고, 제철·지역산 농산물을 더 많이 먹는 등 다른 조정 행위들과 보완 관계에 있다. 지역사회 방식과 더불어 더 중앙집중화된 방식의 상품 생산(예를 들어 곡물과 광물 생산)이 병행될 가능성이 크다. 소규모의 대안들은 회복탄력성을 보완하고 증대한다. 도시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만인의 영양상 필요를 충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아니었다면 비행기나 배로 먼 곳에서 수송되었을 상당량의 제철 채소들을 재배할 수 있다. 도시 텃밭은, 예컨대 소련 몰락 후 경제가 붕괴했던 쿠바를 기근에서 구했다.
(14) 에너지 사용량을 그렇게 많이 줄인다는 게 가능할까?
가능하다.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의 ‘2000와트 사회비전The 2000-watt society vision’은 서구의 평균적 시민들이 2030년까지 자신들의 핵심 에너지 사용량을 연간 2,000와트(현 세계 평균치)로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생활 수준을 낮은 수준으로 바꾸지 않으면서도, 주로 교통, 건물, 에너지 생산 방식에 개입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효율성 제고 조치와 충분한 공급 조치를 결합함으로써, 독일 내 2인 가구의 일반적 전기사용량을, 현격한 라이프 스타일 변화 없이도, 75%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계산한다. 현재 평균적 미국인은 세계 평균 에너지 사용량의 6배 이상을, 평균적 스위스인은 3배를 준비하고 있지만, 인도인은 겨우 1/12을 소비하고 있다.
성장, 빈곤, 불평등
(15) 빈곤과 싸우려면 경제성장이 필요한 것 아닌가?
빈곤 퇴치는 경제성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최근 수십 년간 경이로운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4,000만 명의 미국인들, 1,100만 명의 영국인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각기 전체 인구의 12%와 17%로, 1970년대와 동일한 빈곤율이다. 2008년 기준, 고소득 국가(권) 총인구의 24%가 여전히 자국 내에서 허용되는 최저 수준 이하의 물질로 살고 있었다. 경제성장은 세계 빈곤을 줄이는 효과적인 메커니즘도 아니다. 부의 피라미드에서 하위 60%를 차지하는 세계 인구의 글로벌 경제성장으로 창출되는 모든 새로운 소득 가운데 겨우 5%만을 가져가고 있다. 경제성장의 결실은 지금보다 더 잘 분배될 수 있고, 이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생산량의 증대 아닌 유지나 감소 역시 가능하다. 경제성장은 재분배하지 않음의 구실이 되고 있는데, 재분배가 경제성장을 제한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경제성장이 만인의 여건을 향상할 것이라는 약속을 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성장 추구는 빈곤 퇴치를 막는 걸림돌이다.
(16) 불평등을 줄이려면 경제성장이 필요하지 않나?
전 세계적으로 개인 간 불평등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과거의 지나치게 낮았던 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경제성장이 있었음에도 국가 간 불평등, 국가 내 개인 간 불평등은 계속 증대하고 있다. 불평등 증대는 산업화 초기의 특징이고, 국가가 부유해지면 불평등은 감소하기 마련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토마 피케티가 보여주었듯, 20세기 중반 소득격차의 감소는 경제성장의 결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부가 파괴된 사태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유럽과 북미의 강력한 평등주의 정책의 결과였다. 1980년 이후 경제성장은 더 적은 불평등이 아니라 더 많은 불평등을 초래하며 이뤄졌다. 정책이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하다. 물론, 세수는 경제성장에 따라 증가할 수 있고, 그 덕분에 진보적 정부들은 사회적 목적에 예산을 더 많이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의 경우 현재 세수는, 현재 생산되는 것의 극히 일부분을 생산하던 시기인 수십 년 전과 비교해서 훨씬 적다. 엘리트들이 정부에 돈을 덜 내는 구실로 경제성장이 이용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상대적 빈곤은 현대 경제체제들의 구조적 특징이 되고 말았고, 이것은 그 경제체제들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와 무관한 특징이다.
(17) 탈성장은 비현실적 수준의 소득 감소를 요구하나?
고소득 국가들 내 중산층의 2/3를 줄여서 세계의 다른 국가들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함이란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런데 우리는 이 책에서 소득을 직접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원·에너지 사용량 감소를 이야기했다. 에너지 사용량의 2/3 감소는 생각해볼 수 있다. 편안한 중산층 생활을 해온 일부 사람들의 소득은 탈성장 시대에 감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득 그 자체는 삶의 퀄리티가 무엇인지 많은 것을 말해주지는 못한다. 1985년 스페인의 1인당 GDP는 지금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지만,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지금과 비교해서 눈에 띄게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현재 스페인의 1인당 GDP는 미국의 1인당 GDP의 60% 수준이지만,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플로리다 시민들이 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소득 중 구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생계비가 어느 정도냐, 기본 재화가 시장에서 공급되느냐 공공으로 공급되느냐, 정부의 규제를 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네 명의 저자 가운데 유럽에 사는 셋은 공공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반면, 미국에 사는 수전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유럽에서 우리는 낮은 급여를 받더라도 공공 의료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보다 더 원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18) 탈성장론은 가난한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반대하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물질 발자국 감소는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는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성장형 사회가 그 국가들에 건설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은 좋은 삶을 향한 자신들만의 길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어야만 한다. 코스타리카 같은 중위소득 국가들은 부유한 국가들에 비해 극히 적은 자원 사용량과 소득으로도 인간 발전 표준human development standards에 이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물, 공공 의료, 적정가의 주택, 식량이 필요한 것이지, 종종 자국 엘리트들이 보유한 해외은행 계좌의 금액 증대로 귀결되곤 하는, 그러나 보편적 기준이 되고 만 GDP 성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19) 세계 나머지 국가들을 빈곤에서 구제하려면 부유한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계속해야 하지 않나?
아니, 그렇지 않다. 정반대로, 부유한 국가들의 경제가 더 성장하게 되면 그로 인한 기후변화와 환경 재앙으로 가난한 사회들의 여건은 악화하기만 할 것이다. 가난한 사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전부 충족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려면, 세계 탄소 잔여 예산의 상당량이 소비될 것이다. 따라서 고 소비 국가들과 사람들은 저 소비 국가들과 사람들이 사용할 여유 공간을 위해 성장을 지양해야만 한다. 서방 세계는 세계의 다른 곳을 착취하는 방법으로 부유해졌다. 따라서 가난한 국가들의 상품을 구매하는 선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괴한 일이다. 낙수Trickle Down 이론이나 개발원조 담론은 서구의 경제성장이 남반구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한다. 정반대로, 생태적 부채의 일부를 상환하고, 불평등한 자본·자원 흐름을 뒤바꾸는 것이 고소득 국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성장 없는 경제의 관리
(20)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부채가 폭발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과 금융회사들이 부과하는 허구적인 금리에 발맞춘 경제성장을 강제할 수는 없다. 부채 탕감을 위한 국제적 메커니즘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저소득 국가들에 대한 부채 탕감 조치로 생태적 부채와 탄소 부채를 보상할 수 있다. 한편, 민주적 채무 감사Debt Audits제도가 확립되면, 상환 가능한 부채와 악성 부채를 구별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대출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자가 붙은 대출은 이자를 갚기 위한 경제성장을 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만일 대출 주체가 이자를 다시 빌려주는 것이 허용되지 않거나, 복률 이자(복리複利)가 아닌 대출용 일회성 수수료만 취득하게 되면, 작금의 사태는 완화될 수 있다. 새로운 자금이 경제에 유입되는 방식을 바꿔도 사태를 바꿀 수 있다. 화폐가 생산되자마자 부채로 변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민간 은행들이 대출을 제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공공(완전)화폐 정책 아래에서는 국가가 부채와 무관한 자금을 조성하여 사회적으로 유용한 프로젝트, 가령 GND나 UBS에 집행할 수 있다.
(21) 경제성장이 안 되면 실업률이 증가하지 않을까?
아니, 꼭 그럴 이유란 없다. 고용과 경제성장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정책이다. 일본이나 오스트리아의 경우 1% 경제성장 감소가 0.15% 실업률 증가를 유발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1% 경제성장 감소가 0.85% 실업률 증가를 유발했다. 1인당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GND, UBS, 사회적 돌봄에 대한 공공 지출 역시 일자리를 창출한다. 탈화석연료로 인해 생산성이 감소하면, 인간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더 많아질 것이다. 자동화 탓에 (적은 노동력으로도) 생산성이 증가하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실업의 증가를 막을 수 있다.
(22) 인구증가 추세의 역전을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인구증가는 값싼 노동력과 소비자를 필요로 하는 성장 시스템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탈성장을 말하며 우리는 증상이 아니라 원인에 집중한다. 높은 GDP와 낮은 출산율 사이에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는 건 확실하지만, GDP가 감소하면 출산율이 증가하기 시작한다는 말의 근거도 없다. 일부 고소득 국가들이 누리는 교육, 건강, 성평등 기회를, GDP가 훨씬 더 낮은 다른 국가들이 성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자기 신체에 관해 스스로 결정할 여성의 권리, 여성의 교육 기회를 강화·옹호하며, 연금과 공공 의료 같은 공공 정책을 시행하고, 문화·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촉진하면 인구증가 속도를 낮출 수 있고, 실제로 세계의 많은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23) 경제성장이 안 되면 시민의 행복 수준은 낮아질까?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경제성장은 더 이상 객관적인 또는 주관적인 행복을 증진하고 있지 않다. 강력한 행복 지표 집합체인 참진보지표는 1950년 이후 미국 같은 일부 고소득 국가에서, 아울러 1960년대, 1970년대 또는 1980년대 이후 다른 국가들에서 행복 수준 향상이 정체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거주민 3명 중 오직 1명만이 “매우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비율은 1973년 이후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고속 성장한 GDP와 무관하게 크게 변하지 않았다. 중위소득 국가들의 기대 수명은 고소득 국가들의 그것과 비슷하고, 코스타리카 같은 일부 중위소득 국가의 국민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미국이나 홍콩 같은 고소득 국가의 국민이 느끼는 것보다 더 높다. 평등은 GDP보다 사회 전반의 행복에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하버드 대학의 성인 발전 연구가 밝혔듯, 개인의 행복을 가장 잘 말해주는 지표는 소득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이다. 경제 축소는, 그것이 만일 특정 긴축재정 정책으로 이루어진다면 행복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식생활과 건강이라는 효능이 있는 라이프 스타일 변화를 유발한다면 또는 사람들을 더욱 친밀하게 묶어준다면, 부정적 영향은 없을 것이다. 탈성장(성장 지양)은 단순한 경제 축소가 아니라, 의미 있게 살아가고, 단순한 즐거움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관계 맺고 공유하며, 더 평등한 사회에서 더 적게 일하기라는 프로젝트다. 탈성장(성장 지양)은 삶의 행복을 개선할 수 있다.
당신이 옳다,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 책에서 공유된 이야기를 우리를 서로 이야기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클과 독서모임을, 오픈 유니버시티와 학교를 만들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토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장형 경제체제 외부에 있는, 협동적 생활·생산·소비 영역에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소비자 협동조합 가입, 비영리단체·공공단체 근무, 협동조합 은행·윤리적 은행 이용, 제품 구매 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생산자들 선호 또는 인근 텃밭에서 과일·채소 기르기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민간 시스템과 공공 시스템이 비틀거리며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바로 그러하기에 우리는 연대 속에서 서로가 현실에 대응하도록 돕고, 새로운 구조를 세우고, 커먼스와 공공 부문을 갱신할 수 있다.
탄소 발자국과 물질 발자국 감축을 위해 우리의 행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 즉, 더 적게 사고 더 많이 나누며 가능한 경우 재사용하고 재순환시킬 수 있다. 육식을 적게 하고, 운전과 비행을 적게 하며, 기차와 대중교통을, 자전거를 더 많이 이용하고, 재생가능 에너지 제공업체, 이상적인 협동조합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것 같은 사업들을 진전시키려는 의지가 있는 정치인에게 투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의견을 대변하는 이들을 향해 경제성장 미화를 당장 그만두지 않는 한, 5대 개혁 과제 추진에 나서지 않는 한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 지지하는 정치인, 정당들의 캠페인과 방문 캠페인에 참여해 그들을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직 미가입 상태라면 노동조합이나 학생조합에 가입해서 더 나은 조건과 더 짧은 노동시간을 위한 파업에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 행동을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긴축재정·퇴학·대학 등록금 인상·학생 부채에 반대하거나 도시인으로서의 권리·주택권 또는 노동자·여성·이민자·청소 노동자cleaners의 권리를 옹호하는 직접 행동과 시위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마을과 도시, 직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갈등의 뿌리에 경제성장을 위해 더 커다란 희생을 계속 요구하며 경제성장을 촉구하는 힘과 세력들이 있음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24시간이 주어질 뿐인 하루라는 시간은 이 모든 것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생계를 지속해야만 하고, 많은 지역과 사회들에서 생계 지속의 여건은 점점 더 척박해지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파티 개최든 음악 작곡이든, 대화나 시위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에서 기쁨을 찾아낼 권리가 있다. 우리는 어느 날 약해질 수 있고, 다른 이들이 우리를 돌보게 할 수 있고, 언젠가 우리도 그들을 돌볼 것이라는 자각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순들(기억해보시길, 최대 일곱 개다!)을 껴안고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159~182)